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인터뷰를 맡기로 결정되었을때, 기자는 당혹감을 감출수 없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장르의 게임. 아니, 장르 자체는 접해 봤다. 그런데 그 소재가 생전 처음 만나보는 소재다.

게임 이름부터 '넌 이런거 한 번도 본적 없을 거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꿈왕국과 잠자는 100명의 왕자님' 피와 칼날, 불꽃과 총탄이 날아다니는 게임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자로서는 도전을 넘어 난관에 가까운 과제가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보니, 좋은 기회이며 동시에 시사하는 점이 많은 게임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다. 나 역시도 게이머로서 게임을 보게 된다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테다. 물론 그 전에, 이런 게임을 보기도 쉽지 않다. 게이머층은 언제나 남성의 비중이 높았고, 더 많은 소비자를 겨냥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시장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왕국과 잠자는 100명의 왕자님'과 같은 작품을 바라는 유저들도 존재한다. 요즘 들어 생겨난 것도 아니다. 언제나 존재해왔으나,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세시소프트의 공나연 PM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운몽'부터 '꿈왕국과 잠자는 100명의 왕자님'까지. 그녀가 추구한 게임은 언제나 한결같았으며 그간 들리지 않았던 게이머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막막했던 마음도, 점차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갔다.



▲ 세시소프트, 공나연 PM


Q. 만나서 반갑다. 먼저 간단히 본인 소개부터 부탁한다.

지금은 '꿈왕국과 100명의 왕자님(이하 꿈왕자)'의 한국 서비스를 총괄하는 PM인 공나연이다. 삼성전자의 게임 사업부에서 일하면서 처음 업계에 발을 디뎠고, '던전앤파이터'와 '붉은 보석'의 PM 업무를 도와 일했다. 이후 넥슨으로 자리를 옮겨 마케팅 일을 하다가 나만의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구운몽'의 개발 총괄을 맡아 런칭했다.


Q. 구운몽과 꿈왕자 모두 여성 유저 일부 계층을 노린 게임이다. 이런 장르의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게 된 이유가 있는가?

이쪽 게임 역시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한 시장이 있고,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다른 장르에 비해 유저들의 응집력이 굉장히 강한 편이다. '구운몽'의 개발도 그 생각에서 출발했다. 구운몽을 준비하면서 많은 체력을 소모한 상태라 한동안 쉴 수밖에 없었는데, 쉬면서도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여성향 게임이 더욱 커졌으면 하는 바람. 그 때문에 새로운 게임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고, 꿈왕자의 PM을 맡게 되었다.

▲ '구운몽'도 공나연 PM의 작품


Q. 이 '여성향 게임'의 시장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 다 그렇듯 시작이 가장 어렵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시장을 노리는 것이 더 쉬운 길이기 때문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미 대만과 일본 등에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시장이고, 실험적이나마 계속해서 게임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힘들다. 넥슨에 있을 때도 자주 회의감이 들곤 했다. 하지만 굳이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사명감에 기대지 않더라도, 내가 이런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이러브니키'와 '놀러와마이홈'과 같은 작품들의 성공을 보면 여성 유저들도 분명히 많이 존재한다. 동시에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 점에서 용기를 더 얻을 수 있었다.

또 한가지 마음을 꺾을 수 없었던 이유는 여성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이다. 게임 산업에 남성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종사자들도 적잖이 존재한다. 개발자들의 가장 큰 보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장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든다는 거다. 게임업계에 존재하는 여성 종사자들도 본인이 원하는 장르의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는 일단 이 시장 자체를 키워야 했다.


Q. '꿈왕자'는 일본에서 개발된 게임이다. 일본 내에서 원작의 반응은 어떤가?

맞다. 일본의 'G크레스트'가 개발하고, '사이버에이전트'가 퍼블리싱한 게임이다. 작년 3월경 출시했고, 1년 반 정도 서비스를 해왔다. 일본 내에서는 매출 순위로 10위권 안으로 진입한 적도 있으며, 지금 현재까지도 좋은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나 대만 등지에서는 이미 이런 장르의 게임들이 꽤 성공을 거두었고, 실험적인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 일본 내에서는 1년 넘게 서비스 중이다.


Q. 그렇다면 다른 게임도 많았을 텐데 '꿈왕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일단 게임 자체의 완성도가 높고 볼륨도 매우 크다. 최대한 좋은 게임을 한국에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꿈왕자'의 경우는 일본판을 받아서 즐기는 한국 유저들도 존재할 정도의 게임이기 때문에 제대로 한번 선보이고 싶었다. PM 역할을 맡으면서 게임에 대해 필연적으로 많이 공부하게 되었는데, 게이머의 측면에서 봐도 재미있는 요소들이 매우 많다. RPG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게임의 진행을 굉장히 감성적으로 잘 풀어냈다.


Q. 구체적으로 '꿈왕자'의 장점이랄까?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일단 많은 유저들이 RPG 하면 '주인공'에 주목하게 된다. 영웅인 주인공이 어떤 모험을 하게 되느냐가 거의 모든 게임의 주요 맥락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왕자'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의 역할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일종의 매개체가 되고, 진짜 이야기는 게임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왕자'들이 품고 있다.

새로운 왕자를 얻게 되면 그 왕자의 스토리를 알게 되고, 이 왕자를 성장시키다 보면 그 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진행된다. 왕자 한명 한명이 작은 연속극과 같다고 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캐릭터가 고레벨이 될 때 겪게 되는 '각성'도 두 종류(해, 달)가 있는데, 이때 어떤 각성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설정과 이야기전개가 변화한다.

