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유명 프로게임단 SK게이밍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던 장민철이 홀로서기에 나섰습니다. '프통령'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그는 협회와 연맹, 해외팀을 모두 거친 관록있는 게이머로 성장했는데요. 2013년 WCS 체제가 출범한 이후 유럽 지역을 선택해 수차례 결승에 오르며 꾸준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우승에는 실패하면서 정점을 찍지는 못했죠.

최근 연이은 게임단 해체 소식에 갈 곳을 잃은 선수들 다수가 해외 팀을 물색하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스타2 선수들은 전보다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에 대해 '해외파' 장민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는 말합니다. '고석현'과 같이 연봉을 떼이는 일이 없어지려면 해외 팀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고.

장민철 선수는 인벤과의 인터뷰에서 해외팀 생활에서 얻은 경험, 한국 선수들이 주의해야 할 것, 그리고 고석현 선수의 이야기, 이번 시즌에서의 아쉬웠던 점과 내년의 각오를 밝혔습니다. 장민철이 바라보는 스타크래프트2의 미래는 어떨까요? 그가 걸어온 3년간의 해외팀 인생은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 홀로서기에 나선 장민철, "곧 새로운 개념의 팀과 함께할 것"

▲ SK게이밍을 떠나 새로운 팀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인 장민철 선수


Q. SK게이밍과의 결별은 급작스러운 소식이기도 했어요. 한국에는 언제 오셨나요?

12월 말쯤에 들어왔어요. SK게이밍에는 11월 말쯤에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했어요. 고민식 매니저라고 저를 SK게이밍에 데려온 형이 있는데 이 분의 소개로 좋은 조건에 다른 회사에 가게 돼서 SK게이밍을 나오게 되었어요.


Q. 새로운 팀을 벌써 구하셨군요! 어떤 팀인지 살짝만 귀띔해줄 수 있나요?

팀이라기보다는 개인 스폰서를 잡는 식으로 활동할 예정이고요. 매니저 형이 다른 선수들을 영입해오는 식으로 운영될 예정이에요. 아직은 지출만 있고 수입은 없지만, 저랑 민식이 형이 잘 돼서 나중에는 팀 리그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존의 게임단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관계가 될 거예요. 선수가 팀에 종속되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동등한 입장이 되는 비즈니스 파트너십에 가까운 관계라고 보시면 돼요. 일종의 연예기획사 같은 구조죠.


Q. 아무래도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니 연습량이 걱정되네요. 연습은 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독일에 게이밍하우스를 만들 예정이에요. 저를 포함해서 한국인 선수 2명이 있을 예정이고요. 한국과 같은 숙소의 개념은 아니고 새로운 형태를 선보이게 될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발표할 수 있을 듯합니다. 궁금해도 잠시만 참아주세요(웃음).


■ 해외팀 진출이 능사일까? 외국에서 3년 활동한 장민철의 조언

▲ 장민철 선수는 올해로 해외팀 진출 3년 차를 맞이한다


Q. 장민철 선수는 해외팀에서 오래 활동하셨죠? 해외팀 활동의 장점은 어떤 점이 있나요?

제가 2011년 3월부터 외국에서 게이머 생활을 했어요. 협회와 연맹, 외국팀 시스템은 전부 경험을 해본 사람은 저 밖에 없네요. 우선 각 시스템의 장점을 설명하자면 협회 시스템은 연습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하지만 대신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죠. 연맹 시스템도 연습이 다소 엄격하지만, 협회 시스템보다는 덜하죠. 의지가 약한 선수들은 나태해질 수 있어요.

반면 해외팀은 연습시간에 대해 매우 자유로운 편이죠. 그러다 보니 의지가 약한 선수는 게이머 인생을 망칠 수도 있죠. 누군가가 과제처럼 게임을 시켜야 잘하는 선수들도 있는게 사실이니까요. 개인의 차이에요. 하지만 많은 한국 선수들이 해외팀 시스템하고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본 성공 케이스가 제동이 형인데 그 형은 워낙 오래전부터 자기 관리를 정말 철저하게 하시죠. 이런 선수들이 해외팀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영어가 빨리 늘어요. 영어를 잘 몰라도 계속 하다보면 확실히 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경험도 많이 늘죠. 해외의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말이 좀 안 통하고 약간 불편한 점은 있지만요. 또 유럽의 경우 식당이 일찍 문을 닫아요. 한국과 같이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불편해요. 그런 사소한 점을 제외하고는 생활하기엔 대체로 한국과 비슷한 편이에요.


