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에서 '마비노기 영웅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블루홀에서는 신작 모바일게임 '헌팅존' 프로젝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이상균' 디렉터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NDC' 강연장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시나리오 디렉팅'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었고, 나는 강연을 취재하기 위해 간 한 사람의 기자였다.

이상균 디렉터가 소설가 활동을 했었다는 것은 그때에도 알고 있었기에, 당시의 나는 그가 '작가 - 시나리오 라이터'의 정석 루트를 걸었다고만 생각했다. 유명한 장르소설 작가가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가 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니 말이다.

시점을 돌려 몇 년 전으로 돌아가면, 난 그럭저럭 잘 나가던 공대의 그럭저럭 평범한 학생 중 하나였고,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지나가는 학생 중 하나였다. 사실 공대를 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다들 그렇듯 난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전부터 꿈이었던 '게임업계 입문'은 드러날 새도 없이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른이니 현실에 적응해야지'하는 스무 살 병아리의 같잖은 '어른 척'도 이를 거들었다. 내가 결단을 내렸을 땐, 방황하고, 그 방황조차도 더 이어갈 힘이 없었던 6년 후였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이상균 디렉터를 인터뷰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되어서이다. 보기엔 정석적 루트를 밟고 게임업계에 입문한 기획자. 겉으로 볼 때 느껴지는 그에게서 고민과 갈등의 흔적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내가 게임업계로 입문하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이상균 디렉터의 인생 역전 튜토리얼을 보는 듯 싶었다. 그는 내 상상 이상의 우여곡절을 넘어 업계에 입문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지금도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패스파인더(Pathfinder)'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 블루홀 이상균 디렉터


[NDC2014] 주제, 동기, 그리고 클리셰. 블루홀 이상균 디렉터의 시나리오 디렉팅

Q. 최근 몇몇 강연회에서 소개되신 적은 있지만, 인터뷰를 통해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건 오랜만이에요. 소개 한번만 부탁할게요.

안녕하세요.

게임 업계에서 10년 이상, 그러니까…. 연차로는 12년이 되었네요. 12년 차 게임 개발자인 블루홀의 이상균입니다. 다른 업계에서 일하다가 늦깎이로 게입업계에 입문해 '시나리오 라이터'로 처음 발을 디뎠지만, 주로 시나리오 라이팅 말고 다른 일을 해 왔고요(웃음). 업계 3년 차부터 디렉터 일을 해서 지금까지 디렉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게임을 만들어왔고,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게임은 '마비노기 영웅전'이 있죠. 런칭 당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었습니다. 이후 블루홀로 자리를 옮겨 여러 게임을 맡아왔고, 현재는 실험적인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 마비노기 영웅전 초기 시나리오가 그의 작품


Q. '이상균' 하면 보통 '게임 개발자'보다 '소설가'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물론 현업은 게임 개발자인 만큼 전처럼 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최근 따로 집필하고 있는 작품은 없나요? 가벼운 습작이라던지요.

이렇게 말하면 될 것 같아요. 제 머릿속에는 '창작욕 게이지'라는게 있어요. 아마 저 말고 다른 분들도 이름만 다르고 비슷한 것들이 하나씩 있을 거에요. '오늘자 업무 게이지'나 '공부 게이지' 등등 말이죠.

게임을 개발하기 전, 저는 대기업의 프로그래머로 일했었는데 당시엔 딱히 '창작'을 요구하는 경우가 없었어요. 글을 쓰는 것 외에 다른 창작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이 '창작욕 게이지'가 항상 펄펄 끓어 넘쳤죠. 그래서 그때는 집에 오면 정말 미친 듯이 글만 쓰곤 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쏟아졌거든요.

그런데 게임을 개발하려다 보니 업무 도중에 이 '창작욕 게이지'가 전부 소모되어 버렸어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도무지 뭔가를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오히려 남이 만든 것을 보게 되더군요. 기자 분들도 마찬가지잖아요. 글 쓰는 걸 좋아하셔도 집에 가서까지 글을 쓰고 싶지는 않죠. 요리사들이 집에서 요리 잘 안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Q. SNS를 보면 정말 많은 게임을 하시는 것 같아요. '남이 만든 것'을 제대로 즐기고 계신 것 같아요. 요즘은 '폴아웃4'를 재밌게 하시는 것 같은데, 어떠세요?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기 전에 잠깐 하고 왔어요(웃음). 꾸준히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게임 같아요. 기자님도 해 보셨어요?

