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하다' 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지금 스타크래프트2에서 가장 핫한 사람이 이 선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지난 반년 동안 전세계 대회를 뜨겁게 휘어잡은 만 16세의 소년이 있다. 스타테일의 이승현이다.

작년 10월, GSL 시즌4의 로열로더가 되었다. 11월, MLG 폴 챔피언십을 우승했다. 12월, 블리자드 컵을 들어올렸다. 올해 1월, 강철 오징어(Iron Squid)의 주인이 되었다. 3월, MLG 윈터 챔피언십에서 대회 최초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웬만한 게이머들이 한 번이라도 꿈꾸는 우승컵을 매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것도 반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적한 주말 오후, 이승현을 만났다. 이 소년의 성격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실례가 될 것 같다. 말을 길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은 절대로 아니다. 굉장한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한편으로 신중하기도 하다. 짧지만 진부하지 않은 답변들이 즐거웠다.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면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생활하고 있는 이승현은 어떤 꿈을 가졌을까. 경기 인터뷰에서 묻기 힘든 일상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나눠본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오랜만에 만나네요. MLG 우승 이후 어떻게 지냈나요?

연습하면서 쉬고 있었어요. 게임하거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면서요.


최근 반 년 동안 메이저 대회 4회 우승을 했어요. 놀라운 성적인데, 데뷔 후 지금까지 자신의 성적을 돌아본다면 어떤가요?

생각보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난 것 같아요. 너무 빠르게 우승해버려서 아직 잘 못 느끼겠어요. 지금도 실감이 안 나요(웃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작년 정종현 선수와의 GSL 결승 마지막 세트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 관련 경기 보기 - 2012 핫식스 GSL S4 이승현 vs 정종현 결승 7set


저도 현장에서 숨죽이면서 보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웃음). 그러고 보니 그때 부모님도 오셨잖아요. 이번에 또다시 우승을 하면서 부모님이 기뻐하셨을 것 같아요.

축하한다면서 기뻐하셨죠. 하지만 별달리 만나지도 못하고 전화로만 이야기했어요. 집이 경남 통영이다 보니 멀어서 우승 후에 부모님 뵙지도 못했어요.


처음에 게이머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는 안 하셨고요?

전혀 반대가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믿어주셨죠.



▲ 부모님의 믿음이 지금의 이승현을 만든 것은 아닐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팬이 많은데, 그 자신 있는 발언들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인가요, 아니면 스스로 암시를 거는 건가요?

진짜로 이길 수 있어요. 진심이에요.


그럼 경기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생각을 하나요?

이기는 생각만 해요. 이겨서 진출하게 되면 어떨지, 승리하면 그 다음 상황이 어떤지 등의 생각이죠.


하루 평균 연습 시간은?

8시간 정도요. 중요한 경기 있을 때도 최대 그 정도 해요.




뜨거운 감자를 건드려보자, '승현 선수! 군단의 심장 저그는 어때요?'


▲ 이승현 선수가 연습하는 자리, 모니터 받침대에 동전을 보관하는 센스


선수 생활 중에 연습을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를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바로 최근인 것 같아요. 군단의 심장 베타 버전이 나왔을 때부터요.


그럼 군단의 심장 이야기를 해볼까요? 요즘 다들 저그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이승현 선수 역시 그런 말을 했는데, 우승을 해버렸어요. 다른 저그 선수들이 핀잔을 주진 않던가요?

네, 너 때문에 너프 안 되겠다고 막 그랬어요. 특히 같이 MLG에 출전했던 (이)동녕 형이 저를 갈궜죠(웃음).


우승 이후에도 계속 연습을 하고 있을 텐데, 요즘 느끼는 저그의 다른 종족전은 어떤가요?

많이 불리하진 않은데, 저그가 자유의 날개 막바지에 너무 좋아서 그런지 엄살을 많이 부리더라고요. 조금 약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많이 약한 것 같진 않아요. 밸런스는 나름 맞아요. 그런데 후반 가면 못 이겨요.


그럼 밸런스가 안 맞는 것 아니예요?(웃음)

아, 그러니까 아주 극후반을 가면 못 이긴다 정도예요.


테란 선수들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요. 다른 종족 상대로 후반 가면 못 이긴다고. 그럼 프로토스가 후반에 강하다고 봐야 하나요?

