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 잘 안 되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이 말은 불과 3달 전, '따효니' 백상현 선수가 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그 누구보다 하스스톤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백상현 선수라는 걸 알고 있는 기자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이 말을 당시 기사엔 다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백상현 선수는 하스스톤 초창기부터 유저들에게 알려진 1세대 스타 중 한 명입니다. 하스스톤 클랜 챔피언십(이하 HCC)에서 창의적인 덱과 운영으로 올킬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낸 백상현 선수는 훈훈한 외모와 깍듯한 인성으로 빠르게 유저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이후 '하스돌'의 메인 진행자이자 재미있는 스트리밍으로 하스스톤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 백상현 선수에게 단 하나 빠진 고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선수'라는 이름에 걸맞은 '커리어'였습니다. 몇몇 컵 대회를 제외하고 우승이나 결승 경력조차 없었던 백상현 선수는 하스스톤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커리어 없는 선수로서의 좌절도 심하게 겪었고, 이 때문에 하스스톤 말고 다른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죠.

그런 백상현 선수에게 아시아-태평양 동계 챔피언십(이하 APAC)은 마지막이라고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2년여의 시간 동안 냉정하게 말해 '무경력'에 가까웠던 백상현 선수에게는 누구보다 절실한 기회였고, 그 절실함으로 한국대표 선발전 4강에서 볼프 램실드를 소환해냈으며, 그 절실함으로 0:2 상황의 APAC 결승에서도 '패패 승승승'으로 우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한 번쯤 다른 게임으로 기분전환을 할 때도 하스스톤 만큼 질리지 않고 재미있는 게임이 어디 있느냐며 오직 하스스톤 하나만을 고집하는 하스스톤의 열혈 신도이자 아시아 챔피언, 백상현 선수를 인벤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Q. 먼저 APAC 우승을 축하합니다. 인벤 가족 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인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따효니' 백상현입니다. 제가 인벤 레벨이 파란 딱지(인벤 닉네임 euro0706)인 거 보시고 놀라셨죠? 저도 놀랐어요. 전 진짜 매일 로그인만 한 것 같은데. (웃음) Pinpingho 선수랑 찍은 사진을 보고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요.


Q. 한국 메이저급 대회 첫 우승에 이어,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인 APAC까지 석권했습니다. 우승 당시 기분이 어떠셨나요?

실감이 안 났죠. 저도 사실 매번 말로는 '우승하겠다'라고 했지만, '진짜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계속 품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매일 말로만 하던게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되게 놀라웠어요.

이번에 우승하고 느낀 게, 사람이 항상 목표나 소망이 있으면 그걸 말해야 하는 것 같아요. 말해야 이루어져요. 그렇게 목표를 갖고 뭔가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Q. 사실, 명성에 비해 선수로서의 커리어가 많지 않아서 한국 대회에서의 첫 우승 때도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 국가대표 선발전 우승과 APAC 우승했을 때의 기분이 어떻게 달랐나요?

대표 선발전은 '해냈다' 이런 느낌이었다면, APAC 우승 때에는 '내가? 진짜로?' 이런 느낌이 더 강했어요. 저 자신도 너무 놀랐던 게, 결승 0:2 상황에서 다 무너진 멘탈을 잡을 수 있었던 것부터가 믿기지 않았어요. 2세트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면서 지니까 '상현아 이러면 안 돼. 아직 할만 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막 뺨을 때렸거든요.

아무래도 방송에서 멘탈이 붕괴되는 상황을 많이 겪었던 게, 그런 상황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 교정 중인 백상현 선수를 위한 인터뷰 점심 메뉴는 초밥!


Q.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하스돌 효과'라는게 진짜 있는 거였나요?

진짜로 그런 방송이 도움됐던 것 같은 게, 제가 보통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플레이를 하지는 않잖아요? 이번 대회에서 많이 나왔던 매치업을 예로 들면, 컨트롤 전사랑 멀록 성기사 덱으로 싸우면 보통 전사가 방어도 쌓으면서 버티다가 난투로 정리하는 각을 보는 식으로 플레이하는게 일반적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 방법도 있지만, 앨리스 스타시커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떠올렸거든요. 실제로 APAC에서도 그렇게 플레이했고요.

