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WoW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물어보는 질문은 대개 비슷하다. 우선 서버를 물어 볼 것이고, 진영을 물어볼 것이다. 혹여나 상대가 호드라고 대답한다면 혹시 블러드엘프를 하냐고 구체적인 종족까지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이와 함께, WoW를 언제부터 얼마나 즐겨왔는지도 궁금해질 것이다.

그 긴 시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플레이할 수는 없었겠지만, 오픈베타부터 즐겨왔다면 최소한 10여년은 WoW와 함께했던 것이고, 만약 '워크래프트3'부터 시작했다면 그보다 더 오래 되었을 것이다. WoW의 전성기를 이뤘던 오리지널부터 '리치왕의 분노'까지, '워크래프트3'에서 이어진 언데드 스컬지를 위시한 아서스의 이야기는 끝이 났고, WoW는 대격변으로 들어가 '워크래프트' 시리즈 전통의 악역이자 최강자인 넬타리온, 아니 데스윙을 끌어들였다.

▲ 데쯔윙 때리지마라욤 ㅠ.ㅠ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사실, '리치왕의 분노'를 지나며 가장 많은 유저들이 익숙한 스토리가 끝나버린 영향도 컸고, 10인 위주의 레이드 시스템 개편은 북미의 일부 유저층을 제외하고는 게임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후 다음 확장팩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으레 그렇듯 WoW 세계관과 밀접한 스토리와 지역을 예상했다. 오래된 떡밥인 에메랄드의 꿈이나 지하세계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결과물은 놀랍게도 판다렌이 사는 '판다리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대격변' 이후 발매된 '판다리아의 안개'는 WoW 재부흥의 막강한 사명을 띄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



또다른 신대륙, 아제로스 신비의 땅 '판다리아'


▲ 중국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판다리아의 안개'는 WoW의 4번째 확장팩으로, 아제로스의 숨겨진 대륙 '판다리아'를 무대로 하고 있다. 판다리아는 오래 전 '워크래프트3'까지 거슬러 올라가, 당시 등장했던 보너스격 중립 영웅인 '판다렌 브류마스터'의 대사 '판다리아를 위하여!(For Pandaria!)'를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그런 곳이 있다는 존재감은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판다렌과 판다리아는 이스터 에그 혹은 제작진의 유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특정 종족은 판다렌 브류마스터나 비스트마스터를 자기네 고유 영웅 마냥 마르고 닳도록 사용했지만, 일단은 공식적인 설정보다는 마치 블리자드 사내 메탈 밴드인 '정예 타우렌 족장'처럼 설정을 이용한 유머로 받아들였다.

▲ 사나난이라고 들어는 봤나

사실 판다리아는 아니더라도 판다렌 종족의 경우 '불타는 성전' 시기에 WoW에 도입될 뻔한 적이 있었다. 당시 얼라이언스의 새로운 종족을 고민하던 블리자드가 현재 드레나이의 자리에 판다렌을 넣을 생각을 했던 것. 하지만 그때에도, 설정상의 문제와 세계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되었었다.

이미 한 번 개발진에서 그런 이유로 거부당했던 종족이니, '판다리아의 안개' 발표 시점에서 유저들의 생각이 어땠을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판다렌, '불타는 성전'에서 추가될 뻔... 판다리아의 안개 기자 간담회



판다리아에서 생긴 일


  • 판다렌! 판다리아! 수도사! '중국맛을 살려야지!'


    '판다리아의 안개'의 화제는 단연 판다렌, 판다리아, 수도사 등 아시아, 아니 그 중에서도 '중국'을 소재로 한 것들이었다. 이전까지 와우에서는 이렇게 한 문화권의 소재와 주제를 중점적으로 게임에 반영한 적이 없었다. 물론 서구적인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다양한 문화권을 상징하는 종족들이 있었지만, 각각의 종족이나 종족의 거점에서나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아웃랜드, 노스랜드 등 각 지역은 딱히 현실의 어디라고 할 수 없는 독특함과 신비함을 가지고 있었다.

    ▲ 판다리아 패드립류 최강자의 위엄

    하지만 판다리아는, 글쎄... 한가지 확신하는건, '판다리아의 안개'를 플레이한 전세계 모든 유저들의 입에서 '중국'이란 말이 한 번 쯤은 나왔을거란 사실이다. '이건 좀 심하다' 싶을 만큼 중국의 색채가 심했다. '중국' 문화라는 소재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 과했고, 서양적 시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음양의 조화'나 '마음의 평온', '균형' 등 뻔하디 뻔한, 태극권과 불교와 내선사상을 대충 버무린듯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은 안봐도 비디오였다.

