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5일부터 시작된 알파 테스트를 통해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이 국내에 서비스되기 시작한 지 약 5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수 차례에 걸친 밸런스 패치를 통해 많은 영웅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는데요, 하츠로그의 영웅 승률 순위가 격변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하위권 기둥 역할을 하며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영웅이 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디아블로입니다.


▲ 패치를 통해 대격변을 겪은 대표적인 영웅들

▲ 대격변조차 겪어보지 못한 비운의 영웅, 디아블로


디아블로는 국내 알파 테스트가 시작되던 10월부터 픽률 30위를 기록하며 유저들의 선택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11월 첫 주 역시 픽률 30위, 11월 두 번째 주부터는 승률마저 끝에서 두 번째인 30위(43.7%)로, 그나마 애정을 가지고 디아블로를 플레이해주는 유저들에게 높은 확률로 패배를 끼얹는 영웅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승률이 높았던 영웅은 아바투르, 누더기, 노바 등으로, 현재는 승률 및 픽률상으로 위치가 많이 바뀐 상태죠. 2015년에 들어서도 디아블로의 흑역사는 계속되어 2월 3주차까지 승률 31위(44.8%)를 유지했습니다.


▲ 2014년 11월 17~24일 하츠로그 승률 통계

▲ 2015년 2월 8~14일 하츠로그 승률 통계. 여전히 굳건한 디아블로


■ 디아블로,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한 이유는?

승률 통계에 따르면 사실상 디아블로는 4개월 동안 최하위권을 유지한 셈인데요, 이렇듯 장기간 부진했던 이유는 다른 근접 전사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어필할 수 있는 특징적 요소가 부족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금까지 높은 승률과 픽률을 자랑했던 전사 영웅들은 누더기, 아눕아락, 아서스, 첸 등으로, 단순히 탱커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니시에이팅, 적 진영 파괴같은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디아블로는 20레벨 기준 체력이 6천이나 된다는 특징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낮고 궁극기 두 가지 모두 회피가 쉬운 탓에 팀파이트는 물론 1:1 교전 상황에서도 존재감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더 좋은 영웅들을 놔두고 굳이 디아블로를 선택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 있으나마나..라는 인상을 주는 화염 발구르기(W) 기술

▲ AI 영웅도 피할 줄 아는 디아블로의 종말(R)


이후 2015년 1월 15일 패치에서는 영웅이 사망할 경우 제단에서 즉시 부활하게 해주는 공통 특성인 '폭풍의 재림'이 삭제되면서 디아블로가 간접적으로 상향됐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히어로즈에서 유일하게 빠른 부활(머키 제외)이 가능하게 된 디아블로의 선호도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으나, 패치가 이루어진 그 다음 주 승률 통계에서도 디아블로의 비주류 현상은 계속됐습니다.

빠른 부활을 한다는 것은 분명 강점이지만 그것만으로 기존의 주류 탱커들을 디아블로가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폭풍의 재림'이 유용했던 영웅들은 대부분 강력한 딜을 지녔거나 다량의 군중제어기를 보유하고 있어 교전 기여도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디아블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딜이 낮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군중제어기인 '암흑의 돌진'(Q)과 '압도'(E)의 연계마저 매끄럽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특별한 활용 방법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확정적인 군중제어기와 강력한 2딜러 체제로 꾸려지던 당시 유행 조합에서는 자체 회복기를 이용해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전장에 남아 있을 수 있는 탱커를 선호했기 때문에, 조합상으로 봐도 회복기와 생존기가 전무한 디아블로는 선택하기 꺼려지는 영웅이었습니다.


▲ 5초만에 부활이 가능하게 해주는 디아블로의 고유 능력

▲ '사자의 군대'를 통한 막강한 회복력으로 애초에 죽을 필요가 없었던 아서스



▣ 디아블로에게도 기회가?! 경쟁 영웅들의 대대적 너프

비가 그치면 해가 뜨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디아블로에게 내린 비는 장장 4개월에 걸친 불가사의한 장마였습니다. 블리자드에서도 히어로즈의 3대 세계관 중 하나인 '디아블로'가 소외되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마침내 2015년 2월 12일 패치를 통해 디아블로의 레벨당 공격력 증가 수치를 7에서 11로 상향하고, '암흑의 돌진'(Q)과 '압도'(E)가 매끄럽게 연계되도록 조정했습니다.