(네... 전 13시간 정도 했네요.)

'션'(게임 속 등장인물)은 만나 보셨고요?

(아뇨 전 아직 거기까진 안했어요.)

아…. 만나 보시면 게임이 바뀝니다(웃음).

(폴아웃4는 전작과 비교하면 심도가 떨어지고 너무 '캐주얼화' 되었다는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더군요.)

다르게 생각하면 진입 장벽을 다소 낮추었다는 말이 되겠죠. 확실히 전작에 비하면 RPG보다는 슈팅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 외에는 업무가 많다 보니 다양한 게임을 할 수는 없었어요. '하스스톤'은 고정적으로 몇 년째 하고 있고…. 최근에는 '스타크래프트2' 캠페인도 조금씩 하고 있어요. 괜찮은 게임 혹시 아시는 것 있나요?

('언더테일'요. 정말 비상한 이야기 전개가 들어 있는 게임이에요. 아마 디렉터님이라면 만족하실 겁니다.)

아하! 메모해 놔야겠네요.

▲ 아침에도 하고 오셨답니다


Q. 이제 40대로 접어들면서 명실상부 '중견' 개발자로서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잡아냈어요. 30대 때 비해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체력'이 가장 절실하죠. 사실 2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최근 1, 2년 사이에 부쩍 체력이 모자란다는 느낌을 자주 받고 있어요. 전만 해도 '하루 11시간 근무쯤이야 기본 아니냐?'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요즘엔 며칠만 지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어요. 몸이 다 쑤셔서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요.

동시에 심리적인 압박도 와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미지의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스스로 전성기가 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고…. 더 분발하는 수밖에 없죠.


■ PC 게임만 개발하던 그에게 '모바일'이란


Q. 얼마 전 'IGC'에서 새로 개발 중인 모바일 게임을 공개했어요. 그간 PC 게임만 주로 맡아온 것으로 아는데,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은 어떤가요?

완전히 달라요. 개발의 모든 프로세스가 거의 다 다르다고 보시면 돼요.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게임'이라는 이름만 붙을 뿐, 완전히 다른 게임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요즘 제 머릿속을 떠도는 화두는 '모바일 게임을 과연 게임의 범주에 놓아야 하는가'에요.

요즘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장 조사를 하게 돼요.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전철 타고 가다 보면 다들 스마트폰을 만지고 계시잖아요. 어떤 게임을 하고 계시는지 살펴보는 거죠. 근데 재밌는 게 있죠. 전철에서 게임을 하시는 분들의 패턴이 이래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메시지가 오면, 게임을 끄고 메시지를 봐요. 그리고 다시 게임으로 오지 않고 이번엔 SNS로 가죠. 그리고 나면 전화를 한 통화 하거나 인터넷을 보거나 해요. 어느 순간 게임은 백그라운드에 잠든 상태로 남게 되죠. 모든 분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모바일 게임'의 경쟁자가 또 다른 '모바일 게임'이 아닌, '모든 어플리케이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모바일 게임'의 경쟁자는 다른 '모바일 게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 유저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게이밍'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겠구나.' 물론 그 '무엇'이 정말 어떤 것인지는 아직 저도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죠.

또,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미시적 영역이 아닌 '기술적' 부분에서도 달라요. 가볍게 시작하면 '전력' 문제도 있죠. PC 게임은 대부분 전력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일이 없어요. 물론 높은 수준의 GPU를 사용하거나 하면 모르지만, 일단 전력이 지속적으로 공급은 되니까요. 하지만 모바일 게임은 제한된 전력을 가지고 게임을 구동해야 해요. 이 때문에 게임 디자인에서도 '전성비'를 생각해야 하죠.

전력 외에도 모니터와 스마트폰 사이의 가시적 격차나 전체적인 용량의 차이 등도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에요. 그중에서도 '입력 도구'의 차이는 또 빼놓을 수가 없어요.