    ▲ 에드워드 사이드와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

    위에도 언급했듯 판다렌과 판다리아 자체는 워크래프트 유저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익숙한 소재이긴 했다. 술을 좋아해 맥주통을 들고 다니며 마시고, 그 맥주에 불을 붙여(!!) 불을 내뿜는 첸 스톰스타우트가 있었으니 말이다. 재미있게도, 종족, 직업, 지역 등 확장팩의 새로운 것은 모두 첸 스톰스타우트에게서 나왔다.

    처음 수도사 판다렌을 본 느낌은 마치... 어렸을 적 홍콩영화를 보며 자주 만나던 금보형의 현신 같았다. 통통한 몸으로 성룡의 뺨을 후려갈기는 민첩함을 선보이며 모두를 제압하던 홍금보. 달리는 포즈부터 구르는 것까지 모두 홍금보였다.

    ▲ 이분이 익숙하다면 최소 80년대생

    반면 판다리아라는 대륙은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마주하게 되는, 전형적인 중국 느낌의 지형을 가진 비취 숲에서 시작해, 중앙 아시아의 넓은 평야와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들을 가진 쿤라이 봉우리, 동남아 및 남아시아의 빽빽한 정글을 닮은 크리사랑 밀림, 몽골평야와 만리장성을 꼭 닮은 탕랑평원... 뿐만 아니라 판다리아의 토착 종족들도 중국 역사에 등장한 다양한 이민족과 닮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히려 '판다리아의 안개'는 '중국'이라는 명확한 코드가 있었기 때문에 구성과 개발에 있어서 보다 탄탄함을 갖출 수 있었다. 물론, 그 결과물이 사람들의 취향에 맞았는가 아닌가는 별개로 생각해봐야할 문제지만 말이다.


  • 나는 더이상 멧돼지가 아니야! 살육전차다!

    ▲ 나의 시대가 왔다!

    WoW에서 확장팩이 새로 나오는 일이 거듭되어도 절대 풀리지 않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PVP밸런스에 모두가 만족하는 일이다. 유독 WoW는 그동안 PVP 밸런스에 대한 외면이 심했다. 정작 유저들이 많이 겪는 PVP 상황은 분쟁지역에서 우연히 만나는 1대1 상황이나 대단위 전장임에도 불구하고, 투기장이 생긴 이후로 블리자드는 1대1 밸런스는 포기한 채 투기장에 집중해서 밸런스를 잡아왔다.

    때문에 다양한 PVP 약체 직업은 아예 작정해서 팀을 구해 투기장을 하지 않으면 모두 고통 받았다. '듀로타멧돼지' 전사와 '필드의 간디' 주술사, 캐사기 영고생착에서 보이드워커 신세가 된 흑마 등등. 이들은 풀을 캘 때도 채광을 할 때도 가죽을 벗길 때도 언제나 날탈 아이콘 위에 마우스 커서를 올려놓아야 했으며 혹여 붙잡혔다면 공격은 커녕 '/애원, /구걸, /벌벌' 의 3중 콤보를 날려 목숨을 보전해야 했다.

    ▲ 아아 자애로우시니 그이름 주술사 ㅠㅠ

    하지만 이런 이들에게도 희망이 찾아왔으니, '대격변'에서 시작된 특성 개편과 함께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끝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가장 눈에 띄게 폭발적 성장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사. 그 이전에도 비록 약하긴 하지만 기동력 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전사는 각종 신기술의 추가와 돌진기 버프를 통해 그야말로 '살육전차'로 변신했다. 각종 한방 몰아치기가 생겨 딜도 강력했고, 생존기와 판금갑옷을 통해 생존력도 준수했으며, 기동력은 타 근접 직업을 압도했다.

    ▲ 내가 도적이고 도적이 난데!!

    또 도적과 법사 등 기존의 PVP 강캐들이 너프당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들의 입지도 어느정도 나아졌다. 특히 생존기를 갖춘 힐러들은 제대로 된 딜러 없이는 죽일 수 없는 통곡의 벽이 되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 판다리아 무간지옥, '영원의 섬'

    ▲ 평화로워 보인다고요? 에이 설마...

    모두가 평화롭게 조화와 균형을 외치는 판다리아라고 전부 안전한 곳은 아니었으니, '판다리아의 안개' 중반부터 추가되기 시작한 판다리아 주변의 각 섬들이 그랬다. 천둥의 섬, 영원의 섬 등, 다양한 인스턴스 섬이 하나씩 생겨났다.

