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파이로스튜디오 ⊙장르: 전술 잠입 시뮬레이션 혹은 퍼즐 어드벤처 ⊙발매년도:1998년


국산 감자 칩 과자의 질소 포장을 뛰어넘는, 황량함을 자랑하는 패키지 게임은 그만의 매력이 있다. 패키지 겉면에 적힌 광고 문구들, 감자 칩 과자처럼 과대 포장된 패키지를 벗기면 나오는 헐벗은 CD들. 보정 패드로 가득 찬 속옷 같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실망감이 들지 않는다.

맞다. 패키지 게임에는 그리고 고전 게임에는 추억 보정이 들어가 있다. 아마 지금 같은 가격을 주고 게임을 구입했다면 황량한 내용물에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가격도 비싸고, 이용도 불편하고. 게다가 요즘 다시 즐기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도 많다.

게다가 요즘 게임에 비해 자체 용량도 적고 비주얼이나 음향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다보니 숨겨진 보스 잡기, 최저 레벨로 클리어하기 등으로 게임의 수명을 늘리곤 했다. 고전 RPG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100층, 200층 던전 클리어가 좋은 예다.

또는 미친듯한 난이도로 게임의 수명을 늘리기도 했다. 오늘 추억 보정을 받을 '코만도스'를 말함에 있어 난이도를 빼놓을 수 없다. 98년 발매된 '코만도스'는 질풍노도 청소년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차라리 전교 1등이 쉽겠다는 말을 수없이 뱉게 만들었으니까.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선 추억 보정을 받은 '코만도스'가 '블러드 본', '데몬즈 소울'보다 더 어려운 게임이다.

▲ 시작부터 막막하던 20번째 미션


'코만도스'는 스페인 파이로 스튜디오에서 개발하고 에이도스가 배급한 전술 잠입 시뮬레이션으로 한정된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게임이다. 배경은 세계 제2차대전 중인 유럽. 6명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주특기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목표다.

사실, '코만도스'가 가지는 게임사적인 부분에 비해 매니아 층이 적은데, 이는 아마 높은 난이도에 포기한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멀티플레이가 좋은 게임도 아니었고 말이다.

'코만도스'와 그 확장팩을 처음 접했을 무렵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표출할 곳이 없었고, 매일 밤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시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동네 형이 빌려준 CD는 오갈 데 없던 나의 분노를 받아줬다.

"뭐야 헐벗은 여자들 나오는 게임 아니면 안 한단 말야."라고 말하던 내 모습은 딱 10분 만에 사라졌고 거의 두 달 간은 하교 후 '코만도스'에만 매달렸다.

이 작품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놀라운 그래픽을 보여줬다. 수풀의 표현이나 햇빛, 그림자의 표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적인 질감 표현은 난이도만큼 극에 달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 98년 출시된 '코만도스'와 '붉은 악마'


'아임 커밍~ 커밍~'하는 캐릭터의 음성도 인상적이었으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게임 자체 플레이 방식에 있었다. 20개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6명의 코만도를 모두 능숙하게 다뤄야만 했다. 그들의 특기를 적재적소에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천지 차이였다.

미션의 종류는 크게 폭파, 암살, 보호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획일화된 미션 클리어 방법 -공략-에 익숙했던 질풍노도의 청소년에게는 '코만도스'의 높은 자유도는 새로웠다. 미션을 수행하는 방법은 정말 여러 가지였다. 정해진 루트도 없고 각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장비를 사용하는데도 제약이 거의 없었다. 플레이하는 사람에 따라, 플레이하는 방법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클리어 방법이 존재했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기본적으로 권총이나 칼, 기관단총 등의 휴대용 무기부터 해병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작살, 스나이퍼 라이플. 스파이의 위장, 공병의 다이너마이트 까지 다양했다. 이 도구를 그리고 코만도 부대의 능력을 어떻게 어느곳에 사용하느냐가 청소년 시기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 코만도스의 특징

⊙ 보급 개념이 없다.
⊙ 모든 적은 자신만의 시야와 소리 범위를 가지고 있다.
⊙ 뛰기와 걷기, 서기와 포복을 이용한 잠입과 암살.
⊙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부대원.
⊙ 화면 분할 기능으로 전장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 어렵긴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스테이지 디자인과 적군의 배치.
⊙ 전략과 퍼즐의 경계에 선 어려움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매력.


