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자로서 염원, 혹은 행복한 일이 있다면 바로 해외 취재를 다녀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을만한 것이 바로 세계 3대 게임쇼를 다녀오는 일이죠. E3, 게임스컴, 그리고 도쿄게임쇼까지. 이제는 게임쇼도 많아져서 '차이나조이'와 '파리게임쇼'도 천천히 위상을 올리고 있고, 국내 게임쇼인 지스타는 매년 취재를 다녀오죠.

올해에 들어서 저도 세계 3대 게임쇼를 전부 다녀왔습니다. 2013년에는 TGS에, 2015년은 게임스컴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올해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E3의 멤버로 로스엔젤레스를 방문했습니다. 아, 그리고 2014년에는 차이나조이도 다녀왔습니다. 조금 힘들었지만…

이번에 다녀온 로스앤젤레스는 첫날부터 우리를 반겨…주진 않은 것 같아요. 흐릿흐릿한 날씨로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날이 개긴 했지만, 그래도 로스앤젤레스의 날씨는 정말 쾌적(?) 했습니다. 일단 습도가 낮아서 그런지 덥긴 해도 끈적이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늘로 가면 금방 시원해졌거든요.

아무튼 이번주 '게임이슈 콕!'은 E3에서 직접 기자가 느낀 소감을 한 번 전달해보려고 합니다. 자, 그럼 본격적인 취재 스토리부터 E3의 최고 이슈까지 한 번 만나보시죠.

* 게임이슈 '콕!'은 네이버 제휴 콘텐츠로 모바일 페이지 '게임·앱' 코너에 함께 게재됩니다.

날씨가 흐릿흐릿하고, 춥습니다. 첫 날은 온도가 18℃정도...


■ 도착한 LA, 뭔가 익숙한데…"데자뷔, 느껴본 적 있어?"

긴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내려서 택시로 이동하는데, 뭔가 이상한 게 느껴졌습니다. 익숙함이랄까요…처음 오는 도시인데도 처음 오는 것 같지 않은 기분. 이쯤에 주유소가 있고, 이쯤에 샵이 있을 거라고 예측하면 하면 희한하게 딱딱 들어맞는 겁니다. 대체 이 기시감, 데자뷔는 뭘까 하고 있는데 옆에 탄 기자가 단번에 답을 알려주더군요.

"어, 여기에 제 집 있는데 / "뭔소리에요?" / "GTA5 온라인에 제 집이 여기에... " / "Aㅏ..."

이 건물, GTA5에서도 본 적이 있죠. 분명히!

GTA5의 퍼시픽 스탠다드 은행! 정말 비슷합니다.

...그래서 익숙했던 거군요. 아마 GTA5를 플레이한 유저라면 정말 익숙할 겁니다. 도로부터 건물까지도요. 산타모니카 해변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로스엔젤레스는 편안하면서도 재미있는 도시였습니다. 한인 타운에 들어가니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 그러고 보니 해외 취재에 나가 이렇게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본 적도 처음이네요.

일단 취재 첫날은 E3의 시작 전 날입니다. 그래서 멤버를 나눠 현장과 컨퍼런스를 방문했죠. 미국에서는 택시가 아주 비싼 교통수단이라, 대부분은 '우버'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저렴하면서도 친절하고, 따로 대화도 필요 없거든요.

XBOX 브리핑(컨퍼런스) 현장. 녹색입니다!

여기는 소니 프레스 컨퍼런스 현장입니다. 푸르죠?

저는 먼저 MS 컨퍼런스의 현장에 다녀왔고, 이후 E3가 열리는 컨벤션 센터로 합류했습니다. MS 컨퍼런스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몇 년째 같은 곳에서 열린 컨퍼런스라 그런지 익숙했고 관람객들도 정말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행사 전 날 도착한 컨벤션 센터는 생각보다 경비가 삼엄했어요. 보통 기자들이 살짝살짝 들어가서 사진을 촬영해 사전 풍경기를 올리기도 하는데, 사진을 못 찍게 막더군요. 그래서 그냥 유리벽에 달라붙어서 보고 있으니 저리 가라고 하기까지... 뭔가 '유출'에 크게 신경을 쓴 것 같았습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일정은 많지 않았고, 이후의 취재 일정을 다시 확인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지금 쉬어두지 않으면 안 돼요. 아무리 힘들지 않다고 해도 긴 비행에서 쌓인 피로는 모르는 곳에서 남아있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멤버들이 적당히 취재를 마치고 쉬기로 했습니다. 본격적인 취재는 E3가 시작되고 시작합니다.

