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NDC 2015에는 게임 개발사와 분석 업체 가릴 것 없이 수많은 강연자가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강단에 섰다. 개설된 강연만도 총 99개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모바일 개척형 MMORPG'라는 생소한 장르에 독특하고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무장해 유저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야생의 땅: 듀랑고'. 듀랑고의 개발사 왓스튜디오는 그래픽부터 기획, 자유도, 경제 체계와 전투 방식 등 분야를 나눠 NDC 기간 3일 내내 다양한 강연을 선보였다. 우스갯소리로 NDC를 넥슨 듀랑고 콘퍼런스라고도 불러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

하지만 듀랑고의 다양한 개발 요소는 하나하나를 별도의 섹션으로 떼어놓고 설명해도 오롯이 강연 시간을 채울 정도로 가치가 있는 내용이었다.

NDC 마지막 날인 21일, 복잡계로서의 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 속의 복잡계가 듀랑고 관련 강연으로는 마지막으로 진행됐다. 강의를 진행한 왓스튜디오의 류지원 개발자는 일반 유저들이 어렵게 여길 수 있는 내용인 복잡계를 쉽게 풀어내며 듀랑고 속 네트워크와 복잡계로서의 게임을 설명했다.

▲ 왓스튜디오의 류지원 개발자



■ 게임 분석에 더 용이한 복잡계를 이야기하다

대학교 시절, 금융권 진출을 목표로 복잡계를 전공한 류지원 개발자는 사회학이나 경제학에서는 기록이나 정보가 소멸할 수 있기에 분석을 위한 온전한 데이터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토로했다. 하지만 게임은 모든 기록이 온전한 데이터 형태로 보존되기에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예상하고 분석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마비노기 영웅전 등 자신이 즐기는 게임의 경제 기반이 붕괴되는 사건을 겪었다. 류지원 개발자는 이를 계기로 복잡계를 적용해 이러한 현상을 미리 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신의 진로를 게임 업계로 변경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게임 속 경제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복잡계란 무엇일까?

류지원 개발자는 최무영 교수의 말을 빌려 "복잡계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다면 그건 더는 복잡계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어디에나 있는 복잡계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내용. 이를 도교에서 말하는 '도' 개념에 이입하면 좀 더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언뜻 알고 있는 그것이 바로 도인 것처럼, 복잡계도 이미 알고 있는 사회를 이루는 복잡한 무언가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하고 많은 수의 구성요소들이 서로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복잡한 현상이나 그 안에 있는 나름의 '질서'를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복잡계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개념은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는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집합을 일컫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을 여기에 대입하면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이 점, 전화선이나 TV선, 전자기파 등이 선이 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경제, 이메일, 전화, 생태계, 단백질 대사 등 어디에나 있다. 특히 인간 사회에도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여기서는 점이 인간, 선을 인간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드라마의 주요 인물이나 인물 관계도도 네트워크로 표현할 수 있다. 이를 보면 가장 많은 연결선을 가진 인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많은 연결선을 가진 주인공이 바로 허브다.

▲ 점과 선으로 구성된 네트워크

▲ 드라마의 인물 관계도가 네트워크라면 허브는 가장 많은 연결선을 가진 주인공이다.


■ 복잡계의 네트워크, 그리고 멱함수 곡선

복잡계는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연구할 수 있다. 다만, 복잡계에서의 네트워크는 일반 네트워크와 달리 단순히 점과 선의 연결 관계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점과 선이 모두 같은 개수의 연결고리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네트워크의 무작위적인 특성 탓이며, '정규 분포' 형태 대신 멱함수 형태를 따른다.

▲ 일반적인 사건은 평균에 데이터가 몰리는 정규 분포 모양으로 발생한다.

▲ 이론물리학자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가 도출한 '척도가 없는 네트워크'.

▲ 복잡계 네트워크의 데이터는 멱함수 곡선 모양으로 그려진다.

복잡계 네트워크의 멱함수 곡선은 가로축이 연결선의 개수. 세로축이 이러한 개체들이 몇 개나 있는지를 나타낸다. 즉, 연결선을 많이 가진 클러스터는 적고 연결선이 적은 일반 개체는 많다는 뜻이다. 멱함수 곡선의 형태는 상위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창출하는 '파레토 법칙'이나 '롱테일 법칙'과도 일맥한다.

한편, 멱함수 곡선은 복잡계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항공망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지에 흩어진 소규모의 공항은 대도시의 공항을 향해 항공망을 설정한다. 그리고 이런 소규모 공항의 항공망이 모인 대도시의 공항은 일종의 허브로서 많은 수의 항공망을 가지지만, 그 수는 적다.

▲ 허브 공항에 노선도가 몰리는 항공망.

