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激變)은 '상황 따위가 갑자기 심하게 변함'을 뜻한다. 여기에 추가로 대(大)까지 붙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 세 번째 확장팩은 신규 종족부터 지역 개편까지 그야말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대격변'이었다.

변화가 컸기 때문일까. 인터넷에서는 온갖 정보가 흘러넘쳤다. 마치 데스윙이 부활하면서 혼돈에 빠진 아제로스와 같았다.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까지 인터넷을 떠돌던 대격변에 관한 정보는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들렸다. 실제로 그렇게 변할 줄은 몰랐으니까. 뜬구름 잡는 소리로만 들렸던 이야기들은 2009년 블리즈컨에서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리치왕의 분노'에서 보여줬던 것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그래픽으로 탄생한 파괴자 '데스윙'의 위용, 그 시네마틱 영상과 함께 대격변의 진짜 모습이 속속 공개되었다.


2010년 12월 9일, 우리는 대격변을 만날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를 다시 실행하고 약 200MB(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용량) 분량의 업데이트는 마치 의식과 같았다. 잠시 잠들어 있던 캐릭터들은 새롭게 변한 아제로스를 탐험하기 위해 깨어났다. 덕분에 온갖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1,000명이 넘는 대기표는 단지 대격변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 오랜만이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이미 존재합니다"라고 뜨는 로그인 오류 메시지 창도 오래간만에 볼 수 있었다. 신규 지역으로 가기 위한 첫 퀘스트를 받는 게시판은 누가 뽑아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퀘스트 수락 및 완료를 하기 위해 몰린 유저들로 NPC의 털끝조차 찾아보기 힘든 진풍경도 연출됐다.

유저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수많은 몬스터 잔해만 있었다. 수중에서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을 보상으로 주는 '바다 걸음' 퀘스트를 하기 위해 소라 껍데기를 찾아다니던 유저의 익사 소식도 들려왔다. "한 개만 더"를 외치다 저세상으로 가기 일쑤였다.

[▲ 대격변 출시일 풍경, 이런 장면 정말 오랜만에 본다]

키우던 캐릭터를 계속해서 키우기도 했지만, 신규 종족 늑대인간과 고블린을 플레이해보는 사람도 있었다. 신규 종족을 플레이해보면서 여러 정보도 공유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모두 바빴다. 일부 유저는 주요 NPC나 주요 거점을 클릭할 수 없도록 막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기다렸던 대격변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만난 대격변, 이전과는 무엇이 달랐었나


■ 신규 종족의 등장. 얼라이언스의 '늑대인간'과 호드의 '고블린'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종족 추가다. 동부 왕국에 자리 잡고 있는 국가 '길니아스'의 주민들이 저주를 받아 변한 늑대인간과 녹색 피부를 가진 난쟁이 기술자 고블린이다. 기존에는 몬스터나 NPC로 등장했던 두 종족을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었던 점은 대격변의 새로운 재미 중 하나였다.


대격변 이전의 늑대인간은 대부분 몬스터로 만날 수 있었다. 은빛 소나무 숲에서 아루갈의 후예에게 기습을 받거나, 그늘 숲에서 어느새 주위를 포위하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등장했던 늑대인간은 어둡고 사악한 면을 갖고 있었다. 거친 느낌이었달까. 대격변에서 등장하는 늑대인간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과격한 느낌의 전투적인 면만이 아니라 이성적인 면도 강조됐다.

▶ 거친 카리스마의 늑대인간, 그들은 누구인가?


시간은 금이라구, 친구. 돈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이는 꼬마 악동 종족이 고블린이다. 몬스터로만 만났던 늑대인간과는 달리 고블린은 비행선 함장이나 가시덤불 골짜기의 무법항이나 타나리스의 가젯잔 등 중립도시에서 만날 수 있었다. NPC로만 등장했던 고블린을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었다.

▶ 신종족 고블린의 모든 것을 파헤친다!


■ 어떻게 바뀌었었나요? 아제로스의 변화된 모습.

[▲ 대격변으로 변한 아제로스]

데스윙의 등장과 함께 아제로스에는 큰 변화가 찾아온다. 넓은 지역 중 하나였던 불모의 땅은 남과 북으로 분리됐다. 맵 중간 중간에 지형이 뒤틀려 용암 흐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지형만이 아니라 퀘스트 동선까지 전부 변경됐다. 이전의 아제로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제로스에서 날 수 있는 탈것도 탈 수 있었다. 그야말로 대격변.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까지 변했다.


■ 새롭게 변경된 길드 시스템.

길드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늘었다. 기존에는 길드원의 레벨과 직업, 접속일, 간단한 메시지 알림 기능 정도가 전부였던 길드 시스템은 대격변과 함께 크게 변화했다. 퀘스트 완료, 길드 업적 달성, 길드원과 함께 우두머리 처치, 평점제 전장에서 승리 등의 조건을 달성하면 길드 경험치를 받고 길드 레벨을 올려 보상받는 형태로 바뀌었다.