E3 이틀전부터 열린 EA 플레이 행사. 전 날에는 주로 여기를 취재했죠!

그래도 수문장인 뚱코보까지는 볼 수 있었어요.



취재를 시작합니다. E3는 '판단'이 정말 중요합니다.

E3는 세계 3대 게임쇼 중에 가장 먼저 시작합니다. 그래서 모든 정보가 E3에 몰려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E3부터 게임스컴을 지나 도쿄게임쇼까지 지나면 정확히 연말에 출시가 되는 메커니즘이죠. 그래서 게임사들에게 E3는 상당히 중요한 행사입니다.

가장 먼저 시작하지만, E3는 다소 폐쇄적인 행사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적인 성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입장료가 정말 비싸요. 100만 원이 넘죠. 그래서 일반인들은 대부분 참가하기가 힘듭니다. E3에 참가하는 사람들 중 7~80%는 업계 관계자나 기자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자휴게실. 여기도 제법 빨리 열리는데, 신분 검사가 엄격합니다.

여긴 기자실입니다. 이쪽이 인터넷이 훨씬 빠릅니다.

행사의 시작은 10시. 그전부터 기자실은 열려있어 짐을 풀고 그날의 일정을 마지막으로 체크합니다. 인터뷰 일정이나 시연 일정, 때로는 부스의 상황을 고려해서 유동적으로 계획을 짜야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유익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니까요. 취재가 시작되면 숨돌림 틈도 없습니다. 그나마 잠시 숨돌릴 틈은 정오 즈음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어야죠?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일정이 빡빡하다면 대부분은 거릅니다. 기자실에서 나눠주는 식사는 받기가 정말 힘듭니다. 전 세계에서 오는 모든 기자들이 30분 전부터 식사를 받으려고 줄을 서있거든요. 차라리 후딱 먹고 와서 다른 취재를 하는 게 낫죠.

점심시간을 찍어봤습니다. 밥은 먹어야죠.

E3는 기자 입장에서는 친절한 게임쇼는 아닙니다. 그래서 기자의 판단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가 기자, 혹은 관계자니까 누군가에게 혜택을 주지 않아요. 단순히 사진만 찍는다고 하면 대기열이 길어도 들여보내주는 부스가 있는가 하면, 사진조차도 엄격히 제한하는 부스가 있습니다.

또 어떤 부스는 취재를 하려면 기자 등록을 하고 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자 등록을 하려고 했더니 등록 데스크에 아시아 세션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어요. 당황스럽죠. 이럴 땐 뭘 해도 안되는 거니까 일단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E3가 일 년 내내 열리는 것도 아니고 제한 시간이 있으니 그 시간 안에 최대한 취재거리를 찾아나가야 합니다. 물론, 몇 시간을 걸려서라도 취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면 다른 취재를 포기하고 기다리는 인내심도 발휘해야 합니다.

E3는 유난히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꾸준히 동료 기자들과 현재 상황을 공유하고 취재 일정을 픽스에 나갑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기삿거리를 쌓아나가고, 당장 기사는 작성하지 못하더라도 산더미 같은 사진과 워딩을 꾸역꾸역 메모리에 채워 나갑니다.

아, 그리고 E3는 정말 코스프레가 드문 행사이기도 하죠.

그래도 간신히 몇 장은 건졌습니다.



■ E3 2016 핫이슈는? "I`m Back" 코지마, 노선을 달리한 MS와 소니.

▲ E3 2016 소니 컨퍼런스에서 깜짝 등장했던 코지마 히데오

이번 E3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이슈는 뭘까요? 현장에서 느낀바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누구나 인정할만한 으뜸 이슈는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복귀 소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소니 컨퍼런스에서 무대에 오른 코지마 감독, 그의 짤막한 한마디 "I`m Back!"은 정말 환호를 이끌어냈죠.