이런 다양한 이기는 방법론을 떠올리는 데 방송이 좋은 것 같아요. 하스돌하면서 진짜 여러 가지 스타일의 덱을 돌리게 되니까, 이기는 방법론도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거든요. 실제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스돌에 나오는 덱은 보통 방법으로는 못 이기는 경우가 많아서, 이기는 수도 정말 기상천외하게 구상해야 해요. (웃음)

이런 말이 농담 반이긴 하지만, 실제 세계 대회에서도 보통 방법으로 접근해서는 못 이기는 것 같아요.


Q. APAC 선수 인트로로 등장한 'Do you know 따효니?' 영상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상의 연출이나 멘트는 직접 구상하신 건가요?

아니, 진짜 미치겠어요. 그 영상. 완전 오그라들어요. (웃음) 솔직히 그 영상 중에서 몇 개는 제가 직접 구상해서 하기도 했지만, 시켜서 한 게 훨씬 많거든요. 100% 전부 제가 한 게 아니에요.


Q. 그러면 본인이 직접 연출하신 부분도 있다는 거네요?

그게 할 말이 많은 게, 'handsomeguy' 강일묵 선수 영상만 봐도 그 형님이 '난 혼자 있을 때 피아노를 친다.' 이런 걸 스스로 말하고 그러진 않았을 거 잖아요? 분명 그냥 피아노를 칠 줄 알고 뭐 그런 식으로 말했겠죠. 실제로는 그런 영상이 나왔지만. (웃음)

저도 그냥 인터뷰에서 'Do you know 따효니? World know 따효니!' 뭐 이런 인터뷰를 해서, 그런 부분이 짜집기 되니까 그런 영상이 나온 것 같아요.


▲ '실제로 본인이 한' 인터뷰


Q. APAC 대회 준비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대표로 선발되고 난 뒤, APAC에 들고 나갈 덱 구성으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APAC 덱 라인업은 어떻게 구성하게 되신 건가요?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런 식으로 덱을 구상하긴 하지만, 저는 하나의 덱을 금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전체적인 덱을 구상해요. 예를 들면, 전사나 드루이드, 흑마법사 같은 누구나 들고올 법한 1티어 덱 중 하나를 금지하고, 나머지 직업을 카운터친다는 느낌으로 덱을 짜는 거죠. 실제로 이렇게 덱을 짜는 선수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고, 이런 방법이 최근 메타에도 잘 먹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짜놓고 보니까, 왠지 좀 찜찜한 거에요. 한국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분명 출전하는 선수 중에서는 제 방송을 보거나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대회 끝나고 나서 안건대, 많은 선수들이 제 방송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구상했던 덱 중에서 2개 정도를 빼고 새롭게 준비를 했어요.

결과적으로 대표 선발전에서는 흑마법사를 금지하고 나머지 직업을 카운터한다는 생각으로 덱 라인업을 짰는데, APAC에서는 전사를 금지한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하게 됐죠. 제가 특정한 직업 선호하거나 특정한 플레이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니까, 제가 어떤 식으로 준비하든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제 덱을 예측하지 못할 것 같은 자신감은 있었어요. 그래서 "상대는 내 덱을 쉽게 카운터 치지 못할 거고, 나는 그들을 카운터 친다"는 관점에서 접근했죠.


Q. 말씀하신 것처럼 특정 덱을 금지하는 전략을 구상하기 위해 대회에 출전하는 다른 선수들의 스타일이나 선호하는 덱 등의 정보가 필요하지 않았나요? 타 지역의 정보는 조금 구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각 지역별 대표 선발전은 몇 개 찾아서 보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런 영상의 도움도 있지만, 최근 선수들의 추세를 좀 읽은 게 큰 것 같아요. 최근에는 많은 선수들이 전형적으로 전사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전사 금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 거죠. 만약 전사가 없다면 드루이드를 금지한다고 생각했고요. 결과적으로 8명의 선수 중에서 7명이 전사를 들고 왔잖아요? 전략이 잘 통한 거죠.

