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게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를 위해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대는 사람들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운동에서는 도핑이 문제가 되듯, 게임계에서는 소위 말하는 '핵'이 문제로 나타났다.

불법 프로그램이 원인이 된 이슈들은 올해 초부터 계속해서 발생했고 결국엔 업계를 뒤흔드는 이슈로 번졌다.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개발사는 신뢰를 잃어버렸고, 타 게임에선 프로를 바라보던 선수가 핵 사용 의혹에 시달리다가 이를 해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동안 소수가 음성적으로 사용하던 불법 프로그램은 이제 기업적이자 대규모로 덩치가 성장해, 업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개발사는 물론이고 선량한 유저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한 법적인 장치들도 논의되는 실정이다.

이번 게임이슈'콕!'은 유저와 개발사 모두에게 피해를 미친 '게임 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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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NUCLEAR BOMB?" - Hack이란 무엇인가


'핵'이란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게임계가 사용할 때에는 'Hack'이란 의미를 띈다. 해킹과 같이 특정 정보를 취득하는 것을 의미하며, 최종적으로 '불법 해킹 프로그램' 자체를 지칭하는 명사로 표현된다. 게임 클라이언트가 서버로 전송하는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게임 데이터 일부를 수정하여 개발사가 의도한 바와 다른 동작들을 수행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나 기기들이 이에 속한다.

▲ 이게 아니다...

넒은 의미로 따지자면, 게임 내 데이터에 손을 댄다는 점에서 애드온이나 MOD들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게임사에서 소스 일부를 공개 또는 인정하는 범위를 벗어난 것들만을 '핵'이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개발사가 허용한 틀 안에서 유저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MOD들이나 부가 기능이 일부 코드를 건드린다고 하여 전부 핵으로 취급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다만, 과거의 '트레이너' 또는 '에디터'라고 통칭하던 프로그램들도 게임 클라이언트 또는 세이브 파일 (메모리)의 정보를 사용자가 임의로 수정하는 행위-데이터 위변조- 라는 측면에서는 본질이 같다 하겠다.


"세이브 파일 에디터? 트레이너?" - 정보 위변조의 시작


당시의 에디터나 트레이너들은 기본적으로 치트키와 유사한 성질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사에서 의도적으로 넣어놓은 치트키와 같은 개념보다는 데이터를 직접 수정하는 기기나 외부 프로그램에 가깝다. 소위 말하는 '액플'이나 'GameShark', '치트 오매틱', '치트 엔진'같은 프로그램 또는 하드웨어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와 같은 툴들은 게임 세이브 파일 또는 게임 실행 도중 데이터와 코드를 수정하여 게임 플레이에 도움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복작업 없이 골드를 무한대로 만든다든가, 숨겨진 아이템이나 NPC들을 사용하는 등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출시된 유구한 게임 툴, 게임샤크

사실, 이 시기까지 사용자가 직접 시도하는 위변조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는 혼자서 즐기는 싱글 플레이 게임들이 대부분이었고 게임 진행 도중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함에 목적을 뒀다. 문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세이브 파일이 손상되거나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 해지는 등 개인적인 문제에만 머물렀다.

게임 핵으로써 문제가 시작된 것은 온라인 플레이가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부터다. 이전까지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방편으로써 핵을 사용했다면,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남에게 승리하기 위해' 핵을 사용하는 추세로 변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도 치트키를 치고 싶은 마음?" - 본격적인 '핵'으로의 진화


개인적인 성취감이나 감동을 즐기던 것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시대로 넘어가며 게임 핵들은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핵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아졌고, 이로 인해 정상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피해받는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핵 제작자 측도 점차 전문화되는 추세다. 프로그래밍 구조가 점차 치밀해지고 있고, 게임의 구조적인 빈틈을 노려 만들어내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전장의 안개를 없애 버리거나, 총알이 벽을 뚫고 지나가거나, 갈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등 핵 프로그램 자체의 성능도 천차만별로 다양해졌다. 인터넷이 보편화 되면서 핵 프로그램들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를 심화시켰다.

▲ FPS의 '에임봇'과 같은 핵 프로그램은 아직 사용되고, 막고를 반복 중이다

이로 인해 대규모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MMOG에서는 경제 구조가 붕괴하거나, FPS나 RTS에서는 핵 프로그램 때문에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어려워지는 사례까지 나오기도 했다. 대규모 리그를 진행 중인 게임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자칫하다가는 선수나 리그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문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게임사로써는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게임 내에서 지원하지 않는 기능들을 구현한다는 특성상, 클라이언트나 패킷 위변조는 따라올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일부 게임사에서는 제작 자체를 막기 위해서 제작사를 고소하는 등 법적인 절차를 밟기도 했다.