지난해 코나미와 결별한 이후 코지마 프로덕션을 설립한지도 어느새 반 년이 지났고, 이번 컨퍼런스에서 코지마 감독은 조금 괴기스러운 트레일러를 공개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이름의 이 게임은, '잠입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붙여주었던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처럼 지금까지 볼 수 없던 방식의 플레이를 선사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원래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발표하려고 했지만, 팬들의 열성적인 요청에 화답하려고 일정을 상당히 앞당겼다고 합니다. 새로운 장르를 정립할 만큼 멋진 작품을 보여준 코지마 감독. 그의 신작인 '데스 스트랜딩'도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번 컨퍼런스에서 최초로 '스콜피오'와 'XBOX ONE S'를 공개했습니다. 일단 XBOX ONE S는 간단히 말해 슬림형 모델입니다. 기존 XBOX ONE보다 약 40%가량 줄어든 크기, 그리고 무시무시했던 크기의 어댑터를 내장하면서 케이블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일단 사양도 기존 모델보다 업그레이드됐고요.

그리고 이번에 최초로 공개한 '스콜피오'는 VR 시대에 대응해 월등해진 그래픽 성능을 대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신형 콘솔입니다. 일단은 파트너사들이 '스콜피오'의 스펙에 맞춰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공개만 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스콜피오 자체는 XBOX의 콘솔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지니게 된다고 합니다.

소니 역시 디바이스에 대한 소식을 내놓았습니다. 소니 측은 E3 직전에 신규 콘솔 'PS NEO'의 존재를 공식 인정했지만, 이번 E3에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PS VR'의 출시일을 공개했죠. 가격은 미국 기준 399달러, 그리고 PS VR의 런칭 타이틀은 약 50종으로, 그중에는 '섬머 레슨'을 포함해 다양한 게임들이 준비됐습니다.

▲ XBOX ONE S도 눈앞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공개된 소니와 마소의 정책이 서로 좀 다르다는 점이랄까요?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 독점이 아닌, 'Windows10'으로의 확장을 선택했습니다. 독점의 메리트 대신 확장을 선택해 더 많은 유저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죠. 반면에 소니는 철저하게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많은 양질의 타이틀과 독점. 확실히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공개된 타이틀의 수는 소니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무게도 더 쏠려 보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타이틀이 적었던 건 아닙니다. '기어즈오브워4', '포르자호라이즌3', 이나후네 케이지의 신작 '리코어'를 비롯해 '헤일로워즈2'까지. 게다가 '데드라이징4'를 포함한 다섯 타이틀은 한국어화도 확정됐죠. 이외에도 카미야 히데키의 신작 '스케일바운드'와 위쳐3의 진국 미니게임 '궨트', '스테이트 오브 디케이2', '시 오브 시브즈'등의 다양한 타이틀의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소니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일단 앞서 언급한 코지마 히데오의 신작 '데스 스트랜딩'도 있었고, '레지던트 이블7', 완다와 거상 개발팀의 신작 '라스트 가디언', 게릴라 게임즈의 '호라이즌 제로 던', '콜 오브 듀티: 인피니티 워페어'와 '파이널판타지15', '스파이더맨', '마피아3', 정말 많죠.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스파르탄 크레토스, '갓 오브 워4'를 기대작으로도 꼽을 수 있겠네요.

양사의 전략은 달랐지만,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즐겁습니다. 신작은 풍성한 편이니까요. 게다가 깜짝 놀랄만한 한국어화 소식까지 이어졌으니,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즐거운 컨퍼런스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고 기대작은 뭐냐고요? 당연히 EA의 '배틀필드1'이죠. 끝내줍니다 이거.




석양이 진다…이제 일이 시작된다.


자, 다시 취재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일단 E3도 다섯시가 되면 슬슬 입장을 제한하거나 시연을 종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섯시경에는 모든 부스가 행사를 종료하고, 사우스홀과 웨스트홀 모두 닫힙니다. 그나마 기자실은 일곱시까지 오픈하는 관대함을 보여줍니다. 일곱시가 되면 비로소 모든 행사장의 문이 닫히고, 그날의 행사가 종료됐다고 할 수 있죠. 그 즈음 행사장 밖을 나와보면 석양이 집니다.