네, 프로토스전이 바로 그렇죠. 테란전은 후반에도 저그한테 한 번의 기회가 있어요. 울트라리스크나 무리군주로 넘어갔을 때 상대가 대응을 잘못하면 이길 수 있거든요. 그런데 프로토스는 아예 못 이겨요.


저그 유저들이 테란전에서 중반 부스터 의료선을 가지고도 많이 문제삼곤 하거든요. 속칭 '부료선'이 활동할 타이밍에 저그가 번식지 단계에서 너무 힘들고, 정면을 치자니 땅거미지뢰가 기다리고 있고요.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번 말리면 거의 끝인데, 처음만 잘 막으면 계속 막을 수 있기는 해요. 괜찮은 것 같아요. 처음이 중요해요. 그때 정말 잘 막아야 해요.


저그 대 저그전은 어떤가요? 자유의 날개에 비해 군단의 심장에서는 급격하게 뮤탈리스크 싸움이 커진 감이 있는데.

사실 운 싸움이 됐어요. 그래서 싫어요. 뮤탈리스크가 누가 먼저 뜨고 그 전에 피해를 주는지, 초반 앞마당이나 저글링 빌드 등 여러가지로 운이 많이 작용하는 느낌이었어요. 자유의 날개에 비해 저저전만큼은 많이 재미가 없어진 것 같아요.


블리자드 밸런스 책임자와 일대 일 면담을 가질 기회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죠. 만일 그분이 한 가지 의견만큼은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을 해온다면, 어떤 요구를 하고 싶나요?

감염충의 진균 번식이요. 지금 발사형으로 바뀌었는데, 그것 때문에 저저전이 말려버렸어요. 감염충 효율이 떨어지면서 뮤탈리스크만 나오게 됐거든요. 가뜩이나 뮤탈리스크도 더 빨라져서... 진균 번식을 원래대로 돌렸으면 좋겠어요.


저그라는 종족이 실력 편차가 정말 심하잖아요. 정말 잘하는 사람은 '넥라'가 되는 거고. 평범한 유저들은 손이 못 따라가고요. 브론즈와 실버, 골드에서 다른 종족들에게 고생하고 있는 저 같은 유저에게 실력 향상의 조언을 한다면?

기본 유닛을 잘 활용하시면 더 잘 될 것 같아요. 저그의 기본은 저글링이니까, 저글링 컨트롤에 신경 쓰시고 그 점을 많이 연습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 리쌍록, 축복받은(?) 짤방 생산 능력, 그리고 숙소 이야기




요즘 이영호 선수와 '신 리쌍록'이라는 구도가 잡히고 있어요. 둘이 자주 만났고, 붙을 때마다 재미있는 경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그런 구도를 접했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이영호 선수가 정말 잘 하는 선수인데, 같이 언급이 돼서 정말 기분이 좋죠. 그런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현재 상태에서는 자신이 더 잘 한다고 생각하진 않나요? 최근 MLG에서도 멋지게 승리했는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때 (이영호 선수가) 군단의 심장 연습을 많이 못하신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결승까지 올라간 건 정말 대단하신 거죠.


둘이 처음 맞붙은 게 작년 MLG 폴 챔피언십이었죠? 승자조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0:2로 패배를 해버렸어요. 메이저 대회 다전제에서 테란에게 첫 패배였는데, 당시 기분은 어땠나요?

솔직히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잘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너무 방심했어요. 꼭 다시 올라가서 복수하고 싶었어요.


유독 재미있는 사진이 많이 나오는 선수로 유명해요. 작년 GSL 포토제닉 상도 탔고, 이번 시즌 MLG에서는 '넥라투르'가 탄생했어요. 여러 사진들을 보면서 기분이 어떤가요?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아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는데, 팬 분들이 웃을 수 있다면 전 괜찮아요. 부정할 필요도 없고요. 스스로 생각해도 제 표정이 확실히 다양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저번 e스포츠대상 시상식에서 제대로 찍힌 사진이 또 있었어요. 고민하다가 선수의 인격을 위해 올리지 않았는데, 팬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이번 인터뷰에 같이 올리는 건 어떨까요?

(사진을 확인하자 폭소) 이건 너무 심한데요. 이 사진은 계속 떠돌아다닐 것 같은데. 음... 네, 알겠어요. 올리셔도 괜찮아요.