전사를 잡는다고 생각하고 드루이드, 흑마법사, 성기사 정도를 예상해서 전체적인 덱을 짰는데, 성기사가 많이 안 나온 게 의외였어요.


Q. 사실 백상현 선수는 창의적인 덱 구성으로 많이 주목받았습니다만, 그 덱 때문에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한다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덱을 준비할 때 그런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요?

많이 공감했죠. 옛날에 제가 쓰던 덱을 살펴봐도, 그렇게 승률이 잘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라 생각해요. 전 덱을 바꾸는 데 다른 선수들보다 특별히 거부감이 없고, 그래서 그렇게 몇 장씩 바꿔봤던 경험이 쌓이면서 원래 덱이 뭐가 좋은지, 그리고 이런 카드를 쓰는 게 뭐가 좋은지 차이점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 작년 9월, 백상현 선수가 전설을 달고 직접 인벤 덱 시뮬레이터에 올린 주문 도적덱


Q. '까마귀 우상'을 쓰는 속칭 '까탈 드루이드' 덱은 APAC에 들고 나갔습니다. 해당 덱에 대한 자신이 있었던 건가요?

연습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위니형 덱을 만날 때마다 느낀 게 '낙스라마스의 망령'이 정말 쓸 데가 없더라고요. 전장에 낼 타이밍도 잘 안 나오고. 드루이드에 강한 위니 덱이 많아지면서 드루이드 덱을 위니 덱에 강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썩은위액 누더기골렘'이나 '전쟁의 고대정령'도 넣어봤는데, 신통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까마귀 우상을 넣어서 써봤는데, 확실히 1마나 카드가 4장이 되니까 손패가 말리는 현상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결과적으로 제가 예전에 구상했던 까탈(까마귀 우상-혈법사 탈노스) 드루이드 덱이 기존 덱에서 '살아있는 뿌리'를 제외하고 의외성에 초점을 두고 만든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탈노스도 빼고 망령도 빼면서 안티 어그로에 초점을 맞췄죠. 실제 이번 대회에서 까마귀 우상이 대박이 터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음에도 이겼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 위니 흑마법사는 최근 가장 강력한 덱이지만 백상현 선수의 스타일 상 이 덱보다는 주술사나 사제를 준비하지 않을까 예상했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활용했던 이 두 직업 대신 위니 흑마법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주술사와 사제를 제외한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선수들이 제 방송을 보고 스타일을 파악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따효니라면 사제 들고오지 않을까?' 라고 예상할 것 같아서. 저는 그런 생각들을 좀 깨고 싶어요. 언제, 어느 대회에서 만나도 제가 무슨 덱을 들고 올 지 궁금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원래 보여주지 않았던 덱을 준비한 거죠.

위니 흑마법사는 일단 비슷한 스타일의 어그로 덱에 모두 강하면서도, 드루이드를 잡을 수 있는 좋은 카드라서 선택했어요. 어떤 대회든, 드루이드는 거의 무조건 있거든요.


Q. 대회가 끝나고서야 알 수 있었던 부분이지만, 이번 대회는 많은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컨트롤 덱에 집중했습니다. 최근 강세를 보이는 냉기 마법사를 제외하더라도, '비밀 성기사' 같은 등급전 최고의 카드나 '어그로 주술사' 같은 알고도 막기 어려운 덱을 고른 선수가 많지 않았는데, 이런 덱들이 주로 선택되지 못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번에 나왔던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컨트롤 운영을 좋아하는 선수들이었던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Pinpingho 선수도 어그로 덱을 좋아하는 선수도 아니고요. 저는 '서기' 신동주 선수가 좀 의외였던 게, 그 선수는 어그로 덱을 준비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안 들고 왔더라고요.

