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었다. 아니 추억속에 남을 거라 생각했다.

벌써 6년 전이다. 2009년 당시 난 콜오브듀티를 받고 국방부 산하 포병으로 군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지금과 별 차이는 없지만, 또 지금보다는 구질구질했던 게 당시 병영생활이었던지라 당시 군인들의 엔터테인먼트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주 2회, 한 시간씩 허용되는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울타리 밖 세상을 조금씩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그리고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난 2시간의 시간 중 대략 1시간 40분가량을 당시 진행되었던 철권 공식 리그인 '텍켄 크래쉬'의 재방송을 보는 데 쓰고는 했다.

그냥 시원했다. '텍켄 크래쉬'를 다시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의 종말점엔 그 '시원함'이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맨들이 영혼까지 쏟아부은 듯한 핵 펀치를 쾅쾅 때려대는 장면은 그 순간의 짜증을 잊게 하기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그때만큼은, 다음주에 계획되어 있던 유격 훈련도, 디아블로2를 플레이하다 죽어 홧김에 5분대기조 비상을 걸어버리는 대대장마저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6년 후, 너무 자주 방문해 이제는 집처럼 익숙해진 강남의 넥슨 아레나에서 조금은 특별한 손님을 만났다. 스포티비게임즈의 '이병국 PD'. 과거 MBC 게임의 PD로서 '텍켄 크래쉬'를 처음 만들었고, 현재 스포티비게임즈의 PD로서 자신의 작품인 '텍켄 크래쉬'를 다시 부활시키고 있는 베테랑 PD다. 그와의 만남에서 '텍켄 크래쉬'를 다시 느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열정, 6년 전의 시원함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폐국된 게임방송국 'MBC게임'에서 처음 시작해, '텍켄 크래쉬'를 만들었던 그 사람. 8시즌까지 진행하면서 '비주류 종목'으로 유일하게 성공적인 길을 밟았던 '텍켄 크래쉬', 그리고 그 끝과 재시작까지. 질답의 반복에 불과한 진부한 인터뷰로 작성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내용이다. 그래서 조금 비틀어 보았다. '나'라는 화자가 '이병국 PD'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시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면 안되던 그 시절

사실 '이병국 PD'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서 몰랐다. 보이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한 프로그램에서도 아주 예쁘게 다듬어진 한 부분일 뿐. 하나의 프로그램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 '빛'의 몇 배에 해당하는 '어둠'속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게임 프로그램의 PD까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따로 찾아본다면 알 수 있었겠지만, 사실 그럴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기에 그를 찾아갔을 때, "'텍켄 크래쉬'를 처음 만든 사람이 바로 접니다."라는 말에 놀랐던 것 같다. 처음엔 몰랐다. 그저 스포티비 쪽에서 '텍켄 크래쉬'라는 IP를 가져다가 다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인 줄만 알았고, 이병국 PD라는 이름도 그때 처음 들어보았다. 어디까지나 군 생활 당시의 나는 경기 영상만 집중적으로 챙겨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잠시 부끄러움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먼 과거로 흘러갔다. 8번째 시즌이 마무리되는 그 순간보다 더 전, '텍켄 크래쉬'가 시작하기도 더 전, 게임 방송이 오로지 '스타크래프트'라는 소재 하나에서 창출되던 그 시절이다.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스타크래프트'가 게임업계를 휩쓸던 시절. 당시 게임 방송 쪽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진리처럼 통했다. 종목의 변환을 꿈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내 기억 상으로도 당시 '엠파이어 어스', 'C&C 제네럴' 등의 작품들이 경기 종목으로 올라오고는 했던 것 같다. 처참한 흥행 끝에 모습을 감췄지만 말이다.

당시 이병국 PD가 살던 곳은 노량진. 일상대로 길을 걷던 그의 눈에 신기한 광경이 들어왔다. 그 어디보다도 더 열띤 분위기, 주먹 한 번에 터져 나오는 탄성. 그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철권'이라는 게임의 파괴력을 엿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파괴력을 프로그램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스타크래프트'외 다른 게임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낭비'로 여겨지던 것이 그 시절이었다. 결국, 가까스로 타낸 조금의 제작비로 그가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철권열전'이었다.

▲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작된 '철권열전: 내일은 어디냐'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괴이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가 된 '무릎' 배재민 선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철권열전'. 사실 명품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약했다. 단지 '철권을 잘한다'라는 이유로 캐스팅되었던 당시 민간인(후에 대부분 선수로 활동했다)들은 국어책 연기의 표본을 보여주었고, '오락실'을 주 무대로 삼다 보니 비주얼도 조금은 칙칙했다.

그렇게 제작된 철권열전. 대성공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을 본 이병국 PD는 본격적으로 '철권'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 제작에 돌입했고, '텍켄 크래쉬'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 오락실 '죽돌이'들이 '프로게이머'가 되기까지...

