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걸어도 땀이 쏟아지는 한여름. 시원한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아파트 단지를 따라 걷다 보니 야트막한 언덕에 학교가 보입니다. 학교 정문을 바라보니 어딘지 익숙합니다. 맞다. 저기 정문에 '권위 있는 세계 컴퓨터 게임 프로그램 대회'에서 우승한 한 프로게이머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여기가 '벵 The Jungle God 기'의 모교입니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언덕을 올라 동북고등학교에 들어서니 여느 고교와 다를 바 없는 익숙한 풍경이 눈에 띄었습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기는 학생들, 농구 코트를 뛰어다니는 즐거운 모습, 한가로이 앉아 여유를 즐기는 아이들까지. 고교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을 때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벵기' 배성웅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SKT T1의 유니폼을 입고 달려온 배성웅은 조금은 머쓱한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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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로 돌아간 정글신 '벵기' 배성웅 - "현수막을 걸어준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어요"


▲ 학교를 방문, 교장 선생님과 기념촬영을 한 '벵 The Jungle 기' 배성웅


▲ 무척 쑥스러워하던 배성웅

"방학인 줄 몰랐어요. 학생들이 정말 많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오랜만에 인터뷰에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배성웅이 왠지 귀여웠습니다. 학교를 왔으니 먼저 인사를 드려야겠죠? SKT T1의 최병훈 감독님과 함께 교장, 교감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나눴고 배성웅이 등교했던 2학년 교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건 왠지 부끄러워요." 그동안의 인터뷰 요청에 대한 뒷이야기를 미안한 듯 전하는 배성웅. 매체와의 개별적인 만남은 오랜만이지만 성심성의껏 열심히 대답을 해줬습니다. 그의 모교 방문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는데요. 그중 하나로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 뵀을 때, 담임 선생님은 배성웅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배성웅 선수를 못알아보던데요? "학교 다닐 때 아주 조용한 학생이긴 했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살도 많이 쪘고요.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 기억해주실 줄 알았는데…. 조금 서운하네요(웃음)."


현수막 걸어준 학생들과 연락하고 지내나요? "2013년 롤드컵 대회에서 우승하고 나서 친구가 저를 위해서 현수막을 걸어주겠다고 말했어요. 농담인 줄 알고 '걸 테면 걸어봐~!'라고 했는데 진짜로 학교에 현수막이 걸려있는 거에요. 정말 놀랐어요." 배성웅은 인터넷에서 수차례 화제가 됐던 현수막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요. 지금은 군대에서 복무하는 친구들도 있고 이미 제대한 친구들도 있어요. 기회가 되면 경기장에 군복 입고 찾아온다던데 조금 두렵네요. 이번에도 뭐 들고 올 것 같아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얼굴에 편안한 감정이 어려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가 지금껏 인터뷰를 피한 것도 이해는 됩니다. 배성웅은 그동안 많은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지금은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는 걸 피부로 느껴요. 예전과는 욕하는 빈도수도 달라요. 똑같이 못 해도 예전만큼 비난받진 않아요. 별명도 생기고." 정글 그 자체라는 뜻의 '벵 The Jungle 기', '흑염룡' 등 그를 표현하는 다양한 별명이 존재합니다. 배성웅은 이 별명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 별명 이야기에 쑥쓰러워 하는 정글러 배성웅

"그 별명이 생기고 팀원들이 많이 놀렸어요. 저를 만나면 인사한다면서 왼손으로만 인사하고 오른손은 사용하지 않더라고요. 잠자는 흑염룡이네. 뭐네. 그러면서 한동안 팀 내에서 엄청나게 유행한 것 같아요. 별명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흑염룡'은 좀. 많이 유치해요. 솔로랭크에서 게임을 할 때도 저를 만나면 '흑염룡 좀 꺼내주세요'라고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배성웅은 별명에 관해 이야기를 하며 많이 부끄러워했습니다. 사실, 인터뷰는 SKT T1이 섬머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한 후 며칠 후 진행되었는데요. 민감할 수도 있는 시점에 편하게 이야기해주는 배성웅을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많이 아쉽죠.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연승을 달리면서 분위기가 해이해질 수도 있었는데, 이번 패배로 분위기를 다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해서 이번 롤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죠. EDG에게 복수도 해야 하고. 그땐 정말 분했어요. 다음에 붙으면 팀원들과 함께 꼭 이기고 싶어요."