    오리지널부터 플레이해왔던 유저들은 필드쟁이 몰락한 이유를 말할 때 하나같이 비행 탈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 섬들은 공통적으로 비행금지 구역이었다. 거기다 분쟁지역이며, 각각의 진영이 동선상 서로를 자주 마주칠 수 밖에 없었으니,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나랑 계약할래?

    그 중에서도 으뜸은, 판다리아의 가시덤불 골짜기요 WoW의 무간도인 영원의 섬이었다. 단지 진영간 필드전쟁 뿐만 아니라, 영원한 고통의 향로를 사용한 유저들까지 뒤섞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를 절로 외치게 만들었다. 이 향로 유저들은 주로 은신직업이었던 탓에, 공개 채팅을 통해 '레이드 면역이라 여기와서 이러냐', '닥쳐 넌 차단이다' 같은 온갖 조롱과 육두문자가 날라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더군다나 영원의 섬은 아직 아이템 레벨이 낮은 유저들이 레이드 입장 조건을 맞추기 위해 희귀몬스터와 상자를 노리고 오는 곳이었기에, 유저마다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향연이었다. 이곳의 풍경은, 아래의 만화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것 같다.

    ▲ 영원의 섬의 평범한 하루(출처 : 와우인벤 팬아트 갤러리)


  • 다시금 찾아온 레이드의 전성기

    ▲ 짜잔~ 내가 돌아왔다!

    이전 확장팩 '대격변'에서 레이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10인과 25인 레이드의 통합이었다. 북미지역의 환경에 맞춘 이런 변화는 그 외의 지역 전체, 더불어 북미 지역에서마저 문제를 일으켰다.

    우선 보상이 같으니 사람들은 보다 공대 관리가 용이하고 적은 인원으로도 가능한 10인 레이드만을 선호했고, 10개 직업이 특성별로 골고루 가던 25인 레이드에 비해 직업당 한명씩 정해진 인원만이 참가하게 되어 레이드의 다양성이 그야말로 제로, '0'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때문에 수많은 유저들이 WoW를 떠났다. '불타는 성전'부터 방어전사와 분노(분무)전사를 둘다 해오던 기자 역시 말이다.

    ▲ 여러사람 살린 시스템

    이런 문제를 인지한듯, '판다리아의 안개'에서는 다시금 지역별로 각자에게 맞는 레이드 환경으로 다시 조정되었다. 10인과 25인의 차등과 공격대 찾기로 인해 과거보다 나은 환경에서 레이드를 다닐 수 있었으며, 여기에 본격적으로 기름을 부은건 탄력적 공격대 시스템이었다.

    WoW의 레이드에서 인원수는 중요했다. 문제는 정해진 인원 내에서 최적의 조합을 준비해야 했기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외면받는 직업과 특성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레이드를 공략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음에도 사소한 스펙차이가 걸림돌이 되는 일이 한국 WoW에서는 심했다.

    탄력적 공격대는 말그대로 인원수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조합의 선택지도 늘어났고, 또 그때그때 참여하는 인원에 따라 유동적으로 공대를 조정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탄력적 공격대가 도입되면서 '공격대 찾기-탄력적 공격대-일반 공격대-영웅 공격대'의 흐름이 완성되어 정착되었다.

    ▲ 오너라, 티탄의 아이들아!

    물론 이러한 시스템이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의 공격대 던전을 난이도만 바꿔 반복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각 공격대 던전 간 텀이나 확장팩 지연으로 인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그리마 공성전'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이전 확장팩인 '대격변'처럼 유저들이 세기말의 탈력에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유저들이 쉽게 목표로 잡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긍정적이었다. 또한, 확장팩의 마지막 공격대 던전인 '오그리마 공성전'이 매우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레이드 콘텐츠는 예전 '리치왕의 분노'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대격변' 이상으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 애완동물 대전, 태양노래 농장, 시나리오, 도전모드... 참 다양하구나!

    ▲ 내일만 사는 놈들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애완동물 대전, 속칭 '와켓몬'은 '판다리아의 안개' 이전 패치인 '소판다'부터 적용된 새로운 콘텐츠로, 일본의 모 유명 게임이 떠오르는 구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등장한 '태양노래 농장' 역시 관심거리 였다.

    ▲ 뭐... 좀 이런 느낌?