▲ 정리하면 이 친구들도 다 사연이 있다는 것.

스토리에서도 보통 RPG에서는 영웅인데 일단 여기서는 캐릭터마다 스토리가 있다. 캐릭터를 얻게 되면 스토리를 볼 수 있고, 캐릭터를 성장시키면 성장을 할 수 있다. 감성적인 코드로 짜인 것.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각성 시스템도 있긴 한데, 각성 시스템 자체도 스토리상에서 선택지에 따라서 왕자가 변하는 거였다. 각성도 두 가지가 있다. 달 각성과 태양 각성 이에 따라서 그 캐릭터와의 이야기전개가 생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들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한계를 뚫고 성장하는 과정도 '한계돌파'가 아닌 '애정돌파'로 표기되며, 보통은 캐릭터를 갈아버리는 시스템도 여기서는 '작별'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진다. 훈련 또한 '교육'으로 표기해 보다 따스한 느낌이 들게끔 유도했다.


Q. 왕자가 100명이 넘는다고 했는데, 유저들이 좋은 왕자만 모으고 쓰는 일이 벌어지진 않나?

솔직히 사람인 이상 100명의 캐릭터가 다 취향일 수는 없지만, 100명 모두 '누군가의 취향'일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 포인트가 모두 다르므로 게이머들의 선택은 상당히 갈라지는 편이다. 내 경험을 예로 들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닌 캐릭터가 있었는데, 그 캐릭터에 얽힌 이야기와 설정을 보다 보니 점점 좋아지더라.

말이 '왕자'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보통 생각하는 스테레오타입의 왕자와 전혀 다르다. 어떤 왕자는 약속을 밥 먹듯 어기고 밉상 짓만 하는가 하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알고 보면 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는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상당히 입체적으로 짜여 있다. 아마 게임을 즐기면서 다른 친구의 게임 화면을 보면 확실히 나와는 다른 캐릭터를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Q. 듣기만 해도 게임의 볼륨이 상당한 것 같은데,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힘든 적은 없었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쉽지 않다. 말 그대로 양이 너무나 많다. 일본어로 이뤄진 문장만 30만 줄(참고로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의 총 대사 수가 약 6만 줄, '폴아웃4'가 약 11만 줄이다.) 정도 되는데, 이걸 초벌 번역으로 끝낼 수는 없으니 교차 검증 과정을 거치고, 동시에 각 상황에 맞는 정서 전달을 위해 말투나 단어를 바꾸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탈진할 것 같다.

음성은 보통 다른 게임은 한국 성우가 재녹음을 하지만 꿈왕자는 재녹음 없이 일본판 음성 그대로 준비했다. 일본판 자체가 일본 내 특 A급 성우들의 목소리로 녹음되어 있고, 현재 일본판을 플레이하는 유저 중에는 그 성우들의 팬들도 만만찮게 포진해 있다. 그래서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라도 따로 녹음하지 않는게 좋을 거라 판단했다. 솔직히 일본어를 모른다 해도 자막과 함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감성을 전달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 대사량으로 웬만한 콘솔 대작을 압도한다


Q. 100명의 왕자를 만나다 보면 가끔 여성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 남성상도 있을법 한데?

물론 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너무 제멋대로 행동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싶기도 하고, 하는 행동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주인공(주인공 캐릭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게 또 재미있는 게 이 캐릭터로 애정돌파를 하게 되면 '시크릿 스토리'가 발동되면서 이 캐릭터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보다 보면 그때 이 캐릭터가 왜 이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때도 있지만 그게 또 나쁜 경험은 아니다. 살다 보면 별별 사람 다 만나고 하지 않나.(웃음) 어떤 경우는 그냥 잘생겼으니 봐준다는 생각으로 키워보기도 한다.

▲ 100명이나 되다 보니 이해가 안가는 녀석도 있다더라


Q. 실질적인 게임 시스템인 '퍼즐'은 어떤가? 어렵거나 너무 쉽진 않은가?

게임의 규칙 자체는 어려울 수가 없다. 쉬운 한붓그리기식 퍼즐에 가까우니 말이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점점 생각하게 만든다. 색상에 따른 속성 관계라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질적으로 체감 난이도는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비슷하다. 사실상 게임 진행에서 이 '퍼즐'로 인한 허들은 없는 편이라 봐도 된다.

▲ 퍼즐은 허들 없이 간단한 편


Q. 섣불리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장르를 개척한다는 것은 확실히 멋진 일이다. 마지막으로 '꿈왕자' CBT를 준비하는 각오 한 마디 부탁해도 되나?

앞으로 더 다양한 유저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게임들이 많아지고, 그런 게임들이 비록 소수에게나마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게임시장의 목표는 항상 편중되어 있었다. 물론 시장의 논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있음에도 점점 단순해지는 시장의 구조는 늘 나에게 아쉬운 점이었다. 꿈왕자는 이를 조금이나마 막기 위한 도전 중 하나이다.


Q. 아! 깜빡했는데 CBT는 언제 진행하는 건가?

11월 초에 진행 예정이다.(웃음) 원하면 언제든 사전등록을 통해 신청할 수 있고, CBT 중에도 신청을 통해 게임을 해볼 수 있다.

▲ 사전 등록을 하면 얻을수 있는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