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러츠: 트레져 헌터(이하 파이러츠)'. 이미 1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게임이다. 작년 이맘때였을 거다. 아직 e스포츠팀에서 일하고 있던 나에게 가장 친숙했던 장소.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처음 파이러츠를 보았다. 물론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본 건 아니다. 당시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의 보조 경기장에서 파이러츠를 소재로 한 유저 간담회 및 체험회 행사가 있었고, 행사가 끝난 후 여운처럼 남아 있던 스크린 샷과 플레이 영상을 잠시 훔쳐본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물론 관심은 있었다. 다만, 당시로써는 리그오브레전드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내 일과 중에 파이러츠를 끼워 넣을 정도의 여유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 파이러츠가 다시 내 앞에 섰다. e스포츠를 떠나, 다른 게임에 기웃거릴 여유도 생겼다.

외국 게임들이 한국 퍼블리셔를 통해 서비스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게임 중, 게이머들의 인기를 끌고 명맥을 이어가는 게임들이 몇이나 있던가. 몇 개월간의 짧은 서비스 끝에 서비스를 종료한 게임들이 넘쳐나며, 중국산 게임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오고 나서 그런 경향은 더 짙어졌다. 대충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파이러츠의 개발사 '버추얼 토이'는 스페인의 개발사다. 비교적 게임 산업이 발달한 중북부 유럽과 비교하면, 불모지와 같은 느낌의 남부 유럽이다. 생소할 수밖에 없다.

클라이언트의 진행 상황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초심으로 돌렸다. 리뷰라는 글의 성격상 무미건조한 객관적 글이 될 수는 없을 거다.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이 조금은 섞일 테다. 그래도 최대한 공정한 시선에서 '파이러츠: 트레져 헌터'라는 게임을 보고 싶었다. '온라인 게임'이기에 평가는 하지 않을 거다. 언제나 변하는 것이 온라인이니까.


     참신함과 익숙함의 절묘한 조화

'파이러츠'가 내세우는 모토 중 하나가 바로 '장르 파괴'다. 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우뚝 서 있는 'AOS' 장르의 게임과 같은 시점을 사용하면서, 액션성을 강화하고 캐릭터 외 다른 요소들을 단순화시킨 것. 그것이 파이러츠의 방식이다. 사실 엄연히 말하자면, 파이러츠와 비슷한 기믹의 게임 플레이는 익히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워크래프트3의 초창기 유즈맵이었던 '히어로 아레나'다. '히어로 아레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원형의 경기장, 몇몇 서브 콘텐츠(이마저도 맵퍼마다, 버전마다 상이하다.)를 제외하면 오로지 영웅간의 남자다운 한판 승부밖에 없는 게임이다. 그리고 더 많이 죽인 팀이 승리한다. 장르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때문에 밸런스상의 난점이나 막을 수 없는 스노우볼링 등 수많은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상당히 많은 게이머들이 '히어로 아레나'를 플레이했다. 일단 기존에는 없는 게임이었으니까.

▲ 영웅을 고르면 준비 끝

그리고 그 '히어로 아레나'가 발전한 모습이 PC방을 온갖 애니메이션의 명대사로 물들였던 유즈맵 '파오캐'다. 물론 '파오캐'라는 유즈맵 자체가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밸런스상의 난점도 존재했으며, 1티어급 유즈맵으로 평가받던 '도타 올스타즈'등과 비교하면 모자란 점이 존재했으니까. 중요한 건 먹혔다는 거다. '캐릭터'가 갖고 있는 힘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파오캐'의 플레이 방식은 유저들에게 충분히 어필했다. 때문에 PC방에서도 그 시끄러운 대사 읊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렸던 거다.