    이들 신규 콘텐츠의 공통된 특징은 바로 기존에 유명한 다른 장르의 게임을 WoW에 적합하게 변형하고 가공해 넣은 놀이거리라는 점이었다. 첫 공개 당시부터 '포켓몬스터', '농장이야기' 등 기존에 유명한 게임들의 이름이 따라다녔고 유저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우려보다는 기대였다. 이전에 블리자드는 이미 '식물 VS 좀비' 같은 유명 게임을 미니 게임으로 잘 녹여내기도 했다.

    또, 이들 콘텐츠의 특이점이라면 레이드나 투기장처럼 게임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콘텐츠는 아니었지만, 유저들이 충분히 시간을 쏟으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사이드 콘텐츠였다는 사실이다. 또, 시나리오와 도전모드 등은 전투 콘텐츠를 원하는 이들에게도 득이 됐다. 결과적으로 레이드 볼륨은 같지만, 레이드 말고도 할게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마치 싱글플레이용 게임에 들어가는 수집요소나 미니게임처럼 이들 콘텐츠는 WoW의 플레이 가짓수를 풍요롭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기존의 WoW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테마파크에 새로운 놀이기구가 추가된 것은 그 놀이기구가 아무리 취향을 탄다 해도 긍정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 아제로스 인스턴스 가이드 : 추억으로 떠나요!

    검둥의 오리지널 공대파괴자 밸라스트라즈도 무적지휘크리를 이길 순 없었다...

    게임이 워낙 오래된 만큼, 오리지널 시기부터 '판다리아의 안개' 이전까지 모든 레이드를 다 경험해본 유저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유저는 과거의 레이드나 던전 콘텐츠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서 쉽게 감당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구조상 혼자서 깰 수 없던 레이드도 있었는데, 검은날개 둥지의 폭군 서슬송곳니가 좋은 예였다. 그렇다고 예전 레이드를 구경가자고 모르는 남을 끌어들여 공대를 짤 수도 없는 일이었다.

    ▲ 저를 잡으면 똑닮은 강아지를 드립니다!

    이러한 바람을 들은 것인지, 판다리아에 접어들어 많은 과거의 레이드 던전들이 한명이 돌기에 알맞도록 개편되기 시작했다. 이 개편은 애완동물 대전과 맞물려서, 이렇게 소수 인원용으로 개조된 레이드에서는 새로운 대전용 애완동물 펫을 얻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형상변환까지 겹쳐 상당히 많은 유저들이 형상변환템과 애완동물을 위해 던전을 다녔다. 단순히 예전 레이드를 구경하는 것 뿐 아니라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구 레이드가 좋은 재활용 콘텐츠로 재탄생한 셈이다.

  • 그 이름은 들어봤나, 전!설!망!토! 블리자드는 제비를 뿌려라!!

    ▲ 통곡의 벽

    WoW가 서비스되며 지금까지 다양한 종류의 전설 아이템들이 만들어졌다. 오리지널의 3대 무기와 소리달, 어둠한, 발아니르 등... 한가지 공통점은 지금까지 나온 전설 아이템들은 모두 무기였단 사실이다. 그만큼, 각 전설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이 달랐기 때문에 한 확장팩에서 전설을 얻지 못한 직업들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판다리아의 안개'에서는 모두가 공평해졌다. 모두가 전설 등급의 망토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무려 아이템 레벨이 600에 달하는! 때문에 이 망토만 만들면 레이드에서 다른 부위는 몰라도 망토 만큼은 영원히 졸업이었다.

    ▲ 안두인 : 지금 훈계하시는 겁니까, 두살 주제에? 래시온 : ㅂㄷㅂㄷ...

    여기까지는 참 달콤하고 공명정대한 멋진 이야기지만, 세상은, 아니 블리자드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이 무자비한 퀘스트는 처음 시작부터 최종 보상인 전설등급 망토를 얻기까지 총 5장에 이르는 연속 퀘스트를 깨야했는데, 일단 그 퀘스트 단계수가 서른개쯤 됐다. 더불어 그 퀘스트 내용도 단순한 심부름이 아닌, 전장에서 승리하거나 평판을 확고까지 찍고, 또는 레이드 보스를 처치하는 결코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 압권은 3장의 다양한 수집퀘였으니... 많은 유저들이 이름만 들어도 눈꼬리를 치켜올릴 티탄 마법석, 제국의 비밀이 그것이었다. 스무개, 열두개의 갯수도 무자비하고, 또 드랍하는 대상도 천둥의왕좌 이상 레이드였으며, 확률 또한 극악했다. 아무리 빨리 모으는 유저라도 몇주씩은 기본이고, 19개나 11개의 '아홉수' 에 걸려 1~2주를 더 허비하는 비극도 자주 일어났다.

