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주체가 공급자 쪽에서 소비자인 시청자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TV나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입장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공급자는 시청자들에게 방송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스포츠 중계 또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축구 중계에는 '스파이더 캠'을 활용하고 있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존에 관중석 시점 혹은 선수 줌인 시점으로만 경기를 시청해야 했던 시청자에게 색다른 시야를 제공하게 된 것.

e스포츠에서는 프로게이머가 플레이하는 화면을 중계 화면에 담는데 1차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옵저버'라고 한다. '~을 보다, 관찰하다'는 뜻의 observe와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er'이 합쳐진 표현이다. 이들은 e스포츠 경기 내에서 스포츠 중계의 카메라맨 역할을 대신한다. 그들이 잡아주는 화면이 e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유일한 경기 화면이기에 옵저버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은 시대가 흐르면서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 e스포츠 초창기 - 단어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

e스포츠의 태동을 알렸던 종목은 스타크래프트였다. e스포츠를 오래전부터 즐긴 사람이라면 조그마한 스튜디오 안에서 프로게이머 두 명이 컴퓨터 두 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펼쳤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부터 옵저버는 e스포츠 경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옵저버는 프로게이머가 플레이하는 게임 장면을 직관적으로 화면에 담았다. 임요환의 마린-메딕 부대가 상대 럴커를 신들린 무빙으로 모조리 잡아내는 장면, 홍진호의 대규모 병력이 오버로드에 몸을 싣고 상대 본진 위에 떨어지는 장면 등 우리가 기억하는 명장면은 모조리 옵저버가 잡아준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3 등 1:1 게임이 e스포츠의 주류였던 시절에 옵저버가 하는 역할은 단어 그대로 발생 중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서로의 병력이 합을 겨루는 장면이 연출되면 그쪽으로 화면을 돌려줬고, 누군가 멀티 지역을 확보하고자 하면 멀티가 건설되는 장면을 화면에 담아줬다. 또한, 전진 배럭 등 깜짝 전략이 전개되려고 하면 그게 실행되고 있는 걸 보여줬다. 상황이 발생하면 그 장면을 제때 잡아주기만 하면 됐다.

▲ ASL 시즌3 결승전 1세트, 이영한의 드랍 시도와 이영호의 대처 장면을 옵저빙했다.

옵저버에게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나 경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당시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3는 1:1 게임이었던 만큼 이를 파악하고 공부하기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각 선수의 전략이나 노림수, 순간적인 판단을 직관적으로 알기 쉬웠다. 그때 활동했던 옵저버들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당시 옵저버는 직관적인 경기 흐름 속에서 적절한 장면을 적절한 시기에 보여주면 됐다. 마치 축구 중계에서 카메라맨은 기본적으로 공을 잡고 움직이는 선수 위주로 계속 카메라를 움직이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 '다대다' 종목의 등장... 변수 생긴 옵저빙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던 1:1 e스포츠 종목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리그 오브 레전드로 대표되는 '다대다' 종목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 역시 옵저버가 카메라맨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종목이 바뀌면서 옵저빙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옵저버는 발생한 혹은 발생할 상황에 대해 그걸 화면에 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변화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 내에서는 총 열 명의 프로게이머가 저마다의 플레이를 했고, 옵저버는 그걸 화면에 모두 담을 수 없었다. 탑 라인에서의 라인전 딜교환 장면보다 봇 라인에서의 소규모 합류전 구도가 더 중요할 수도 있었고, 반대의 경우도 존재했기 때문. 축구에 비유하자면, 총 22명이 뛰고 있는 운동장에 축구공을 여러 개 던져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옵저버의 역할은 서서히 단순한 '보여주기'에서 '상황에 맞고 흐름에 적합한 장면을 선별해서 보여주기'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1:1 종목에서 다대다 종목으로의 변화와 그 다대다 종목의 운영과 전략의 고도화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e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경기를 보는 눈 역시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고, 이는 옵저빙의 게임 연출 능력 발달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옵저버가 잡아주는 화면은 시청자만 보는 게 아니다. 중계진 역시 옵저버가 보여주는 장면만 보면서 경기 상황과 그에 따른 분석을 쏟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점점 높은 수준을 필요로 하는 옵저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 kt 롤스터의 봇 라인 설계 장면과 미드 1차 타워 체력을 순서대로 비춰 상황을 설명했다.

SPOTV GAMES의 LCK 중계를 맡고 있는 하광석 해설위원은 "요즘에는 '옵저빙'보다 '게임 연출'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본 기사에는 '옵저버', '옵저빙'이라는 표현으로 통일하겠다). 과거 1:1 대결구도였던 e스포츠 종목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다대다 e스포츠 종목 중계의 단점으로 생각될 수 있었던 요소들은 '게임 연출' 측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고, 그 예상이 점점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했다. 경기 흐름상 크게 중요하지 않은 대치 구도가 이어질 경우, 옵저버가 의미 있는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챔피언을 클릭해두면 좋다는 것. "사람마다 스킬 트리가 다를 수 있는 챔피언을 옵저버가 초반 라인전 구도에서 클릭해두면, 다른 장면을 화면에 담고 있어도 해당 챔피언이 상황에 따라 어떤 스킬을 먼저 배우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 화면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옵저빙을 해주면 중계진과 시청자 모두 경기를 이해하기 더욱 편해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옵저빙에 필요한 능력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능력이 필요하며, 그것은 '어느 화면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시청자가 보기 편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능력', '경기 흐름에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 게임 이해도'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능력은 따로 떨어져 있어서는 안되며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단순히 게임을 잘 아는 '겜잘알'로는 부족하고, 방송을 잘 알지만 게임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방잘알-겜알못'도 옵저버로는 힘들다. 담당 PD의 기획 의도에 따라 적합한 장면을 화면에 담으면서도 종목 게임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경기에 있어 중요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함께 담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최근 SPOTV GAMES에서 LCK 경기 옵저버로 활동 중인 '조나스트롱' 이진세가 최근 시청자들에게 화제다. 그가 잡아주는 화면에서는 경기 흐름을 파악하기 용이하며 팀 차원의 전략이나 노림수를 사전에 파악하기 좋다는 평가다.