MSI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배성웅의 오른손이 떨렸습니다. 마치, 그의 손에 봉인된 무언가가 EDG의 이야기를 듣고는 분노해 몸부림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애써 침착하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가 주변 사람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 '벵기' 배성웅이 흑염룡을 봉인하고 있다.

"현수막을 걸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나를 놀리려고 한 거로 생각했는데. 이 이야기가 다시 회자하면서 제게도 많은 힘이 되었어요. 정말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에 고맙다는 표현을 제때,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친구들 때문에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개별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학생들이 몰려왔습니다. 배성웅의 모교인 동북고 학생들이 배성웅의 모교 방문 소식을 듣고 함께 하기 위해 방학 중에도 학교를 찾아와준 것입니다. 유명인이 된 선배와의 만남에 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을 진정시킨 후, 담임 선생님을 필두로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벵기'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 학생들과 함께 한 질의·응답 시간


Q. (From 선생님) : 처음에 못알아봐서 미안했어. 졸업사진을 보니 정말 많이 변했더라. 살도 많이 쪘더구나. 학생들이 너가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좋아했다. 너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된 거니? 아이들 말로는 너가 손흥민, 루니 급이라던데?

배성웅 : (당황하며)절대 그정돈 아니에요.

학생들 : 배성웅 선배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게임단 측에 연락도 해봤어요. 당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어 선수 스케줄에 지장이 생긴다고 거절당했지만..


▲ 졸업 앨범에 담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배성웅의 모습

Q. (From 학생) : 프로게이머로 유명해지셨어요.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시선이 느껴지나요?

프로게이머가 되고 나서 길에 다니면 가끔 사람들이 알아봐요. 항상 알아보는 건 아니에요. 제가 밖에 돌아다닐 때는 유니폼 입고 다니는 게 아니라서.


Q. (From 학생) :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운영의 핵심은 정글러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정글러를 잘할 수 있나요?

정글은 서글픈 포지션이에요. 정치질의 표본이기도 하고 특히 탑한테. 상대 정글러에 비해 갱킹을 적게 다니면 조심해야 해요. 정글러로 게임을 할 때는 '아빠'가 된 느낌으로 해야 해요. 게임이 불리하면 다들 정글러 탓을 하기 쉬워요.


Q. (From 학생) : 이번 시즌 팀 성적은 만족하고 있나요?

지금 기세로는 롤드컵 확정된 시점에서 롤챔스 1위로 마무리하는 게 목표에요.



Q. (From 학생) :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은 친구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실 수 있나요?

프로게이머는 추천하고 싶은 직업은 아니에요. 그래도 정말 재능이 있다면 하는 게 좋겠죠.


Q. (From 학생) : 지금까지 많은 경기를 해왔어요. 긴장을 푸는 방법은 뭔가요?

(이)상혁이가 MSI에서 가르쳐준 방법은 관자놀이를 누르는 거에요. 해봤더니 효과가 있었어요. (채)광진이는 경기 전에 박수를 치는데 예전에 유행처럼 손뼉을 쳤던 적이 있어요. 요즘엔 그렇게까지 긴장을 하진 않아요. 심호흡 정도만 해요.


Q. (From 학생) : 조은정 아나운서랑 조은나래 아나운서중 누가 더 예뻐요?

두 분 다 예쁘세요. 개인적으로는 조은정 아나운서가 예뻐요.


Q. (From 학생) : 팀원이 펜타킬 기회를 받았을 때 양보하시나요? 뻇는 편이가요?

롤드컵 때 (채)광진이 펜타킬 뺏은 거에 대한 저격 질문 같은데. 저는 항상 양보하는 편이에요. 그때는 결승전이라 흥분해서 그랬어요. 이후로 광진이가 그 이야기 꺼낼 때면 항상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때 이후로 그 이야기 나오면 항상 사과하고 있어요(웃음).



Q. (From 학생) : 피글렛 선수가 한때 욕설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어요. 실제 인성은 어때요?

광진이는 승리욕 때문에 그렇지 매우 착한 친구예요. (임)재현이도 그렇고.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착해요.


Q. (From 학생) : 정글러로 피하고 싶은 라이너의 유형은 뭐에요?

탑 라이너. 약간 탑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여기까지 할게요.


Q. (From 학생) : 여자친구 있어요?

(절레절레)


Q. (From 학생) : 잘되고 있는 이성 친구가 있어요?

(절레절레)


▲ 정글 신의 유머 감각에 배꼽이 빠지고 있다.

