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적 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벵기' 배성웅이 팀을 떠난 것이다. 그간 SKT T1이 많은 선수를 떠나보냈고, 또 붙잡았지만, 항상 '벵기' 배성웅과 '페이커' 이상혁은 자리를 지켜서 일까. 왠지 모르게 SKT T1을 떠나는 배성웅의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이적 시장 이슈를 돌아봐도 '페이커' 이상혁, '뱅' 배준식, '울프' 이재완의 행보를 걱정했지만, 배성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정규 시즌에서 어떤 폼을 보이든 간에, 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 투수로 등장해 큰 경기에서 대부분 승리를 거뒀고 SKT T1의 월드 챔피언십 3회 우승을 만든 주역이 배성웅이다. 그런 그가 SKT T1을 떠났다. 국내, 해외 따질 것 없이 배성웅의 계약 종료에 충격을 받았다. 특히, 해외에서는 배성웅이 높은 확률로 은퇴할 것이란 루머가 돌았다.

그의 계약 종료 이후, 많은 외신이 '벵기' 배성웅이 은퇴할 것이란 뉴스를 다뤘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본 배성웅의 생각은 달랐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흑염룡 '벵기' 배성웅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흑염룡이 둥지를 튼 강동구청역 근처에서 '벵기' 배성웅을 만났다. 일산 SKT T1 숙소 근처가 아닌, 그의 집 근처에서 인터뷰할 줄은 예상도 못 했었다. 약속 시각에 맞춰 배성웅이 등장했고, 인사를 나눈 후 인터뷰가 진행됐다.

"안녕하세요. SKT T1의 정글러였던 '벵기' 배성웅입니다. 반갑습니다."

스스로도 SKT T1의 정글러였었다는 이 말이 어색한지, 소개 중간에 배성웅은 너털웃음을 터트린 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음... 숙소를 나온 지는 3일 정도 됐어요. 그 뒤로 쉬면서 팀을 알아보는 중이에요. 지금은 딱히 어떤 지역에서 활동할지 정해지진 않았어요. 북미, 유럽, 중국 다 상관없어요. 연락이 오는 대로 고려하고 있어요. 제가 스스로 찾아보려고도 하고 있고요."

"정글러가 필요하다면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원하시는 챔피언은 모두 연습할 수 있으니, 챔피언 풀에 대한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롤드컵에서 니달리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을 보셨죠?(웃음). 아, 그리고 특히 큰 경기에 강합니다."


웃음을 띠면서 자기 어필을 할 정도로 그는 쾌활했다. 4년간 몸담았던 팀을 떠난 아쉬움과 새로운 도전이 주는 설렘이 그의 표정에 교차하고 있었다. 인터뷰 초반이라 분위기가 어색해서일까. 깊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가 왜 팀을 떠나게 됐는지는 천천히 물어보자고 속으로 생각하고, 정석적인 질문부터 다시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게임을 접했어요. 그중에서도 중학교 때 '아발론 온라인'을 많이 했어요. 장르도 LoL이랑 같은 AOS였죠. 플레이 타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제가 2천 시간 정도 했더라고요. 공부를 잘하던 편은 아니라, '게임이라도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는 생각은 이때까지만 해도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 아발론에서 LoL로 넘어갔는데, 인기 있는 게임에서 랭킹이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로게이머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어느 순간부터 솔로 랭크에서 프로게이머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프로게이머를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게임을 좋아하고, 잘 하다 보니, 점수가 올라갔고 프로게이머들을 만나면서 욕심이 생겼다는 답. 지금까지 수많은 인터뷰를 했고, 대부분의 프로게이머가 위와 같은 코스를 밟더라. 뻔하지만 정석적인 답변이었다.

"사실 제가 프로게이머로서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은인은 김정균 코치님이에요. SKT T1 공개 테스트에 지원했었는데, 테스트 중간에 팀을 나왔어요. 함께 테스트를 봤던 다른 포지션 친구들이 하나 둘 떨어졌거든요. 생소한 환경에 친한 이들마저 없으니, 의욕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막상 다른 팀을 알아보니, 자리가 없더라고요. 때마침 김정균 코치님이 저를 한 번 붙잡아주셔서 테스트를 다시 보고, SKT T1 K에 입단했죠. 정말 다행이었어요(웃음)"

'벵기' 배성웅이 없는 SKT T1 K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김정균 코치의 선택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꿨고, 그 나비 효과가 SKT T1뿐만 아니라, 전 세계 LoL 씬에 영향을 줬다.