모바일 게임의 입력 방식은 오로지 '터치'에요. PC게임을 할 때 우리는 100개가 넘는 버튼이 달린 키보드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마우스를 손에 쥡니다. 그 모든 조작이 이제 두 손가락 끝에서 이뤄져야 해요. 이 점은 개발 과정에서도 매우 많은 것을 고려하게 만들어요. 아마 '자동 진행'이 인기 있는 이유도 손의 피로가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 조작 체계는 모바일 게임 발전의 큰 과제


Q. 앞서 말을 나눠보았지만, 이상균 디렉터는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에요. 개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있는데, 자신만의 '게이머 성향'은 어떤가요? 그리고 그 성향이 게임에 영향을 미치곤 하나요?

제 스팀 프로필이나 XBOX의 게이머 태그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매니악한 취향의 캐주얼 게이머'. 언뜻 보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게 가장 맞을 것 같아요. 게임을 오랫동안 붙잡고 할 수 없으니 하드코어 유저라고는 말할 수 없는데, 취향은 굉장히 매니악한 편이라 항상 신기한 게임이나 새로운 체험에 목말라해요.

한 번 해본 장르는 어지간해서는 다시 잡지 않는 편이죠. 항상 새로운 경험을 추구한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개발자로서의 마인드가 함께 하다 보니 '작고 똑똑한, 독특한 게임'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문제는 처음 개발에 참여한 게임이 '마비노기 영웅전'이다 보니 이후 제가 몸담는 회사들이 절 큰 규모의 게임 개발에 배정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제 개인적인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먼 개발 활동을 해왔던 것 같아요.

현재는 작은 팀을 꾸려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 중인데,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런 개발 환경을 원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평생 모바일 게임만 만들 것이라곤 생각지 않아요. 앞으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이에 맞춰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나가려고 해요.

Q. 현재 만들고 있는 게임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지난 IGC에서도 잠깐 공개했듯, '헌팅존'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어요. 'PVP'가 주 코드가 되는 게임인데, 아직 개발 중이다 보니 디테일한 것을 개발하는 단계까지는 아니고 현재로서는 다소 러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태에요. 테스트도 병행하면서 게임의 최종적인 모습을 그려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조만간 또 한 번의 테스트가 진행될 예정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신청해 보셔도 될 것 같아요. 다만, 게임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게임의 핵심은 '심리전' 요소가 들어간 모바일 'PVP'입니다.


▲ 현재 테스트 인원을 모집중이다.

'헌팅 존' CBT 신청 페이지 (기간 : 1월 26일 ~ 1월 29일)


■ 개발자 이상균,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친 '게임업계'


Q. 작년 한 해,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을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좋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임대상도 모바일 게임에 넘겨주었으니 말이죠. 한 때 한국의 저력으로 평가받던 국산 MMORPG가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들도 들리고 있는데, 개발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에 외신을 보다가 '울티마 온라인'의 디자이너이자 '재미론'의 저자인 '라프 코스터'가 기고한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그 글에 참 의미심장한 말이 있었어요. '장르는 소멸한다'는 글귀였죠. 굉장히 인상 깊은 글이었어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게이머'는 게임의 콘텐츠가 아닌 '장르 그 자체'를 소비하고 있어요. 라프 코스터는 '재미론'에서 재미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재미의 본질은 학습이고, 더는 학습할 수 있는 패턴이 없으면 재미도 끝이 난다.'

▲ '재미론(a Theory of Fun)'의 저자 '라프 코스터(Raph Koster)'

결국 하나의 장르가 가진 패턴을 유저들이 모두 학습해 '익숙한 것'으로 만들었다면, 그 장르의 재미는 끝났다는 뜻이죠. 우리가 '국산 MMORPG의 황혼기'를 말하는 이유는, 이 장르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이미 모든 이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어요.

다르게 접근하면 '기술적 혁신'이라는 코드로도 풀어나갈 수 있어요. '게임'이 탄생한 이후 발전해온 과정에서는 항상 기술적인 혁신이 함께했어요. 화면에 픽셀을 표시하던 시절엔 '인베이더'와 같은 게임이 나왔습니다.

'테이블 토크 RPG(TRPG)'는 무조건 다른 사람이 '게임마스터'를 맡아야 하는 게임이었지만,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게임마스터'를 컴퓨터에 맡기면서 컴퓨터 RPG가 시작되었죠. 여기에 온라인 기능이 더해지면서 머드 게임이 나왔고, 그래픽 발전이 거듭되면서 현재의 게임과 같은 장르가 정립되었어요.