Q. (From 학생) : 학생 시절 성적은 어땠나요? 공부를 잘했나요?

4등급 정도?


Q. (From 학생) : 상대 팀으로 만났을 때 가장 까다로운 정글러는 누구였나요?

'체이서' 이상현, '피넛' 윤왕호가 까다로웠어요.


Q. (From 학생) : 친구들과 듀오 하나요?

절대 안해요. 노말은 가끔 하는데..



Q. (From 학생) : SKT T1에서 오더는 누가하나요?

다들 같이하는데 주로 (이)상혁이랑 (장)경환이형이 많이 해요.


Q. (From 학생) : 가장 친한 프로게이머는 누가 있나요?

'마타' 조세형이 제일 친했는데 지금은 연락을 자주 못 해서 뜸해졌어요. 다른 팀에서 특별히 친한 프로게이머는 이제 없어요.


Q. (From 학생) : 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저를 기억 못 하신 담임 선생님이랑 2학년 때 안세진 선생님이 기억에 남아요.



Q. (From 학생) : 프로게이머는 하루에 연습은 얼마나 해요?

보통 12시 기상 4시까지 연습을 하고 밥 먹고 자유시간을 가져요. 7시부터 11시까지 다시 4시간 연습해서 하루에 총 8시간은 기본이에요. 이후, 11시부터 2시~3시까진 개인 연습 시간이에요.


Q. (From 학생) : 은퇴하고 나면 뭐할 예정이에요?

딱히 깊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일단 군대를 다녀와야겠죠?


Q. (From 학생) : 초보자가 하기 쉬운 정글 챔피언을 추천해주세요.

그라가스, 렉사이가 대세 챔피언이면서 조작도 쉬워요.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아무무, 워윅도 정말 좋고 쉬운 챔피언이라서 초보자들이 쓰기 좋은 것 같아요.


Q. (From 학생) : 망한 라인은 가지 말라던데, 망한 라인 기준이 뭔가요?

솔로킬을 따이면 망한 라인이에요. 정말 쉽죠? 망한 라인에 갱킹을 시도하다 역갱을 맞으면 게임이 터질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안 가는게 좋아요.



Q. (From 학생) : 팀 성적이 부진할 동안 기분은 어땠나요?

굉장히 참담했어요. 그래도 언젠간 올라갈 거로 생각하고 묵묵히 연습했던 것 같아요.


Q. (From 학생) : 트롤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요?

게임을 지면 -20점, 닷지를 하면 -3점이에요. 피하는 게 현명한 겁니다.


Q. (From 학생) : 지금까지 만나본 프로게임단 중에 어느 팀이 가장 잘한다고 느꼈나요?

삼성화이트. 정말 강한 팀이었어요. 스크림 했을 때도 그렇고.



Q. (From 학생) : 요즘 라이너들이 정글 몬스터를 자주 사냥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요즘엔 탑도 미드도 강타를 들어서 정글 몬스터를 사냥해요. 귀환했다가 정글로 가는데 사냥할 게 하나도 없을 때는 솔직히 게임하기 싫어요. 그래도 전체 정글이 빨리 순환해야 팀 전체 골드량이 늘기 때문에 그냥 참아요.


Q. (From 학생) : 프로게이머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엄청 반대했죠. 그런데 SKT에 들어가는 거라고 일종의 대기업 입사 같은 거라고 했더니 부모님이 약간 만족하셨어요.


Q. (From 학생) :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게임 많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솔로랭크에서 동북고 동문이라고 인사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분이 실제 동북고 다니면 프로게이머가 돼서 만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방학 중에도 이렇게 와준 후배들 정말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 질의·응답 이 끝나자 학생들이 박수로 화답하고 있다.





배성웅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배성웅은 학생들의 사진 촬영, 사인 요청에 하나하나 화답하며 방학 중에도 찾아온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훈훈해지는 기분 좋은 풍경이었습니다.

게임을 잘하는 프로게이머에게 영웅이라는 단어는 너무 거창한 수식어입니다. 배성웅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모교 방문 인터뷰에 대해 많은 부담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동북고가 자랑하는 영웅입니다. 학생들은 그를 만나는 동안 연신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배성웅은 또다시 큰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로 LoL 프로게이머들의 꿈의 무대, '롤드컵' 입니다.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되찾으려는 '벵 The Jungle 기' 배성웅. 그의 뒤에는 그가 '세체정'의 타이틀을 되찾길 바라는 친구, 동문, 후배, 선생님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동북고의 자랑 배성웅,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