    ▲ 초강대국 모구제국의 비밀은 아무에게나 허락된게 아니었다

    물론, 다른 전설 아이템들의 습득조건에 비하면 쉬운편이어서 많은 이들이 교복처럼 맞추게 되었지만, 그만큼의 댓가로 주어진 노가다는 유저들이 몸서리를 치게 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서는 더이상 습득이 불가능해진 지금, 많은 유저들이 막바지로 만들기 위해 확률과 피나는 싸움을 하고 있다.



    ■ '판다리아의 안개', 그 평가는?


    이제 '판다리아의 안개'가 끝나가고 있다. 이미 종료된지 몇년씩 흘러 후대의 평가가 어느정도 한데 모아진 이전 확장팩들과 달리, 아직까지도 '판다리아의 안개'는 의견이 꽤나 분분하다. 사실 대부분의 확장팩은 그 이후의 확장팩과 비교되며 평가가 정립되곤 했다. 대표적인 예로 WoW 최고의 리즈시절로 뽑히는 '리치왕의 분노'는 '대격변'의 실망과 함께 많은 이들이 "그땐 그랬었지" 하며 추억을 곱씹으며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 거렁뱅이 죽여놓고 환호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시기문제에 더해 '판다리아의 안개'가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한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격변'이나 '리치왕의 분노' 같은 케이스와는 다르다. 그 이유는, '판다리아의 안개'는 '대격변'에서 한차례 손상된 WoW의 게임성을 다시 복구해 나가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애완동물 대전'이나 '태양노래 농장' 등 다양한 사이드 콘텐츠는 압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게임의 볼륨을 단지 전투라는 한가지 방향이 아닌 여러가지로 확장할 수 있다는 좋은 예시를 남겼다. 더불어 시나리오와 도전 모드 역시 대단위 레이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전투 콘텐츠를 성장시켰다. 독특한 보상 역시 유저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사실 레이드의 갯수는 같았음에도 '판다리아의 안개'에서는 '대격변'처럼 콘텐츠 부족에 대한 불만이 압도적이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사이드 콘텐츠에 기인한다.

    반면 여전한 문제점도 있었는데, WoW의 고질적 문제중 하나인 지나친 반복 콘텐츠가 그것이었다. 영원의 섬 등장 이전까지 순조로운 아이템 파밍을 위해선 각각 필요로 하는 아이템이 있는 평판을 올려야 했고, 또한 평판작업을 포함해 이전보다도 더 많아진 일일퀘는 유저들에게 큰 짐을 지웠다. 그야말로 일퀘지옥이었다.

    ▲ 일일퀘 다 끝냈다!!!!!!!!!!!!

    또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많아져도, 확장팩 자체의 무대와 스토리라인이 이전까지 본편의 궤도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은 '판다리아의 안개'의 시작부터 끝까지 단점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게됐다. 개발 단계에서의 판단 미스가 지속적으로 다른 매력을 깎아나간 것이다.

    물론 특정 시장을 노린 콘텐츠야 있을 수 있지만, 게임전체를 그런 방향으로 맞춘 것은 지나친 도박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정확히 서양인의 시선에 비친 동양 선에서 멈춘 수준의 재현은 그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강철 해일'이 몰려온다



    '판다리아의 안개'의 최종 보스로 선정된 가로쉬 헬스크림은 생각보다 많은 의의를 가진다. 그전까지 각 확장팩의 마지막을 장식한 최종 보스들은 모두 WoW 이전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매우 큰 존재감을 과시했던 전통의 악역들이었다. 오리지널의 켈투자드, 불타는 성전의 일리단과 킬제덴, 리치왕의 분노의 아서스까지 모두 세계관 이전 작품인 '워크래프트3'에 등장했던 주역들이었다. 대격변의 데스윙도 '워크래프트3' 이전부터 세계관 최고의 악당으로 군림하던 존재였다.

