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은 별것 아닌 실패들을 서로 공유합시다."

'나의 개발 흑역사 답사기'라는 세션의 핵심은 위 문장이었다. 항상 1등 한 게임, 성공한 게임만 기억되는 게임계의 현실에서 무수한 많은 게임들이 개발이 중단되고 출시가 좌절되는 일들이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실패담은 잘 알려지지 않다 보니, 개발자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에 강연자로 나선 4명은 저마다 프로젝트 실패담을 공유하고 당시 문제점을 공개했다.



■ 터틀크림 박선용 - "장르의 문법을 무시하지 마세요."

▲ 터틀크림 박선용 -
Sugar Cube: Bittersweet Factory와 6180 the moon의 개발을 총괄했고,
현재 6180 the moon의 닌텐도 Wii U 버전 개발 중



▲ 이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인 컨셉은 '살려 보낸 적들이 먹이가 되는 것'이었죠. 목적지에 포켓몬 알이 있고 적절한 영양소를 투입해주면 완전 강력한 포켓몬이 태어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완전 강력한 포켓몬을 다음 맵에 타워로 쓸 수 있는 시스템을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매우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 세부 규칙도 만들었어요. 빨강, 파랑, 노랑 세 가지 속성을 두고 서로 물고 물리는 상성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특정 속성의 몬스터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 하지만 원하는 특정 몬스터를 살려 보내는 과정을 구현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결국에는 마지막 웨이브에서 스스로 타워를 철거하는 방법밖에 없더군요.


▲ 타워 철거가 곧 실패를 뜻하는 디펜스 게임에서 실패와 비효율을 조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단했어요.


▲ 디펜스 게임처럼 하나의 장르로 고착화된 경우 반드시 '재미의 문법'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문법에 맞는 재미를 만들거나 문법에 기반하여 살짝 비튼 재미를 선사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이도 저도 아니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 NOVN 김동현 - "사용자 패턴 학습 게임의 프로토타입은 실패했습니다."

▲ NOVN 김동현 -
Daum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인디 게임개발을 시작했으며, 현재 던전피드 프로젝트 개발 중


▲ 터치를 이용해 무언가를 잡는 게임을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스마트폰의 터치 인터페이스에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 패턴을 학습하는 기능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 사용자 패턴 학습은 플레이어가 타겟의 등장에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 이후의 반응 속도는 얼마인지, 어느 방향으로 회피할 때 회피율이 높은지, 타겟의 이동속도는 얼마나 빠른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했습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점점 잘 피해가는 타겟에 약이 오른 유저가 더 잘하기 위해서 수를 읽고 고민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개발자와 플레이어 간의 전략적 두뇌 싸움을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 그런데 생각처럼 안 됐습니다. 시드 마이어가 말했던 개발자와 게이머의 관계를 떠올리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시드 마이어가 이런 말을 했죠. "개발자는 플레이어에게 극복 가능한 시련을 던져 줘야 한다." 하지만 이 게임은 결국 기계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 이 과정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터치 횟수를 제한한다든지 노골적으로 패턴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해결책을 생각한 겁니다. 축구 게임에서 패턴을 숙지하고 나면 난이도가 낮아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 골드로쉬 김현석 - "개발에는 외부 요인들이 너무 많이 개입돼요."

▲ 골드로쉬 김현석 -
게임기획을 메인으로 13년간 여러 파트에서 개발을 해오다가 최근 창업


▲ 원래 제가 다니던 회사는 게임 아트, CS, 현지화, 퍼블리싱 등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런 회사에서 게임 개발팀을 만들기로 했던 거죠. 그런데 이사님이 반대했습니다. "게임 개발은 현금을 회수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그래서 개발팀은 백지화되고 저는 퍼블리싱 본부장이 되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 리듬게임과 연애게임, 격투, 농장, 퍼즐, 스포츠를 버무린 게임을 3개월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저희에게 퍼블리싱 계약을 제안해왔습니다. 그러자 이사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야 우리도 만들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거 안 돼요." 그러자 이사님이 이런말을 합니다. "저 중에서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게 뭐야?" 그렇게 해서 연애 게임 개발에 착수하게 됐습니다.


