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빛보다 빠르게


꼬꼬마 시절, 빛보다 빠른 초광속으로 항해하는 함선의 제독이 되어 우주를 누비고 싶었다. 그럴듯한 파이프를 물고 근엄하게 전투 명령을 내리는 나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보니 현실은 쏟아지는 햇볕보다 많은, 출근시간 2호선을 애용하는 우주 먼지중에 하나일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초광속 운동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은 애인의 쌩얼을 보았을 때와 비슷했다. 현재 과학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초광속 함선의 제독이 되고 싶어했던 내 꿈은 살아 생전에는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게는 미지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최고의 장난감이 남아있다. 게임.

멋드러진 파이프를 입에 물고 함교에 서서 명령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아이패드가 아쉬움을 대신해준다. 우주를 누비는 어릴 적 꿈을 아쉬워하는 내게 다가온 게임! 이름도 빛 처럼 찬란한 'FTL: Faster Than Light'. 빛보다 빠르게 읽고 지나갈 수 있도록 소개글도 짧게 준비했다. 여러분의 시간도 빛보다 소중하니까.


▲ 빛보다 빠르게 차여본 적 있나?


'FTL'은 빛보다 빠른 초광속을 뜻하는, 로그라이크(Rogue-Like) 장르의 게임이다. 제목 그대로 광속을 뛰어넘은 기술을 가진 SF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로그라이크라는 단어가 좀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초기 장르다.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랜덤 맵, 한 번의 죽음은 게임오버, 클리어 스코어 등이 있다. FTL 역시 이런 프레임에 충실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FTL'은 킥스타터 모금을 통해 제작된 게임 중에서 최초의 성공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더블파인 어드벤처의 킥스타터 프로젝트가 크게 유행을 타기 이전에 벌써 모금에 성공해서 만든 게임이다. 이미 스팀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이번에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출시되었다.



▲ 반란군을 피해 도망가자! 모바일 인벤호


보통 SF라면 제국군이 엄청난 물량을 끌고 반군을 박살내는 상황이 자주 등장하는데 FTL은 상황이 반대다. 늘 그렇듯 우주에 진출해서 다종다양한 외계인들이랑 놀다가 먼 미래에 반군의 기밀정보를 탈취한 우주선 한 척을 몰고 반군에게 쫓기며 우주를 가로질러 아군 기지로 복귀해야 하는 시나리오다.

우주선마다 선체와 방어막 수치가 존재하며, 기관실과 의무실 등의 다양한 시스템이 존재해 적함을 공격할 때 전략적으로 선택이 가능하다. 무기들 역시 다수가 존재한다. 레이저, 빔, 이온, 미사일 등등 격실 타격이나 선체 타격, 심지어는 선체에 불을 지르거나 구멍을 뚫는 등 다채로운 옵션이 준비되어있다.

고전 SF처럼 선원들을 적함에 텔레포트시켜 백병전을 펼칠 수도 있고, 자함에 승선한 적군을 에어 해치를 열어 질식 시킬 수도 있다. 또 드론이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적의 공격을 요격하거나 선체를 수리하고 적을 공격하는 드론을 운용할 수도 있다. 물론 싸우다 불리하면 FTL점프로 전투를 이탈할 수도 있다.


▲ 이런 함대전을 기대했다면... (스샷은 은하영웅전설7)

▲ 화려한 함대전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겁니다

▲ 총원! 상황배치! 21포 조준 좋아! 퍼부어! 퍼부라고!


그래픽은 도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I가 참 오밀조밀 귀욤귀욤 하다. 게다가 PC 판의 UI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모바일 디바이스로도 정말 다루기 좋게 변했다. PC 판에서는 전력을 공급할 때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단축키를 눌렀는데, 모바일에서는 터치 드래그로 전력을 공급하는 식이다. 마치 스로틀 밸브를 직접 올리는 기분이 든다. 원래 로그라이크류는 상상력으로 하는 것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다양한 함선들, 외계종족의 선원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매 턴마다 한 지역을 선택하여 이동하며 여러 이벤트가 발생한다. 지역을 이동하다 적대세력과 조우하면 함대전이 펼쳐지고, 전투 자체는 상당히 단순하지만 그 안에서 온갖 드라마가 다 펼쳐진다. 원래 로그라이크류는 상상력으로 하는 것이다. (*2) 뇌내보정 망상이라고...

적들의 인공지능은 꽤 나쁜 편이지만 기본 능력의 차이가 상당히고 운에 의해 결정되는 점이 많기 때문에 난이도가 다소 높게 느껴질 수 있다. 초반에 좋은 무기가 운좋게 걸리면 게임이 편해지고,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굴려봐도 초반 적이 강력하고 이벤트 운까지 안 따라주면 힘들어진다.

애초에 게임 스타일 자체가 그런지라 랜덤성을 노린 세이브 로드 노가다가 아예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대신 한 번 끝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큰 부담은 없다. 한번 실패했다면?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된다.


▲ 함선 업그레이드 화면

▲ 상점에서 다양한 기자재를 구입할 수 있다

▲ 함선을 개조한다고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스샷은 칸코레)

▲ 눈을 감고 내 눈앞엔 우주가 펼쳐있다고 상상해보자

▲ 눈을 감고 내 눈앞엔 우주가 펼쳐있다고 상상해보자(*2)


겉보기보다 조작할 요소가 많고 각각의 상황에서 최적의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많이 써야한다. 일시 정지로 진행을 멈춘 상태에서 조작을 가능하게 만들어서 순간적인 판단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발더스 게이트'처럼 일시 정지를 시키고 곰곰히 고민을 해본 후 전략을 짜는 것도 좋다.

유명한 SF 드라마와 영화들의 오마쥬가 가득한데, 이길 수 없는 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FTL 드라이브로 추격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은 배틀스타 갤럭티카, 몇몇 종족의 콘셉에서는 스타게이트, 세계관은 스타워즈, 무기와 전투 장면 및 함선 콘텐츠는 스타트렉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하다.

우주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면 주저없이 FTL을 추천한다. 비록 상상의 힘을 빌어야 하지만 마치 진짜 함선의 제독이 된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잘 만든 로그라이크가 그렇듯 주기적으로 재미와 긴장감을 준다. FTL을 즐기면서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는 전쟁과 이야기들을 스펙타클하게 경험했다. 화려한 그래픽과 자동 전투에 지쳤다면 'FTL'을 접해보길 강력하게 권한다.

▲ 진행에 따라 함선이 등장하는 시스템

▲ 일시정지 기능을 이용해 전략적인 전투가 가능하다

▲ 어디로 가든 사용자의 의지다

▲ 마지막 보스와의 대결은 특별한 맵이 제공된다


※ 본 게임은 아이패드만 지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