Q. 최근 WCS 지역을 북미나 유럽으로 선택하는 선수가 늘고 있죠. 이에 대해 조언을 하자면?

솔직히 말해서 한국보다는 북미나 유럽에서 경쟁하는 게 더 수월하죠. WCS GSL에 강한 선수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협회 선수들은 프로리그 일정도 있어서 북미나 유럽을 선택하고 싶어도 못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외국보다 한국 지역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한국 선수들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외국 선수들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에요. 외국 상위권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의 예상보다 훨씬 잘합니다.

조언하고 싶은 점은 지역을 옮기더라도 선수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하나 외국에서 하나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지는 건 똑같아요. 열심히 한 만큼 이기는 것도 똑같고요. 상대가 쉬워졌을 뿐이지 자신이 레벨업을 한 것은 아니거든요. 방심만 안하면 어떤 한국 선수라도 8강 안엔 들 것 같지만, 대진운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결승에서는 가장 잘하는 선수를 만나거든요.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승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Q. 장민철 선수의 자신감 있는 태도가 많은 해외 팬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죠. 본인의 생각은?

각자의 성격 문제도 있겠지만, 옛날 협회 선수들의 경우에는 선후배 관계가 중요했어요. 후배들은 선배를 깍듯이 대했죠.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말하기 어렵죠.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성격이 매우 활발한 편이라 유리했다고 봐요.

한국 선수들이 자신을 제대로 어필 못 하는 이유가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해요. 영어를 못 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이상한 건데 말이죠. 문장을 이으려고 하지 말고 단어 몇 개만 말해도 다 알아듣거든요. 의사 표현에 그 정도만 해줘도 현지 팬들은 정말 좋아해요. (원)이삭이는 정말 잘하고 있죠. (백)동준이도 잘 못하는 편이었는데 여러 경기에 출전하고 팬들이 환호해주고 하니까 달라지기 시작했죠. 프로게이머가 게임만 잘하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 "게이머가 게임만 잘하는 시대는 지났다." 팬과의 소통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장민철


Q. 프로게이머가 해외 팬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중요할까요?

원래의 성격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WWE에서는 정의의 사도 컨셉과 악당 컨셉같은 역할이 존재하잖아요. 'Idra' 그렉 필즈가 악당 컨셉이었고 제가 그 선수를 응징하는 구도였을 때 팬들이 엄청 좋아했어요. Idra와 제가 경기하면 10만 명이 보고 그랬거든요. 선수들이 라이벌 구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앞으로 라이벌 구도를 제동이 형과 만들고 싶어요. 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대회에 출전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 프로의 사명이자 의무죠. 그토록 냉정한 승부의 세계지만 '져도 즐거운' 선수가 세명 있어요. 'Idra' 그렉 필즈, '스테파노' 일리예스 사우토리, 제동이형이죠.

이 선수들하고 경기하면 서로 인정하게 돼요. "네가 잘해서 진거다.", "네가 못해서 진게 아니다."라고 말하죠. 서로의 진심이 느껴지니까 "너랑 대회에서 만나면 재밌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구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게임은 혼자만 하는게 아니니까요.


Q. 해외는 LOL과 도타2도 인기가 많은데 선수가 직접 느끼는 스타2의 인기는 어떤가요?

해외에서 LOL이 요즘 조금 시들해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스타랑 다르게 LOL은 선수가 너무 자주 바뀌잖아요. 유럽은 저번 시즌 다섯 명이 같이 있는 팀이 하나도 없어요. 상위 8개 팀이 전부 바뀌었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박지성 선수 팬인데 박지성 선수가 QPR로 이적하면 저는 QPR을 응원해야 할지 맨유를 응원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아니에요? 팬들도 1년에 수차례씩 바뀌는 선수 구성에 혼란을 느낄 것 같아요.