파이러츠에 이르러, 그동안 쌓여 왔던 이 노하우는 장르가 되었다. AOS에는 무리 없이 녹아들었던 RTS의 조작법은 새로 손을 봤다. '에일리언 슈터'나 GTA2에서 볼 수 있었던 키보드 조작을 융합했고, 원거리, 근거리 무기를 따로 설정해 플레이에 탄력을 주었다. 이쯤 되면 "뭐야 그럼 원래 있던 거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또 아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확실히 지금까지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선 볼 수 없었다는 것. 그 하나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 조작은 '에일리언 슈터'와 비슷한 느낌



     파이러츠는 가벼운 게임인가?

게임 시장에는 경향이 존재한다. 모든 게임이 그 흐름을 따르지는 않지만, 몇몇 코드들은 일종의 유행처럼 게임에 영향을 끼친다. 과거 3D 기술이 발달할 무렵 그 기술의 흐름을 타고 구름처럼 번성했던 하이퍼 FPS. 그리고 최근 스팀에 붐을 타고 온 '생존'이라는 코드. 그보다 좀 더 과거엔 '오픈 월드'라는 코드. 이렇게 유행처럼 번졌던 코드들은 새로운 경향에 조금씩 밀리고, 그나마 괜찮았던 코드들은 남아서 장르가 된다.

물론 경향을 이루는 코드는 수도 없이 많다. 한 시대에도 수없이 많은 코드가 유행처럼 번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최근 게임의 경향 중 하나는 '가벼움'이다. 이는 사실 모바일 시장에서 극대화된 코드다. 자동 전투, 자동 사냥 등 유저를 귀찮게 하지 않고 몇 번의 조작만으로 게임을 즐기게끔 하는 것. 그 외에 사례를 찾자면, AOS 장르의 차세대 주자를 노리고 있는 블리자드의 '히어로즈오브더스톰'도 가벼움을 베이스로 깔고 들어간다. '도타2'나 '리그오브레전드'가 비교적 복잡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지향한다면, '히어로즈오브더스톰'은 과감히 여러 요소를 칼질해 가볍게 벼려낸 AOS다. 물론 그렇다고 깊이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 돈 개념을 없애고 경험치마저 공유해 소프트함을 보여준 '히어로즈오브더스톰'


'파이러츠'를 처음 대했을 때도, 이런 '가벼움'의 향기가 났다. 공수의 분배, 캐릭터 간의 상성이나 조합의 구성 등 기본적인 요소들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게임 내에서 요구하는 컨트롤의 농도나 국지적인 전술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기본적인 자원이 될 '돈'의 개념이 없었으며, 플레이어 외에 전장에 변수로 작용할 '미니언'이나 '중립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는 잠깐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파이러츠는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리고 그 복잡함은 곧 '진입 장벽'으로 다가왔다.

게임 시작 직후는 어렵지 않았다. 팀당 8명이 기본이 되다 보니, 그냥 적당히 아군을 따라가 총질 좀 해주면 그걸로 괜찮았다. 문제는 레벨업 부터였다. 기술 셋, 무기 셋, 그리고 기본 능력치 넷. 무려 10개나 되는 선택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가장 효율적인가. 그 고민에만 한참이 걸렸다. 결국, 첫 판에, 난 레벨 4가 될 때까지 스킬 포인트를 하나도 쓰지 못했다.

▲ 1레벨엔 그냥 따라가서 총질만 해줘도 되더라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생각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았다. 방어냐 공격이냐, 적의 위협적인 스킬은 무엇이고, 그것에 따른 대처법은 무엇인가. 생각의 구조가 달랐다. AOS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들은 RTS의 사고를 주로 하게 된다. 전력의 배분, 전투의 결과 예측, 자원의 획득과 소모 등등 말이다. 하지만 파이러츠의 사고는 임기응변과 전투 대응, 그리고 싸움 그 자체에 쏠리게 된다. '남아있는 탄약이 몇 발인가', '적을 잡아낼 수 있는 화력이 충분한가', '도주용 주문과 생존기는 어느 때 사용해야 하나'.