2월 12일 패치에서 추가적으로 눈여겨볼 점은 디아블로의 앞을 막고 있던 전사 영웅의 대대적 너프인데요, 이들의 너프는 상대적으로 디아블로의 상향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대표적인 전사 영웅인 아서스는 '독살' 특성이 삭제되고 궁극기인 '사자의 군대' 유지력이 대폭 하향되었습니다. 이는 즉시 아서스의 선호도 하락으로 이어졌는데요, '사자의 군대'를 통해 소환된 구울들이 광역기에 몰살당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아서스의 탱킹력이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또한, 누더기에 대해서도 '갈고리'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증가시키고 궁극기인 '잡아먹기' 피해량을 반으로 줄이는 너프를 단행했습니다. 이번 패치를 통해 특정 영웅에 대한 편중 현상을 줄여보겠다는 블리자드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죠.



▲ 2015년 1월과 2월의 패치를 통해 디아블로가 상향되고 주요 근접 전사들은 하향됐다



■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디아블로

그렇다면 디아블로의 상향 패치 효과는 어땠을까요? 패치 다음 주인 2월 4주차 하츠로그 승률 통계를 봤더니 30위권을 유지하던 디아블로의 승률이 무려 5%나 상승해 있었습니다. 순위는 8단계 오른 23위에 자리했는데요, 픽률은 오히려 떨어진 상황이었으므로 상향 이후 디아블로의 인기가 늘었다기보다는 패치로 인한 영웅의 능력 상승이 승률에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디아블로 상향 패치 후 암흑의 돌진(Q)과 압도(E)의 연계가 좋아지면서, 적 주요 딜러를 묶어두거나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능력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또한, 레벨당 증가하는 공격력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디아블로는 후반으로 갈 수록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이는 20레벨 기준 체력이 6천에 달하는 디아블로의 특징과 맞물려 있습니다.


▲ 2015년 2월 15~21일 하츠로그 승률 통계


▲ 디아블로의 암흑의 돌진(Q)-압도(E) 연계


이러한 디아블로의 상향과 일부 인기 전사 영웅의 하향은 대회픽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2월 25일에 있었던 히어로즈 빅리그 32강 3일차 경기 [노래하는코트 vs 루카] 2세트 대전에서, 양 팀 모두 디아블로를 픽하는 이변이 벌어진 것입니다. 디아블로 상향 13일만의 일이었는데요, 특히 루카 팀의 디아블로는 이때까지만 해도 비주류 궁극기였던 '종말'을 제라툴의 궁극기인 '공허의 감옥'과 연계하여 적중시키는 모습으로 디아블로의 가능성을 상당 부분 보여줬습니다.

이어서 3월 3일에 있었던 히어로즈 빅리그 8강 1일차 첫 번째 경기에서도 디아블로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8강 경기인만큼 영웅 픽에 있어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블로가 선택된 것은 그만큼 상향 패치 이후 디아블로의 입지가 높아졌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8강 1일차 첫 경기를 치르게 된 'BJ익곰' 팀은 '불양' 팀을 상대로 정예 타우렌 족장과 디아블로까지 2탱커 조합을 선택했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디아블로는 암흑의 돌진(Q)과 압도(E) 연계를 통해 적진을 헤집어 놓았고, 10레벨 궁극기로 '종말'을 선택하여 정예 타우렌 족장의 궁극기인 '광란의 도가니'와 멋진 연계를 보여줬습니다. 경기력을 떠나서 두 군중제어기의 조합은 상당히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디아블로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정예 타우렌의 '광란의 도가니'(R) 이후 디아블로가 '종말'(R)을 시전하는 모습



