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딱 봐도 악당같은 녀석들이 이상한 진법을 만드는데 순진한 사람들이 그 속에서 환영을 보면서 허우적댄다. 그 사람들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일진데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할 능력이 없을리 없다. 알면서도 속는거다. 인간은 의외로 감각적 공격에는 취약하니까.

헤드 마운트 VR(Virtual Reality, 가상 현실) 디바이스인 '오큘러스 리프트'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이 그랬다. 가짜인건 다 안다. 오로지 내 감각을 속이는 것은 시각과 청각 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실감난다. 날아오는 총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고, 옆에서 터지는 폭발에 놀랐다. 레이싱 게임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기우는 정도가 아니었다. 속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 오큘러스 리프트 DK2, 착용 모습

2013년 GDC에서 첫 개발자 키트인 DK1을 공개한 오큘러스는 이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올해 들어서는 DK2가 공개되었고, 9월달에는 테크니컬 프로토타입인 세 번째 버전 '크레센트 베이'까지 공개되었다. 이미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이 오큘러스를 눈여겨보면서 VR시장 진출을 조심스레 논하고 있고, 소니와 삼성을 위시한 메이저급 전자기기 회사들도 VR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이다.

그리고 2014년도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11월 초. 오큘러스 리프트의 한국 지사장을 맡고 있는 서동일 지사장을 KGC가 한창 열리는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가져온 언리얼과 유니티의 엔진으로 제작된 두 가지 데모는 오큘러스의 이름에 걸맞는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이미 모션 트래커 기능은 예전에 시험해 봐서 알고 있으면서도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었으니 말이다. 데모를 모두 체험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오큘러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 오큘러스 리프트 한국지사 서동일 지사장


Q. 오큘러스 리프트와 한국의 시작점부터 대화를 하고 싶다. 아시아 첫 지사를 한국에 만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오큘러스가 한국에서 전략적으로 가지는 이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하드웨어를 소싱하기에 참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다. 비주얼 디바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영상이 출력되는 패널이다. 한국의 경우 패널 제조부문에서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다른 한가지는 오큘러스 리프트가 PC에 기반을 두는 디바이스라는 점이다. 우리는 제품을 콘솔과 연결지을 계획이 없기 때문에 콘솔 시장보다는 PC게임 시장이 강세인 한국이 전략적으로 유리했다.


Q. 세계적인 SNS인 '페이스북'이 오큘러스 리프트를 인수한 것은 여러모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페이스북과의 합병 이후, 달라진 점이 있는가?

페이스북과의 인수 과정에서 받은 메시지 중 가장 큰 것은 우리의 독립성을 보존해 준다는 것이었다. 페이스북은 인수한 모든 회사의 비즈니스적 독립성을 인정해준다. 우리만 해도 앞에 페이스북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지 않나. 때문에 개발 과정이나 사업적 부분에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다만 페이스북 덕분에 더 안정적인 개발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고, 더 많은 베이스 유저를 확보할 수 있었던 점은 확실히 좋은 점이다.


Q. 오큘러스 리프트의 경우 VR장비 치고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350달러). 하지만 앞으로 더 나은 버전이 개발될 경우엔 이보다 더 비싸지지 않을까? 또한 오큘러스를 구동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PC도 상당히 고사양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부분은 차차 나아지리라 말씀드릴수 있다. 우리도 놀란 것 중 하나가 개발 초기와 현재를 비교해 볼때 오큘러스 리프트를 구동하기 위한 제반비용이 엄청난 속도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과거 우리가 오큘러스를 시연하기 위해 사용한 GPU는 140만원대의 굉장히 비싼 장치였지만, 지금은 60만원대 선의 GPU로도 어떻게 보면 더 나은 환경으로 구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오큘러스 리프트는 지금보다 더 개선된다 하여도 비싸질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미 350달러라는 가격 안에 필요한 모든 장치를 포함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한가지는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VR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리고 할수 있는 한 극한의 VR경험을 유저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반된 목표라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두 가지 목표를 최대한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Q. 아무래도 하드웨어만큼 중요한 것이 콘텐츠다. 장비가 좋다 하여도 콘텐츠가 미비하거나, 접하기가 어렵다면 유저들의 수가 증가하기는 어려울텐데, 콘텐츠의 확보와 유저들의 인식 재고에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나?

우리 나름대로의 앱스토어를 구축할 예정이다. 오큘러스를 지원하는 모든 콘텐츠를 자체 앱스토어를 통해 접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다. 사실 다른 앱마켓을 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런 방법을 취한 이유도 없지않아 있다.

콘텐츠의 확충은 NDA서명 때문에 모든 것을 밝히기 어렵다. 개발자들이 자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말이다.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300여가지가 넘는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들이 VR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저들의 인식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모바일 게임을 생각해보자. 처음 모바일 게임이 등장했을때 사람들의 인식인 '캐주얼'이었다. 터치패드라는 디바이스로 하드코어한 게임을 구동한다는 가이드라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많은 유저들이 모바일 코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콘텐츠, VR시장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수 있는 콘텐츠가 나온다면, 한 번의 인식 변화가 이뤄질 것이고, 이후 시장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는 질문을 하려 한다. 상용화는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수년까지도 아니다. 우리는 수개월 안에 상용화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기능적인 부분에서 상용화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갖춰 두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큘러스를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고, 멋지며, 인상적으로 어필하느냐에 대한 솔루션이다.

그 외에는 인풋 디바이스 정도일까? 키보드나 마우스, 패드의 경우 오큘러스 리프트와 완벽하게 매칭되지 않는다. 앱스토어 역시 개발이 거의 완료된 상황이다. 오큘러스는 생각보다 여러분과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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