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LoL 판은 미지근하다. 절대자 SKT는 아직도 정상에서 훨훨 날아 다니는데, 근처에 도전할 팀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이 가장 긴장감이 없는 듯하다. 유럽의 G2, 북미의 TSM? 크게 바뀐 게 없고, 그렇다고 기량이 크게 상승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냥 싱겁기만 한, 맵지도 짜지도 않은 지금 MSI를 자극적으로 만들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허전함을 달래줄 누군가가 없을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혹은 들어봤는데 잘 기억이 안 나는 그런 선수. 그런데, 웬걸? 눈이 번쩍 뜨이게 할 선수 말이다.

MSI서 기대해볼 만한, 세계 무대 신인급 선수 몇 명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최상급 원석, 동남아 대표 기가바이트 마린즈 '레비'



과장을 조금 보태서, LCK에서 정글러가 조금 약한 팀이라면 이 선수 영입을 추천해주고 싶을 만큼 개인 기량이 대단히 좋다. 한국 코치진이 조금만 더 다듬어 준다면 보석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해설자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한국 솔로 랭크에서 챌린저라고 한다.

상당히 공격적인 정글러다. 플래시 울브즈의 '카사'를 떠올리면 얼추 비슷하다. 이번 대회에서 평균 킬 관여율 70% 이상으로 상황을 스스로 많이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CS 수급이 낮은 것도 아니다. 분당 CS 5.4개로 정글러 중에 1위에 해당한다. 공격적인 정글의 캐리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최대 장점인 피지컬과 교전 능력이 그 기반이다. '레비'(이하 GAM)는 플레이-인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 상대 선수들과 비교해 몇 수 위의 개인 기량을 보였다. 같은 프로 간의 대결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차이가 있었다. 티어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 TSM과의 1세트 하이라이트 (출처 : LCSHighlights)


그의 활약은 상대가 북미 최강 팀 TSM이라도 비슷했다. 1, 2세트에서 '스벤슨캐런'을 그야말로 아작아작 깨물어 먹었다. 카직스로 9/1/7, 7/3/9라는 스코어를 만들며 두 경기 모두 MVP 급 활약을 보였다. 지금까지 이번 MSI가 만들어낸 가장 인상적인 경기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챔피언 풀의 약점이 있는 선수도 아니다. 아직 표본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 메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레이브즈, 리 신, 엘리스 등을 모두 잘다루고 승률도 좋다. 그중에서도 그레이브즈를 제외한 리 신, 카직스, 엘리스를 플레이했을 때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물론 단점은 있다. 이런 선수들이 흔히 보여주는 '무모함'이 가장 큰 적이다. 시종일관 압살하던 1라운드에서도 종종 나타났고, TSM과의 경기에서도 보였다. 경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TMS과의 3세트에서 무리하게 봇 갱킹을 시도해 이른 시간 '와일드터틀'에게 쌍버프를 헌납했다. 이 스노우 볼은 거세게 굴러갔고, 3세트는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다. 결국, 기가바이트는 먼저 두 세트를 따내고도 최종 승자가 되지 못했다.

'레비'는 이런 점만 보완한다면, 플래시 울브즈의 '카사'처럼 세계에 도전할 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와일드 카드 무대는 그에게 너무 비좁다.


서문갓의 향수? 동남아 대표 기가바이트 마린즈 '옵티머스'


이 선수도 진짜다. 어느 와일드카드 팀의 미드 라이너가 '비역슨'과 자신 있게 맞상대를 펼칠 수 있을까? 일반적이라면 라인전에서부터 경기가 끝나버릴 것이다. 기가바이트 마린즈가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는 '레비'와 쌍두마차를 이뤄낸 '옵티머스'가 있어서였다.

'웨스트도어'의 전성기를 떠오르게 하는 선수고, 암살자를 잘 다룬다. '레비'보다도 조금 더 '날 것'의 느낌이 나지만, 똑같이 피지컬에서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플레이를 실행하는데, 지금까지는 성공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피즈 플레이는 특히 눈이 간다. 1승 2패로 승률이 특별히 높지는 않지만, 경기 내적으로 보면 합격점 그 이상이었다. 승리했던 라이온 게이밍과의 대결에서 보여준 피즈가 역시 가장 인상적이었고, 비록 패배하기는 했어도 '비역슨'을 상대로 보여준 피즈도 괜찮았다. CS에서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주도권을 잡고 '비역슨'을 압박하기도 했다.