침투부터 탈출까지 모든 것을 현지에서 조달해 해결해야 했다. 덕분에 최적의 방법으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회가 올 때까지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덕분에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다. 함께 게임을 하던 친구는 답답함에 게임을 지워버렸다. 그 친구는 코만도스의 참맛을 느낄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 쑥과 마늘을 먹지 않아 후회한 호랑이였다.

친구가 게임을 삭제하고 방바닥이 부서져라 쿵쿵 뛰던 사건의 발단은 미션 3이었다. 아직도 그 이름이 생생한 'Reverse Engineering'미션. 그린베레, 해병, 공병 그리고 스파이가 출격한 이 미션은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청소년들에게 세상의 쓴맛을 알려주었다.

"애들아. 세상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너희는 게임조차 제대로 못 하잖아."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결국, 친구는 게임을 지웠고 자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육군 특전사 장교로 근무 중이다.

▲ 친구를 좌절케 했던 미션3


'코만도스'는 잠입 전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장르에서도 알 수 있듯 기본이 잠입과 암살인 게임이다. 적에게 들키면 게임을 진행하기가 매우 껄끄러워지기 때문에 극도로 집중해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코만도스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잊을 수 없는 그 소리. '알람! 알람!'은 지옥의 종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턱대고 돌격하면 10초 만에 케첩 뿌린 핫도그로 변해버리는 코만도 부대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해본 게임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면 결코 낮은 난이도라 볼 수 없다. 게임을 삭제한 내 친구는 PC를 향해 피어나는 적개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러한 난이도를 만드는 요인은 당시에 나온 게임들에 비해 똑똑한 적들의 AI가 한몫했다. 때문에 극히 사소한 실수도 미션 실패로 연결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발걸음 소리조차 조심해야만 했다.

한순간의 실수는 알람 소리와 함께 기관단총 정찰대와의 강제 미팅을 성사시켰다. 그들의 기관총은 로드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부대원들의 목숨을 거둬갔다.

철저히 암살과 잠입으로 풀어가기 위해 몇 수 앞을 보는 계산이 필요했다. 암살 말고 총소리로 유인해 적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그것은 쿨하지 않아 보였다.

▲ Ein verletzter, alarm, alarm!


가장 쿨한 암살 방법은 담뱃갑으로 유인해 암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난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했다.

암살에 성공해도 시체를 은닉해야만 했다. 만일 적군이 시체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시체 주위를 경계하다가 알람을 울려버린다. 그럼 3~5인조 무장 순찰대가 기관총 세례로 플레이어를 환영해 준다. 거기에 보초들의 시야는 상당히 넓고 숫자가 많아 마치 퍼즐 게임을 풀듯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했다.

덕분에 '코만도스'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행동을 취하기 전에 세이브를 하고 항상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만 했다. 20년 남짓한 게이머 인생 중, 이 작품만큼 세이브와 로드를 반복한 작품은 없었다.

이 게임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탈출하기 직전이다. 시원하게 불꽃놀이를 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다. 지금 봐도 어떻게 도트로 이렇게 역동적인 느낌을 구현했는지 감탄이 나올 뿐이다. 적들의 추격을 뚫고 빠져나갈 때의 마지막 순간은 언제나 짜릿했다.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 '코만도스'를 스트레스 받으며 했는지도 모르겠다.

▲ 공짜 담배에 눈독 들이면 육편 신세를 면치 못한다.

▲ 항상 탈출이 이렇게 무난하지만은 않다.


고전은 사전적 정의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말한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보다 '읽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라는 말이 더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상반되는 두 정의는 고전을 대하는, '코만도스'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전은 시대와 시대를 건너오면서 살아남은 유산이다. 불필요한 불순물이나 유저에게 재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게임은 이미 걸리고 도태되어 남은 게임이 바로 고전이다. '코만도스'를 누구나 최고의 게임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어 신선한 충격에 빠트렸기 때문에 고전으로 소개하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코만도스'는 후에 확장팩과 2편, 3편 그리고 FPS 형태의 게임까지 출시되었다. 그래픽이야 향상되었겠지만 갈수록 퇴화해가는 게임성에 과거의 영광은 색이 바래갔다. 추억은 보정되기 마련이고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15년도 넘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과거의 감상 따위는 모두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코만도스'는 여전히 어려웠고 여전히 재미있었다. 고전이라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