또 선수가 바뀌면 플레이스타일도 바뀌고, 그러면 자연히 한 팀을 계속 좋아할 수 없잖아요. 인기는 죽지 않았지만 이런 부분 때문에 조금씩 시들어가는 것 같아요. 스타2의 경우에는 선수들이 방송하는 개인 스트림은 많이 봐요. 하지만 대회 스트림은 시청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대신 인기 많은 선수끼리 붙으면 아직도 시청자 수가 많으니까 저력이 있는 것 같아요. WCS 유럽은 유료관람이거든요. 하루 8만 원 정도의 적지 않은 가격에도 매일 꽉 차요.


Q. 한국의 스타2 시장은 많은 팀이 해체되면서 축소되는 형국입니다. 아쉽지 않아요?

한국 팀이 해체되는 수순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이 될 수도 있어요. 지금 당장 LOL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스폰서를 잡으려고 해도 LOL팀이 스타2팀보다 먼저 잡겠죠. 제가 후원사 사장이라도 그럴 것 같아요. 또 그동안 팀이 너무 많았어요. 스폰서는 한정적인데 여러 팀이 그 제한된 자금을 나눠 가져야 하니까 금액도 적어지고 유지가 안 되는 팀들은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이죠. 팀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하지만 제가 걱정인 것은 그로 인해 길을 잃은 선수들이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e스포츠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해주는 SK텔레콤이란 기업이 고맙죠. 아직도 많은 부분에 투자하고 있잖아요. 이런 점에 고마워서라도 저희 선수들이 한국 시장에서 더 노력해서 팬들도 더 많아지고 다른 팀들도 스폰 받을 수 있도록 전체적인 규모를 키워 봐야죠.


Q. 그래서 활동할 팀을 찾지 못한 선수들이 대거 해외팀을 물색하는 상황이 되었죠. 본인의 생각은?

한국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연장하려고 해외팀을 찾는 상황이 전 마음에 안 들어요. 해외 팀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볼까요? 아직 부족한 선수들이지만, 해외팀이 긍정적으로 영입을 고려하면 선수들이 연봉을 너무 높게 부르는 경우가 있어요. 팬덤도 없고 뚜렷한 성적도 못 낸 친구들이 너무 높은 액수를 부르니까 해외팀 CEO들도 지쳐요.

이런 부분은 한국 선수들이 자제해야 해요. "월급은 적게 받더라도 해외대회에 출전하게 해달라."고 해서 입단한 뒤에 힘든 역경을 딛고 그렇게 성적을 내면 '빅 팀'에게 오퍼가 오는 거죠. 처음 외국행을 택하는 선수들이 제동이 형이나 제가 받는 만큼의 액수를 처음부터 원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외국팀들은 한국 선수의 영입을 사실상 포기했어요. "얘내들은 말 걸어봤자 고액 연봉을 부르니까."라는 인식이 팽배해요. 게이머란 직업이 잘하면 대우받을 수 있는 거고 못하면 고개를 숙이더라도 기회를 얻는 게 중요한 거죠.


■ 상금과 연봉 떼인 고석현을 도운 동료와 팬… 선수 본인이 조심해야

▲ 장민철은 고석현 서포트 토너먼트를 주도했던 선수 중 한 명이다


Q. 동료 게이머인 고석현 선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죠. 이를 돕는 토너먼트는 어떻게 기획한 거죠?

석현이 형과는 MBC게임에서 활동할 때부터 친해서 이미 넉 달 전부터 고충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해외 팀 선배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죠. 마침 민식이 형이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조언을 구했어요. 참 안됐죠. 사실 해외 팀이라고 전부 잘 나가는 것은 아니에요. 뿌리가 단단하지 않은 팀들이 있고, 그런 팀들에게는 돈을 떼일 수도 있단 생각을 했거든요. '설마' 하던 그게 진짜 일어난 거죠. 정말 아쉬워요.

서포트 토너먼트 경우에는 석현이 형이 팬들로부터 많은 기부를 받고 격하게 감동하셨대요. "내게 돈까지 주면서 나를 원하는 팬이 많았다. 부족한 생활비가 충족되면 다시 게임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냥 돈만 받기는 그렇지 않나. 그래서 보답 차원에서 친한 선수들을 모아서 게임이라도 하자"면서 제게 물어보더라고요.

