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 작가가 쓴 '하얀 전쟁'처럼 전쟁을 군대가 아닌 한 병사의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문학, 영화, 사진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꾸준히 시도됐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는 전쟁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영웅의 역할을 맡아 전장을 누비는 일종의 '슈퍼맨'을 플레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화려한 액션과 카타르시스를 뿜어내려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르겠으나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게임은 그 당연한 선택을 정면으로 비틀었다. 유비소프트 몽펠리에 스튜디오에서 내놓은 '발리언트 하츠: 그레이트 워(이하 발리언트 하츠)'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일반 군상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발리언트 하츠'는 각자의 인생을 충실히 살던 4명의 등장인물과 1마리의 군견의 시점을 통해서 1차 세계 대전을 마주한다. 4명의 인물을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며 전쟁 속 만남과 이별, 사랑, 죽음과 생존 등 플레이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장르부터 여타 전쟁 게임과는 다른 어드벤처를 선택했다. 우리말을 지원하지 않지만, 표현을 통해서 등장인물의 대화나 의도 등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영어 자체도 어렵지 않으므로 쉽게 플레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디비니티: 오리지널신'과 같은 시기에 플레이했었는데 디비니티에 비하면 영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언어걱정은 접어두라. 5시간 정도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장소와 잔잔한 게임에 어울리는 차 한잔이면 충분하다.

게임은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으로 시작된다. 꽤 흔한 소재이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소재 아니던가. 프랑스군으로 징집된 아버지와 독일군으로 징집된 남편. 그리고 아버지를 되찾는 의무병과 자원입대한 미국인 4명의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아. 한 마리의 군견도 빼놓을 수 없다.

캐릭터는 매력적이고 고증에 잘 따랐다. 4명의 캐릭터는 각자의 사연이 있고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있을법한 캐릭터들이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 묘사가 매우 훌륭하다. 게임의 그래픽과 어울리는 전장의 묘사나 총기와 복장의 묘사는 너무나 섬세하며 아름답다. 시대의 배경에 맞게 악명높은 참호의 모습도 변해가고 병사들의 무기도 변한다. 잘 만든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게임 중간마다 나오는 팝업들을 통해 배경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정보의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했고 관련 정보도 열람할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해 나감에 따라서 관련 정보는 더욱 많이 제공된다.

전장의 참혹한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은 무척 놀랍다. 황폐하고 황량한 느낌. 2D로 깔끔하게 표현해냈다. 어쩌면 강조된 감성을 전달하는 데는 2D가 더 감성을 자극하지 않나 싶다. 미행보다 동급생에 열광하지 않았던가

화면 곳곳 디테일에 신경 썼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피로 물든 군인과 켜켜이 쌓인 시체에 꼬이는 파리는 담담하게 전장의 비참함을 표현했다. 과도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표현했다. 잠시 시쳇더미 앞에 서 있노라 하면 멀리 보이는 노을과 포연의 이미지가 합쳐져 몽환적인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극적인 장면에서 컷을 따로 나누거나 원색적인 색을 사용해서 효과를 강조한다. 비장한 느낌의 배경음악은 게임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배경음악은 전장의 비장한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매우 적절하게 구성되어 듣는이의 심금을 울린다.


▲ 마른 전투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볼 수 있다.


게임 진행 대부분은 퍼즐로 이루어진다. 마치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유행했던 어드벤처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 반갑다. 주의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모든 퍼즐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간혹 게임 진행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는 힌트를 참고해 진행하면 된다.

액션의 느낌을 주는 장면도 존재한다. 쏟아지는 포격을 피하는 장면이나 택시를 타고 공습을 피하는 장면은 배경음악과 더불어 굉장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비슷하게 미니 게임형식으로 표현된 안나의 치료 방법도 리듬게임을 하듯이 타이밍에 맞춰 커맨드를 입력하면 된다. 앵그리버드 방식으로 도구를 던지는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택시 미션의 센스는 놀랍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액션과 퍼즐을 합친 이 장르가 대부분 그렇듯 퍼즐이 주를 이루고 액션의 경우도 단순한 편이다. '워킹데드', 와 '울프 어몽 어스'가 그랬듯 액션은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드라마가 아니고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만든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군견을 이용해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거나, 레버를 활용해 물건을 가져오는 것들은 우리가 아는 시에라를 탄생시킨 '미스터리 하우스'부터 있던 것이어서 신선하지는 않지만, 게임의 배경과 퍼즐이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RPG만큼 거대한 볼륨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볼륨을 갖추고 있고 퍼즐 요소와 미니게임도 매우 적절하다는 느낌이었다. 어렵다고 느껴지거나 진행이 장시간 막혀 있던 구간은 없었다. 적어도 가격 이상의 값어치는 하는 게임이다.




다만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아이템 수집에 대한 부분이다. 퍼즐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템 말고 수집품의 개념의 아이템 말이다. 이는 주의를 크게 분산시키며 몰입을 방해한다. 해제되지 않은 아이템 때문에 퍼즐을 해결할 때 두뇌가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을 방해받으며, 수집품 위해 모든 걸 클릭해보고 시도해봐야 할 것처럼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언차티드의 보물과 좀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 강박증이 개입하는 순간, 게임은 멍청해진다. 염소가스를 피해 달리는 전우를 구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잠시 멈춰 아이템이 있나 살핀다고 생각해봐라. 어떤 지역을 떠날 때 보물을 일단 살펴보지 않은 상태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점수나 업적과 같은 외적 보상은 당위를 입힌 악이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게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이유에서 이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간접 경험을 추구하는 장르 특성상 특히나 슬프고 아쉬운 대목이다.


▲ 너무나 가슴 아픈 읊조림


이점을 제외한다면 게임성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고찰도 잊지 않는 정말 잘 만든 게임이다.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끔 한다. 전장의 영웅과 화려한 액션 스펙타클한 연출은 없지만 담담하게, 하지만 날카롭게 전장의 참혹상을 전달한다. 형언하기 어려운 미묘한 여운들이 게임을 끝내면 주위에 남는다.

귀여운 카툰 형식의 그래픽과는 상반된 암울했던 시기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전혀 이질감 없이 짜인 '발리언트 하츠'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느끼게끔 게임을 구성해 두었고 전체적으로 게임을 하는 내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다양한 패턴의 퍼즐과 액션 요소의 재미를 심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이들의 이야기. 게임은 포커스가 이 4명에게 맞춰졌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각자가 주인공이었던 인생을 살았던 수많은 이들이 있었을 테다.

1차 세계 대전 100주년을 기념하여 유비소프트에서 선보인 '발리언트 하츠'가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 전달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아픔과 고통을 한 개인의 입장에서 표현하고 담아낸 것도 훌륭하지만, 전쟁이 갖는 총체적인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역할에 더욱 무게감이 실린다.

개인적으로 트로피 수집이나 게임센터 업적 해제 목적이 아닌 이상 2, 3회차 플레이를 즐기는 편은 아닌데 '발리언트 하츠'는 그래 봐도 괜찮을 것 같다. 웅장하고 비장한 느낌을 전면에 세운 다른 전쟁 게임과 다르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묻어나는 전장의 슬픔과 아픔은 더욱 가슴을 깊게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