▲ 블리자드가 제출한 고소장의 일부(출처 : TorrentFreak)

그럼에도 여전히 핵 프로그램 제작사들은 남아있으며, 피해를 보는 유저들도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여전히 본질적인 방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핵을 제작 및 사용해서라도 남보다 우위에 서야만 한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롤 헬퍼와 게구리" - 게임 핵 때문에 발생한 실제 사례들


이제 게임 핵 문제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을 넘어서 업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핵을 사용하는 개인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방치하려는 모습을 보인 개발사 측에도 책임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작년에 일어났던 '롤헬퍼' 논란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인벤의 '구리구리딸' 유저의 게시글에서 시작된 논란은 '라이엇 게임즈의 운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해당 유저는 게시글을 통해 2년 동안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가 헬퍼를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게시물에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관계자가 직접 댓글을 달고 해명을 했으나, 유저들의 분노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로 게임 핵 문제에 대처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저들의 제보와 분석 자료들에도 별다른 대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개발, 운영사가 보인 비인가 프로그램에 대한 방관적인 태도에 유저들은 불만을 터뜨렸고, 게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상대방과 대결을 하는 것이 주목적인 게임에서 핵으로 인해 공정함이 사라진 것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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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자체에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해당 게임과 연관된 모든 산업에게 피해가 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게임의 운영과 처리 방식에 대한 불만이 단순히 게임 하나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당 게임을 대상으로 열리는 리그, 관련 상품 같은 부가 산업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는 이 사건을 겪고 난 뒤, 게임 핵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사태를 수습하는 데 애쓰기 시작했다. 핵 개발사에 대한 법적인 대응을 준비하는 한편, 2016년 4월까지 6만여 개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키는 등의 핵 박멸 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창과 방패, 핵과 개발사의 싸움에서 미온적인 태도가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올해 초부터 게임 핵 때문에 진통을 겪은 유저들은 이제 핵 사용자라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암암리에 사용되는 것이 게임 핵이었으므로, 이를 색출하기 위한 유저들의 제보들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해프닝이 '게구리 김세연 선수의 핵 사용 의혹'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오버워치 넥서스컵 한국 대표 선발전. Dizziness와의 8강 경기에서 김세연 선수가 사용한 자리야가 360도를 돌아보는 화면에서 아군이 있는 위치를 가리키며 조준선이 머뭇거렸다는 것에 핵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는 1초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아군 4명의 위치를 정확히 조준한 것 때문에 '에임 핵'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 의혹이 제기된 장면의 느린 재생. 아군의 위치를 정확히 가리킨다.

핵 사용 의혹에 당사자인 김세연 선수는 본인의 플레이를 실제로 보여 줌으로써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결백함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인벤 방송국에서 진행된 오프라인 플레이를 통해 핵 사용이 아닌 실력임을 보여준 것이다. 게다가 블리자드 측에서도 로그 분석을 통해 선수의 결백함을 증명해주며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해당 의혹은 결과적으로는 선수 자신의 뛰어난 실력과 관전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오해로 발생한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게임 핵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를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고 게임 내의 공정함이 위협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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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냥 옴닉보다 더 옴닉같은 실력자였던 걸로...


"제재할 수 있을 것인가?" - 게임 핵에 대한 논의와 미래는?


일종의 도덕적 해이를 기반으로 사용되는 것이 '게임 핵'이지만, 이를 유통하는 측과 제작하는 측 모두 적발 시 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저작권법과 관련하여 고소를 진행하더라도 법리적으로 손해액을 추산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소송을 진행하다가 패소 당하는 사례까지 나오기도 했으며, 벌금이 나오더라도 핵 개발사가 벌어들인 액수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에 그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 핵의 법리적 처리와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들은 국내에서 나름의 해결이 나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국민의당 비례대표인 이동섭 의원이 지난 8월 12일 발의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 이번 개정안을 발의한 이동섭 의원 (출처: 이동섭 의원 페이스북)

법안의 골자는 '불법 사설 서버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제한과 처벌이다. 경찰과 게임물 관리 위원회가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적발해도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현재는 저작권법을 우회하여 처벌하는 것에만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게임물 관련 사업자가 제공 또는 승인하지 않은 게임물이나 이를 임의로 변경한 게임물을 제작, 배급, 제공 또는 알선하는 행위, 이에 따른 불법행위를 할 목적으로 프로그램이나 기기 또는 장치를 제작 또는 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들을 담고 있다.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 핵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설 서버까지 적용되는 법안이다.

'개발사가 승인하지 않은 위변조'라는 조건 때문에 유저 한글 패치와 같은 긍정적인 변조가 음성/불법적으로 변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게임 핵에 형법적인 처벌이 본격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반기는 유저들도 여럿 존재한다.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어떤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큰 영향을 미치리란 예상을 해볼 수 있을 듯하다. 게임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게임 핵'이 국내에서 사라질 수 있을지, 아니면 계속해서 살아남을지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할 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