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ITR 공식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개발사: ENEME 엔터테인먼트 ⊙장르: RPG ⊙플랫폼: PC, PS4 ⊙발매일: 2016년

게이머는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있다. 게이머 출신인 인벤 기자들 역시 각자 취향이 분명하다. 로켓런처나 대검같이 굵고 아름다운 무기를 선호하는 이명규 기자, 자동전투 시스템의 편리함에 젖은 이현수 기자가 대표적이다. 때때로 그들은 취향이 진하게 묻어나는 기사를 쓰며 흐뭇한 미소를 짓곤 한다. 내가 봤다.

쿼터뷰나 탑뷰 RPG는 기자가 선호하는 장르다. 그간 써 왔던 리뷰나 기획에서도 심심찮게 드러냈다. '디아블로'나 '녹스'같은 핵앤슬래쉬 액션 RPG, '발더스게이트'같은 미국식 RPG도 상관 없다. 아아, 심장이... 너희들 완전 내 스타일!

지금 소개할 게임도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됐다. 시점이 쿼터뷰였다. 외국에서 개발중인 인디 게임. 작년에 쓴 도트 게임 기획기사에서 첫 번째로 언급한 게임, 'EITR'

아직 공개된 정보는 적다. 공식 홈페이지 내 GIF나 영상, 간단한 소개가 전부다. 이걸 조합해 게임을 그려봐야 한다. 구석구석 훓어가며 열심히 관찰했다. 이거, 보면 볼수록 '디아블로1'과 '다크 소울'이 오버랩된다. 고집 센 장인의 집중력이 느껴지는 도트 그래픽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아직 개발도 안 끝난 인디 게임을 기사로 다룬 사례는 많지 않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개인적인 취향으로 범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기자와 비슷한 성향의 게이머라면... 그러니까 액션 RPG나 쿼터뷰 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제법 마음에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아, 후레쉬 밑!!" 그때 그 분위기가 돌아왔다.
FOR - 디아블로 시리즈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저

외국에서는 EITR을 '디아블로 스타일'이 아닌, '다크소울 스타일(Souls like)'로 분류한다. 묵직한 게임플레이나 껌껌한 분위기가 '다크소울'스럽다는 것에는 기자도 동의한다.

'디아블로 시리즈'가 아닌, '디아블로1'과 비교하면 어떨까. 이러면 '다크소울'보다 먼저 언급할 만 하다. 최소한 내 기억 속의 '디아블로1'은, '다크소울' 못지 않게 분위기로 먹어주는 게임이었다. 축축하지만 답답하지 않았고, 무서웠지만 자꾸만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EITR을 처음 보았을 때 반가운 기분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슈가 된 작품은 '디아블로2'였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게 '디아블로3'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기자는 '디아블로1'의 고딕 호러 분위기가 이 중독성 높은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믿고 있다. EITR에서도 보였다. 그 피딱지 색 분위기가.

제한된 시야. 칙칙한 어둠 사이로 들려오는 몬스터의 신음 소리. EITR의 시청각 요소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간의 시너지도 큰 편이다. 쿼터뷰 시점의 한계를 넘어선 긴장감을 만든다. '디아블로1'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몬스터 떼와 싸우지는 않는다. 대신 EITR의 몬스터는 하나하나가 강하고 지능적이다. 진심으로 플레이어를 죽이기 위해 덤빈다. 적어도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에서 보여지는 모습에선 그렇다.


▲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묵직한 분위기.


아이템 구조도 디아블로 시리즈의 그것과 닮았다. '디아블로1'이 선보인 전리품 시스템은 현재 수많은 RPG가 채용하는 바이블이 됐다. EITR 역시 '노멀', '매직', '세트', '레어' 등과 같이 수직적인 아이템 구조를 가졌다. 그 외 수리 키트나 회복 약병처럼 1인 플레이 RPG에 딱 맞는 아이템도 등장한다.

디아블로의 전리품 시스템은 '고유 옵션'이라는 특징도 갖고 있었다. 전설이나 세트 아이템에 독자적인 옵션이 붙는 개념인데, 이것이 게임의 수명을 늘리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밸런스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재미를 끌어올리는 노하우는 블리자드가 보유한 주요 무기 중 하나. 동시에 타 게임사에서 쉽게 따라하기 힘든 부분이다. EITR 역시 전리품 시스템을 채용했지만, 아이템 옵션의 형태까지 자세히 공개되지는 않았다. 지켜봐야할 요소다.


▲ 아이템 GUI는 디아블로의 그것과 닮았다.


1996년 12월 31일. 디아블로1이 출시된 이래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후 속편들이 출시되었지만 디아블로1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디아블로1'은 "그때가 참 좋았지"라는 꼬리표만 달고 묻어두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특유의 분위기와 게임플레이는 최근 개발되는 작품들에도 적지 않은 영감을 준다. 즉, 디아블로1 스타일은 지금 시점에서도 충분히 통하며, 이것이 EITR을 기대해야만 하는 이유라고 나는 믿는다. 촌스러운 것이 아니다. 개발팀 'Eneme Entertainment'도 외국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을 자주 언급했다.