처음에는 토너먼트가 아니라 저랑 3판 2선승, 5판 3선승 경기를 하고 석현이 형의 개인화면을 중계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석현이 형이 해설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해서 그렇게 진행이 된 거죠. 출전한 네 명의 선수 다 석현이 형과 엄청나게 친해요. 우승자한테는 돈을 나눠준다네요. 제가 우승한다면 석현이형 쓰라고 줄 계획이었는데 (강)동현이에게 져서 실현하진 못했네요(웃음).


Q. 상금과 연봉을 떼이는 경우가 해외팀에서 활동하면서 겪을 수 있는 흔한 사례인가요?

생각보다 많아요. 게임단이라는 사업체 자체가 스폰서한테 돈을 받고 나뉘주는 형식이다보니까 스폰서가 돈을 안주면 선수들에게 돈을 줄 수가 없어요. 그런 경우도 있고 피치 못한 사정으로 돈을 써야한다 그러면 양해를 구하고 체불하는 경우도 있죠.

초창기에 워크래프트3 선수들이 연봉을 떼이는 일이 많았죠. 그땐 e스포츠 시장이 아직 자리를 못 잡아서 운영자부터 아마추어 마인드가 강했죠. 대표적인 경우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스폰서에게 투자받은 금액을 전부 써버리는 일이에요. 그러다가 스폰이 끊기고 나니 자기들도 못 벌고, 선수들도 못 받는 일이 일어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팀을 운영할 자격도 부족한 사람들이었죠.

MYM이라고 지금 존재하는 MYM과는 다른 팀이 있었어요. 당시 한 달에 3천만원을 후원 비용으로 받았는데 그 돈을 계획 없이 선수 연봉으로 다 써버린 적이 있다고 하네요. 운영 자금을 남길 생각도 안 하고 지불할 능력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줬대요. 하지만 지금은 운영을 고려하면서 돈을 쓴단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팀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가 없어요. 콴틱 게이밍이 스폰서가 많지도 않고 회사도 크지 않아서 석현이 형이 상금과 연봉을 못 받은 건 어찌 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죠.

그래서 선수들도 해외팀을 선택할 때는 연봉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 회사인지 확실히 알고 가야 해요. 일부 선수들은 성급하게 팀을 선택한 것 같기도 해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적한 팀이 뭐하는 팀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월급을 지급할지도 모르겠어요.

선수들이 영어를 모르면 계약서를 못 읽는데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합니다. 석현이형도 스트리밍 시간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변호사를 고용해도 승소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대요. 변호사 쪽에서는 "수임료는 나가더라도 상대를 감방에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돈을 받기엔 어렵다." 이렇게 나오는 거죠. 이게 전부 계약서 내용을 잘 몰랐으니까 대응이 안 되는 거에요. 아니, 못하는 거죠.


Q.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선수가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할까요?

계약서가 가장 중요해요. 통역을 받더라도 선수 본인이 계약의 내용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해요. 선수들이 어리다 보니 사람을 잘 믿기도 해요. 그런 점을 특히 조심해야죠.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며 상대의 제안을 너무 쉽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부모님과도 상의하는 것이 좋고, 그게 어렵다면 학교 선생님, 게이머 최고참 선배들인 (정)종현이형, (임)재덕이형 이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 2013년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한 해… 모두 털어낸 2014년, 비상만이 남다

▲ 결승에는 올랐지만, 우승은 실패했다. 정신적인 영향을 원인으로 꼽는 장민철


Q. 성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2013년엔 대체로 어땠던 것 같아요?

작년에 우승을 한 번도 못했어요. 아쉽죠. 왜 우승을 못했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모범적인 답안으로는 "운이 없었다, 상대가 잘했다."라고 할 수 있고, 실제로는 제가 연습을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게이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게 힘들어요. 직업이 된 지 6년이 되어가다 보니까 재밌지가 않아요.