SKT T1 K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예전에 어떤 선수에게 들었던 일화가 생각이 났다. 멘탈이 강력하고, 배려심이 깊은 '벵기' 배성웅이 없었다면 SKT T1 K의 전성기는 훨씬 빨리 끝났을 수도 있단 내용이었다.

"저도 사람인지라 불만은 많았어요. SKT T1 K 시절 팀원들이 자기주장이 강했거든요. 그냥 참았을 뿐이에요. 사실 저는 남을 지적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주장은 때로는 큰소리도 치고, 지적도 해야 하는데 저는 좋게좋게 풀어가려고만 했었거든요. 그런데 원래 성격이 이래서... 돌이켜보면 상대방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기분이 상하고, 그 때문에 나를 싫어하는 걸 꺼렸던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주장인 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사람의 성격이 느껴졌다. 굉장히 낙천적이고,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자기반성까지 하다니, 정말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좋았다. 이어진 궁금증은 그 개성이 강력했던 SKT T1 K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잡음은 없었는지였다.

SKT T1 K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데뷔 시즌 3위, 그해 서머 시즌 우승, 롤드컵 우승을 해낸 전설적인 팀이다. 그러나 다음 시즌 SKT T1 K는 처음으로 실패라는 것을 경험했다. 다른 팀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갔겠지만, 누구나 인정했던 전 세계 최고의 팀이었기에 받았던 충격이 컸다.

"당시 정말 다들 힘들어했어요. 저희는 토론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인데, 경기를 질 때마다 피드백을 오랫동안 했어요. 부진의 이유에 대해 솔로 랭크의 비중을 높이자, 연습량을 더 늘리자 등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온 것은 밴픽에 대한 문제였어요. 어떤 챔피언을 먼저 뽑을 것인지, 5픽으로 뽑을 것인지 주장이 강한 선수들이 많아서 그때마다 저는 머리가 아팠어요(웃음)."

"성적이 좋지 않았던 14년도에 제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에요. 스스로 떳떳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요. 경기에서 지더라도 나는 다른 것을 안 하고, 연습만 했다고 자기 위로를 할 수 있었어요.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했죠. 그때 프로게이머 중에서 가장 많은 연습을 하자고 목표를 세웠고, 그렇게 했던 거 같아요."


프로게이머라면 필연적으로 슬럼프를 겪기 마련이다. 그때 중요한 것은 그 슬럼프를 어떤 방식으로 넘기느냐다. 팀원을 탓할 수도 있고,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회피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배성웅은 노력이란 두 글자를 버팀목 삼아 견뎌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경기력을 되찾지 못했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쳐도 나아지는 게 없을 때, 사람의 멘탈도 함께 무너지기 마련인데 배성웅은 노력 끝에 어떤 결론을 냈을까.


"형제 팀에서 단일팀으로 합쳐진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제가 부족하다는 걸 계속 느꼈어요.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죠. 대회 경기 도중 집중을 못 하고, 딴생각하는 걸 스스로 느꼈어요.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혼자 계속 고민했어요."

"아무래도 심리적인 문제가 컸다고 생각해서 김정균 코치님이나, 최병훈 감독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어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자신감'이에요. (임)재현이가 팀에 들어왔을 때, 경기를 조금 쉬면서, 관전을 했어요. 거기서 많은 걸 얻었어요. 신인인 재현이가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하는 거에요. 그걸 보고, 내가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구나, 이것만 되찾으면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각고의 노력 끝에 배성웅은 다시 실력을 되찾았고, SKT T1의 제2 비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팀의 성적과 무관하게 배성웅에게 쏟아지는 비판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비판은 저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해요. 저는 '내가 만족할 만큼 열심히 했으면 난 괜찮다'라는 마인드거든요. 팀원들은 그게 안 돼서 많이 힘들어했던 거 같아요. 팀원들에게 저는 항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어요. '우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반대의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다. 프로게이머라면 당연히 안고 가야 하는 문제다'라고요."

외부의 비판은 그렇다 쳐도, 세 번의 롤드컵 우승에도 바뀌지 않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진 않았을까. 쌓여가는 상금과 명예가 모든 부분에서 위안이 되어주진 못한다.

"물론, 선수 생활이 길다 보니 매일 똑같은 생활과 패턴에 염증을 느낀 적은 있어요. 그러나 팬들의 비판 때문에 동기부여가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기복이 심했어요. 그때마다 스스로 목표를 단계별로 잡았죠. 그 목표를 채우는 것도 어려워서, 다른 친구들처럼 특별히 동기부여를 하거나, 반복되는 생활이 힘들지 않았던 거 같아요. 매번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단계를 바꿔가며 꾸준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제 프로게이머 인생은 일찍 끝났을 거에요."

