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코어 게이머를 위한 추리 어드벤처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는 게임사를 만났다. 어드벤처 게임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그것도 제대로 하드보일드한 느낌의 추리 어드벤처를 만들고 있었다. 게임의 첫인상은 괜찮았고, 유저들이 기피하는 유료화 방식의 결제도 아니었다.

9,900원. 소설책 15권에 해당하는 분량에 이 정도 가격이면 그다지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워낙 팬층이 비좁은 어드벤처 게임이니 대중적인 흥행, 속칭 대박을 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실패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리고 얼마 전 '탐정의 왕'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안타깝게도 해킹으로 인해 팀을 해체한다는 비보였다. 게임의 완성도나 흥행 실패로 인한 해체가 아니라, 불법 결제 및 해킹으로 인해 사업을 접게 됐다는 소식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다행히 인벤을 통해 이런 소식이 기사화가 된 이후, 팀의 해체가 유보되고 다시 게임을 개발한다는 글이 올라왔지만, 이들이 팀 해체를 결심하게 된 원인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게임 출시 인터뷰 후 4개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디앤씨게임즈의 이윤환 팀장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차마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건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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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금액은 기업정보라 공개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한다.


오랜만이다. 게임 출시 후 어떻게 지냈나.

바빴다. 버그 잡고... 고객 응대하고. 지난 8월에 마지막 시나리오를 내고... 뭐 그랬다.


블로그를 통해 팀 해체는 백지화됐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이걸 축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씁쓸하다. 허허허.


그럼 그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표를 보며 말하겠다. 표를 보면 이게 구글에서 잡힌 매출이다. X원이다. 이 정도면 차기작도 진행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프리덤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가짜 결제를 한 것까지 구글 디벨로퍼 콘솔화면에서 수익으로 잡힌다. 그땐 몰랐지만...

그리고 정산금을 받았다. X원이다. 처음엔 내가 잘못 봤는지 알고 한참을 쳐다봤다. 그래도 이상해서 팀원들을 불러놓고 보라고 했다. 팀원들도 나랑 같은 반응이었다. 참담했다. 영업 수익이 -XXX% 였다.


마이너스 XXX%... 그때 심경은 어땠나.

참담했다. 말로 다 못한다. 지난 1년 6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한창 마무리 작업 중에 태어난 딸이 아빠를 못 알아볼 만큼 열과 성을 다했던 게임이었다. 그렇게 지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전부 다 흩어져서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매출이 안 나왔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차기작을 생각했을 정도로 나름의 매출이 잡혔던 걸 보고 나니 더욱 화가 났다. 해킹 대비를 하긴 한다고 했는데... 개발 환경상 어찌 보면 국내 유저의 양심을 믿고 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뒤통수 맞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사실 우리 회사가 출판업으로 제법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견코자 해서 뛰어든 사업이 게임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는 게임을 개발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의 윗분들께 먼저 팀 해체를 건의했다.


▲ 딱 한시간 동안 트윗된 게 226개. 많은 관심을 끌었다.


X원, X%로 밖에 표현하지 못해서 불법 다운로드가 얼마나 큰 규모로 이뤄지고 있는지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17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윤관석 의원이 "2008년 이후 국내 저작권 피해액이 약 14조 원에 이르며 이는 전체시장의 20% 수준이다."라고 지적할 정도로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피해가 더는 좌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 이는 해마다 평균 2조 3000억 원의 규모다.

너무 생경한 금액이라 잘 안 와 닿을지 모르겠지만, 2조 3000억 원은 나로호를 발사했을 때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금액과 동일한 금액이다. 국책사업인 나로호 개발 및 시설 건설 과정에서 유발된 생산 효과와 발사 성공으로 예상되는 홍보 효과 및 국가 이미지 제고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를 고려한 값이다. 2015년 외교부 배당 예정인 2조 495억 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그만큼 게임사들이 유형무형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건의한 건가? 팀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나와 같았다. 다들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독단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나서 조금 언쟁이 오갔다.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팀원들 사이에서 "동정을 받을 바엔 깨끗하게 끝내자."라는 의견도 나왔었다.

사실 팀원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글을 쓴 이유는 단순하다. 불법다운로드 때문에 이토록 엄청난 손해를 입은 걸 불법 다운로더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불법 다운로더 때문에 팀을 해체하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저가 '갑'이고 개발사가 '을'인데 강력하게 말할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그런 글을 올린 거다.


단단히 마음먹고 윗선에 건의까지 했는데 팀 해체가 없던 일이 됐다.

