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코리아 최은영 책임 연구원]

청록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생기있는 얼굴로 스테이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보컬로이드 '미쿠'가 NDC2014에 등장했다.

마비노기 영웅전 '이비' 캐릭터의 애니메이터이자, 모션 캡쳐를 위해 직접 재현에 참여했던 넥슨코리아 최은영 책임 연구원이 또 다시 강단에 섰다. 이번에는 그가 지난 1년 반 동안 MMD라는 툴을 활용해 제작한 뮤직비디오 '미쿠미쿠하게 해줄게' 를 토대로 캐릭터 애니메이션에 대해 발표했다.

'미쿠미쿠하게 해줄게: MMD MV 제작 사례와 매력적인 캐릭터 애니메이션'라는 제목으로 28일 오후 3시 20분부터 시작된 해당 세션에는 30분 전부터 긴 대기열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덕분에 넥슨 1층 1994홀의 자리가 시작 15분 전에 모두 채워졌으며, 뒤늦게 온 사람들은 계단과 1층 스테이지 앞쪽에 앉아 강연을 들었다.

최은영 책임 연구원은 애니메이션 'S.U.N'과 더불어 '마비노기 영웅전'의 애니메이션과 이펙트, 기획 등을 담당했으며, 2011년부터는 '야생의 땅: 듀랑고'의 애니메이션 파트를 맡고 있다.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그는 "90년대에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평범한 덕후였어요. 다들 부산 보수동 헌책방가, 나우누리 만사동, 용산 이런 단어가 익숙하실거에요. 저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고요. 이 분야가 좋아서 이후에 3D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일하고 있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인터넷을 통해 미쿠의 홀로그램 콘서트 영상을 접하게 된 그녀. 하지만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MMD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약 2년간 하츠네 미쿠 애니메이션 클립 3편을 만들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고...

그 중 최근 히트를 친 '미쿠미쿠하게 해줄게'는 MMD와 3D Max, 애프터 이펙트 등을 토대로 3개월에 걸쳐 제작된 뮤직비디오다. 업로드 이후 이 영상은 미쿠 팬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일본 동영상 사이트인 '니코니코동화'에서 30만 뷰를 달성했다.

"순수한 취미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를 통해 '모에'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고 구체화되었죠. 그래서 이 과정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강연은 크게 두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하츠네 미쿠와 '미쿠미쿠하게 해줄게' 작업 과정에 대해 소개됐으며, 2부에서는 해당 MV를 토대로 동작의 실루엣과 동선의 특징 등 캐릭터 애니메이션에 대해 거론됐다.

[▲ 최은영 책임 연구원이 제작한 '미쿠미쿠하게 해줄게' MV]




◆ 하츠네 미쿠, 그녀는 누구인가?


하츠네 미쿠는 일본의 크립톤 퓨처 미디어 사에서 출시한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이다. 보컬로이드란 음성합성 소프트웨어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인공적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하츠네 미쿠 이전부터 보컬로이드는 존재했으나, 2007년 하츠네 미쿠 발매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미쿠의 사랑스러운 외형과 귀여운 목소리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데 한 몫을 했겠지만, 이와 더불어 '니코니코 동화'라는 채널이 존재했다는 점도 컸다. 보컬로이드 문화의 절대적 토양이 되었던 '니코니코 동화'에는 원본 리소스 링크와 콘텐츠 트리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제 자식처럼 작품을 아끼는 아티스트들에게 작품이 보호 및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에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왔다.



보컬로이드 문화가 꽃피면서 MMD가 등장했다. MMD는 '미쿠미쿠댄스(MikuMikuDance)'의 줄임말로, 오픈소스 3D 프로그램이다. 자체적인 모델링 기능은 없으나, 3D 모델 임포트와 애니메이션, 렌더링 등이 가능하다. 모델이나 모션, 셰이더 등이 합쳐져서 3D 미쿠라는 창작물이 탄생했다.

그는 "이런 문화 덕택에 좋은 모델을 접했고, 개인 취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그것이 '미쿠미쿠하게 해줄게'의 탄생 배경이다.

미쿠의 경쾌한 댄스를 담은 뮤직비디오 '미쿠미쿠하게 해줄게'는 3단계를 거쳐 완성됐다. 첫 작품은 모노톤으로 안티알리아싱 없이 구현됐으며, 이후 컬러를 입혔고 마지막으로 입체감을 더해 완성됐다.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미쿠는 과학의 한계를 넘어 나온 것"이라고.

입체적으로 미쿠를 구현하면서 신경 쓴 부분은 카메라 연출 가이드라인이다. 그녀의 동선이 잘 드러나는지 안무 특징이 잘 드러나는지, 캐릭터 매력이 잘이기에 검은 실루엣으로 미쿠의 동작을 먼저 검토했다고 한다. 물론 캐릭터 매력을 살리기 위해 일부분에서는 스테이징을 다소 희생하기도 했다.

동작을 완성한 이후 배경 제작에 돌입했다. 다만, MMD은 아쉽게도 배경 애니메이션이 지원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쿠가 춤추고 있는 배경 뒷부분을 움직이는 배경으로 표현하기 위해 MMD외에 추가로 3D MAX를 채택했다. 그의 취미와 열정, 거기에 기술이 더해져 '미쿠미쿠하게 해줄게'가 완성됐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표현하려면 신체를 알아야 한다.