"당초 EITR은 '황금 도끼'와 같은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을 지향했습니다. 하지만 지하 감옥의 축축한 분위기, 어두운 마을에서 아이템을 거래하는 모습은 '디아블로'에 더 가까웠고 결국 쿼터뷰 시점을 방향을 바꾸게 됐죠. 저희가 디아블로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 EITR 프리뷰 영상 (출처 - VaatiVidya 유튜브)


▶ 3줄 요약
- 디아블로1의 고딕 호러 분위기가 잘 구현됐다.
- 아이템 체계도 디아블로1과 닮았다. 아이템 옵션 구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 개발자도 디아블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컨트롤 안 하면 죽는다.
FOR - 정말 찐하게 한 번 몬스터와 칼을 맞대고픈 유저.

'아머드코어' 시리즈 개발사로만 알려진 프롬 소프트웨어는 2009년을 기점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데몬즈소울'로 현대식 하드코어 RPG의 문을 열었고, '다크소울' 시리즈와 '블러드본'을 출시하며 정상급 게임 개발사로 발돋움했다.

프롬 소프트웨어 풍 하드코어 RPG는 기본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즉, 시간이나 근성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엔딩을 보기 어려웠다.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얻는 성취감도 각별했다. 여기에 서양 게임 평론가들은 후한 점수를 메겼다. 이후 출시되는 서양 RPG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그들은 다크소울을 닮은 이들 작품을 '소울 라이크'라 불렀다.

현재 EITR 관련 외신 뉴스를 보면 상당수 '소울 라이크'라는 별칭을 붙여 소개하고 있다. 그 말대로다. EITR은 '다크소울'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여기저기 묻어 있다. 절제된 액션, 가볼 테면 가보라고 말하는듯한 함정, 불친절하지만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이 대표적이다. 심연의 무저갱과도 같은 그 분위기는 '디아블로1'과도 닮았지만 '다크소울'과도 연결되는 요소다.

▲ 디아블로1, 다크소울의 느낌이 모두 들어있다.


전투는 EITR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다. 개발자들의 블로그에서도 자주 언급되며, 게임플레이 영상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레이어의 컨트롤 실력이 전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공격, 차지 공격, 회피, 블록 등 활용기가 많고, 이것을 손이 베일 듯한 타이밍으로 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플레이 영상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몬스터의 공격력 및 체력이 타 액션 RPG와 비교해 꽤나 높게 설정된 것으로 보여진다. 즉, 몇 대 맞으면 그냥 죽는다.

주인공 '쉴드 메이든(Shield maiden)'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적을 공격하는 것 만큼이나 방어도 중요하다. 상대방의 공격을 완벽한 타이밍으로 막을 시 '스노우 플레이크'가 활성화되며, 쉴드 메이든을 공격한 적은 일정 시간 얼어붙게 된다. 즉, 단순히 적의 공격을 막는 것뿐 만이 아닌,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따라 새로운 전술 옵션으로도 활용된다는 의미.

방패로 막을 수 없는 공격 방식도 있다. 이럴 땐 회피를 사용해 아예 안 맞아야 한다. 지속적인 전투로 인한 장비 내구도 소모도 줄이고, 적의 약점으로 파고들 기회도 생기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다만, 스태미너 관리 능력이 받쳐줘야 하며, 타이밍이 어긋날 경우 푹신한 칼맛을 그대로 체험하게 되니 남발은 금물이다.

한편, 쉴드 메이든의 장비 창은 그녀의 고단한 삶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도끼, 양손 검, 쌍수 무기 등 가리지 않고 웨폰 마스터 기질을 뽐내지만, 그녀도 수많은 적을 상대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부무기로 활을 챙기는 데, 이게 꽤나 자주 활용된다. 근접전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을 멀리서 안전하게 보내버릴 때 쓰던, 보스와 맞붙기 전 명치에 몇 방 박아넣는 데 쓰던 그건 플레이어의 자유다. 보조 무기로서 활이 주어진다는 것은, 곧 기존 액션 RPG와 비교해 더욱 다양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 이것이 스노우 플레이크의 위력!

▲ 양손검, 어디까지 휘둘러봤니?


'다크소울'이 어렵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적 체력이나 내 체력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요, 특유의 무거운 조작감 덕에 제몸 가누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두 번째다.

묵직한 조작감은 개발진의 의도가 녹아있는 것으로, 이는 플레이어의 적응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은 거의 대부분 그랬다. '데몬즈소울', '블러드본'은 물론, 메카닉 액션 게임인 '아머드코어'도 마찬가지.