▲ 이 사진 업로드를 허락한 이승현 선수의 넓은 마음씨에 박수



지난 조지명식에서 이원표 선수가, 이승현 선수 말은 전부 반대로 해석하면 된다면서 '판독'을 해주었는데요. 평소에 숙소에서도 "나 질 것 같아" 등의 엄살이 심한가요?

엄살이 아니라 진짜인데,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아까는 진심으로 자신감이 넘친다면서요. 어느 쪽이 진짜인가요!

모르겠어요(웃음). 자신감이 넘치긴 하는데 한 구석에서는 자신 없는 마음도 있어요. 질 것 같다는 걱정이 같이 있는 것 같아요.


한창 혈기왕성한 선수들이 모여 있잖아요. 티격태격 재미있게 놀 것 같아요. 선수들이 장난이 많은 편인가요?

네, 우리 팀 선수들이 장난이 많아서 언제나 재미있어요. 말장난 위주로 많이 주고받죠.


심한 정도의 장난은 없고요?

말로는 좀 심하긴 해요(웃음). 장난으로 서로 엄청 심하게 '디스'하면서 놀아요. 진심으로 그러진 않고요. 저는 잘 안 하지만요.


정말인가요? 이승현 선수는 솔직히 말하면 장난을 치는 쪽, 아니면 당하는 쪽?

에이, 저는 당하는 쪽이죠. (잠시 눈치를 보다가) 반반이예요, 반반.


전부 친하게 지내겠지만, 게임 내외적으로 가장 많이 교감을 나누는 선수를 꼽자면?

모두 골고루 친한데, 특히 (이)원표 형이랑 주고받는 것들이 많죠.


이원표 선수도 지난 시즌부터 성적이 확 뛰었잖아요. 팀원으로서 말하자면 연습 실력 자체가 올랐나요, 아니면 원래 잘 하다가 대회에서 빛을 본 경우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연습 실력 자체가 올라간 것 같아요. 군단의 심장에서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경기력이 괜찮은 것 같고요.



▲ 스타테일 연습실 입구에서 맞이하는 2012 블리자드 컵 트로피


이승현 선수가 가장 많이 불리는 호칭은 '넥라', 그런데 이건 예전 아이디를 줄인 거고 그밖에 확정된 별명은 없는 것 같아요. 괴물, 신성, B급 저그... 등이 간간히 있는데, 특별히 와닿는 별명이 있던가요?

별명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B급 저그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 말이 나온 경기 VOD도 봤는데, 그게 원래 무조건 이기는 상황이라서 들어갔을 뿐이거든요(웃음). 업그레이드도 제가 빠르더라고요.


그렇다면, 스스로 판단했을 때 자기 자신은 몇급 저그라고 생각하나요?

S급 저그죠.


만일 그 이상의 등급이 있다면? SS급이라거나.

그럼 SS급 저그고요.


▶ 관련 경기 보기 - 2012 핫식스 GSL S4 윤영서 vs 이승현 4강 1set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은 있나요?

딱히 없어요. 여자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TV를 볼 시간이 거의 없다 보니, 연예인에는 별로 관심이 안 생겨요.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새로운 반 친구들이 많이 알아보나요? 그리고 학교 다니기에는 불편함이 없는지.

제가 입학한 곳이 디지텍 고등학교라 거의 다 알아보죠. 학교를 자주 못 가지만, 가끔씩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한창 놀러다닐 나이인데, 친구들과 놀러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나요?

어쩔 수 없죠. 연습해야죠(웃음).


만약에 지금 순간부터 한 주 동안 무조건 휴가가 주어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가고 싶은 곳은 딱히 없고요, 주변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친구들이나, 가족들이요. 프로게이머가 된 이후 숙소 외 친구들을 못 사귀어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만 남아 있는데, 연락도 거의 못 하고 있어요.




이승현이 말하는 이승현 : 저그를 이끄는 초월체?


▲ 군단의 심장 캐릭터 '아바투르'를 닮아버린 어느 캡쳐의 한 순간



'이승현'이라는 게이머를 스스로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음, 뭐라고 해야 하죠? 음... 저그를 이끄는 초월체 같은 존재?


초월체님이 저그를 이끄실 날이 아직 많이 남으셨는데, 아직 어린 나이지만 자신이 게이머 인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요?

오랫동안 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인벤 독자 여러분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감사드리고, 안 해주셔도 감사드립니다(웃음).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 기자의 요청에 흔쾌히 '넥라투르'를 재연해준 이승현 선수, 앞으로도 선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