■ 땅을 파면 보물을 발견할지어다. 고고학.

새로운 전문 기술인 고고학도 등장했다. 고고학을 통해 아제로스 대륙의 유적지에서 유물을 발굴하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씩 전부 구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피곤한 전문 기술이기도 했다. 한 유적지에서 유물 채굴이 끝나면 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리 가랴, 저리 가랴 이동하기 바빴다.

[▲ 수없이 뛰면서 땅을 파는 귀찮은 작업을 하는 이유]

포기하고 싶어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희귀 연구과제 '랩터 화석'을 완료하면 희귀 탈것인 해골 랩터를 위한 발걸음은 쉼 없이 바빴다. 이외에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계정 귀속 아이템도 여럿 존재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 버리기에는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물과 함께 등장하는 새로운 이야기. 숙련도가 100이 넘은 뒤엔 캔 유물을 완성해야 숙련도가 올랐던 고고학의 세계. 항상 끝없는 도전 정신을 요구했었다.



그땐 그랬지... 대격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 WoW의 또 다른 재미 패러디

WoW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패러디다. 대격변에도 여러 가지 재밌는 패러디가 등장했다. 2009년 팝캡 게임즈에서 제작한 게임 식물 대 좀비나 바이오쇼크에 나오는 리틀시스터즈라는 독특한 소녀도 만날 수 있었다. WoW 대격변에 등장한 패러디는 게임만이 아니라 드라마, 영화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이 사건은 분명 살인사건이다." 미국 드라마 CSI : 마이애미에 등장하는 호라시오 케인 반장을 패러디 한 호라시오 레인은 아제로스의 범인을 찾아다녔다. 용아귀 부족의 대족장 모르고르는 심기가 불편해지자 "우리는 용아귀 부족이다"는 말과 함께 협상가를 불구덩이로 차버린다. 이 모습은 영화 300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부분이다.


오리지널 줄아만 시절부터 리치왕에 이어 대격변까지 등장했던 인물도 있다. WoW의 대표적인 패러디 인물인 해리슨 존슨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제목과 주연배우 해리슨 포드의 이름을 합성한 인물로 스톰윈드에 있는 도서관에 가면 그가 강의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타임머신, '문명5'의 캐릭터 간디의 대사도 등장했다. "순순히 금을 넘기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그의 대사는 WoW에서도 패러디됐다. 울둠 지역에서 일일퀘스트를 수행해서 얻을 수 있었던 위업 중 하나는 "순순히 물러나면 빠른 전멸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였다.


■ 전설이 전설인가요? 전설급 무기

전설급 무기를 얻기 위한 과정에는 여러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가로쉬가 타락하게 된 원인이었던 타렉고사나 래시온이 스토리 상 비중을 갖게 된 아버지의 송곳니에 관한 이야기를 보는 것은 대격변의 재미 요소 중 하나였다. 타렉고사의 경우에는 전설급 지팡이 퀘스트에서, 래시온의 이야기는 전설급 단검 퀘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WOW 세계관의 아들들은 왜 불효자인 것일까.


[▲ 아버지의 이빨을 뽑아 보상으로 던져주는 래시온.]

대격변에서 전설급 무기는 노력만 있으면 전부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마치 새로운 평판 퀘스트를 하는 느낌이었달까. 대격변의 전설급 무기는 전설급이지만 전설급이 아니었던 것 같은 슬픈 추억이 있다.

■ 즐거운공격대, WFK(World first kill)의 주인공이 되다.


대격변 레이드의 시작은 티어 11부터였다. 부활한 네파리안이 등장하는 검은날개 강림지, 황혼의 망치단의 집정관인 초갈이 등장하는 황혼의 요새, 바람의 정령왕인 알아키르가 등장하는 네 바람의 왕좌. 대격변의 등장과 함께 3개의 던전이 공개되면서 최고를 가리기 위한 싸움이 시작됐다.

약 4달이 지나고 불의 군주 라그나로스도 등장했다. 그리고 2011년 12월 1일. 데스윙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제로스를 파괴시키려 하는 데스윙을 막기 위해 시간의 동굴을 통해 가져온 과거의 강력한 무기인 용의 영혼을 이용하여 데스윙의 군단과 전투를 벌이는 던전 용의 영혼이 업데이트됐다.

[▲ 데스윙의 등 레이드 순위]

12월 20일, 데스윙의 광기가 쓰러졌다. The Chosen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다. 즐거운공격대는 세계 최초 공략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약 7년 만에 한국이 다시 정상에 올라섰다. 25인만이 아니라 10인에서도 희소식이 들렸다. In extremis(AFK)는 12월 26일 데스윙의 광기를 쓰러뜨리면서 10인과 25인 두 부분에서 모두 한국이 세계 최초로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국내 공격대의 세계 첫 킬에 대한 소식에 유저들은 환호했고, 각 커뮤니티에는 축하글이 올라왔다.