지금 다시 되돌아보면 현재 '머드 게임'이 있습니까? 물론 작은 규모로는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사멸했다고 봐도 무방해요. 기술의 혁신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져 간 거죠. 하지만 현재 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MMORPG가 대세를 이룬 후, 기술은 '발전'했을지언정 '혁신'을 겪지 못했어요.

아마 다음 기술이 어떤 것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VR이 될 수도 있고, 모바일의 강화가 될 수도 있겠죠. 이 부분은 저로서도 감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아마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MMORPG는 또 다른 장르로 변화해 나갈 것이라 예상합니다.

▲ 다음 '기술 혁신'의 주인공은 무엇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Q. 12년. 결코, 가벼운 세월이 아니에요. 가뜩이나 역사가 짧은 게임업계에서는 유독 더 길게 느껴지죠. 그 동안 업계에서 일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작가'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있을 거에요. 저 역시 작가 생활을 했기에 알고 있고, 다른 작가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마찬가지였죠. 바로 자신의 이야기에 대미를 찍는 순간입니다. 모든 글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장에 '끝'이라는 그 한 글자를 쓸 때, 그 넘쳐나는 카타르시스는 절대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하얀 로냐프 강'의 1부 완결을 내던 순간, 저는 군 복무 중이었어요. 당시 내무반 복도에 낡은 분홍색 소파가 있었는데, 그 소파에 앉아 '끝'이라는 글자를 썼죠. 너무 오래전 일이라 군대 생활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소파가 있던 복도만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죠.

'게임'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창작 활동은 '끝'이 있기 마련이고, 그 인고의 세월을 거쳐 대중 앞에 작품을 공개할 때만큼은 누구나 울렁이는 가슴을 참느라 고생하게 되죠. 그 때문에 개발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으라면 제 첫 작품인 '마비노기 영웅전'이 라이브로 전환되던 때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만들어온 게임이 이제 유저의 손으로 넘어갈 때. 결코, 잊을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죠.

▲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


Q. 이상균 디렉터도 꽤 범상치 않은 과정을 거쳐 게임업계에 입문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요?

정말 갈 수 있다면, 대학 졸업 시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사실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 근데 막상 대학 졸업 시즌이 되니 현실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거에요. 졸업하고 나면 결혼도 해야 하고, 돈도 모아야 하는데 당시 게임업계의 연봉 수준은 썩 높은 편도 아니었거든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학원까지 가게 되었어요. 꿈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이도 저도 못하고 현실에서 도피해버린 거죠. '공부'라는 이름의 '방황' 이후, 어쩔 수 없이 해오던 대로 취업을 했어요. 대기업이다 보니 연봉 수준도 높았고, 물질적인 풍요는 누릴 수 있었죠.

하지만 '꿈'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어요. 인터넷에서 게임 개발사의 채용 공고를 보면 괜스레 가슴이 뛰고,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죠. 결국, 이 마음을 참지 못하고 3년이 되던 해, 회사를 나와 게임업계로 뛰어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반대했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은 너무나 정직하게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죠. 그리고 그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지금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할 때 대학 졸업 시즌을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다시 돌아가면 이제 고민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을 것 같거든요. 5년을 방황했어요. 게임업계에서 5년이면 MMORPG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는 시간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죠.


Q. '꿈을 따라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일 거예요. 제 앞에 있는 이상균 디렉터는 결단을 내렸지만, 아직 게임업계에 대해 꿈을 꾸면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많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간혹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단에 설 때가 있어요. 그때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게임 업계는 '엔터테인먼트'를 다루는 업종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일견 게임업계는 화려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성공한 젊은 CEO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젊은 인재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는 항상 양면이 존재하는 업계에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야 하는 업종이 쉬울 리 없죠.

지금 이 시간에도 여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가까스로 코딩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존재할 거에요. 시장 규모가 크고, 상장 기업이 늘어나면서 업계는 안정화되었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업계는 호봉을 채운다고 연차가 오르는 곳이 아니에요. 본인이 진짜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각오가 필요할 겁니다.

성공하는 이들의 빛나는 모습은 분명히 매력적이지만, 아직 성공에 손을 대지 못하고 그림자 속에 머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이런 일이 본인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 게임업계에 입문하기 위한 첫 스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