그래도 아직 지기 싫은 마음은 있어요. 대신 연습할 때는 재미가 없지만, 대회에 나가서 이기면 희열이 느껴져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연습을 왜 열심히 안 했는지, 많이 후회되죠. 올해는 정확한 목표를 잡았으니까 열심히 연습해야죠

만약 졌는데도 화가 나지 않는다면 은퇴를 해야죠. 제가 이제 최고참의 반열에 드네요. 위에 선수들이 너무 많이 은퇴하기도 했어요. 제 생각은 '2년만 더 해보자.'란 생각입니다.


Q. 연습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가 혹시 있나요?

제가 작년 3월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여섯 달을 힘들게 지냈어요. 다른 생각만 나고, 혼자 외롭더라고요. 그러고 있다가 12월에 깨달음이 왔어요. "사랑보다 게임이 더 중요하다. 본업에 충실해야 다른 사랑도 만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다, 성적이 안 나와도 바라봐주는 팬들이 있으니까 그들을 실망하게 할 순 없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당분간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좋아만 하고, 게이머 그만둘 때까지는 연애를 안 하려고요. 이제는 탐사정과 연애를 해야죠.(웃음) 이해심이 많은 여자친구가 있으면 참 좋은데 헤어지면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게이머가 정신력이 중요하다 보니까 악영향이 너무 컸어요. 망가지는 저 자신을 느꼈어요. 이제 마음도 다 정리됐고 합숙 생활도 하니까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Q. 2014년 WCS 개편안을 보면 시즌 파이널이 사라진 것이 장민철 선수에게 큰 영향이 가겠네요. 본인의 생각은?

아쉽죠. 시즌 파이널이 사라져서 쉽게 받는 상금이 사라졌어요. 저는 "절대 4강 아래에선 떨어지지 않는다."란 각오도 있었고, 그 각오만 지킨다면 시즌 파이널에는 무조건 가잖아요. 일단 올라가면 얻을 수 있는 상금이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얻지 못하게 되었으니 아쉽죠.

솔직히 말해서 "잘하는 게 편하다."라는 생각을 해요. 애당초 잘하는 선수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게 맞아요. 그런 점에서 GSL이 있는 한국 쪽의 상금이 더 높아야 하죠. GSL의 선수들이 더 힘든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것으로 불만을 품는 북미와 유럽의 일부 선수들은 한국 가서 게임 해야죠. 좀 더 쉬운 쪽, 한국보다 불안감이 덜한 곳에서 경기하면서 블리자드의 개편안에 항의를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 같아요.

게이머가 지켜야 할 점이 있다면 게임 외적에 대한 요소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지나치게 간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경기의 승패에 관련된 것이라면 이의제기를 할 수 있죠. 컴퓨터의 상태나 부스 세팅에 이상이 있으면 당연히 의견을 말해야겠지만 대회의 방식을 가지고 선수가 딴죽를 걸 필요는 없어요. 일단 선수들은 게임에만 집중하면 좋겠어요.

작년에 WCS에 대해 말한 것도 후배 게이머들을 위한 것이지 저를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사실 작년 개편안 자체는 제게 유리했어요. 하지만 다수의 후배 게이머들에게 안 좋은 것이니까 말한 거죠. 지금도 저는 WCS 유럽 상금이 소폭 올라서 좋아요.


Q. 일부 관계자들은 WCS 통합이 스타2 약세의 결정적 원인이란 이야기를 하죠. 이에 대한 생각은?

제 의견은 다르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GSL이 작아졌다.' 그거 하나에요. 선수라면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죠. 과거에는 GSL이 기본이었고 해외 대회는 군소대회였죠. GSL이 명실상부한 메인이었는데 WCS 개편안으로 인해 GSL이 세 개가 된 것 아닌가요? 최고 권위를 갖던 대회가 셋으로 쪼개진 것은 곰TV의 입장에선 아쉬울 거예요. 인기 있는 선수들도 세 곳으로 나뉘었고요.