기자들의 일은 석양이 진 후부터 제대로 시작됩니다. 그동안 쌓았던 취재거리를 정리하고 기사로 만드는 것이죠. 행사장을 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인 입장입니다. 같이 간 동료 기자들도 오늘의 기사가 몇 개 남았나 곱씹어 봅니다. 저녁을 간단히 먹으면서 마지막으로 그날의 취재를 다시 체크해보고, 작성할 기사를 정합니다.

다행히 E3는 행사가 종료되고 숙소로 이동할 즈음이면 한국에서 다른 동료 기자들이 출근하는 시간입니다.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기사를 맞추고 조율해나가고, 조금씩 조금씩 취재한 기사들이 올리기 시작합니다. 시연기라던가, 인터뷰, 혹은 부스 풍경이나 개발자와의 프레젠테이션에 대해서 기사를 만들기도 하죠.


즐겁게 퇴장하지만, 기자들은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거죠.

기사를 작성하다 보면 시간이 훌훌 지나갑니다. 보통은 새벽 2-3시쯤에 작성을 마치고 수면을 취하죠. 절대로 잠을 안 자면 안 됩니다. 며칠 동안 강행군이 이어지지만, 몸이 피곤해도 정신이 버틸만하면 어떻게든 취재거리를 쌓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면 취재를 망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기자들에게 휴식을 권합니다. 밤을 샐 수 있는 날은 단 하루뿐입니다. 이튿날 취재가 없을 경우죠. 보통은 행사 마지막 날이나 귀국 전날이 밤을 새워서 기사를 작성하는 날이 됩니다만, 이번 E3에서는 행사가 끝나고도 다른 취재가 있어서 밤을 새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최대한 효과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계획을 짰죠.

그래도 피곤하고 졸린건 어쩔 수 없으니, 보통 이친구가 항상 따라옵니다.



■ 세계 3대 게임쇼 E3, 그런데 게임사들 참전상태가…?

앞서 말한 취재 과정들은 대부분의 해외 게임쇼에서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E3가 좀 더 엄격하고 불편하다는 것뿐이죠. 일반 유저들이 대부분 오지 않기에 가장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대신 몇몇 부스들은 어느 정도(?) 취재에 대한 혜택을 주긴 하는데, 다른 게임쇼와 마찬가지로 일반 관람객들이 불편할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자들의 대우를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행사가 끝난 이후에 잠깐 파티를 열어 시연 시간을 준다거나, 출입을 등록한 기자에 한해 비즈니스 룸에 설치된 데모를 플레이할 수 있는 정도죠.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개된 게임들의 데모를 플레이할 수 있는 곳이 E3인데요. 플레이해볼 수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이번 E3는 어땠냐고요? 모든 해외 게임쇼를 다녀온 기자들의 감상을 비슷할 겁니다. "힘들지만, 재미있었다"고요. 난생처음 보는 게임들을 직접 만나서 플레이해보고, 때로는 개발자들이 직접 설명해주기도 하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E3 역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뭐, 다 그렇고 그런 거죠. 또 가라면 가겠냐고요? 물론이죠!


하지만 좀 걱정이 됩니다. 이번 E3를 유심히 지켜본 분들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타이틀 수가 적었어요. 의외로 출전하지 않은 게임사도 제법 있었고요. 대표적으로 '세가'는 아틀라스의 부스에서 추가로 데모를 공개한 것에 그쳤습니다. 액티비전은 애초에 출전하지를 않았고요. 신작이 없다면 충분히 그럴만한데, 두 회사 모두 신작들이 없는 편은 아니거든요.

출전 타이틀이 줄어서 그런지, 공간이 제법 많이 비었습니다. E3의 행사장 크기는 작은 편은 아닙니다. 음, 가늠하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지스타의 행사장 두 개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사우스홀과 웨스트홀 모두 벡스코 제1전시장 정도의 크기죠. 작은 공간도 아니지만, 차이나조이나 게임스컴, 도쿄게임쇼에 비해서는 규모가 정말 작습니다.

그런 홀인데도 비는 자리가 많다? 출전하지 않은 게임사들이 많다는 건 뭔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게임쇼에서 홍보할만한 타이틀이 없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었겠지만 반대로 게임쇼에 나가는 메리트가 줄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죠. 무리하면서까지 참전할 필요는 없다, 정도로요.