성공적이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텍켄 크래쉬'. 어째서 '철권'이 아닌 '텍켄'을 이름으로 삼았느냐는 내 질문에 이병국 PD는 이렇게 답했다. "처음부터 글로벌을 보고 있었으니까요. '철권'은 우리나라에서만 통하는 이름이잖아요?" 2D 그래픽으로 이뤄진 유닛들의 꼬물거리는 싸움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그래픽의 격투 게임이 주는 비주얼 쇼크는 상당한 파괴력을 일으켰다. 3인 1조의 룰은 극적인 상황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열정에 찬 해설들의 마이크워크도 수준급이었다.

가장 빛나던 것은 오로지 컴퓨터 앞에서 하루 수 시간씩 연습하고, 검증을 받아야만 겨우 이뤄낼 수 있었던 '프로게이머'라는 칭호를 격투 게임을 통해서도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3~4시즌부터 시작해 8번째 시즌이 끝날 때까지 자격을 획득한 선수들은 총 15명. 물론 한계는 있었다. 비록 경기가 열리고,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기는 하지만, 전문직으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선수는 '본업'을 가진 채 활동했고, '생방송'을 원하는 수많은 관객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본업 보장을 위해 일요일 낮에 녹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텍켄 크래쉬는 순항했다. 정규 리그 외에 따로 진행되던 '로얄 럼블'에는 외국계 선수들도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이병국 PD가 처음 꿈꿨던 '글로벌'한 텍켄 크래쉬는 결국 이뤄졌다. 쉬는 날마다 오락실에 들러 기술을 연마하고, 다른 이들과의 사투를 즐기던 '오락실 죽돌이'들은 '프로게이머'로 다시 섰다. 이제 그들은 모두가 알아주는 스타였고, 전문 게임인 이었다.

▲ 아직도 유튜브 채널에는 당시 경기들의 영상이 남아있다.



하지만 텍켄 크래쉬의 종착역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텍켄 크래쉬를 방영하던 MBC 게임의 폐국. 8번째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텍켄 크래쉬 역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경기가 열리던 날, 직관을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관객들 앞에서 이병국 PD는 말했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러 와준 분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단, 여기서 텍켄 크래쉬는 멈추지만, 우리는 언제 어떻게든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린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기다려 주십시오."

2년간 이어져 온 텍켄 크래쉬의 종장이었다. 이후 이병국 PD는 MBC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되었다. MBC 보도국이라면 보장된 좋은 일자리다. 그런데도 그는 당시 생활을 그렇게 즐거운 날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무엇 때문이었느냐는 내 물음에 이병국 PD는 소탈히 웃으며 말했다. "게임 방송을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그 와중 스포티비게임즈의 개국은 이병국 PD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MBC를 박차고 나와 스포티비게임즈로 둥지를 옮긴 이병국 PD는 이후 몇몇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스포티비게임즈 내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철권7'이 그 면모를 드러냈다. '텍켄 크래쉬'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기틀이, 무려 4년 만에 마련된 순간이었다.

▲ 7년만의 넘버링으로 다시 돌아온 근육 3대


※ 부활하는 텍켄 크래쉬, 그리고 다시 뭉친 그들

감회가 새로울 터였다. 아이디어부터 실행까지, '철권'을 방송의 소재로 끌어온 것도 그였고, '철권'으로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그였다. 부활이 확정된 '텍켄 크래쉬'를 대하는 그의 감정은 어떨지 궁금했다.

"대회가 순항하고, 방송이 잘 풀려나가던 순간에 예상치 못한 일로 막을 내리게 되어 매우 아쉽고 안타까웠어요. 제작진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죠.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모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텍켄 크래쉬를 시작했던 그때 그 멤버들 모두가 한 자리에 다시 모이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나에게 텍켄 크래쉬를 다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짜 모든 힘을 다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아쉬웠던 부분을 채워야 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언제가 되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믿음을 실현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마무리 당시 직관을 온 관중들에게 했던 약속을 다시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기회가 왔네요."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담담함 속에서도 참 많은 것이 느껴졌다. 기쁨, 설렘, 기대. 긍정적인 감정의 복합적 모습이었다. 베이스가 되는 작품인 '철권7' 역시 텍켄 크래쉬를 다시 부활시킬 기반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이병국 PD는 철권7의 시스템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어요. 시청자들도 어렵지 않게 프로게이머들과 같은 콤보를 사용할 수 있고, 파워 크래쉬나 레이지 아츠 등 간편한 커맨드로 나가는 강력한 비주얼의 기술들이 등장해 '보는 맛'이 더욱 강렬해졌죠."