예를 들어 당장 이제동 선수는 GSL이 아닌 WCS 북미를 택했으니 GSL에서 볼 수 없게 됐고, 자연스럽게 GSL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죠. 그런데 이게 블리자드가 의도한 것 같기도 해요. "이제동이 한국 선수지만 북미 지역에서 활동하는 선수니 북미 지역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해라, 지켜봐 달라"는 의도였고, 그런 뜻으로 한국 선수들의 지역 이동을 막지 않았죠. 시즌 파이널이란 제도를 활용해 우리나라 선수들을 북미대표, 유럽대표로 만들어서 대결하는 구도를 그렸다고 생각해요.

시너지 효과도 분명 있었지만, 나쁜 점은 GSL이라는 큰 대회가 사라졌다는 점. WCS가 결국 한국 선수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거죠. 세계 선수들이 모두 모이지 못할 거니까. 하지만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는 법이죠? 블리자드에서 생각 없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에요. 통합 WCS 체제를 통해 유럽과 북미시장이 커졌다는 장점은 확실히 있어요.

다만 MLG(Major League Gaming)가 스타2를 하지 않게 된 것은 블리자드가 잘못한 것 같아요. 게이머 입장에서는 아쉽죠. 하지만 WCS 북미를 주관하는 NASL이 요즘 잘하고 있고, 선수 관리도 잘한다고 해서 장단점이 갈리는 것 같네요.

▲ 장민철은 GSL이 축소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Q. 해외 선수들 입장에서는 한국 선수들과의 경쟁에 불만을 품지는 않았나요?

그런 생각을 가진 선수는 별로 없어요. 보통은 "한국 선수들이 잘하니까 당연히 이기는 거라고, 불만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고 러시아 선수들의 경우에도 "(한국 선수가) 잘하는 게 당연하고 우리보다 열심히 하니까 불만을 가지면 안 된다."고 말하죠.

일부 소수의 선수가 "쟤내들은 게임만 하는 애들인데 우리가 어떻게 이기냐."란 말을 해요. 외국 선수들은 게임만 하는 선수가 별로 없긴 하거든요. 하지만 정작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은 행실이 평소에도 좋지 않아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선수들이죠. 대부분 원만한 성격을 가진 선수들은 국적 상관없이 잘하는 선수들이 최고예요.

타이탄이란 선수가 있어요. 저랑 친해진 계기가 2:1로 제가 이기고 난 뒤 상대 부스에 가서 "너 잘하더라, 지는 줄 알았다."라고 했더니 "네가 그런 말을 해줘서 정말 영광이다. 한국 선수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거 알아서 친해지기 힘들 줄 알았는데 직접 말해주니까 좋더라."라고요.

제가 "한국 선수들에게 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라고 물었더니 "실력이 부족하면 지는 게 당연하다"고 했죠. 축구에서 브라질과 붙었는데 어떻게 이기겠나. 그런 생각이에요. 하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국가대표끼리 대결하면 당연히 자국의 대표팀을 응원하겠죠. 한국이랑 브라질이 붙는다고 해서 브라질을 응원하진 않겠죠?

'나니와' 요한 루체시와 '스칼렛' 샤샤 호스틴 같은 선수들은 노력하고 그만큼 보여주잖아요.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겠죠? 북미 쪽은 잘 모르겠지만, 유럽 선수들은 정말 강력한 것 같아요.


Q. 그럼 이번 WCS에서 리플레이가 공개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리플레이는 공개한다는 것은 빌드를 공개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저랑 (정)종현이 형이 친선전을 하고 리플레이가 나오면 그 리플레이를 우리 팀원에게 보여주고, 팀원들은 리플레이를 통해 빌드를 배우죠. 유럽 같은 경우에는 선수들이 제가 쓰는 빌드와 '나니와'가 쓰는 빌드를 배워서 자신에 맞게 바꿔요. 그렇게 되면 상향 평준화가 되는 거잖아요.

GSL 8강안에 드는 선수들도 자신의 두 번째, 세 번째 주력빌드로 우승했을 거에요. 다양한 빌드는 한국만의 강점이었죠. 그럼 유럽 선수들은 자신 있는 빌드를 들고와도 지겠죠. 그렇기에 리플레이가 공개된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물론 (최)지성이형 같은 경우 타격을 받겠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 리플레이를 보고 실력이 상향 평준화가 되잖아요.