▲ 한타 구도를 적절히 줌아웃, 나뉜 전장의 상황을 동시에 확인한 '조나스트롱'

그렇다면 '조나스트롱'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옵저버로 활동하고 있을까.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눠본 결과, 예상보다 훨씬 많은 내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평소 LCK 등 다양한 지역의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중계를 옵저빙할 때 "프로게이머들이 무언가를 의도하고 행동을 할 때, 그걸 최대한 설계 부분부터 화면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미드 라인에 로밍에 특화된 탈리야가 등장했고 탑 라인으로 향하는 길목에 시야가 없을 경우, 탈리야가 탑 라인 쪽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탈리야를 화면에 담는다. 혹은 한 팀이 봇 1차 타워 다이브를 위해 주변에 와드를 설치하고 라인을 밀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봇 라인 위주로 옵저빙을 한다고 설명하기도.

이와 같은 '조나스트롱'의 옵저빙은 SPOTV GAMES의 LCK 중계 스타일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해설위원들이 설명 위주로 중계를 하기에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옵저빙을 한다고 밝혔다. 팀적인 움직임이 이미 시작됐을 때 그 장면을 비춰주면 중계진이 그 장면만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 이전 설계부터 화면으로 잡아 중계진의 설명에 힘을 보탠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조나스트롱'이 생각하는 최근 옵저버에게 필요한 '능력치'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묻자, 그는 "개인적으로 게임 실력은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대회 경기를 자주 보면서 최근 어떤 플레이가 유행하는지도 파악하고 프로게이머의 경기 내 습관 등을 숙지하는 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다대다, 그 이상의 다대다... 앞으로의 옵저빙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대다 종목이 주류로 떠오르고 그 안에서의 운영과 전략의 수준이 상승하면서 자연스럽게 옵저버에 필요한 능력 역시 다양해졌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는 만큼 한 명의 옵저버로는 경기 흐름에 적절한 장면을 필요한 순간에 보여주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종목 대부분에서 한 명 이상의 옵저버를 두는 경우가 많아졌고, 옵저빙과 관련된 다양한 방송 기술이 추가되어 그들을 돕고 있다.

최근 e스포츠 종목으로 떠오른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의 경우에는 조금 더 많은 옵저빙 능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오버워치로 대표되는 FPS 종목은 워낙 다양한 상황이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경기 진행 속도도 빨라 순간적으로 중요한 장면을 포착하는 능력과 더불어 그것이 경기 중계에 꼭 필요한 장면인지 판단하는 능력까지 요한다. 아나의 궁극기 '나노 강화제'를 받은 겐지가 '용검'을 꺼내들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는데 그와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 트레이서가 상대 힐러 두 명을 동시에 유린하고 있다면, 어느 장면을 화면에 담겠는가.

얼마 전에 독일 쾰른에서 열렸던 게임스컴 현장에서 진행된 배틀그라운드 인비테이셔널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노출했다. 전 세계 수많은 배틀그라운드 프로게이머들과 스트리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웅을 겨룬 만큼 수준급의 경기력이 이어졌지만, 팬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엔 한 가지 부족한 요소가 있었다. 바로 옵저빙이었다. 주최 측과 옵저버들의 노력에도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교전 및 주요 장면을 한 화면에 모두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고, 중계진과 시청자는 화면 좌측 하단에 표기되는 '킬 로그'로만 본인들이 정말 보기 원했던 전투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 '킬 로그'가 떠올랐지만, 여전히 중계 화면은 차량 운전 장면

이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로 대표되는 5:5 종목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e스포츠 종목 또한 주류로 떠오르면서 방송 주최 측과 옵저버들의 고민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과거 1:1 종목에서 5:5 종목으로 넘어올 당시에 겪었던 다양한 애로사항보다 어쩌면 더 많은 부분을 고민하고 극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예전부터 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다양한 e스포츠 종목에서는 한 명 이상의 옵저버를 배치하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배틀그라운드와 같이 '역대급'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경기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장면이 터져 나오는 종목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옵저버가 동원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끼리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이어가면서 즉각적인 상황 발생에 빠른 대처를 보이는 것도 요구된다.

이에 추가로 방송 PD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옵저버들을 총괄하고 상황에 맞는 역할을 즉각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옵저버의 존재 역시 필수조건이 될 것 같다. 이들은 다른 옵저버들 보다 방송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더불어 해당 e스포츠 종목의 경기 흐름과 전략 등에 대해 세밀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e스포츠에서 다대다 종목이 대세인 지금. 옵저버와 옵저빙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여러 개의 공으로 구기 종목을 하는 걸 중계하고 카메라에 담는 것이 힘든 것처럼, 동시에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와 상황을 한 화면에 모두 표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한계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방송 관계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과 성장통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e스포츠 팬 대부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 연출'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