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이 게임은 묘하다. 이 말만큼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질 않는다.

던전 키퍼, 파퓰러스, 블랙&화이트 등으로 알려진 피터 몰리뉴의 신작 GODUS. 덮어놓고 일단 말하자면, 최첨단 기술이 빛을 발하는 21세기형 모습은 아니다. 점토로 빚은 인형들처럼 투박한 모델링은 물론 단순한 게임 플레이 역시 요즘 추세와는 엇나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타임워프 특성도 보유하고 있으니, '묘하다'고 말할 수밖에.

개인적인 소감부터 말하자면 이 게임, 나름 재미있다. 다만 이것은 흔히 말하는 재미와는 좀 다르다.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게 하거나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다. 전형적인 피터 몰리뉴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만큼 그의 전작들을 재밌게 했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해볼만 할지도.

철저한 '여유로움'과 '편안함'에 기반을 둔 재미. 이 게임에 달려있는 수많은 부정적 평가는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뭐, 아직 앞서 해보기(Early Access) 단계인 만큼 게임 자체에 미완성 티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탓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신이 되어 자신의 추종자들을 늘리면서 홈 월드(Home World)를 발전시켜나가는 '갓 게임(God Game)'. 그것이 이 게임의 전부다. 종착점은 단순하되 그 과정은 한없이 다채로워, 즐기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 포인트.

자, 여기 그 목표만큼이나 단순한 성격을 가진 신 한 명이 도전장을 던졌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에 종종 덜떨어진 행동도 서슴지 않는, 초짜 신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게임 그래픽을 고려하면 신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생겼을 것 같다


'신'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초라한 당신

Yo, Man! 아니, Human! 난 신(神)이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절대자,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창조주. 그게 바로 나야. 살 맛 나겠다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정말 신나지 않냐고? 그렇지. '절대자'라는 건 원래 그런 거잖아? 당연히 신나야지.

그런데 말이야. 사실 그리 썩 즐겁지만은 않아. 이 동네, GODUS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지? 아무튼, 이 동네는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됐어. 분명 난 신(神)이거든? 근데 못하는 게 너무 많아. 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더라고. 무슨 신이 그러냐고?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그거.

내가 할 수 있는 일? 땅 꺼뜨리기, 솟아오르게 하기, 돌이랑 나무 치우기. …… 응? 왜? 이게 다야. 더 없냐고? 아, 맞다. 나 숭배해주는 인간들 체력 회복시켜주는 것도 가능해. 한숨 나오지? 사실 나도 그래. 휴… 그러고보니 저기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쟤들도 참 지지리 복도 없네. 어쩌다 나 같은 신을 만나서…….

야, 그 표정 뭐야. 왜, 뭐, 대체 뭘 기대한 건데? 벼락이나 폭풍, 홍수 같은 거? 에이, 말했잖아. 못하는 게 훨씬 많다고. 나도 하고 싶어, 그런 거. 손가락 딱 튕기면 벼락 떨어지고, 손바닥 까딱거리면서 컴온~ 컴온~ 하면 해일 몰려오고, 얼마나 멋있어. 위엄도 넘치고.

근데 '아직은' 안 되더라고. 매뉴얼 좀 잘 찾아보니까 언젠가 할 수 있긴 있는데 지금은 못하는, 뭐 그런 것 같아. 신은 신인데 아직 수습이라고 차별하는 건가봐. 인간들이 쓰는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 이럴 때 쓰면 되는 거겠지?

나도 이런거 하고 싶어요...


나 열받게 하면 애들 푼다, 알간?


  • GODUS는 플레이어가 세상을 창조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는 God Playing 방식의 게임이다. 마우스 클릭, 더블 클릭, 드래그를 통해 주된 조작이 이루어진다.

  • 기본 자원으로 신앙심(Belief)을 사용하며, 이는 추종자들의 집에서 일정 시간마다 얻을 수 있다. 신앙심은 지형을 바꿀 때, 각종 권능 주문을 사용할 때 일정량이 소모된다.

  • 그 밖의 자원으로 보석(Gem)이 존재한다. 월드 안 특정 지역까지 확장하게 되면 채집할 수 있으며, 자원 카드를 구매하는 등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 초반에는 지형변화, 추종자 체력 회복, 토템 활성화 등 기본적인 능력만 쓸 수 있으며, 신 카드(God Card)를 획득하면 해당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 내가 손가락이 너무 아파 그러는데 거 손바닥 좀 쓰게 해주시죠

    뭐, 결과적으로 지금 할 줄 아는 건 땅파먹기(?)가 8할이지만 별로 우울하거나 그렇지는 않아. 이래뵈도 이쪽 세계에선 긍정의 아이콘이라고 내가.