    ▲ 포스만큼은 상급이네

    하지만 가로쉬 헬스크림은 달랐다. 그 존재는 WoW의 첫 확장팩 '불타는 성전'이 되어서야 확인이 된 캐릭터였다. 설정상 '워크래프트3'의 주역 그롬 헬스크림의 아들임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그 존재감은 낮았다. 또 유저들도 가로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일종의 '이스터 에그'처럼 그롬 헬스크림에 대한 추억의 요소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확장팩인 '리치왕의 분노'에서는 스랄을 따라 스토리텔링에 자주 등장하는 주역 캐릭터가 되더니, '리치왕의 분노'와 '대격변' 초기를 거치며 호드의 젊은 오크들을 포함해 기존의 호드 주류들이 대거 사망하거나 이탈, 차기 대족장이자 호드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 난 너같은 아들 모른다 집안망신아 ㅡㅡ

    사실, 그롬 헬스크림의 아들이긴 했으나, 특유의 철없고 쓸데없이 자존심만 쎈 성격으로 유저들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계속된 비난의 대상이었던 캐릭터였다. 때문에 '대격변'에서의 이러한 스토리 흐름에 스랄이나 케른 블러드후프 같은 듬직하고 강력한 영웅들의 매력에 빠져 호드를 선택했던 수많은 호드 유저들이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때문에, 비록 악역이지만 매력이 가득했던 켈투자드, 일리단, 아서스 같은 캐릭터나 자세한 것은 몰라도 누구나 이름은 알고있는 전통의 악역 데스윙 같은 최종 보스들과 동급으로 두기엔 모든 것이 부족한 캐릭터였다. 정통성도, 매력도, 설정상의 강력함도 모두 부족했다. 그렇기에 '가로쉬 헬스크림이 최종 보스가 된다'는 사실에 대다수의 유저는 '정말 넣을게 없어서 이런식으로 땜빵하는거 아니냐' 하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 나 전승지긴데, 지금 너네집이 타락바다가 되도 상관없다 이거지?

    또 스토리의 전개 방식도 이제는 블리자드의 식상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타락'과 비슷하게 샤와 고대신에 물든 가로쉬 헬스크림을 악역으로 만들어버리면서, '대격변' 등에서 긍정적으로 조명하려던 스스로의 성과도 묻어버리고, 진부한 스토리 흐름으로 확장팩을 끝맺어버렸다.

    대격변은 그래도 트레일러 만큼은 소름이 쫙!

    바로 전 확장팩인 '대격변'이 "최고의 트레일러, 최악의 확장팩" 라는 평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판다리아의 안개'는 엄청남의 연속인 WoW 확장팩 역대 트레일러 중 최악으로 평가 받았다. 실제로, 오크와 인간이 판다렌에게 발리며 뻔하디 뻔한 오리엔탈리즘적 멘트를 내뱉는 트레일러를 보고 '이건 당장 해야해!!'하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그전까지 확장팩이 모두 특정 최종 보스를 타겟으로 유저들에게 확고한 목표와 목적 의식을 주었다면, '판다리아의 안개'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불만으로 덮여있던 게임이 '공포의 심장'을 거쳐 최종 레이드인 '오그리마 공성전'이 워낙 훌륭한 퀄리티로 재미를 선사하자 확장팩 자체가 재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다앙한 사이드 콘텐츠 등 기존에 단점에 가려져있던 매력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시스템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됐다.


    '대격변'에 이어 '판다리아의 안개'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확장팩으로 분류되지만, 재미있게도 '판다리아의 안개'는 확장팩 초기와 후기의 성적과 게임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초기에 조화와 자연을 강조하는 지극히 오리엔탈리즘적인 주제와 WoW의 핵심에서 벗어난 소재로 외면을 받았던 확장팩이, 후기의 레이드와 각종 시스템의 높은 완성도로 도리어 '대격변'에서 시작된 하락세를 반등시켜 상승세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초창기의 난잡하고 진부했던 스토리 역시 가로쉬 헬스크림과 이샤라즈라는 중심이 잡히자 비록 그 방식이 여전히 뻔하긴 해도 상당히 탄력있고 매력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레이드를 포함한 시스템의 질과 스토리 양면에서 개선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공포의 심장' 레이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 그들이 온다!

    정리하자면, '판다리아의 안개'의 스토리텔링은 확실히 이전 시리즈들과 다소 단절된, 일종의 외전격 확장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판다리아의 안개' 단일 작품을 놓고 보았을 때는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좋아지고 클락시 등 매력적인 캐릭터와 설정이 충분한 완성된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판다리아의 안개'는, '대격변'의 실패와 본편의 불안한 시작에 한차례 삐걱대며 위기를 맞던 WoW라는 게임의 기틀을 다시 다져 놓은 계기가 됐다. 뭐, 그 기틀의 재질이나 스타일이 모두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썩 훌륭하게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앞으로 WoW의 10년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러니, 자,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용사여, 이제 전쟁군주들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