영상만으로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EITR의 전체 난이도는 '다크소울'만큼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아블로 방식의 아이템 체계 특성상 어느 정도 성장 단계를 거치면 난이도가 급감할 가능성도 있다. 하드코어 RPG를 즐기는 플레이어에게 '쉬움'이란? 게임의 수명 단축을 의미한다. 즉, 후반부 콘텐츠의 퀄리티가 EITR을 평가하는 주요 포인트가 될 것이다.

▶ 3줄 요약
- 다크소울 못지 않게 높은 컨트롤 수준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 방패 활용이 특히 중요하다.
- 디아블로와 다크소울의 지향점이 다른 만큼, 밀도있는 레벨 디자인이 구현되어야 한다.





장인이 찍은 도트 한 점... 백 폴리곤 부럽지 않다.
FOR - 풀 3D로 나온 라그나로크2를 보고 크게 화가 난 유저

2D 도트 그래픽 고유의 감성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퇴색되지 않는다. 그래픽이 현실적이지 않다 보니, 오히려 유저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마련된다. 도트 게임 장인들은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3D로 표현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살려내려 한다. 그리고, EITR 역시 이것을 십분 활용한 작품이다.

칼이 마주치는 순간 튀는 불꽃, 물가를 지날 때 동그랗게 피어나는 파장은 개발진이 EITR을 만들면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다. 전체 맵 구성이나 오브젝트 배치도 오밀조밀 잘 되었고, 덕분에 게임이 보다 풍성한 느낌이다. 도트 그래픽은 개발자의 정성에 비례해 퀄리티가 올라간다. 이쯤 되면, 최신 게임에 길들여진 눈으로 보아도 충분한 정성이다.

팔뚝에 힘줄 하나 더 그리고, 2차로 처리할 명암을 6차에 걸쳐 쪼개는 건 시간만 쏟아부으면 결국 구현 가능한 문제다. 그 외 개발자의 센스 없이는 못 만들 것 같은 부분도 여기저기서 보였다. 대표적인 게 아래 이미지 두 장.

▲ 단순한 회피에도 꼼꼼하게 모션이 들어갔다.

▲ 화살을 맞은 방향으로만 피가 튄다.


EITR 개발자 블로그에 업로드 된 GIF 이미지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장면들. 회피 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유저 피드백을 수렴해 구현했다. 두 번째 장면은 개인적으로 매우 감탄한 부분인데, 굳이 신경 쓰고 보지 않는 이상 눈에 띄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EITR을 만드는 개발자들이 얼마나 변태같은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 물론 좋은 의미로.

2D 도트 그래픽을 '적당적당'한 마인드로 찍어낼 경우, "차라리 심플한 3D로 만드는 게 낫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세대가 바뀌고 유저들의 눈이 높아진 지금, 도트를 찍는다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만들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 다행히 EITR의 도트 그래픽은 근래 보아왔던 2D 도트 게임의 완성도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극한의 분위기가 나온다.

▶ 3줄 요약
- 캐릭터와 맵 디자인, 오브젝트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었다.
- 개발자의 센스가 번뜩이는 요소도 많다.
- 2인 개발 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최상급의 퀄리티.





완성도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느낌은 좋다.
FOR - 도트 그래픽에 편견이 없는 유저.

EITR은 PC와 PS4로 2016년 중에 출시 예정이다. 콘솔을 지원하는 만큼, 패드로 느끼는 짜릿한 진동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개발자들이 게임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들의 재능에는 별다른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 개발된 상황까지만 보면 그렇다. 디테일을 높이는 작업은 개발자의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만,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이르다. 영상으로 볼 때와 실제 게임을 플레이할 때 느낌이 다른 경우는 의외로 흔한 편이다. EITR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은 만큼, 무조건적인 예약 구매를 추천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도트 그래픽이 친숙한 나이대의 유저가 아니라면 되려 실망할 여지도 있다.



단 두 명이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외적 문제로 개발이 중단될 수 있다. 개발자 간 의견 차이로 인해 제작 기간이 늘어나는 모습은 익숙하게 봐 왔다. 다만, EITR이 약 1년 반 동안 개발을 지속해왔다는 점, 초기 기획안과 지금의 모습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개발자 간의 의견 대립 가능성은 낮다. 개발비도 킥스타터를 통해 충분히 모았다. 소니의 적극적인 후원도 뒷받침되고 있어 자금난에 빠질 우려도 크지는 않다.

정확히 언제 출시될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자는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몇 달 정도는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릴 준비가 됐다. EITR이 '마인크래프트'나 '브레이드'같이 인디 게임 역사에 남을 명작이 될지, 혹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속 빈 강정 중 하나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만큼 취향을 저격했으니 나도 그 보답을 할 때다. 더 많은 유저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3줄 요약
- 2인 개발 작품이라는 것이 불안 요소.
- 하지만 자금난으로 개발을 중단할 가능성은 적다.
-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기대하는 작품 중 하나.





▲ EITR 퍼스트 게임플레이 영상 (개발 초기 버전)


▶ EITR 스팀 페이지
▶ EITR 공식 홈페이지
▶ EITR 개발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