바로 얼마 전, 철권 시리즈의 PD인 '하라다 가츠히로 PD'가 언급한 것이랑 비슷한 내용이었다. 플레이하는 사람도 재미있고, 뒤에서 보는 사람도 재미있는 게임. 철권7이 가진 잠재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에게 값진 것은 그때 그 멤버들이 정말로 다시 뭉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정인호 캐스터와 박현규 해설, 그리고 박상현 매니저와 라운드걸 이수린, 한가은 양까지. 과거 텍켄 크래쉬를 만들어온 그 인원들이 다시 한 자리에 섰다. '텍켄 크래쉬 리턴즈'라는 이름 앞에 말이다.

'텍켄 크래쉬 리턴즈' 예고 동영상


※ e스포츠로서의 격투 게임, 그리고 미래

이제 윤곽은 나왔다. 이병국 PD가 예상하는 텍켄 크래쉬 리턴즈의 시작은 철권7 출시 이후 약 한 달 이후. 아직 협의 과정이 남아있으니 조금의 변동은 있을 수 있으나, 한 달 정도면 선수들도 컨디션을 회복하고, 경기에 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실력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단일화 체제로 e스포츠 시장이 흘러가던 시절, '다른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수요는 분명히 있었다. 늘 같은 것만 보면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5기 e스포츠협회의 노력 덕택에 e스포츠 시장은 굉장히 다양한 종목을 수용하고 있다. 그런 지금에 와서, 텍켄 크래쉬 리턴즈가 다시 흥행세를 몰고 올 수 있을지, 그 위치를 다시 확보할 수 있을까가 의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병국 PD는 간단하게 말했다.

"사실 굉장히 비산술적인 말이겠지만...재밌잖아요? 격투 게임이 가지는 프로그램으로서의 파괴력은 이미 텍켄 크래쉬 시절에 입증했다고 생각해요. 현재 e스포츠 시장은 후원 규모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요. 텍켄 크래쉬 리턴즈가 순항하고, 그 인기를 입증한다면 더욱 커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그렇다. 게임의 본질은 누가 뭐라 해도 '재미'다. 다만 그 전달방식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유저들에게 100%의 재미를 전달하는가, 혹은 채 10%도 전하지 못하는가의 차이가 나는 걸 테다. 이병국 PD는 '철권'이 가진 재미.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무기라고 말했다. 그 생각은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철권이 가진 재미는 분명 대단하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가공하느냐가 중요한 법. 이병국 PD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이미 한번 해 봤으니, 이번엔 더 나을 것이다.

선수들에 대한 대우도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했다. 아니 사실 이 부분은 이병국 PD로서도 쉽지만은 않은 부분일 것이다. 선수들의 복지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가장 기초적인 부분은 수입의 보장이니까. 이병국 PD는 이 부분에 대해 '처음부터 높은 연봉을 주기는 어렵다'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부터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이는 어떤 스포츠나 비슷할 거에요. 선수들의 수입은 보통 기업의 스폰서쉽에 의해 생겨나는 부분이고, 기업은 이 선수가 어떤 성과를 내느냐를 살펴보죠. 제가 선수들의 수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리그를 성공적으로,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거에요. 그래야 선수들이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계기가 많아질 테니까요."

▲ 쉬는 날이면 선수들로 북적대는 그린 게임장




'텍켄 크래쉬 리턴즈'는 비단 텍켄 크래쉬의 정신적 후속작만은 아니었다. 이병국 PD와의 질답에서 알 수 있었던 텍켄 크래쉬 리턴즈는 말 그대로 '리턴'이었다. 후예가 아닌, 부활. 3인 1조의 대회 룰은 그대로 이어졌다. 선수들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고, 드라마틱한 전개도 가능한 이 룰은 예전에도 굉장히 고심 끝에 만들어낸 룰이라 했다. 다만 100% 안주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현재의 룰에서 더욱 다양한 시도를 가한 것. 그것이 텍켄 크래쉬 리턴즈의 모습이 될 터였다.

개인 토너먼트인 '로얄 럼블'역시 여건이 된다면 지속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철권7에서의 '최강'자리는 누구의 차지가 될 것인지 알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1년에 3시즌정도 계획되어 있는 텍켄 크래쉬 리턴즈. 새삼 생각해보니 정말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두 달 정도 후면 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 그때 느낌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이병국 PD와의 만남은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20분. 아직 대회 내적인 여러 요소가 충분히 결정되지 않았기에, 세부적인 사항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짧았음에도 그 시간이 가치없이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MBC 게임의 폐국과 함께 '텍켄 크래쉬'라는 이름은 과거의 잔재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 않은가.

철권을 사랑하는 게이머들은 많다. 그만큼 텍켄 크래쉬를 아쉬워하던 유저들도 많다. 인터뷰의 끝. 이병국 PD에게 건넨 마지막 질문은, 과거 텍켄 크래쉬를 사랑했고, 지금 그 부활 소식을 누구보다 기쁘게 받아들일 게이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었다. 비교적 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던 대화의 종장. 이병국 PD는 잠시 옷매무시를 가다듬고는 짧게 말했다.

"드디어 약속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4년 전, 그 때 이상의 감동, 그리고 열정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