    그리고 이거, 돌이나 나무들을 슥슥 치워주고 제멋대로 생긴 지형들을 널찍하게 다듬어주는 일 말인데, 하다 보니까 은근히 중독성 있더라고. 가끔은 장인정신도 샘솟는다니까. 응? 그 작업할 땐 뭘로 하냐고? 당연히 마법의 손가락이지! 손가락으로 딸깍딸깍 건드리면 되거든. 아무리 수습이라도 명색이 신인데 그 정도 신통력은 기본으로 발휘해줘야 하지 않겠어?

    신통력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너희 인간들이 쓰는 마우스라는 물건이랑 별로 다를 건 없어. 일단 손가락 쓰는 건 똑같잖아. 하루 종일 돌 치우고 절벽 다듬다 보면 손가락에 마비증상이 온다니까. 그래, 생각난 김에 이 불꽃같은 클릭질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한 번 생각해봐.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 없애는 건 나한텐 씹던 껌 쓰레기통에 넣는 것만큼 쉬운 일이야. 그런데 이게 좀 사이즈가 커지면 이야기가 달라져. 이를테면 바위산이나 숲 같은 거랄까? 돌 수십 개, 나무 수백 그루가 있다고 해봐. 이거 일일이 클릭하다간 미쳐버릴 노릇이거든. 신이라고 손가락 관절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관절 삐끗하면 고쳐줄 것도 아니면서. 이럴 땐 손가락 말고 손바닥 정도는 쓰게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싶어.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인간들이 참 똑똑한 편이라는 사실이지. 평탄화 작업만 해주면 집은 알아서 짓거든. 집까지 내가 지어줘야 됐으면... 어휴, 차라리 신 관두고 인간으로 사는 편이 더 나았을 거야.

    내 추종자(Follower)도 처음엔 두 명이었는데 어느새 수백 명이야. 집이 늘어날 때마다 사람 수도 같이 늘어나는 걸 보면 종족 보존(?)도 알아서 잘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음... 내 기억엔 남자들밖에 본 적이 없는데. 뭐, 잘못 본 거라고 믿겠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잘 안 보일 때도 많으니까. 어쨌든! 이 정도면 이제 수습 딱지는 떼도 되지 않을까?

    적절한 위치에 석상을 지으면 신앙심(Belief)을 보다 편하게 모을 수 있다.
    인간들아,나에게 힘을 줘!


    여...여자 데스까? 레알?


  • 지형을 바꿔 공간을 확보하면 추종자들이 집을 지을 수 있다. 확보된 구획 안에는 잠시동안 크기가 표시되는데, 공간크기에 따라 주거지의 형태도 다르다.

  • 처음에는 텐트를 짓게 되며, 주거 관련 카드를 개방하면 더욱 발전된 형태의 집을 짓게 된다. (낮은 등급의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수고 다시 짓게 하면 된다!)

  • 인구가 많아지면 신앙심을 일일이 수집하기가 어렵다. 이때 Statue를 설치하면 근처에 있는 집들의신앙심을 한꺼번에 수집할 수 있다. Statue는 초반 3개까지 신앙심으로 지을 수 있으며, 그 이상 넘어가면 보석을 필요로 한다.

  • 현재 클릭 횟수가 과도하게 많다는 피드백을 종종 받고 있으며, 실제 플레이해본 결과 같은 느김을 받았다. 이에 대한 개선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카드? 마이 프레셔스... 땅 잘 파고 싸움 잘 거는 신이 최고

    그 뭐라더라. '샌드박스(Sandbox)'라든가? 땅 만지면서 놀다 보면 그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고 할까. 내키는 대로 만들었나 부쉈다 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따위의 판에 박힌 법칙도 없지. 하긴, 따지고 보면 모래 갖고 노는 거나 땅 만지고 노는 거나 본질적으로 똑같긴 하지.

    어쨌든 난 이런 게 아~주 맘에 들더라. 시간에 쫓기거나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리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거든. 정해진 목표나 조건이 없으니 뭘 어떻게 하든 내 자유잖아. 목표? 까짓거 내가 정하면 되지 뭐.

    하지만 글쎄, 아직은 목표라는 걸 별로 생각해본 적 없어. 지금은 그냥 만들고 부수는 게 재미있을 뿐이거든. 어쩌다 보니 집도 많아지고 내 추종자들도 왕창 늘어나긴 했는데, 그래도 난 아직 땅 만지작거리는 게 제일 재미있더라고.