결국, 리플레이 덕분에 모두 잘하게 되면 선수들의 특성이 비슷해 버릴 순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특이하게 플레이하는 선수들이 인기가 생기죠. 다들 로봇 공학 시설을 선택하는데 어떤 선수는 우주 관문을 고집하는 플레이를 해서 이긴다면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겠죠?

결국, 스타1도 나중엔 다 똑같은 빌드를 썼지만 한상봉 선수는 올인이 유명했고 박지호 선수는 병력을 들이받는 운영이 인기가 있었잖아요. 김구현 선수는 셔틀을 좋아했고, 도재욱 선수도 물량이 장기였고요. 다 비슷하지만, 본인의 색깔이 나오려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저도 점멸 추적자를 좋아하는 제 특성이 있으니까요.


Q. 그렇다면, 스타2가 다소 부족한 행보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스타2가 인기 없었던 이유는 스타1과 스타2를 두고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끼리 너무 싸웠고, 협회와 연맹이 다투는 동안 신흥강자가 나타나 시장을 장악하면서 일이 꼬였다고 생각해요. 게임이 너무 비싸기도 했고요. 결국, 게임에 대한 인식차이가 외국과 우리나라가 너무 달라요.

만약 부모님께 스타2 살 테니 돈 좀 달라고 한다면 웃으면서 줄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요? 서구권에서는 취미 생활에 돈을 쓰는 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죠. "그래, 사 줄 테니 네 일만 열심히 해라." 이런 느낌이죠. 우리나라도 이런 분위기였다면 성공했을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그렇지 못하니까요. 게임에 대한 인식이 안 좋으니까 게임에 돈을 쓸 수가 없었던 거죠.


Q. 장민철 하면 세레모니죠! 2014년에는 특별한 세레모니를 기대해도 될까요?

세레모니를 딱히 생각하고 있는 건 없어요. 옛날에는 생각하고 했다면 11년 때는 즉흥적으로 했거든요. 다른 게이머들이 세레모니를 하는걸 보면 어색해요. 자연스러운 것은 원이삭 한 명? 그것도 어색하긴 한데 다른 애들이 하면 손이 오그라들 정도예요.

자기가 기뻐서 하는 게 세레모니지 이겼다고 하는 게 세레모니는 아니에요. 제가 이겨서 정말 기분이 좋다면 몸이 알아서 하지 않을까 싶어요. 연습 때 있었던 일인데 제가 엘리전 하다 이겼어요. 그러니까 "와싸!"를 외치면서 저도 모르게 어퍼컷을 날리는 거에요. 옆에서 절 보던 매니저 형이 놀라서 몸을 피했죠.

세레모니는 하는 사람도 모르게 나와야 해요. 그래야 멋있는거고. 그런 기회가 내년에는 왔으면 좋겠어요. 기뻐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세레모니, 해야겠다가 아니라 바로 나오는 그런 세레모니요.


Q. 장민철 선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년에는 우승도 없었고 'MC'만의 색깔이 있는 경기를 많이 못 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경기를 많이 못 했고, 뭐라 그럴까 자기를 돌아보는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위치에 있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할 위치인가 돌아볼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어느새 6년 차 게이머, 나이는 스물넷인데 감회가 새롭네요. 95년생도 게이머를 한다는데 참 재밌어요. 1월 15일에 독일로 출국하면 방송도 열심히 할 계획이에요. 컨텐츠 만들어서 시청자들과도 재미있는 교류를 할 생각이고요. 많은 분들이 참여하셔서 즐겁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마인드가 그래요. "나만 잘되야겠다는 생각보다 종목 전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라 저 먼저 잘하고 후배 게이머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죠. 팬들이 결국 프로가 되는거잖아요. 동경하면서 지금의 팬들이 프로에 도전할 때 좋은 환경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게 꿈이에요.

지금은 예전 판보다 너무 축소돼서 안타깝죠. 2007년 2008년만 해도 스타로 대표되는 RTS 종목의 인기는 장난이 아니었죠. 그 때의 인기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요. 팬미팅하면 여성 팬만 30명 있고(웃음), 그 기쁨을 후배 게이머들에게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그게 제 소소한 목표에요.


▲ 2014년은 장민철에게 비상의 해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