사실 AOS 역시 RTS의 사고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두뇌의 절반은 게임 전체를 보는 전략적 사고를, 나머지 절반은 전투 상황 시의 스킬 배분과 대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만, 파이러츠는 대국적 시각에 대한 요구를 줄이며 전투 상황에 대한 사고 요구를 대폭 늘려놨다. 이건 절대 가볍지 않다. 속도 빠른 하이퍼 FPS를 하드코어 하게 즐겨본 유저들은 알 거다. 본능에 의존해 플레이할 것 같은 FPS라 해도, 생각 없이는 승리하기 어렵다. 적의 위치 파악, 잔탄 계산, 상대의 움직임 예측 등 상상 이상의 많은 사고를 해야 하며, 이는 곧 게임을 '무거운' 게임으로 느끼게끔 한다.

파이러츠도 마찬가지였다. 살살 풍기는 가벼움의 향기는 그저 전략적 측면에서의 문제일 뿐이었다. 전투에 들어간 비중만큼, 그 무게도 늘어나 있었다.

▲ 잔탄 확인, 적 위치 파악, 전력 분석, 다음 무빙 위치 계산...



     '진입장벽'에 대한 단상

과거 e스포츠팀으로 활동하면서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진입 장벽'에 대한 것이었다. 대상이야 뻔했다.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AOS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 그리고 '도타2'다. 두 게임 중 어떤 게임이 더 높은 진입 장벽을 갖고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면, 십중팔구 '도타2'라는 대답이 나온다. 복잡한 아이템 구성, 높은 순발력을 요구하는 디나이 시스템. 얼핏 난해하게 보일 정도로 어려운 스킬 메커니즘까지, '도타2'는 그간 쌓여온 노하우 만큼 복잡한 게임이다.

하지만 두 게임을 한 번도 플레이해보지 않은 게이머의 측면에서 본다면, '리그오브레전드'의 진입 장벽은 결코 '도타2'에 비해 낮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팀 게임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있다. 근성 있는 게이머들은 시간과 재미만 충분하다면 결국 그 게임을 이해하고 즐기게 된다. 게임이 재미있다면 어려워도 덤비는 것이 게이머니 말이다. 게이머들의 정착을 가장 저해하는 요소. 그건 바로 팀 게임 내 정치와 욕설, 폭언이며, 이것이 곧 가장 큰 진입 장벽이다.

▲ 진입 장벽 하면 생각나는 바로 그 도타2 녀석

그 때문에 리그오브레전드와 도타2의 심리적 장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리그오브레전드의 진입 장벽이 낮다고는 하지만, 내가 아는 게이머 중 태반은 도전했다가 다시 퉁겨져 나온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게임을 못한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 그만두는 거다.

파이러츠 또한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순 없다. 팀 게임, 그리고 대전. 이 두 가지 코드가 만나면, 십중팔구 남 탓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만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멋모르고 게임에 뛰어들었다가 숙련도 부족 때문에 쌍욕을 바가지로 들었고, 더 끔찍한 건 내리 세 판을 그 사람을 만나 욕을 먹었다. 이쯤 되니 리뷰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 이정도 스코어가 나오면 일단 부모님부터 소환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게임의 내적 디자인이 이런 구조를 더 가속한다는 점이다. 파이러츠에서 얻을 수 있는 성장 자원은 단 하나. 바로 '경험치'다. 보통 근본적인 자원이 되는 돈 개념이 없으므로 플레이어들은 보다 많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녀야 하는데, 이 경험치를 얻는 과정이 남다르다. 적을 타격할 때마다 소량의 경험치가 들어오고, 적을 처치했을 때 떨어지는 금화를 주우면 대량의 경험치가 들어오는 구조다.

문제는 이 때문에 유저간의 실력차이가 게임이 진행될수록 스펙의 차이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잘하는 고수 한 명이 초보 서넛을 그대로 썰어버릴 수 있는 구조 때문에 게임이 진행될수록 고수는 점점 크고, 초보의 성장은 더뎌진다. 결국, 어느 순간에 이르면, 괴물이 되어버린 상대 고수를 본 아군 플레이어가 원인을 찾는다. 보통 이때 나오는 대사가 "어떤놈이 키웠느냐?"다.

