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dystopia] : 역(逆)유토피아,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소재와 스토리 배경이 있고, 시대에 따라 사랑받는 것들도 변해왔다. 그중에서 '디스토피아'는 예상외로 20세기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소재다.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부터 현대의 '이퀼리브리엄' 같은 영화들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언뜻 혼동할 수도 있지만, 디스토피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호러와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며 장르다. 디스토피아는 그 자체로는 이미 번영하여 높은 수준의 문명을 구가하고 있는 사회를 일컫기에 포스트 아포칼립스와는 다르며,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못한 공포보다는 한 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호러와도 다른 길을 걷는다.


그리하여, 디스토피아 장르에서 항상 맞서게 되는 것은 온갖 부조리와 악행들이 버무려져 처절한 생존 세계가 되어버린 사회 그 자체다. 제각각의 디스토피아 물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뒤틀려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 속에서 그에 반항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제거하고자, 혹은 그 사회 자체를 바꾸어버리고자 하는 주인공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이런 '사회, 혹은 특정 사상을 비판하는' 요소는 디스토피아 물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게임 속 디스토피아들은 어떨까. 수많은 SF 장르 게임들에 있어서 디스토피아는 매력 넘치는 소재다. 여기 그 몇 가지 전형이 있다. 만약 아직 플레이해보지 않았다면, 지금 손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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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어스 엑스 - 바이러스와 나노 머신, 그리고 사이보그


데이어스 엑스(Deus Ex) 시리즈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사이보그 기술부터 생화학 물질까지 온갖 오버 테크놀로지가 넘쳐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얼핏 보기엔 그런 기술들로 인해 매우 윤택한 생활을 누리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작 '휴먼 레볼루션'까지 포함해 각각의 작품마다 전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또 그 사건은 언제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음모론의 전형 같은, 특정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으키는 것들이다.

1편의 '그레이 데스' 바이러스, 2편의 '대붕괴', 3편의 '판체아 사건'까지 게임들은 모두 이 사태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잠입하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모두 미래 기술로 만들어진 완벽 초인이다. 1편과 2편의 덴튼들은 나노머신으로 강화 받은 특수 전투원이며, 3편의 아담 젠슨은 멀쩡한 부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는 기계 사이보그다. 솔직히 보통 사람 정도는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조종하는 주인공만 그런 기계 초인이 아니라는 것. 적들은 더 심각하고 더 무서운 장비들을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난다. 결국 이 게임은 잠입으로 시작해 첨단 기술 전투를 지나 기계끼리의 육탄전으로 절정을 맞이하고, 마지막에는 3자 선택을 두고 결정 장애에 걸리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올해 8월 4편 '맨카인드 디바이디드'가 나온다고 하니, 그전에 미리 3편 '휴먼 에볼루션'으로 복습해두는 게 어떨까.




바이오쇼크 - 물 속의 유토피아, 랩처


오래전, 인류의 미래 사회를 예상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우주 도시와 함께 깊은 바닷속 수중 도시 또한 그랬다. 거대한 반구형 유리 돔 아래에서 지상의 도시처럼 빌딩 숲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들... 솔직히 어렸을 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봤을 땐, 뭐 하러 굳이 저기에까지 도시를 짓고 살아야 하나 싶긴 했다. 어둡고 습하고 별로 살기 좋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어쨌건 수중 속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바이오쇼크의 '랩처'는 자칭 이상주의자인 앤드루 라이언에 의해 만들어진 초국가적 도시다. 이들은 이상적인 문화와 발달된 기술을 토대로 플라스미드라는 초능력과도 같은 능력을 활용해 이상사회를 만들어나갔지만, 내부의 반목과 약물, 능력 의존으로 타락해 가는 사회로 인해 하룻밤 만에 붕괴하고 만다.


바이오쇼크 시리즈는 1편과 2편이 이 랩처를 배경으로 하며, 각각 게임을 관통하는 사상인 자유방임주의와 전체주의의 극단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앤드루 라이언은 기업가이자 스스로의 탐욕에 심히 물들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며, 다른 주요 인물들인 프랭크 폰테인 이나 소피아 램은 각기 다른 사상과 목적을 가지고 랩처라는 사회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랩처는 부활하지 못하지만, 몰락해버린 유토피아가 곧 디스토피아가 된다는 것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제아무리 멋진 유토피아 사회라 해도 단 몇 명에 좌지우지된다면 답이 없다는 것.




