온라인 게임에서 유저가 유저를 재판한다. 사뭇 살벌한 분위기가 펼쳐지지만 일단 사실이다.


아직 정식으로 서비스되지 않았지만, 국내에도 이미 많은 팬이 있는 AoS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 LoL)가 최근에 ‘트리뷰날(Tribunal) 시스템을 제한적으로 오픈했다.

※ AoS 게임이란? AoS는 스타크래프트1 유즈맵 Aeon of Strife의 줄임말. 워크래프트3의 강력한 맵에디터로 제작된 인기 유즈맵 DoTA로 대표되는, 자신이 선택한 영웅을 육성해 상대와 겨루는 형태의 게임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워크래프트3의 '카오스'가 유명하다.




[ ▲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AoS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




트리뷰날을 영어사전에 찾아보면 "재판소, 법원, 조사 위원회" 등의 의미가 있는데, LoL에서의 트리뷰날은 게임 내에서 비매너 행위로 신고받은 특정 유저를 다른 불특정 다수의 유저가 다양한 판단 근거를 통해 '처벌'을 할지 아니면 그냥 '용서'를 할지 ‘재판’하는 시스템이다.



[ ▲ 출처: 네이버 영어 사전 ]




AoS 게임을 비롯해 스포츠게임, RTS 등 상대와의 경쟁, 그리고 승패의 결정이 게임플레이의 핵심인 게임들은 욕설, 폭언, 그리고 고의적인 자리 비움 같은 비매너 행위들이 끊임없이 문제로 작용해 왔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AoS 게임인 LoL도 마찬가지.


특히, LoL의 경우 한번 팀이 꾸려지고 경기가 시작되면 유저가 중간에 접속을 일단 끊어도 캐릭터는 계속 그 방에 접속한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에. 비매너 유저들이 고의로 자리 비움을 하거나 잠수하면서 상대방 혹은 같은 팀원들에게 욕설 혹은 폭언을 퍼붓는 경우가 상당히 자주 발생했다.


정전 혹은 불의의 사고로 말미암은 접속 종료를 보완하고, 유저들이 쉽게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성실한 플레이를 펼치도록 유도한 시스템의 부작용인 셈이다.


해서, LoL 운영진 측은 게임이 끝난 후에 정상적인 플레이를 한 유저들이 비매너 유저를 다양한 사유로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추가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는데, 이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하루에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의 경기가 펼쳐지는 LoL에서 한정된 인원의 운영자들로 만은 접수된 신고를 다 처리해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난 24일 출시된 '튜리뷰날' 시스템은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LoL 운영진 측이 꺼내 든 '비장의 카드'라고 볼 수 있다. '유저가 유저를 직접 재판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말이다.



[ ▲ 1) 로그인해서 2) 사건을 판결하고 3) 보상을 획득하라!
LoL의 트리뷰날 시스템 ]





트리뷰날 시스템 따라가기


▶ 이용 자격

LoL 운영진도 유저가 다른 유저를 행위를 판단하는 만큼 무분별하게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현재, 트리뷰날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특정 '자격'이 필요하다. 자리 비움 혹은 다른 비매너 행위로 신고받지 않았어야 하며, 서모너 레벨이 30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24시간 안에 총 3건의 판결에만 참가할 수 있다. 하루에 3건의 판결을 한 이후에는 더 하고 싶어도 참가할 수 없다.


▶ 가이드라인

다시 한번 트리뷰날 시스템에 대한 운영진 측의 신중함을 엿볼 수 있는 단계. 유저가 트리뷰날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잘못 판단하지 않도록 이용 수칙을 총 15개의 항목으로 정리해뒀다. 유저들이 반드시 읽고 실제 판결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각 항목의 제목만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좋은(Good) 판결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라.
2. 주의 깊게 읽어라.
3. 해당 언어(영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

4. 그릇된 행동을 처벌해야지, 플레이를 잘 못한다고 처벌하면 안 된다.
5. 확실한 증거를 살펴라
6. 유저 지침(Summoner's Code)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7. 보고된 모든 게임을 두루 살펴라.
8. "처벌"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9. "용서"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10. 신고된 유저에 집중하고 트리뷰날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11. 공정한 판결이 될 수 있도록 하라.
12. 캐릭터 이름이 공격적이라고 처벌하면 안 된다. 실제 행위를 보라.

13. "넘어가기"(판결 보류)는 정말 좋은 선택지다.
14. 본인이 원할 때 언제라도 '트리뷰날'을 멈출 수 있다.
15. 사건을 판결하기 전에 심사숙고할 1분 이상의 시간을 가져라.




[ ▲ 판결에 앞서 가이드라인을 유심히 읽기를 권하고 있다. ]




▶ 실제 판결

길고 긴 가이드라인을 다 읽고 제일 아래에 있는 "동의합니다." 버튼을 눌러야 실제 판결 페이지로 넘어가게 된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전체 신고받은 유저 중 무작위로 한 명에 대한 판결 페이지가 나타나는 것.