    아, 땅 파다가 카드를 발견한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인데, 요즘은 카드 모으기에도 재미가 붙었어. 신 카드(God Card), 자원 카드(Resource Card), 발전 카드(Advanced Card) 등 종류도 구분되어 있고, 자원 카드를 모아서 다른 카드를 개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일정한 체계도 있는 것 같아서 괜찮은 재미거리야. 카드를 많이 개방하면 손댈 수 있는 땅도 넓어지고 새로운 능력도 쓸 수 있게 되는 구조라서 요즘 득달같이 매달리고 있지.

    아쉽게도 내가 영어가 좀 약해서 아직 완전하게 이해는 안 되더라고. 지금은 가끔씩 들여다보면서 하나하나 열어가는 단계랄까. 땅 속에 묻힌 보물상자를 발견하거나 다른 신들하고 한 판 대차게 붙어서 이기면 자원 카드를 주는데 이거 모으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고. 두고 봐. 머지 않아 중견급 신의 능력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어머니, 왜 전 여기서 인앱결제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옵니까.
    돈 마귀가 씌었나...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How to Play 화면.
    사실 읽어보면 그리 친절하지만도 않다


  • 카드 시스템은 GODUS의 핵심 컨텐츠 중 하나다. 자원이나 신의 권능, 문명 발전 등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지며, 홈월드 곳곳에 묻혀있는 보물상자에서 얻거나 다른 신과 전투를 벌여서 얻을 수 있다.

  • 문명 발전에 관한 카드는 각종 자원 카드들을 모아야 개방할 수 있다. 각각의 카드 아래에 어떤 자원이나 도구가 필요한지 표시되어있으며,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자동으로 개방된다.

  • 전투는 자신의 홈월드와는 별개의 공간에서 단판으로 이루어진다. 제한 시간 내에 더 많은 인구 수 확보하기, 상대 문명 파괴하기, 더 많은 보석 채굴하기 등 여러 가지 목표가 주어진다.

  • 자원 카드는 보물상자나 전투로 얻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필요한 자원이 나오지 않는다면 보석을 소모해 구입할 수도 있다.



  • 신을 이토록 힘들게 하는 세상이라니...

    내가 그동안 몇 군데서 신 노릇을 좀 해봤는데, 이 동네는 아직 빠진 게 좀 많아. 테스트 중인 세상이라면서 창조주를 모집한다길래 덜컥 신청했는데 막상 와보니 신 노릇 하기가 영 수월치 않더라고. 게다가 영어만 써야한다는 건 여기 도착해서 알았지 뭐야.

    우리 신들끼리도 '세상 체험 후기'라는 게 있는데, 인간들이 쓰는 개념 중에 '커뮤니티'라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야. 그런데 여기 GODUS에 대한 건 비추천 의견이 상당히 많더라고. 오래 테스트해본 신들도 세상 자체의 완성도가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고 말이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신 노릇 해먹기 참 힘들다'는 의미랄까.

    뭐, 어차피 미완성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말 그대로 테스트잖아? 부족한 점이야 앞으로 채워나갈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거지. 근데 후기들을 살펴보니까 공개된지 벌써 6개월 정도 되어가는데 달라진 게 많지 않다는 말도 있어서 좀 찜찜하기도 해. 이 정도까지 귀띔해줬는데도 혹시 해보고 싶다면 스팀에서 GODUS를 검색하면 돼. 가격은 19.99달러니까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복잡한 걸 싫어한다거나, 반복이나 노가다성 행동에 별로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타입이라면 이 동네, 한 번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혹시 스스로 이뤄놓은 것들 주욱 둘러보면서 자아도취에 흠뻑 취하는 타입이라면 정말 잘 들어맞을 거고. 개인적인 목표가 하나 생겼는데, 완성된 다음에 운석 한 번 떨어뜨리는 거. 물론 그때까진 착한 신 코스프레를… 아, 이런 거 말하면 안 되는데.

    솔직히 지금 나보고 '좀 덜떨어진 신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꽤 많을 거야. 내 머리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장담하는데, 이 동네 와보면 내가 왜 이러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될 걸. 휴, 왕년엔 나도 똘똘하고 잘 나가는 절대자였는데… 아,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이 테스트는 언제까지 해야되는 거야. 계약서를 끝까지 안 보고 왔더니………(궁시렁궁시렁)(투덜투덜)

    진짜 신이 되기 위해 올림푸스 산을 오르는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