네트워크를 이미지화하면 인간 사회의 문제를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염병 문제를 연구한 크리스티나 괴츠는 제퍼슨 고등학교 학생들의 성관계를 네트워크 형식으로 이미지화했다. 이미지를 확인하면 여러 이성과 성관계를 맺은 학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을 바람둥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네트워크 측면에서는 병을 옮기는 허브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허브가 되는 학생을 우선 치료하면, 병의 전염을 더 빠르게 막을 수 있다.

▲ 학생들의 성관계 네트워크를 통해 전염병의 허브를 확인할 수 있다.



■ 복잡계를 통해 만드는 예측 가능한 창발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존재가 유지될 만큼의 장점이 없는 생물, 시스템은 도태되고 소멸한다. 그런 면에서 복잡계의 기반인 멱함수 곡선 형태 네트워크는 시스템이 존속될 정도의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멱함수 곡선 형태 네트워크는 크게 효율적인 자원 이용과 견고함이라는 두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다양한 선이 연결되는 허브를 이용하면 여러 개체에 한꺼번에 정보를 전달, 차례대로 데이터를 전송해야 하는 정규 분포 형태의 네트워크보다 빠르게 자원을 분배할 수 있다. 또한, 허브 한 개가 손상될 확률은 개체의 손상 확률보다 낮아 외부 공격을 견고하게 막아낼 수 있다. 다만, 허브 자체가 손상되면 네트워크가 빠르게 와해되는 단점이 있다.

▲ 모든 곳에 나타나는 네트워크

▲ 그리고 진화론적인 우수성 두 가지

문명시리즈로 유명한 개발자 시드마이어는 게임을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선택이란, 의미가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선택이다. 즉, 성공적인 게임 디자인을 위해서는 의미있는 놀이를 창조하고 이를 선택하게 만드는 플레이어와 게임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여기서 상호작용은 복잡계 네트워크에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상호작용과 복잡계 네트워크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다채롭게 만들고, 유저들이 다시 한 번 플레이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반대로 복잡성 없이 고정적이고 획일화 된 게임은 재미있는 게임이 되기 어렵다.

다만, 여러 가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복잡성을 통제 불가능한 창발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만약 시스템이 혼돈에 가깝게 만들어진다면 유저가 게임을 플레이하며 예측할 수 없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이에 유저는 의미 있는 플레이를 채 하기도 전에 게임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즉, 복잡성있는 게임은 혼돈 대신 공정성이 있으며, 복잡하면서도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창발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렇다면 복잡계를 MMO 게임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사실 의미 있는 게임을 위해 복잡성을 가미하고 이를 통제한다는 것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제공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플레이어인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면 두 가지를 모두 구축할 수 있다.

먼저 인간은 폭발성을 가진다. 폭발성이란 특정 행위의 빈도가 높은 것을 의미하는데 특정 웹페이지의 조회 수가 높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과 더 많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따위다. 이동 패턴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많은 곳을 오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집-학교, 혹은 집-회사 등 단조로운 형태를 띤다. 이처럼 우리가 무작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예측 가능한, 멱함수 분포로 나타난다.

이처럼 행위를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이다. 즉,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먼저 처리하기 위해 다른 것을 미루고 포기하면서 특정 행동에 폭발성이 나타난다.




■ 복잡계로 본 게임 경제 창발과 미래 예측

게임의 경제 행태도 복잡계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자원을 한정시켜놓고 이동과 자원 채집을 하는 경제 주체를 설정, 시뮬레이팅하는 '슈가스케이프'로 실험을 하면 경제 주체는 자원이 많고 집중된 곳으로 몰리게 된다. 결국, 경제 현상의 창발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단순한 원리로 만들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경제를 예측하는 것은 두 가지 의의를 가진다. 먼저 게임의 경제를 분석하고 예측해 안정화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주는 인센티브 구조를 설정할 수 있다.

▲ 경제 주체를 무작위로 두어도 결국에는 비슷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복잡계를 분석하면 경제 외에 게임 내 사회 현상도 예측해 안정화할 수 있다. 혼돈계는 초기 조건이 바뀌면 뒤따라 발생하는 일도 크게 바뀐다. 하지만 복잡계는 처음 조건에 상관없이 사건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언제 일어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언젠가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는 가늠할 수 있다. 이는 알 수 없는 공포를 아는 공포로 만들어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만든다.

복잡계를 이용한 유저들의 행동 패턴 분석이 가지는 의의는 여기에 있다. 여러 번 시도하기 어려운 거시적인 플레이 테스트 한 번만으로도 다양한 결과를 분석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미리 행동을 분석해 시뮬레이션할 범위를 줄여나갈 수 있다.

▲ 분석해야 할 것은 많지만, 여러 번 테스트하기 어려운 것들. 최소 모수로 많은 것을 분석하는 것이 복잡계다.



류지원 개발자는 마지막으로 "게임 개발에서 대상으로하는 플레이어들과 게임은 계속 변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모르는 것일 뿐이며 계속 실험하고 프로토타이핑하는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앞선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게임 개발의 핵심이다."라며 개발 간의 자세를 강조한 후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