이 대답을 듣고 배성웅이 정말 성숙한 인간이라는 걸 느꼈다. 민감할 수 있는 자신의 기복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 가감 없이 답변을 했다. 말로는 쉽다. 외부적인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는 건 위인전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다.

그래도 아쉬움이 없을 순 없을 거다. SKT T1 K 초창기의 플레이 스타일과 지금 배성웅의 플레이 스타일은 180도 바뀌었으니까. 공격적인 스타일을 어느 순간부터 놓게 된 것 때문에 저평가를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저는 외부 사람들의 평가는 정말 외부 평가일뿐이라고 생각해요. 과정을 알 수 없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이에요. 팀이 원하는 가장 좋은 방향으로 플레이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던 이유는 간단해요. 어느 순간부터 커버 위주로 게임을 하는 것이 승률이 잘 나온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제 플레이 스타일은 상관이 없어요. 비록 제가 저평가를 받는다고 해도요. 결국, 프로게이머에게 남는 것은 승리와 커리어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격적인 플레이도 장단점이 있어요. 제가 갱킹에 성공하더라도 위치를 보인 순간, 반대쪽에서 손해가 발생해요. 코치님과 선수들 모두의 요구에 따라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내 위치가 보이더라도 아군이 손해를 보지 않는 타이밍을 최대한 찾아서 플레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의 대답에 절로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SKT T1이 패배할 때, 높은 비율로 정글러의 기복을 문제점으로 삼았던 거 같다. 배성웅이 팀을 위해 어떤 희생과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LoL이 아무리 팀 게임이지만, 프로게이머로 살아남으려면 개인이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깔렸었던 거 같다. 배성웅은 정말 팀밖에 모르는 바보인 것 같다.

유독 배성웅은 팀의 위기 순간에 나타나 극적인 역전승을 자주 보여줬던 거 같다. CJ 엔투스와의 플레이오프, ROX 타이거즈와의 4강, 삼성 갤럭시와의 결승전 등등... 극적인 상황은 선수에게 기회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리스크도 주어지는 것이다. 코치의 선택에 대한 불만은 없었을까. 승리를 거둔 상황에서 교체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번 롤드컵에서 ROX 타이거즈와의 4강 1경기에서 제가 승리를 했지만 스스로 그렇게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강)선구가 다음 경기에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죠. 2경기에서 진 것도 선구가 잘못한 것이 아니어서 3경기에 선구가 다시 나간 것에 불만은 없어요. 구원 투수 역할은 당연한 거로 생각해요. 코치님이 저에게 기회를 주는 거로 생각해요. 다행히 그때마다 기회를 잡아 불만은 없어요(웃음)."

"ROX 타이거즈와의 4경기에서 제가 들어갔지만, 부담은 없었어요.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의 긴 프로게이머 생활에서 이 경기는 고작 한 경기일 뿐이다'라는 생각요. 그렇게 마인드를 가지니, 경기가 주는 부담이 거의 없어요."



"이슈가 됐던 니달리 픽도 저는 꽤 자신이 있었어요. 어차피 코치님이 실수한 것이라... 코치님의 머릿속이 하얘졌겠지만(웃음), 저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거든요. 당시 상황에 전혀 불만이 없어요. 다른 선수들이 모두 사용하는데, 내가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프로게이머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면 도태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프로게이머니까 모든 챔피언을 다루는 게 맞죠."

"다른 요소들보다 내가 꾸준히 노력했고, 폼을 어느 정도 찾았다고 생각이 듦에도 정규 시즌에 출전을 못 할 때 조금 힘들긴 했어요. 하지만 팀의 정규 시즌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불만은 없어요. 팀 성적이 잘 나온다는 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니까요."


팀을 위해 희생하는 진짜 프로. 팀의 성적을 1순위에 놓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프로게이머가 몇이나 될까. 조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그가 가진 별명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그 별명들이 처음에는 저를 놀리기 위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경기력이 좋아지고, 15년도 스프링 시즌 CJ 엔투스와 플레이오프 이후 좋은 쪽으로 바뀌었던 거 같아요. 사실, 제가 인벤 화제글은 다 챙겨보거든요(웃음). 성적이 좋지 않던 시즌에도 유머러스한 별명이 생겨서 만족스러웠어요.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재밌잖아요?"

이 답변으로 배성웅의 성격을 꽤 많이 파악했다. 그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결과만 괜찮다면 과정이 어떻든 간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살면서 이런 유형의 인간은 처음 만나봤다. 조금 분위기가 편해진 것 같으니, 궁금했던 계약 종료에 대한 이야기를 슬그머니 다시 꺼내봤다. 굉장히 진솔한 답변이 나왔다.