▲ 죽은 적이 떨군 금화를 줍줍하면 경험치가 쭉쭉

만약 상대와의 싸움 외에 다른 성장 동력이 있다면, 이 점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AOS게임 해본 게이머라면 알 거다. 초반 플레이가 적의 페이스로 흘러갈 때 숨을 고르고 돈을 모아 훗날을 준비하는 과정 말이다. 그 과정 자체가 없으니 한번 고통을 받기 시작하면 그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 그저 아군에도 고수 플레이어가 있어 나와 같은 상대 초보를 학살해주길 바랄 뿐.

이런 요소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진입 장벽이 되며, 나아가 유저 풀의 확장에 큰 지장을 가져온다. 물론 게임의 근본적인 디자인과 결부된 문제이니만큼, 잘못 건들면 게임 자체의 정체성이 손상되고, 나아가 파이러츠가 가지고 있는 다른 게임들과의 차별화된 매력을 죽일 수도 있다. 이 점은 차분히 생각해야 하는 문제다. 게임 내적인 부분을 건들지 않는다 해도, 기존 유저들의 텃세와 뉴비 배척이 일반적인 흐름으로 이어질 때 게임의 생명력은 빠르게 소진될 수 밖에 없다.

▲ 위 스크린샷만 보고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바라보아야 할 점은 어디인가.

참신함과 익숙함의 조화. 생각처럼 가볍지 않은 게임성. 그리고 '뉴비'를 붙잡기 어려운 게임 시스템. 여기까지가 내가 며칠 간 파이러츠를 플레이하면서 살펴본 단면이다. 아쉬움이 없었다고 말하진 않겠다. 게임에 익숙해지고, 재미를 느끼기 전까지는 상당히 고된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기존과는 차별화되면서, 크게 다르지 않은 하나의 장르로서의 파이러츠에게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단순히 영웅 간의 대전에서 끝나지 않고, AOS와 비슷한 목적성을 부여하지만, 그 목적에 너무 휘둘리게 하지 않은 게임 디자인은 매우 훌륭했다. 빠른 속도로 벌어지는 전투와 쾌감, 밧줄과 탈것을 이용한 기동 등은 '히어로 아레나'부터 시작된 게임 디자인이 장르로서 우뚝 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겨주기 충분했다.

▲ 앞으로 발전할 잠재력은 충분히 드러났다.

개선할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게임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초보 유저들을 이끌고, 게임에 융화되게 만들 방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력 차이는 일방적인 플레이를 만들고, 이 일방적인 플레이는 뉴비 배척을 통한 유저 풀의 축소로 이어지며, 유저 풀의 축소는 드물게 진입하는 신규 유저와의 실력 차이를 만들어낸다. 끔찍한 악순환이다. 이 고리를 끊는 데 필요한 과정이 신규 유저들을 기존 유저들의 대열로 융화시키는 것이다. 동영상으로 대체된 인 게임 캐릭터 소개를 간단한 텍스트로,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한 수준의 AI를 마련하는 등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파이러츠: 트레져 헌터'. 조금은 뜬금없는 소재와 시스템이 만나 만들어진 게임이며, 한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도 이렇다 할 힘을 보여준 적은 없는 작품이다. 국외에서 날고 기던 외산 게임들도 국내 시장에 진입한 이후 살아남은 수가 드물다. 무덤과 같은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바라보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 빠르게 기존의 게임들을 제치고 특급 게임으로 자리 잡는 건 욕심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묵직하게. 유저들의 긍정적 피드백과 개선점을 고려하고, 더 나은 게임으로 성장해나가 그들만의 영역을 일궈내는 것. 그것이 파이러츠가 도달해야 할, 그리고 이 새로운 장르를 꽃피우기 위한 목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