컨트롤 덱을 좋아하는 선수들의 특징이, 덱이 말리는 걸 상당히 싫어해요. 어그로 덱이 이길 때에는 시원하게 이기지만,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번 대회는 전체적으로 다 그런 스타일의 선수들이었던 것 같아요.




Q. 대회에 같이 나갔던 '서기' 신동주, 'handsomeguy' 강일묵 선수와는 많이 친해지셨나요? 1일 차에는 모두 타 국가 선수들과 만나서 서로 전략적인 도움을 주셨는지요?

많이 하긴 했는데, 일묵형이랑은 서로 다 마음껏 알려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이기면 만날 수 있으니까. 실제로 만났죠. 신동주 선수는 어차피 B조라서 좀 터놓고 도와줬던 것 같아요.

셋이 정말 많이 친해졌죠. 원래 출발할 때는 서로 말도 안 하다가, 돌아올 때에는 장난도 치고 있었으니까요.


Q. 2일 차에 진행된 승자조 경기에서 강일묵 선수에게 완패했었습니다. 당시 패배 요인을 꼽는다면?

그냥 제가 못해서 졌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강일묵 선수도 저랑 거의 똑같이 전사 금지에 초점을 맞춘 덱을 짜와서 거의 미러전 형태로 전개됐는데, 제가 밴픽이나 집중력 싸움 모두에서 졌던 것 같아요.


Q. 2일 차 이후부터는 신동주 선수가 좀 도와주셨나요?

정말 많이 도와줬죠. 너무 고마워서 한국 와서 밥도 제가 샀어요. 2일 차 경기에서 지고 나서 신동주 선수 붙잡고 거의 밤새 연습했던 것 같아요. 새벽 6시까지? 그리고 일어나서 대회장 가기 전까지도 계속 연습했어요.

동주랑 정복전 룰로 13판을 했는데, 제가 12판을 지고 1판을 이겼어요. 동주가 전사를 졸업시켜주지 않는 형태(Pinpingho 선수와 같은 컨셉의 덱 라인업)로 덱을 짜와서, 그냥 완전히 이길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이 연습으로 느낀 게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으니, 무조건 앨리스를 빨리 뽑아야겠다'는 전략을 짰어요. 버티는 게 아예 안 되더라고요.


▲ 백상현 선수 우승의 핵심이었던 전사 덱


Q. 패자조 경기에서 살아남은 뒤 만난 선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 중 하나인 Pinpingho 선수였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4강전을 준비하셨나요?

동주처럼 전사를 무조건 저격하는 형태의 덱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런 측면에서 밤새 연습했던 게 큰 도움이 됐죠. 그리고 이 선수가 좀 자신 없는 덱이나 빨리 졸업시켜야 하는 덱을 먼저 꺼내는 경향을 있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전사를 먼저 꺼내지 않고, 드루이드랑 흑마법사 먼저 꺼내면서 빠르게 2세트까지 잡았죠.

그리고 나서 전사를 꺼냈을 때, 앨리스가 빨리 잡히길래 '이게 정말 내 설계대로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1 대미지가 안 나와서 그 세트는 지긴 했지만. (웃음)


Q. 말씀하신 것처럼, 4강전은 의외로 허무하게 백상현 선수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백상현 선수가 볼 때, Pinpingho 선수의 가장 큰 패인을 꼽는다면?

밴픽 싸움에서 말린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이 선수가 3세트부터는 약간 당황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4세트 되니까 심리적 압박감이 더해져서 상성 상 유리한 매치업인데도 계속 저한테 '그롬마쉬 헬스크림+잔인한 감독관'을 맞을 수도 있다고 의식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잔인한 감독관은 백상현 선수의 덱에 없었음)

생각해보면, 이 선수가 만약에 역으로 이기고 있었거나, 1:1정도의 상황만 됐어도 그런 콤보를 배제하면서 과감하게 플레이했을 거에요. 그런데 Pinpingho 정도 되는 선수가 패배 직전까지 몰리게 되면, 거의 모든 수를 다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밴픽에서의 패배가 불러온 심리적 압박이 Pinpingho 선수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 같네요.