▣ 해외에서는 어떨까? 북미와 유럽 대회에서의 디아블로

앞서 1월 15일, 그리고 2월 12일 패치를 통한 근접 전사 영웅의 변경점과 그로 인한 디아블로의 상대적 상향 내용을 살펴보고, 2월부터 시작된 히어로즈 빅리그에서의 디아블로 픽 현상을 통해 대표적 비인기 영웅이었던 디아블로의 부상 가능성을 점쳐봤습니다. 하지만 히어로즈 빅리그 특성상 대부분의 참가팀들이 전문화 되어 있지 않고, 더러는 팀이 급조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디아블로의 활용 가능성 근거로 쓰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미 작년부터 리그가 활발했던 북미와 유럽 등지의 대회픽을 살펴본 결과, 이들 역시 대회에서 디아블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밸런스 패치를 통해 레이너, 노바, 타이커스 등 강력했던 원거리 딜러들이 연달아 너프되고, 아서스나 첸과 같이 혼자서도 충분히 탱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전사 영웅들 또한 너프되자, 북미와 유럽 대회의 주류 조합은 힐러 위주의 2지원가, 혹은 2탱커를 기용해 장기전에 유리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합 변화에 잘 들어맞는 전사 영웅 중 하나로 최근 상향된 디아블로가 채택된 것이죠.


▲ 누더기와 함께 디아블로를 기용한 'Lunatik eSports' 팀

▲ 역시 누더기와 함께 디아블로를 선택한 'Tempo Storm' 팀

▲ 지원가가 둘일 경우 디아블로 혼자 탱커를 맡기도 한다


디아블로는 여전히 회복기와 생존기가 없는 전사 영웅이지만 체력이 매우 높고, 아군과 호흡을 맞출 경우 적 영웅 전체를 속박시킬 수 있는 강력한 궁극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서같이 힐과 광역 군중제어기를 동시에 보유한 영웅과 궁합이 잘 맞는데요, 앞서 살펴본 히어로즈 빅리그에서의 정예 타우렌 족장과 디아블로의 궁극기 연계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좁은 지역에서 교전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종말'(R) 시전만으로도 적 진영을 붕괴시키는 효과를 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Go4Heroes' 토너먼트 경기 중 TTB 팀이 LDLC 팀을 상대로 우서의 '천상의 폭풍', 티란데의 별똥별, 디아블로의 종말, 발라의 '복수의 비'를 한꺼번에 퍼붓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연계기를 맞은 LDLC 팀은 제대로 반격도 못해보고 두 명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치기에 급급했죠. 디아블로를 탱커로 두었을 때 펼칠 수 있는 기술 조합의 좋은 예인데요, 이렇듯 외국 대회에서는 전략적인 팀파이트를 위해 디아블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효과적인 궁극기 연계가 어려운 조합인 경우에도 여전히 디아블로의 선호는 상당했습니다. 또 하나의 궁극기인 '번개 숨결'을 이용해 원거리 암살자 수준의 광역딜을 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번개 숨결'은 제자리에 멈춰서 4초 동안 기술을 시전하고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북미 대회에서는 '종말'보다 '번개 숨결'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 길이 협소한 경우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디아블로의 '종말'(R)

▲ 우서의 천상의 폭풍, 티란데의 별똥별, 디아블로의 종말 연계. 곧 복수의 비도 꽂힐 예정

▲ 10레벨 기준 '번개 숨결'의 피해량. 지속 시전 형태이므로 위치 선정에 유의하자



▣ 디아블로에게도 봄이 오는가!

지금까지 2월 12일 밸런스 패치 이후 승률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된 디아블로와, 국내 대회인 '히어로즈 빅리그'에서의 디아블로 픽 현상, 그리고 북미와 유럽 대회에서의 디아블로 활용 예시를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장기간 암흑기를 겪었던 디아블로가 현재 국내외 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 현상은 괄목할만합니다. 이는 단순히 패치를 통한 디아블로의 전투력 상향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영웅 조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플레이어들의 연구가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죠.

이는 국내의 영웅 조합 추세 역시 해외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 국내에선 인식이 좋다고 할 수 없는 디아블로가 향후 인기 영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내 대회인 히어로즈 빅리그에서도 디아블로의 '종말'(R)을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시도가 보였던 만큼, 무언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거란 예감은 드는데요, 과연 이것이 지난 4개월 동안의 흑역사를 쓸어줄 봄바람일까요? 향후 그의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