E3의 주력 타이틀은 대부분 콘솔에 모여있습니다. PC 온라인 게임이나 패키지, 모바일 게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습니다. 실제로 모바일 게임을 볼 수 있었던 건 몇몇 소형 부스를 제외하고는 스퀘어에닉스 부스 정도. 정말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우스홀은 가득 찼지만, 텅 비어버린 부분이 유난히 눈에 띄던 웨스트홀을 볼 때는 정말 허탈했습니다. 게이머들의 천국이라고 불릴 게임쇼, 그중에서 으뜸인 세계 3대 게임쇼 중 하나인 E3가 이렇게 초라해 보인다는 것에 정말 가슴이 답답해지고 먹먹해지더군요.


족히 대형 부스 2-3개는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비어있다니요.



■ "게임쇼도 이제 변화를 연구해야 할 때"


게임쇼는 언제나 '메리트'가 있어야 합니다. 메리트가 있어야 방문객이 많아지고, 방문객이 많아야 또다시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에 업체들의 참전 메리트가 생겨나죠. 많은 업체가 또 많은 타이틀을 들고 온다면 다시 유저들도 더욱 많이 방문할 거고요. 그렇게 순환고리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메리트가 사라진다면, 부족해진다면? 그건 게임쇼의 수명을 흔들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위기가 오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스마트폰이 일상으로 파고들고 많은 게임사들이 모바일 게임을 만들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솔직히 말해 게임쇼에 참전하는 메리트가 크지 않아요.

VR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은, 현재로서는 분명히 게임쇼에 정말 딱 맞는 플랫폼입니다. 일단 보급화가 덜 된 데다가 휴대성과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 경험해볼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기에 게임쇼의 메리트를 크게 늘려주죠. 하지만 VR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취재가 어렵다는 단점과 경험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거기다 공간도 많이 잡아먹고요. 게임쇼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뚜렷한 것이 VR입니다.

VR은 정말 게임쇼에 어울리죠. 하지만 단점도 그만큼 뚜렷합니다.

메리트가 줄어든 부분에서 하나 더 덧붙이자면, 바로 '인터넷 스트리밍'의 존재입니다.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으로 이번 E3는 약 4,200만의 누적 시청자 수를 기록했어요. 방문객도 7만 명 이상으로 지난해보다 늘긴했죠. 하지만 스트리밍으로 모든 콘텐츠를 노출할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E3에 참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겁니다.

대표적으로 EA의 경우는 E3에 부스로 참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사의 게임들로만 채운 EA Play를 행사장 바로 옆에서 열었죠. 게다가 E3보다 기간도 살짝 앞당겨서 시선이 집중되도록 전략을 짰고, 실제 행사장도 잘 꾸며놨고요.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이 행사를 지켜봤습니다.

물론 인터넷 스트리밍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만큼 방문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노출도 훨씬 더 올라가니까요. 그리고 이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수익모델도 추구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가상입장권 같은 형태로요. '스트리밍'은 시대에 맞는 변화지만, 반대로 게임쇼의 참전 메리트를 줄이는 약점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타이밍, 위치, 행사 퀄리티까지 잡은 EA PLAY.

E3뿐 아니라 TGS, 게임스컴, 그리고 지스타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시대에 맞는 게임쇼로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대중화를 이룬 스마트폰,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VR이라는 새 플랫폼들은 게임쇼 입장에서는 빠른 시간에 소화하기에는 무리였다고 봅니다. 스마트폰의 경우는 대중화와 보급 속도가 워낙에 빨라 전시 문화가 따라잡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이제는 진지하게 PC와 콘솔로 가득했던 게임쇼에서 두 플랫폼이 어떻게 녹아들어야 할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한 게임쇼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게임쇼 주최측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최측 뿐 아니라 게임사들도, 유저들도 같이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죠. 한쪽에서 하는 일방적인 고민이 아닌 쌍방향의 의견 교류가 더 좋은 게임쇼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 게임쇼는 변화를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이번 E3에서 정말 절실히 느꼈습니다. 세계 3대 게임쇼들의 위상을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게임쇼들의 위상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무쪼록 모든 게임쇼들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훌륭한 전시 문화로 다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게이머 입장에서 우리들의 가장 큰 축제가 초라해지는 모습이 반가운 건 아니잖아요? 축제는 축제답게, 정말 멋진 소식과 즐거운 일들이 가득한 게임쇼의 모습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