실제로 경기 끝나고 Pinpingho 선수랑 얘기했는데, 당황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꾸역꾸역 정리하면서 막는 게 보통 멀록 성기사 상대하는 전사의 전략인데, 얘(따효니)는 갑자기 원숭이를 내고 내 명치를 치고 있으니까요. (웃음)




Q. 결국 결승전은 강일묵 선수와의 리벤지 매치가 되었습니다. 하스스톤 특성상 고정된 덱으로 진행되는 단기전에서 한번 패한 상대와 다시 만났을 때 승리를 거두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승자조 때와 어떻게 다른 전략을 준비하셨나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 형(강일묵)이랑 저는 거의 똑같은 덱을 들고왔기 때문에, 한 번 졌다고 제가 크게 불리하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대신 미러전이니까 이번에는 밴픽 싸움에서 이기자고 생각했죠. 실제로 1세트에 흑마법사가 나올 걸 예상하고 마법사 덱을 꺼냈는데, 진짜로 흑마법사가 나오더라고요. 그런데도 흑마법사의 손패가 기가 막히게 풀리면서 지긴 했지만.


Q. 그렇게 결승전에서 내리 2연패를 하면서 백상현 선수의 행보가 끝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남은 덱은 전천후형 덱인 드루이드였는데, 당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특히 2패째에서는 상당히 치명적인 실수로 멘탈까지 흔들렸을 것 같은데?

상대가 드루이드이기 때문에 문제는 덱 상성보다는 제 멘탈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드루이드는 할 플레이가 정해져 있거든요? 모든 덱에 상성을 타지 않기 때문에, 모든 덱을 상대로 비슷하게 플레이하고, 또 역으로 모든 덱이 할 만하다는 거니까요.

2세트에 임프 폭발을 제 박사 붐에 썼을 때, 저 스스로 제 뺨을 세게 한 대 쳤어요.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정신 차리자고.


Q. 이후 3연승을 거두는 과정에서 '이 대회 내가 가져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면?

냉기 마법사와 드루이드 경기에서 일묵형이 로데브를 냈을 때 제가 이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서부터 '이건 정말 마법사가 유리하다'라고 느꼈어요.


Q. 패배를 안겨준 강일묵 선수를 제외하고, 이번 대회에서 가장 힘들었던 상대는 누구인가요? 혹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상대가 있다면?

아무래도 Pinpingho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었죠. 사실 그 앨리스 작전이 먹힐 줄은 몰랐어요. 전날 동주랑 연습했을 때 답 없이 밀렸던 경험도 있었고. 그런데 그걸 이기니까, 그 순간이 정말 기억에 남더라고요.


▲ 인벤 방송팀에서 제작한 APAC 우승 헌정 영상


Q. 백상현 선수는 한국의 여러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번 대회를 준비할 때에는 어떤 선수들이 많이 도와주었나요?

제가 말만 하면 모든 선수들이 다 도와줬어요. AirTrax 형이 있는 샤이니 팀이나, 사냥고공싱 선수 팀, 저희 팀, DawN 선수가 있는 Nightmare 팀까지 전부 다 도와줬어요. 저를 안 도와준 팀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실제 연습을 도와주지는 않아도, 다들 응원을 해주셨으니까요. 그런 많은 선수들이 응원해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긴 것 같아요.


Q. 모 선수가 과거 백상현 선수를 '자신이 사파(邪派)인줄 아는 정파(正派)다, 그 스타일만 바꾸면 언제든 우승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었는데, 실제로 이번 대회는 그동안 보여줬던 혁신적인 스타일의 덱보다는 어느 정도 정석형 덱을 준비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스스로 이런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셨는지?

사실 전 아직도 정파나 사파를 가르기보다는, 그냥 그게 저만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거고,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거죠.