[▲ 용의 영혼 최종 킬 순위. 즐거운공격대는 정상을 차지했다.]


■ 대격변 이후 1년. 가장 인기가 많았던 직업은 무엇이었나

대격변 이후 가장 큰 변화는 25인 막공과 정규 공격대의 수가 줄었다. 국내 와우 유저들이 즐기는 레이드가 10인 공격대 위주로 변했다. 25인에서 10인으로 규모가 작아지면서, 자연스레 선호되는 직업이 등장했다. 아제로스에 변화가 찾아온 뒤 1년. 인벤에서는 직업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과연 선호되었던 직업과 고통받았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당시에 진행된 설문조사의 결과를 준비했다.

※ 설문조사 결과 이미지는 클릭 시 확대된다.

[▲ 미터기를 뚫어버릴 듯 했던 딜러는 마법사였다.]

[▲ 레이드에서 가장 찾기 힘들었던 직업으로는 징벌 성기사가 선정됐다.]

[▲PvP에서 가장 고통받았던 딜러는 주술사였다.]



대격변 돌아보기, 당시 수석 시스템 디자이너는 어떤 평가를 내렸나




■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대격변', 수석 디자이너 그렉 스트리트의 냉정한 평가

당시 수석 디자이너였던 그렉 "고스트크로울러" 스트리트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대격변에 대한 평가를 내렸었다. 과연 개발팀에서는 대격변을 어떻게 평가했었을까.

개발팀은 우선 1~60레벨 지역 개편에는 만족했다. 각 지역은 대격변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고, 퀘스트 흐름도 다듬었다. 최대한 모든 지역에 대격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고, 파란색 아이템을 자주 보상받을 수 있었다. 또한 5인 던전이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면서, 5인 던전을 탐험할 이유를 부여한 것은 대격변의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다른 콘텐츠들은 모두 아쉽다는 평을 내렸다. 당시 그렉 스트리트의 평가는 가혹했다. 울둠과 심원의 영지는 개발팀에서 원했던 만큼 유동적인 콘텐츠가 되지 않았다. 위상 변화를 설계할 당시, 최상위 콘텐츠가 담겨 있는 지역이 흩어져 있어 탐험하는 재미가 떨어졌다. 그는 흩어진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등장한 차원문은 WoW 세계를 좁게 느끼도록 한 계기였다고 짚었다.

퀘스트 라인도 지나치게 일직선처럼 느껴져 불만족스럽다고 평했다. 퀘스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다음 단계를 위해 계속 퀘스트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던 점을 문제점으로 짚었다. 그렉 스트리트는 10레벨에 전문화를 선택하는 방식 자체는 개발팀에서 좋았지만, 나머지 전반적인 특성 트리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5인 영웅 던전과 공격대 던전의 난이도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리치 왕의 분노에서는 더 어려운 도전을 바란다는 유저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했다. 문제는 친구들과 함께 공격대 던전을 즐기고 싶어도 필요한 수준의 장비를 얻을 수 없었다. 이러한 대격변의 문제점을 반영해서 도입된 것이 판다리아의 안개에 추가된 도전 모드다.

그렉 스트리트는 심연의 구렁은 네스피라 내부에 3개의 우두머리 몬스터를 추가한 형태로 기획됐었다고 설명했다. 바쉬르의 그래픽 자원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업할 시점이 되자 개발팀에서는 바쉬르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분명 바쉬르는 수중 지역이라는 느낌을 충실히 살려냈고 개성이 있었다. 하지만, 불의 땅과 동등한 수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심연의 구렁을 취소했다고 덧붙였다.

■ 대격변 후기, 전설무기는 흔해졌고 고고학은 반복작업

전설 무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했을까. 용의 분노에서는 전설 무기의 완성이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희귀하다기 보다 흔하디 흔한 아이템으로 전락했다. 개발팀에서도 전설 무기는 평판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대격변에서 생겼던 전설 무기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이해했고 대격변 이후에는 전설 등급 무기를 더 얻기 힘들게 만드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마지막은 고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발팀에서는 고고학이 경매장에서 재료를 구입하여 최고 숙련도까지 올릴 수 있는 다른 전문 기술처럼 되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단기적인 보상보다 장기적인 재미를 위해 추가됐던 무작위 보상은 고고학이 지겨운 반복 작업처럼 느껴졌다. 이동 시간도 길었다. 이야기를 보기 보다는 조사와 발굴에만 목을 매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개발팀은 판다리아에서는 대격변보다 더 재밌게 고고학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밝혔었다.

대격변의 새로운 모습은 신선했지만, 개발자가 돌아본 내용처럼 아쉬운 점도 많았다. 화끈하게 불타올랐던 대격변의 무용담은 이제 가슴 한 켠에 자리잡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10주년 기획 다음 이야기는 '판다리아의 안개'에 대한 것이다. 과연 블리자드가 '대격변'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다음 주 목요일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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