▲ 중국 회사에 투자를 받기위해 접촉했습니다. 그러자 중국회사에서는 중국풍 미소녀 이미지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연애게임인데 PvP와 오토 플레이 기능을 넣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요구대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 그때 대만에서 옷 갈아 입히는 미소녀 게임이 등장합니다. 중국 투자자는 옷 갈아 입히는 게임을 보고 "음 비슷한 게임이 나와서 안 되겠군"하며 투자를 철회합니다. 전혀 다른 게임인데도 말이죠. 이 후 다른 투자자와 구했습니다. 그런데 대만에서 성공한 옷 갈아 입히는 게임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옷 갈아입히기 콘텐츠를 메인으로 삼고 다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 요구대로 개발하고는 있었지만, 카피 게임은 만들고 싶지 않다는 개발자의 자존심 때문에 다른 투자자를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소개팅 어플을 제작하는 회사에서는 게임에 GPS 연동 기능을 추가해 주길 바랬습니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에서는 게임과 쇼핑몰이 상호작용 하기를 바랐습니다.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연예인 캐릭터를 추가하길 원했습니다. 결국,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와 거액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 그런데 그 쇼핑몰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PvP와 자동플레이가 있는 옷 갈아입히기 연애 시뮬레이션인 우리 게임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 게임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퍼블리셔를 찾았지만, 연애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체 서비스를 하려고 보니 수익성이 떨어져서 거절당했습니다. 게임에 관심을 두는 업체에서는 캐릭터 디자인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 옷 갈아입히는 게임입니다. 캐릭터를 바꾸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합니다. 차라리 개발을 다시 하는 게 빠릅니다.


▲ 결국, 게임을 폐기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7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임개발을 모르는 임원의 입김, 사업성을 보고 시작한 개발 요청, 투자 업체의 요청으로 만든 게임은 좋은 게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개발 도중 투자처가 변경되고 그들의 내부사정으로 개발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개발 중 시장 상황도 급변하고요. 무엇보다 자존심과 개발 철학에 대해 생각할 수있는 기회였습니다.


▲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판단의 기준은 '기회'나 '수익'보다는 프로젝트를 '생존' 시키는 것이며 신뢰는 정당한 계약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옷 갈아입히기 연애 시뮬레이션은 인맥을 통해 혹은 구두를 통해 개발이 진행됐습니다. 앞으로는 돈이 꽂혀야만 개발을 할 겁니다. (웃음)



■ 도톰치게임즈 장석규 - "포춘카드 온라인의 흑역사"

▲ 도톰치게임즈의 장석규 -
온라인 게임에서 10년 넘게 게임기획자로 지내다가,
2009년부터 아이폰 게임을 개발해서 6개 포춘시리즈를 출시


▲ 현재 여러분이 알고 있는 포춘 크로니클 시리즈 이전에 '포춘카드 온라인'이라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성공하던 때에 개발하던 작품입니다. 일반 SPRG와 달리 싱글플레이는 불가능한 SRPG였습니다.


▲ 개발 당시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온라인상에서 개발을 진행해 최소한의 개발비로 개발을 완료하고 큰 회사의 팀으로 들어가는 거였죠. 또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마이너 장르였던 SRPG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관전모드도 넣었습니다. 제가 만든 게임을 광안리 스타리그 결승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 그러나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오픈 마켓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제 시스템 구축이 매우 힘든 시기였죠. 또한, 자체 엔진의 한계 때문에 개발이 제한적이었습니다. 거기에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게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 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개발팀의 한계도 존재했습니다. 각자의 생계는 각자가 해결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개발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너무 수평적인 관계다 보니 개발을 진두지휘할 리더가 없었습니다. 개발이 산으로 가게 됐죠. 게다가 명확한 유료화 모델도 없는 상태에서 첫 게임이라 욕심만 많았습니다. 결국 각자의 생계를 위해 팀은 뿔뿔이 흩어졌죠.


▲ 그래도 얻은 것은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원화 작업만 했었는데, '포춘카드 온라인' 개발 경험을 통해 지금 1인 개발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리소스를 '리버스 오브 포춘' 개발에 사용하기도 했고요.


▲ 4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온라인상에서 개발을 진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온라인으로 개발한 '길 건너 친구들' 같은 건 특별한 경우죠. 그리고 팀의 리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민주적인 의사결정만으로는 개발을 완료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또한, 시대의 흐름을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실패는 끝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실패는 다른 개발의 밑거름이거든요. '앵그리버드'도 로비오의 52번째 게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