이번 대회는 사실 뭐 정파라고 할 수 있는 정통적인 스타일의 덱으로 이겼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런 정석적인 덱을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제 일부일 뿐, 앞으로도 저만의 스타일로 대회에 나가게 될 것 같아요. 다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번 대회 전까지 제 스타일은 확실히 '정파'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웃음)


Q. 꿈에 그리던 우승을 차지하고 왔는데, 주변 반응은 좀 어떠셨나요? 특히, 많은 상금을 받은 만큼 부모님께서 많이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정말 잘했다, 돈 좀 줘" 이러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분명 매달 용돈 드리고 있는데, 뭔가 항상 급하다고 하시네요.


Q. 백상현 선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하스돌일텐데, 하스돌을 같이 진행하는 'DawN' 장현재 - '기무기훈' 김기훈 선수는 대회 준비 과정에서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장현재 선수는 연습을 열심히 도와줬고, 기훈이는 열심히 응원해줬어요. 기훈이는 프로 유투버(You-tuber)라서 (노출될까 봐) 연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웃음)


Q. 결승전에서는 장현재 선수가 개인 방송을 통해서 열렬히 응원을 해줬는데, 장현재 선수에게 한 마디 한다면?

걔(장현재)한테는 그냥 고마운 것뿐이죠. 살면서 내 일인데도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잖아요. 저를 믿어주고, 또 저랑 정말 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니까, 항상 고마울 따름입니다.


▲ 언제나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하스돌 3인방!


Q. 최근 하스스톤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를 꼽는다면, 단연 차기 확장팩 '고대 신의 속삭임' 일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까지 공개된 카드 중에서 주목하고 있는 카드가 있나요?

주술사 전설 카드(승천한 할라질)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주문 피해량 만큼 내 생명력을 회복하는 형태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 카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그 카드 완전 OP에요. 주술사 1티어 됩니다. (진지)


▲ 따효니 曰: "주술사를 1티어로 올려줄 OP 카드"


Q. 이제 염원하던 블리즈컨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블리즈컨까지 많은 시간이 남긴 했지만, 블리즈컨 무대는 어떻게 준비해나갈 생각이신가요?

한국에서는 올해 첫 진출자로 확정을 지었는데, 남은 시간이 긴 만큼 더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저한테는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라는 변명은 말이 안돼는 거니까요. 미리 조금씩 준비하면서, 지금의 제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차근차근 발전해서 블리즈컨도 우승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우승하겠습니다. 우승해서 진짜 "Do you know 따효니?"라고 외칠 거에요.


Q. 개인적으로 블리즈컨에서 만나보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역시 덱 메이킹의 '라이벌'인 Kolento 선수일까요?

Kolento 선수도 있는데, Fibonacci 라고 컨트롤 전사 덱으로 유명한 선수가 있어요. 그 선수랑 컨트롤 전사 미러전으로 누가 더 강한지도 붙어보고 싶네요.


▲ 백상현 선수가 만나고 싶은 '라이벌' Kolento(좌)와 Fibonacci (우)


Q. 이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하스스톤 게이머로서, 앞으로 포부나 목표가 있다면?

일단 닉네임부터 영어로 바꿔서 글로벌하게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그 선수들도 제 방송을 보러 올 테니까. (웃음)

그냥 누군가에게 "하스스톤 잘하는 선수가 누구야?" 이런 차원이 아니라, "하스스톤 하면 누구야?" 라고 물었을 때 "따효니"라고 대답이 나오는, 상징적인 선수가 되고 싶어요.


Q. 프로 게이머 제의가 들어온다면, 받아들일 의향도 있으신가요?

해보고 싶죠, 당연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영어 공부가 우선이겠죠. 영어는 자신감이더라고요. (웃음) 일주일 동안 현지 가서 느낀 건 '영어는 자신감이다'라는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나 고맙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해왔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스스톤 하겠습니다.

너무 고마운 마음밖에 없어요. 요즘은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알 것 같아요. 제가 열심히 하는 건 저만의 목표나 저를 위해서인 것도 있겠지만, 제 방송을 즐겨 보시는 시청자분들을 위한 것도 있다는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기자의 강력한 요청으로) 인트로 영상의 후드 장면을 재연해준 백상현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