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 푹 자고 싶어 있는 힘껏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놨지만, 강렬한 햇빛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 눈에 직사광선을 꽂아 넣었다.

'지금이 몇 시지?'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8시였다. 오후 8시? 피곤함에 파묻힌 나머지 온종일 잠자느라 현장 취재도 못갔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오후 8시의 햇빛이 이토록 강렬할 리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본 것은 한국 기준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안도감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히 시계를 들어 올려 바르셀로나 기준 시간으로 시침과 분침을 돌려놨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샤워를 마치고, 사진 기자에게 연락해서 식사를 위해 만날 시간을 정했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감자튀김은 적당한 짠맛을 내면서 혀와 위를 즐겁게 해줬다. 하지만 계란 후라이가 반숙이었다. 개인적으로 반숙을 즐기지 않지만, 뭔가를 더 채워 넣으라는 위장의 협박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너무 익힌 탓인지 고무를 연상시키는 질감을 자랑했던 고기 역시 이내 접시 위에서 내 뱃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윽고 시간은 흘러, 2016 LoL 올스타전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 우리는 서둘러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예상보다 훨씬 큰 경기장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그 앞의 광장에는 이미 팬들로 북적이고 있는 이벤트 부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다양한 이벤트 부스에는 이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현지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상황이었다. 엄청난 이벤트는 아니었지만, 팬들의 즐거움을 끌어 올릴 수 있을 만한 재미있는 이벤트가 가득했다. 팬들은 라이엇 게임즈가 준비한 다양한 미니 게임을 즐기면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아직 본격적인 대회 시작까지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도 잠시 이벤트를 즐겨보기로 했다.

▲ 가자, 피카츄!

▲ 경기장 앞 광장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원래 현장의 꽃은 사진 아니겠나. 마침 팬들이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꾸며놓은 포토존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줄을 섰고,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됐다. 그때 라이엇 게임즈 직원 중의 한 명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직원은 우리에게 촬영 중인 영상에 출연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평소에 나서기 좋아하는 내가 이런 기회를 거절할 리 없었다. 애꿎은 사진 기자도 선배의 뜬금없는 요청 수락에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포토존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우리를 포함해서 그들의 촬영 제안에 승낙한 다섯 명이 포토존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저마다 소품을 들고 라이엇 게임즈 직원의 요청에 따라 있는대로 폼을 잡으며 촬영에 임했다. 내가 들고 있었던 소품은 '다섯 번째 성기사 타릭'의 무기. 어쩐지 김동준 해설위원이 떠올랐다. 김동준 해설위원, 보고 있나요? 제가 당신이 되었답니다.

▲ '타릭이 내가 된다!'

이처럼 현장을 찾은 관객들은 별 것 아닐 수 있는 이벤트에도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현장 분위기를 제대로 즐겼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진 기자와 나 역시 이들의 행복 바이러스에 전염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이벤트 부스를 돌아다니면서 조그마한 사건이나 장면에도 큰 소리로 웃었고, 현지 팬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라이엇 게임즈 직원의 안내에 따라 기자실로 입장했다. 그곳에는 이미 다양한 국적의 기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역시 다른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농담을 나누면서 훈훈한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나는 특이하게 기자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어떤 해외 매체 기자의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존경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역시 대한민국은 e스포츠 최강국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 물론 내 영어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 상승했다.

무대의 모습을 찍기 위해 사진 기자와 함께 경기장 안쪽으로 향하자,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현지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무대에 오른 선수들에게 열렬한 환호성과 큰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 역시 관객석을 향해 미소를 짓거나 손을 흔드는 등 팬들의 응원에 화답했다. 그곳에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도, 비판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오직 즐기기 위해 모인 선수들,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모인 팬들만 있었다.

▲ 그들은 진심으로

▲ 올스타전을 즐겼다

▲ 승패는 선수들과 팬들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혹은 기자실에서 만난 선수들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올스타전은 즐기기 위한 무대"라고 말이다. 그들은 팀원들의 실수에도 큰 소리로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았고, 패배를 경험하는 아찔한 순간에도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들은 진정 즐기기 위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팔라우 산트 조르디 경기장에 모였고, 이러한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바쁘고 정신없는 1일 차 현장 취재가 모두 끝났다. 총 4일 간의 일정 중에 고작 하루가 끝났을 뿐이라는 생각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즐거운 분위기를 보였던 선수들과 현지 팬들, 라이엇 게임즈 스태프들과 동료 기자들을 보자, 어깨와 눈꺼풀을 짓누르던 피곤이라는 것이 조금 물러가는 것을 느꼈다.

이들과 함께 맞이할 남은 3일 역시 즐겁고 기쁘리라.

사진 : 박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