미러스엣지 - EA가 그린 1984의 감시 사회


'빅 브라더' 라는 용어가 있다. 최초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 '1984'에서 나온 이 용어를 언뜻 몇 번 들어봤을 것이다. 빅 브라더는 1984의 사회를 이끄는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사회 지도부 혹은 당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며, 때문에 1984의 전체주의 감시 사회에서 때로는 사회 전체와 구성원들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빅 브라더와 감시가 만연한 통제사회는 이후로 디스토피아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미러스 엣지에 등장하는 도시는 이런 1984 혹은 이퀼리브리엄이 생각나게 한다. 무채색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 실체는 CCTV가 모든 것을 지켜보며 각종 정보가 통제받는 곳이다. 거기서 주인공 '페이스'는 이 감시를 피해 비밀 정보들을 전달하는 역할인 러너로 활동한다. 건물들의 옥상에서 옥상으로 파쿠르를 펼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이러한 사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인물들과 유지하고자 하는 인물들의 충돌, 그 사이의 음모는 비록 전형적이고 반전도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무척 아름답고 현대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우리가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보았던 비정한 무채색의 도시 같기도 하다. 비록 '미러스엣지'는 대박을 친 게임은 아니었지만, 그 특유의 설정과 게임 방식이 많은 호평을 받았고, 때문에 리부트 작품인 '미러스엣지: 카탈리스트'가 지난 7일 정식 발매되었다. 관심이 있다면 플레이 해보거나, 혹은 직접 파쿠르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안전한 상황에서 말이다.




XCOM - 구해주면 뭐하나, 다시 망하는데


일단 여기서는 리부트 된 3D 버전의 엑스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위딘에서 우리가 수백 번의 세이브 로드 신공으로 기필코 구해내고야 말았던 지구는 더 이상 없다. 실패한 시나리오 중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외계인은 결국 지구를 점령했고, 인간 사회에 스며들어 구원자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우주인이 만든 단체 어드벤트는 자신들이 완벽하면서 또 아름다운 미래를 제공한다면서 사람들을 회유한다. 심지어 나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유전자 치료를 받았고, 멋진 집에서 우주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 살고 있단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이 외계인들이 내가 기억하기로 그렇게 착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결국 이 외계인들의 시커먼 속을 까발리는 것은 우리의 몫. 다이어 어벤저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어드벤트가 순 나쁜 놈임을 드러내야 한다. 연구시설을 습격하고, 인질을 구출하고, 적 주요 건물을 사보타주한다. 솔직히 주인공들의 수단이 좀 과격한 것 같지만, 상대가 더 나쁜 놈들이라 괜찮다. 딱히 다 부수고 나서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외계인은 인간을 땔감 취급하니 구하는 편이 이롭다!

그렇게 또다시 지구를 구해낸 모든 사령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물론, 어쩌면 또다시 우리가 실패한 세이브 데이터 들에서 다음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니 항상 경계하길 바란다.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 나치 미래 제국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수장 히틀러는 전쟁 이후 자신이 이룩할 '신세계'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나치 제3 제국의 신생 수도 '게르마니아' 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나치의 주요 관료이자 건축가였던, 그럼에도 건축가로서의 재능은 그럭저럭이었던 인물 알베르트 슈페어의 설계 하에 만들어졌다. 물론 권선징악의 법칙에 따라 히틀러와 나치 일당은 둠가이가 기다리는 지옥으로 떨어졌고, 이 계획은 모두 무산됐다.

그런데 이 계획이 정말로 이루어졌다면 어떨까? 신고전주의의 거대하고 웅장하기만한 건물들이 가득한 미치광이들의 새로운 도시,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는 바로 그런 가정법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미지의 기술을 습득해 굉장한 기술 발전을 이루어낸 나치 독일이 만약 정말로 세계를 지배했다면? 그들의 신 수도 게르마니아와 런던, 그리고 심지어는 달 표면까지 그런 모습들이 게임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렇게 독일의 기술력은 제일!이고, 겉보기엔 웅장하고 멋지지만, 속으면 안 된다. 그 이면에는 나치라는 인간 아닌 존재들이 있으니까.


게임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에 달에 기지를 건설하고, 초고속 열차가 다니는 모습은 확실히 경이롭다. 하지만 그만큼 주인공 블라코윅즈가 화려하게 부술 것들이 늘어났다는 뜻이므로 매우 긍정적이다. 무기 또한 화려하다. 이 나치 제국의 디스토피아를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만드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디스아너드 - 급속 성장과 개발의 어두운 이면


전염병이 창궐하고, 한 나라의 산업이 쇠락해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디스아너드의 세계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래기름이라는 새로운 자원과 응용기술의 발견으로 엄청난 발전과 성장을 이루어낸 국가의 집합인 군도 제국은 고래기름 산업의 쇠락과 동시에 주 무대인 국가 그리스톨과 그 도시 던월에 만연한 전염병으로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다.

주인공 코르보는 그리스톨의 호국경으로, 여제의 호위를 맡는 정부 고위 관료이지만, 전염병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음모에 휘말리게 되고, 여제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상태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코르보는 그 자신의 출중한 전투력과 새롭게 배운 초능력으로 완벽 초인이 되어 적을 모조리 몰살하거나, 아니면 자비롭게 불살을 시전하며 음모를 파헤쳐 나간다.


사실 디스아너드는 현실의 국가 영국의 전성기를 매우 강하게 오마주 하고 있어서, 각각의 군도 지역들을 현실 영국의 지역으로, 고래기름을 석탄으로 치환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모습이 나온다. 멋지게 발전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낮은 삶의 질에 시달리는 던월의 시민들은 익숙하면서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