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에서 이보다 더 민감한 주제가 있을까? GDC에 영원한 동지이자 영원한 천적, 기획자와 프로그래머의 관계에 대한 강연이 등장했다.

블리자드 '하스스톤'팀의 수석 AI 및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인 브라이언 슈왑(Brian Schwab)은 ‘금성에서 온 기획자, 천왕성에서 온 프로그래머’라는 제목으로 기획자와 프로그래머가 각각 어떤 특성이 있으며 어떻게 해야 서로 대립하지 않고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 ▲ 브라이언 슈왑 ]
브라이언 슈왑은 '하스스톤'이 자신의 19번째 게임일 정도로 교육 게임, RTS, 롤플레잉, FPS, CCG 등 다양한 게임 개발 경력을 지니고 있는 업계 베테랑이다. 주로 게임플레이와 AI에서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있지만, 기획자로서 역할도 맡은 바 있는 근육질의 훈남 개발자.

우선 브라이언 슈왑은 예전과는 달라진 게임 개발 환경에 대해서 설명했다. 과거에는 기획이 대부분 문서로 처리됐고 프로그래머는 단순히 그 문서를 받아 그대로 실행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기획 문서를 받은 프로그래머들이 기획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툴을 만들어주고 기획자가 그 툴을 사용하고 기능을 변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 후에는 게임 출시까지 계속해서 윤을 내는 과정(polishing)이 반복된다.

즉, 과거에는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아티스트의 역할이 분명했고 각자의 임무만 수행하면 만사가 ‘OK’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 개발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가 더욱 긴밀히 협력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둘은 마치 불과 물의 관계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다. 이것이 바로 브라이언 슈왑이 용기를 내서 GDC 강연대에 선 이유다.

브라이언 슈왑은 기획자와 프로그래머의 근본적인 차이를 아래의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할 때 강연장은 큰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기획자는 큰 꿈에 부풀어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키지만, 프로그래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수많은 코드를 분석하며 고군분투한다. 기획은 특정한 틀이 없고 아트, 서사 등 다른 영역과의 협력이 빈번하며 게임의 장르, 플랫폼 특성 등 다양한 상황에 따라 상이한 작업을 하는 반면, 프로그래밍은 어떤 고정된 틀이 있고 이론적이며 체계화된 작업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보통 독립적으로 각자 일하게 된다.

그렇다면 각각의 목표는 어떻게 다를까? 기획자의 목표가 타격감, 깊이 있는 게임 플레이, 모두를 위한 게임 같은 것이라면 프로그래머는 최대한 명확하고 간편하게 만들기, 해당 게임에 적절한 툴을 사용하기, 최우선 문제 해결 같은 전혀 다른 종류의 목표를 가진다.

브라이언 슈왑은 기획자와 프로그래머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또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마치 스타트렉의 외계인과 지구인의 관계.



브라이언 슈왑은 프로토타입 개발 전부터 기획자와 프로그래머가 서로 열심히 만나 커뮤니케이션하라고 조언했다. 다양한 장치를 사용해서 토론하며 기획의 한계점을 찾는 동시에 최대한 명확한 의사전달을 위한 예외 값을 찾으라는 것.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추상적인 것을 밀어내고 퍼포먼스 등을 위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서로간의 신뢰를 무너뜨릴 언행은 조심하라고 덧붙였다.

브라이언 슈왑의 GDC 강연의 핵심은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에 꼭 필요한 수식어가 있는데 바로 ‘명확함’(Clarity)이다. 모순이 없는 명쾌한 의사표현으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기획자, 프로그래머 사이의 간극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는 기획자와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으면 함께 모여 작업하고 여러 가지 소셜 장치를 이용해서 커뮤니케이션하라고 조언하면서도 프로그래머가 ‘집중하는 시간’(focus time)은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피드백을 주거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제안을 할 때도 서로 항상 열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임하라고 전했다.

기획자가 프로그래머에게 버그를 제보할 때도 마찬가지, 단순히 버그인데도 마치 모든 것이 오류가 나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전달하는 것은 브라이언 슈왑이 언급한 주의사항 중 하나다.

최근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간의 가교 역할로 주목 받는 신종 직업, ‘테크니컬 디자이너’와 ‘듀얼 클래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언급했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테크니컬 디자이너가 만병 치료약 같지만, 자칫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승인이 안 된 코드를 사용해서 해킹 가능성을 높이거나 최적화된 코드에 신경 쓰지 않는 등 일명 ‘그린 프로그래머 문제’(Green Programmer Problems)에 봉착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테크니컬 디자이너는 메인 기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양쪽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사람은 유저들의 니즈에 기민하게 반응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서서히 두 직업에 대한 니즈도 증가할 것이지만 부작용에 대한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

브라이언 슈왑은 두 신종 직업의 도입 이전에 다시 한 번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충고했다.

“프로그래머와 기획자는 서로 매우 다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최고의 게임은 기획과 기술이 함께 어우러질 때 탄생합니다. 둘 사이에 정말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세요. 커뮤니케이션은 심장이고 신뢰는 영혼입니다. 항상 기억하세요. 우리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서로 뭉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