▲ LYN과의 경기 하이라이트 (출처 : OPLOLReplay)

그런데 '웨스트도어'보다 가능성이 큰 선수다. 다양한 챔피언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짧은 기간 동안 벌써 9개의 챔피언을 선보였다. 암살자가 주를 이뤘지만, 질리언이나 카르마같이 유틸에 중점을 둔 챔피언도 넉넉히 소화했다.

그러나 역시 단점은 예상한 데로 의문사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다 실패를 하는 게 아닌, 단순히 눈앞에 1킬을 하려다, 혹은 맵을 보지 않아서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하기 까다롭고, 수준급 기량의 선수인 것은 분명하다. '비역슨'을 상대로도 좋은 경기를 펼친 '옵티머스'가 다른 선수에게 크게 밀리는 그림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그를 궁지에 몰아 넣을 선수가 있다면 당연히 '페이커' 이상혁. 과연 '옵티머스'가 '페이커' 이상혁을 상대한다면 어떤 그림이 만들어질지 기대가 된다. 과거 '웨스트도어'의 피즈 경기를 기억한다면 더욱.


마지막 퍼즐, 대만 대표 플래시 울브즈의 '베티'


플래시 울브즈는 이제 대만의 전통적인 강호가 됐다. 2016 스프링부터 내리 3번을 우승했으니,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이번 시즌이 가장 기대되는 이유는 원거리 딜러 '베티'가 있어서다. 그동안 플래시 울브즈는 미드와 정글이 가지고 있는 파괴력에 비해 원거리 딜러의 기량이 미흡했다. 특히, 안정감 부분에서 다소 아쉬웠다.

'베티'는 지난 FW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하는 원거리 딜러다. 2017 스프링 정규 시즌, 리그 내 모든 주전 선수 중에 같은 소속팀 서포터 '소드아트'를 제외하고 가장 적게 죽은 선수다. 중요 무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LMS 결승 4경기에서는 단 두 번만 죽었고, 이번 플레이-인 스테이지 3경기에서는 한 번 죽었다.

주로 미드-정글의 힘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FW의 특성상, '베티'가 가장 많이 사용한 챔피언은 애쉬, 바루스, 진과 같이 CC가 강력한 친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팀 내 데미지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경기 내적으로 보면 딜을 넣어야 할 때는 확실히 넣는 선수다. 특히, LMS 강팀에 속하는 AHQ와 J팀을 상대할 때는 더욱 많은 데미지를 쏟아 넣었다.

▲ '베티'의 IEM 하이라이트 (출처 : Nye)


챔피언 폭 문제도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다. 캐리형 원거리 딜러라고 할 수 있는 이즈리얼과 시비르를 사용해 많은 경기 수는 아니지만, 모두 이겼다. 직스도 한 차례 사용하며 변칙적인 픽도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만, SKT와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자국 리그에서 강팀과 상대할 때 대부분 경기에서 애쉬, 바루스, 진을 사용했다. 이즈리얼만 한 차례 꺼냈을 뿐이다. 한국의 강팀을 상대하기 위해서 다양한 챔피언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번 MSI 무대는 '베티'에게 시험대가 될 것이다.


2017 MSI의 재미를 더해주길

소개한 3명의 선수가, 아니 다른 선수 누구라도 뭔가 부족한 MSI에 기대감과 재미를 불러와 줬으면 한다. 스토리와 감동, 팬들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그 누가 되더라도 환영이니까. 이제는 기대감이 많이 떨어진 G2와 TSM이라 할지라도 좋다.

LoL 판은 더 재미있어질 필요가 있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는 해외팀들이 생겨나는 게 바람직하다. 분명 그래야만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국가가 우승했으면 하는 바람은 아니다. 과정이 어떻게 됐건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고, 끝에는 SKT T1이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2017 MSI 한국 대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