"음... 오래된 생각이에요. '내년에는 해외로 나가야지'라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올해 정규 시즌에서 활약을 많이 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진 않았어요. 제가 나이도 많은 편이고, 올해 기복도 심했잖아요. 게임단에서도 적극적으로 계약에 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저와 게임단의 생각이 잘 맞아 떨어진 시기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주장을 맡았던 배성웅이 팀을 떠나게 됐다. 이제 남은 선수들의 개성이 강한 편인데, 걱정되진 않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만 들어봐도 SKT T1이 좋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는 배성웅의 존재감이 컸던 것 같다. 이 자리를 통해 팀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진심을 담아 한 마디를 전해보는 건 어떨까.


"사실 굉장히 걱정돼요. 특히, (이)재완이가 조금... 팀에서 많이 희생하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도 남은 친구들이 고참이 됐잖아요. 잘할거라고 믿어요. 재완이가 제가 숙소를 떠날 때 울었다고 했는데, 제가 있을 때는 안 울어서 확인을 못했어요(웃음). 다른 팀원들도 슬프다고 이야기했지만, 울진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팀원들 모두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시기고, 저도 생각이 많아 물 흐르듯 숙소를 나온 것 같아요."

"(배)준식이도 SNS에 올린 영화 호빗 OST를 들으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뭔가 짠하더라고요. 어차피 내년에도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슬픈건 어쩔 수 없네요. 준식이와 상혁이가 게임을 하다가 화를 낼 때가 많은데, 승부욕이 강해서에요. 조금만 화를 죽이고 내년에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편하게 게임을 했으면 좋겠네요."

"코치님과는 최근에도 많이 만났어요. 팀에서 나간 뒤에도 신경을 많이 써주고 계세요. 14년도가 끝나고 은퇴를 생각했었는데, 그때도 코치님이 저를 잡아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요즘 코치님 게임을 하는 걸 보면 참 웃기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슬퍼요. 제가 팀에 들어갈 당시만 해도 잘하셨는데. 30대가 되면 피지컬이 확 떨어지나 봐요(웃음). 내년에는 꼭 결혼하셨으면 좋겠어요. 최병훈 감독님 쌍둥이 출산을 축하하고, 게임 외적으로 많은 부분을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코치님은 짜증을 내시고, 감독님은 짜증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시는데, 친구들이 가끔 무례할 때가 있어요. 그걸 잘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도 그랬던 적이 있거든요(웃음)."


배성웅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운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민했지만, 팀원들과 코치진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금세 나왔다.

선수 생활을 시작을 함께했고, 많은 것을 함께 이룬 SKT T1이란 팀은 '벵기' 배성웅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팀을 나오려고 결심했을 때 사실 크게 감흥이 없었어요. 그런데 계약 종료 전날 마지막 사인회가 있었거든요. 그날 숙소에서 밤을 새우고, 사인회에 가려고 혼자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슬퍼지더라고요. 음... SKT T1은 저에게 친구에요."


앞의 이야기처럼 고민하진 않았다. 하지만 배성웅은 말을 쉽게 이어나가지 못했다. 얼마 전 일이 다시 생각이 나는지, 아니면 SKT T1에서의 추억들이 생각이 나는지 배성웅의 두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잠시 인터뷰를 중단하고, 배성웅에게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줬다.

"벌써 그간 했던 고생들이 미화가 되기 시작했어요(웃음). 14, 15년도 그리고 올해까지 힘들었는데, 당시에는 '힘들다 연습하기 싫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괜찮았던 거 같다'라고 기억이 조작되고 있어요. 고생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마지막은 질문이 아닌, 평소 배성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저는 우승을 해도 이런 이야기가 부끄러워서 잘 안 하거든요. 4년 동안 함께 해준 상혁이, 저보고 종종 멍청하다고 이야기하는 코치님, 엄마 같은 감독님, 그리고 문 매니저님께 감사해요. 3년 동안 같이 있었고, 2년 동안 같은 팀으로 활동했던 준식이와 재완이도 형 대접은 잘 안 해줬지만 편하게 대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선구와 호성이도 올해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고요. (이)정현이 형도 팀에서 나갔는데, 그 형은 아예 계획이 없어서 걱정되네요. 모두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긴 선수 생활 동안 저를 응원해준 팬분들이 많아요. 항상 감사하고, 이렇게 팀을 갑작스럽게 나가게 돼서 미안한 마음이 커요. 제가 어디를 가도 원하신다면 SKT T1 혹은 '벵기' 배성웅을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 박채림(tti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