중앙 상단에 신고받은 유저의 "캐릭터 이름"이 보이고 바로 옆에 1분의 타이머가 표시된다. 1분이 지나기 전에는 그냥 "넘어가기" 외에 다른 옵션을 선택할 수 없는데, 무분별한 판결을 막기 위한 또 다른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판결을 위해 제공된 해당 유저의 정보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캐릭터 초상화와 그 옆에 해당 유저가 소유했던 아이템 리스트, 그리고 적을 죽였거나 자신이 죽은 횟수 등의 '스코어'가 표시된다. 그 아래 '통계' 부분에서는 해당 게임에서의 서모너 레벨과 DPS 등 더 자세한 수치들이 보인다.



[ ▲ 유저 아이디 (모자이크 처리) 아래로 초상화와 아이템, 스코어, 각종 통계 자료가 표시된다. ]




이제, 그 밑으로는 실제 다른 유저들로부터 신고를 받게 된 사유가 나열된다. 주된 사유를 살펴보면, "자리 비움", "고의적으로 자살해 적에게 도움 주기", "욕설 혹은 폭언" "부정적인 태도" 등이 있다.



[ ▲ 욕설 및 공격적인 언어 사용으로 신고받은 경우
같은 팀으로부터 2번, 상대방 팀으로부터 3번 신고를 받았다. ]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결정적인 정보는 바로 "채팅 기록"이다.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해당 경기에 참가한 유저들이 채팅한 내용이 모조리 다 들어있다. 차근차근 읽어보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해당 게임이 참가하지 않았지만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 ▲ 공정한 판결을 위해 해당 경기의 전체 체팅 기록이 제공된다. ]




캐릭터 플레이 통계부터 신고 내용, 그리고 채팅 기록을 면밀히 살펴본 후에야 드디어 판결을 내릴 수 있는데,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처벌", "용서" , "넘어가기"



처벌과 용서는 단어 뜻 그대로고, '넘어가기'는 판결하는 유저가 비매너 행위를 잘 파악하기 힘들거나 판결하기가 애매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즉, '판결 보류'의 의미. '넘어가기'를 제외한 처벌과 용서는 바로 클릭 되지 않고 보통 카페 자동가입을 방지하는 용도로 쓰이는 "문자 입력"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최종 클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판결 과정.



[ ▲ 판결에 대한 세 종류의 선택지 ]





▶ 최종 판결과 트리뷰날에 참가한 유저들에 대한 보상

LoL 운영진은 유저들로부터 접수된 수많은 신고 중에서 '트리뷰날 시스템'을 거친, 다른 유저들이 '처벌' 혹은 '용서'의 의견을 다수 개진한 신고를 선별해서 최종 판결을 내리게 된다. 트리뷰날 시스템이 생기기 전, 운영진이 모든 신고를 살펴야 하는 상황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것.


트리뷰날에 참가한 유저들은 자신의 판결이 운영자가 내린 최종 판결과 일치할 때 소량의 게임 내 화폐(IP)를 지급받게 된다. 트리뷰날 자체가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다른 유저들의 경기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나름 재미를 주기 때문에 30레벨 이상의 유저들이라면 하루 3번 꼬박꼬박 판결에 참가하게 된다. 적절한 동기부여가 되는 셈이다.




과연 튜리뷰날 시스템의 이점은?


1.
트리뷰날 시스템을 통해 운영진의 업무를 유저들에게 떠넘긴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업무를 가중시키는 허위 신고를 사전에 가려내고 다수 유저들에게 '처벌' 판결을 받은 비매너 유저를 효과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는 점은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직접 LoL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도 분명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2.
공식적인 제재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운영진이 모든 것을 처리할 경우 설령 비매너 행위를 한 유저라도 할지라도 쉽사리 수긍을 못하고 해당 게임의 장기적인 안티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트리뷰날 시스템의 경우, 운영진의 독단적인 판결이 아닌, 플레이하는 다른 유저들의 판결이 함께 반영된 결과기 때문에 제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다.


3.
LoL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바람직한 플레이'를 장려하는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 모든 유저들이 온라인게임에 익숙하지는 않다. 고로, 고의적인 의도 없이 실수로 비매너 행위를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트리뷰날 시스템에 직접 참가하게 되면 다른 유저들의 경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봄으로써 어떤 행위가 나를 비롯한 다른 유저들에게 피해를 주는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된다. 이는 게임사에서 이벤트 상품을 거는 등, 추가 비용을 들여 '바른 게임 문화' 캠페인을 펼치는 것 이상의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 장문의 유저 지침(Summoner's Code)을 손쉽게 알리는 효과 ]








준비 과정은 무척이나 길었지만 LoL에 실제로 '트리뷰날 시스템'이 도입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LoL을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트리뷰날 시스템이 최종적으로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유저와 운영진이 아닌, 고객과 서비스사의 관계로 보면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한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LoL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온라인 게임이 이러한 '유저재판'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겠는가?'라는 평가들.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LoL 국내에 정식 서비스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밝혔고, 현재 한국 지사장 선임을 비롯한 관련 팀 셋업 등 정식 출시를 위한 준비 단계를 하나, 둘씩 밟는 중이다. 라이엇게임즈 한국지사 권정현 이사에 따르면 오는 6월 말에는 LoL 국내서비스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앞으로 LoL의 트리뷰날 시스템이 비매너 행위와 욕설, 비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온라인 대전게임들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지는 않을까? 과연 국내 유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트리뷰날 시스템은 기자가 LoL의 국내 서비스를 애타게 기다리는 또 다른 이유다.



[ ▲ 6월 말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국내 서비스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