블로그에 글을 쓴 이후로 인터넷에서 제법 반향이 있었다. 응원의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현재 '탐정의 왕'이 구글 플레이 외에도 네이버 앱스토어, 티스토어에도 올라가 있는데 모든 마켓에서 전부 구매한 인증샷도 다수 받았다. 기사화도 되고...

마케팅 효과를 노린 글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는데 사실 마케팅 효과는 별로 없었다. (참고자료를 보여주며)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요기 반등한 부분이 블로그에 글이 올라가고, 기사가 나간 이후다. 매출 전체로 본다면 그렇게 큰 효과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우리 게임을 사랑하고 응원해 주는 유저들을 위해서 계속 만들기로 결정한 거다. 그분들을 버릴 수 없었다. 다만, 차기작도 이런 사건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뚫리지 않는 보안 솔루션은 없지 않은가. 팀 해체 결정이 백지화된 지금도 잘하는 짓인지 확신은 없다.

개인적으로 온라인 개발을 10년여 해왔지만, 모바일 게임은 '탐정의 왕'이 처녀작이었다. 그래서 불법 다운로드를 해서라도 우리 게임을 즐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 신소음 작가가 블로그에 올린 글


응원 글이 상당히 많았다.

응원 글이 많이 올라왔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앞으로 이분들을 위해 게임을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앞서 말했듯 모든 마켓에서 구매한 분들의 인증샷들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 덕분에 회사의 윗분들도 게임 사업을 길게 보는 걸로 하고 차기작을 내보자고 결정했다.


반면, 비꼬는 말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심정은 매우 복잡했다. "재미없으니 망했지.", "보안 대책도 없이 낸 개발사 잘못 아니냐."라는 글들이 있었다. 그런데 본질은 그게 아니다. 보안책이 허술하다고 해킹을 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비난에 대한 요지 자체가 잘못되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과금 유도가 싫다고 해서 강화, 뽑기 없는 어드벤처 게임이고, 챕터별 사업 모델만 채택했다. 카카오 초대가 귀찮다고 해서 카카오 플랫폼도 포기했다. 단지 챕터만 구입하면 모든 콘텐츠를 씹고 뜯고 맛보고 전부 즐길 수 있다. 단지 그거면 되는데...

불법 공유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봤나

들어가 봤다. 저번 '인어 아가씨' 사태 때 원체 두드려 맞아서인지 자제하고 있는 듯하지만, 기본적인 생각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음지로 더 파고 들어갔을 뿐이다. 그리고 더 찾기 힘들어졌다. "게임을 왜 돈주고 사서 하냐."라는 생각 자체는 여전한 것 같다.


▲ 버젓이 올라와 있는 크랙 버전들


차후 대응책을 마련했는가

내부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외부 메이저 보안 업체와 계약 중에 있다. 예전에는 게임을 실행하면 바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지만 새로 업데이트되는 버전은 보안 서버와 통신하여 앱 무결성 검사를 통과해야 게임을 실행할 수 있다. 메이저 보안업체와 계약하면서 '탐정의 왕'은 고스란히 적자로 남았지만 속은 후련하다. 또한, 피해금액에 대해서 민사상의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인가

손실 입은 부분에 관해 증거 제출이 가능하므로 민사로 진행할 계획이다. 구글 자료에서 가짜 결제한 부분이 잡히기 때문에 누가 적법하지 않은 경로로 게임을 다운로드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강경하게 진행하면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럴수록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 차기작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기대한다.


어찌됐던 팀이 유지되면서 차기작을 만들기로 했다.

원래 트릴로지(3부작)으로 기획했었다. 그중 '탐정의 왕'이 두 번째였다. 차기작은 첫 번째 이야기가 될지 세 번째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으나 유저들이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시나리오로 구성할 계획이다. 우리가 잘하는 게 시나리오지 않느냐.

보통 책 한 권이 15만 자인데 전작은 150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차기작은 텍스트 양을 줄이고 연출과 스토리의 완성도에 더 신경 쓸 예정이다. 내년 초에 유저 여러분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아, 보안에도 신경 쓸 거다.(웃음)


지난번에 팀 해체와 관련해 올렸던 글의 제목 '지극히 일부겠지요.'는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지극히 일부라고 생각하는 유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두 잔만 안 먹으면 우리 게임을 살 수 있다. 애초에 게임을 안 하겠다는 건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흥미를 느껴서 즐기는 거면 구매하고 즐겨주시길 바란다. 만약 우리 게임을 사느라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면 우리가 대신 사주겠다. (웃음) 더불어 응원의 말씀을 전해준 유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