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조이 2016 무대를 방문하면서, 나는 한 가지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재작년부터 트렌드의 흐름을 타기 시작한 VR은 작년 한 해동안 수많은 게임쇼에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해왔다. 주변에 늘어놓는 장식품이 아닌, 진짜 '주인공' 말이다.

하지만 올 해에 이르러, VR은 작년의 열기에 비하면 다소 한풀 꺾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이들의 기대처럼 등장과 동시에 폭발적인 시장이 열리지도 않았고, HMD 구매를 촉진시킬 킬러 콘텐츠 또한 마땅히 등장하지 않았다. 작년의 VR이 실체없는 희망 덩어리였다면, 올해의 VR은 실체는 존재하지만, 기대만큼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해야 할까?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국 시장이 궁금했다. 중국 게임 시장은 세계 그 어떤 시장보다도 변화에 민감하고, 상업적인 방향성을 갖고 있는 시장이다. 좋은 시스템은 아무런 가책 없이 배껴오고, 조금이라도 돈이 안될 콘텐츠는 과감히 버린다. 마치 깊은 바닷 속을 은색 물결로 수놓는 정어리 무리와 같다.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향을 통해 몰아치는 괴물과도 같은 집단이다. 이들은 현재의 VR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려 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현장에 다 도착한 상황에서, 미리 약속도 잡히지 않은 VR 전문가를 만나고 싶어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FPS 게임 '포인트블랭크'로 유명한 개발사 '제페토'의 전유영 PM을 만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VR 그룹장'이라는 직책을 겸하고 있는 그녀에게 현 시점의 VR과 중국 시장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 제페토 VR 그룹장 전유영 PM



Q.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제페토에서 일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들려줄 수 있는가?

원래는 일본 쪽에서 퍼블리싱 일을 해왔고 그라비티에서 개발 PM으로도 근무했다. 이후 업계를 돌아다니며 몇 개의 게임에서 실패를 겪기도 하고 지금도 서비스되는 게임의 해외 서비스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제페토에 와서 신작 총괄 PM을 맡게 되었고, 동시에 VR 그룹장도 맡게 되었다. 게임업계에서의 기간만 따지면 12년 정도 한 것 같다.


Q. VR 그룹장은 다소 생소한 직책인데, VR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

작년부터 대표님께 말씀을 드려왔다. VR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인데, 아무 대응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다행이라면 제페토의 대표님이 워낙 새로운 기술과 상품에 관심을 두고 계신 분이라 정해지고 나니 지원을 아끼지 않고 계신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제페토라는 게임사의 핵심 DNA는 '개발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엔진을 만들고, 개발이라는 분야에 한해서는 R&D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가 기름을 부은 거다. 대표님 또한 새로운 기술과 분야에 대해 항상 호기심을 표하고 있었고, 열망을 품고 계셨다. 그 불씨에 VR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기름을 부은 격이랄까? 지금에 와서는 너무 아끼지 않고 지원을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다른 분들에게는 조금 미안할 정도로 지원을 해주시고 계신다. 물론 언젠가는 그만큼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느끼고 있다.

▲ 홍대 근처의 Z:PC도 제페토가 운영하고 있다


Q. 제페토 VR팀은 현재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가?

올해 1월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아직은 장르와 플랫폼, 그리고 엔진에 대한 R&D를 진행 중이다. VR에 대해 진입하고, 배우는 단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몇 년 후, 어떤 하드웨어, 어떤 플랫폼에서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VR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격이다.

올해 말까지는 대략적인 연구개발 과정을 마치고 세 종류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일단 간단한 프로토타입은 하나 정도 만들어둔 상태고, 11월까지는 최고급 VR 하드웨어에서 구동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만들 예정이다. 그 후 내년 즈음에는 VR 타이틀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려고 생각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VR 개발자들이 아마 어떤 콘텐츠가 VR 게임의 대세가 될지 궁금해할 것이다. 우린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떤 상황이 온다 해도 시장 상황에 맞춰 적응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려고 한다. 어떤 HMD를 쓰냐에 따라 개발 상황은 모두 달라진다. 개발 과정에서 겪을 위험이나 HMD에 따른 장르적 이점 등등, VR 산업에 대한 모든 '기본'을 파헤치고 있다.


Q. 제페토 하면 '포인트블랭크'를 비롯해 슈팅 게임에 전문화된 개발사라는 느낌이 든다. VR 작품은 슈팅이 아닐 수도 있는 건가?

물론 슈팅이 아닌 다른 게임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만든 첫 번째 프로토타입의 기본은 슈팅이지만, 조금의 변경만 가해도 매우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슈팅의 틀을 깰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 슈팅이 가장 적합하지만, 기존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Q. 국내 VR 시장은 아직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 보는가?

세계적으로도 아직 시장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 올 초에 전격적으로 조사를 해 보니 북미와 유럽, 일본 정도는 최고급 HMD 시장이 갖춰질 기미가 보이지만 국내는 간단한 모바일 VR 기기 정도를 사서 체험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제대로 된 하이엔드 시장이 열리려면 2-3년의 세월이 더 필요할 거로 생각한다.


Q. 직접 와서 중국 시장을 보니 어떤 것 같나?

생각보다 하이엔드 HMD의 보급이 정말 잘 되어 있더라. 북미를 비롯한 서구권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는 수준이라 상당히 놀랐다. 하지만 아직 콘텐츠 자체는 모바일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은 것 같았다. 하이엔드용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엄청나게 많은 HMD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눈에 띄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중국산'이라는 딱지 때문에 별로 좋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하드웨어 개발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부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 VR은 이미 그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분야였다.


Q. VR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킬러 콘텐츠'다. 사람들이 콘솔 게임기를 사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된다. 대중들이 콘솔 게임기를 사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대부분 어떤 특정한 게임을 하기 위해서 산다. 라스트 오브 어스를 하기 위해 PS를 산다거나, 기어즈오브워를 하기 위해 엑스박스를 구매하듯이 말이다.

VR 또한 HMD를 살 만한 이유가 되어줄 콘텐츠가 나와야 한다. 현재의 HMD는 구매의 이유를 확실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신기해서 살 수는 있지만, 꼭 사야 될 이유가 없는 거다. 아마 내년 즘이면 괜찮은 킬러 콘텐츠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Q. 모바일 VR은 그럭저럭 보급되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모바일 VR이 딱히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퀄리티나 완성도가 문제가 아니다. 모바일 VR 콘텐츠는 하드웨어 상의 한계 때문에 하이엔드 HMD로 구동하는 VR보다 훨씬 모자란 퀄리티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가장 문제는 이 때문에 잘못된 인식이 퍼져버린다는 거다. "VR 그거 내가 해보니까 생각보다 별로더라.", "멀미만 나고 재미는 없다", "너무 빨리 과열돼서 오래 할 수도 없다" 뭐 이런 인식들이 대중 사이에 퍼지게 된다.

▲ 사실상 '신기함'이 한계인 모바일 VR


Q. 그럼 제페토에서는 현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가?

물론이다. 우리는 VR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 중이다. VR보다는 페이크 3D에 가까운 HMD 활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가벼운 포팅을 통해 PC 모니터를 모바일 HMD상 화면으로 올리는 거다.

사실 이는 VR보다는 HMD의 다양한 활용법 중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영화 애플리케이션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를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게임 플레이나 PC 활용에 몰두할 수 있고 비교적 불편하지 않게 HMD라는 기계에 적응할 수 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HMD 자체의 구조를 파헤치거나, 멀미 같은 이슈를 말하는 것보다 시장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성장시킬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