애니메이터가 항상 고민하는 것은 '이 캐릭터는 매력적인가?'일 것이다. 매력이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 최은영 연구원이 생각하는 매력이란 "캐릭터가 본래의 역할 이미지에 충실할 때 발휘되는 것"이다. 그래서 애니메이터는 서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움직임 만으로도 매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포즈와 포즈가 빠르게 연결되는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포즈를 구성하는게 최우선이다. 그는 좋은 포즈를 '발레'에 대입해 설명했다. 아름다운 포즈는 사람의 관절이 겹치지 않고 다각도를 유지하는 것이며, 그래서 발레나 체조의 경우 팔이나 다리가 몸과 겹치지 않고 뻗어있는 형태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이러한 신체 각 부분의 각도를 다양하게 설정하는 것이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다.

그 속에서 척추의 비중은 크다. 곧은지 안으로 굽었는지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대칭은 올곧은 느낌을 주고, 반대로 척추가 안으로 굽으면 음침하거나 비밀스러운, 변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데스노트'의 L을 생각해보면 금방 느낌이 올 것이다.

실루엣의 크기에 따라서도 캐릭터의 성격이 다르게 표현된다. 신체의 실루엣이 안으로 수렴하면 내향적, 밖으로 발산하면 활동적인 성격으로 표현되는 것. 영화나 애니메이션 속에서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통상 어깨를 구부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서 힘없이 다니는 것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각 성별의 차이를 과장하면 그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 구조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골반'이다. 여성의 골반이 남성에 비해 폭이 넓으며, 무릎으로 이어지는 경사가 가파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여성 캐릭터의 경우, 허벅지 안쪽 공간이 커지며 무릎이 안으로 모이게 된다. 상체를 강조해서 팔꿈치를 밖으로 향하게 하면 남성성이, 반대로 안으로 굽으면 여성스러운 실루엣이 그려지게 되는 것.

결론은? 무릎을 안으로 모으고 골반을 회전시키고 팔꿈치를 안으로 모으면 쉽게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에 캐릭터는 조금 다른 노선이 추가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접하는 모에 캐릭터들은 섹스 어필적인 포즈를 취하지 않으며, 서구 여주인공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 미쿠, 일본 만의 매력코드로 생명력을 불어넣다.

애니메이션은 '생명력'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등장한 말이다. 그래서 '생기의 표현'은 애니메이터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 12법칙을 만들었으며 애니메이터 사이에서 바이블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 모에 캐릭터에 이 법칙을 적용하면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본 애니메이션은 나름의 세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적인 애니메이션 법칙을 적용시키기에는 나름의 문화가 이미 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다른 곳과는 다르게 키포즈를 토대로 '위아래로 출렁이는 듯한' 과장된 카메라 앵글이 자주 사용되는 점이 특징이다.

캐릭터의 움직임이 부드럽기만 해서는 좋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매력이 있어야 한다. 최은영 연구원이 생각하는 매력은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매력'. 그래서 레어한 표정을 미쿠미쿠 MV 속에 적용했으며, (>,<) 이러한 표정이 뮤직비디오에 짧게 등장한다. 그러나 '애교'에 대해서는 문화권마다 큰 차이가 있으며, 사람들마다 개개인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각 나라의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이돌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까를 연구하기 때문에 그들의 애교를 보면 그 나라에 통용되는 애교를 알 수 있죠. 그 외에도 뭐 여러모로 좋습니다.


생명력을 부여하고 리얼하게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중도를 흐리는 모션은 배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특히, 카메라가 인물에 근접할 수록 작은 동작 표현에도 신중해야 한다. 특별한 목적 없이 눈을 깜빡이는 것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것.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두 주인공이 눈을 수 차례 깜빡거린다면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진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미쿠미쿠하게 해줄게'를 만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 세심하게 체크하지 못했다며 최은영 연구원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미쿠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부분에서 미쿠가 눈을 깜빡이는데, 일순간에 지나가지만 이러한 점이 무의식적으로 시청자들의 집중력을 흐릴 수 있다는 것.

캐릭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 '모션캡쳐'에 대해서 최은영 연구원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델 프로포션의 리얼함에 따라 동작의 묘사방식도 매번 달라져야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이 구현되는데, 모션캡쳐를 사용하면 좋은 애니메이션을 위한 과장이나 스트레치 묘사가 어렵다는 것.



◆ 덕심 양성은 곧 나의 발전. 덕을 발산하자!


최은영 연구원은 발표 내용을 요약함과 동시에 "덕심을 발전시키는 것이 곧 자기를 발전시키는 길"이라며 미쿠미쿠했던 강연을 마쳤다.

"3D는 각 분야가 전문화, 세분화 되어 있어서 제작비용이 큰 세계입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이 모여 스스로 세계를 구축하고 콘텐츠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향한 덕심에 창작욕을 조금 덧붙이면 이렇게 큰 세계가 될 수 있죠.

개인적으로 덕심을 펼치면서 애프터 이펙트 사용법을 배우고 니코동 문화를 배우는 등 많은 깨달음과 발전이 있었습니다. 덕은 좋은 것입니다. 덕을 발산해보세요.


강연 종료 후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모바일로 보낸 질문을 토대로 답변이 이루어졌다. 그는 "국내 타이틀 중 매력적인 애니메이션을 가진 게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블레이드앤소울' 이라고 답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동작을 구현함에 있어 현실세계 속 사람들의 동작을 참고로 한다. MMD 때도 직접 춤을 추면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고. 현재 작업하고 있는 '야생의 땅: 듀랑고'에서 공룡을 묘사하고 있는데, 모션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직접 네 발로 기어다니면서 묘사하고 있다고.

도움이 될 만한 서적으로는 '애니메이터 서바이벌 키트'를 추천했다. 애니메이터가 알아야 할 기본 지식과 예제가 잘 담겨있기 때문. 최은영 연구원 역시 학부시절에 이 책으로 공부했다고. 최근에는 아이패드로 볼 수 있는 e북이 출시되었으며, 예제를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