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을 눈앞에 두고 여러 번 미끄러졌을 때, 대부분 커다란 좌절감을 느끼고 주저앉는다. 반면에 수많은 좌절과 아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긍정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 보통 그런 사람을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여기 포기를 모르는 한 남자가 있다. 6회 준우승의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한번 밝게 웃으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어윤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약함의 상징 'T1 저그'에서 어느덧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저그 수장'의 자리에 오른 어윤수. 그는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처럼 되살아나서 지금은 어째서인지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불굴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결승전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어윤수와 오랜만에 만나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Q. GSL 결승전이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

얼마 전에 SSL 챌린지에 진출해서 프로필 촬영을 했다. 촬영 전에는 도우형 집에서 재밌게 놀았다. 결승전에서의 타격이 컸기 때문에 연습은 쉬고 있었다.


Q. 여섯 번째 GSL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당연히 아쉽다. 메카닉에 대한 해법도 준비했는데 전혀 보여드리지 못했다. 뭐에 홀렸는지 손이 잘 안 움직였다.


Q. 결승전에서 유독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본인 생각은 어떤가?

준비한 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이제는 인정한다.


Q. 일각에서는 저그가 결승전에서 불리하다는 말을 한다.

동의한다. 결승전에서는 무엇보다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주도권을 잡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저그가 초반에 주도권을 잡으려면 극단적인 올인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테란과 프로토스는 부담 없이 먼저 공격할 수 있어서 유리하다.



Q. GSL 최다 결승전 진출자가 됐다. 결승 이전에 유독 강한 것 같은데?

워낙 결승전에 자주 올라가서 이제 담담하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결승전에 진출해도 크게 감흥이 없는 것 같다(웃음). 결승 이전에는 누구를 만나도 게임 도중에 상대가 나보다 못한다고 느껴진다. 내가 실력에서 훨씬 앞선다는 생각이 들면서 게임이 잘 풀린다.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연습 때 만나면 힘든 상대들인데도 경기장에서 만나면 상대하기 쉽다. 상대가 긴장하는 것이 유닛의 움직임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결승전은 반대다. 결승전에서 나를 만난 상대는 "어윤수를 만났으니까 이겼다"고 편하게 생각하고 더 잘하는 것 같다. 오히려 결승전에서는 내가 더 긴장한다.


Q. 징크스로 국한하기엔 결승전 상대가 모두 강했다.

그렇다. 항상 결승전에서 당시 가장 분위기가 좋은 선수와 만난다. 상대가 분명 잘해서 이긴 것이다.


Q. 결승전 전후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 결승전에서는 다들 예민해져 있었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전에 결승전이 끝나고 여동생이 울고 있는 장면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는데, 이제는 결승전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놀러 나가더라(웃음). 그만큼 세월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지금은 나보다 가족들이 e스포츠에 대한 것을 더 잘 알고 있다.


Q. 작년 KeSPA 컵 시즌2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때 당시 기분은 어땠나?

정말 기뻤다. 프리미어 우승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우승 타이틀이 생겨서 기뻤다.



Q.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언제 가장 힘들었나?

사실 준우승도 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준우승을 해도 크게 힘들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보다 마지막 프로리그 시즌이 가장 후회가 남는다. 마지막 프로리그 시즌에 내가 팀에서 경력이 가장 오래된 선수였는데, 팀원들에게 많이 소홀했다. 개인 성적에 대한 욕심이 커서 팀에 소홀한 결과 프로리그 성적이 좋지 못했다. 내가 더 신경 썼으면 프로리그 우승도 하고 팀이 계속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못해서 우승에 실패하고 팀이 뿔뿔이 흩어진 것 같아서 팀원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Q. 세 번째 준우승을 기록했을 때, 은퇴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일을 말하자면?

도우형에게 지면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팀에서 전혀 도와주지 않아서 특히 힘들었다. 처음 겪는 스트레스였다. 결승전 다음날 프로리그가 있었는데, 엔트리에 나의 이름만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결승전 연습을 거의 못하고 결승전에 나가야 했다. 그땐 준우승만 세 번째라서 많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된다. 괜히 그런 말을 해서 도우형의 우승이 묻힌 것 같아서 미안했다.


Q. 그렇다면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결승전 때마다 많은 팬들이 나를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행복하다. 이번에도 정말 많은 팬들이 와주셨는데, 울컥했다. 내가 우승하기 전까지 스타2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던 팬도 있었고, 내가 우승하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말한 팬도 있었다. 팬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Q. 어느덧 스타2에서 가장 상징성 있는 인물이 됐는데?

최강자 이미지가 아니라 2인자라는 상징성만 있는 것 같다(웃음).


Q. 팀의 해체, 혼자가 됐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을 거 같은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해체 통보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막막하긴 했다. 은퇴하고 평범한 20대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싶었다.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17살 때부터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앞서 은퇴한 형들이 프로게이머 시절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했다. 결국, 고민 끝에 프로게이머 생활을 계속하게 됐다.


Q. 앞으로 계속 도전할 생각인가?

당연히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사실 결승전이 끝나고 트위터에 '우승할 때까지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쓸 생각이었는데, 차마 못 쓰겠더라. 그냥 "열심히 하겠다"고 썼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승할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싶다.



Q. 결승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이 있나? 심리치료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떤가?

결승전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는데 잘 안됐다. 나도 답답하다. 안 그래도 심리치료를 받아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효과가 있는 것이 확실하면 받아볼 생각이다. 다음에도 결승전에 진출한다면 무엇이든 해볼 생각이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

항상 응원해주는 팬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를 결승전에서 꺾으면 '어카게'라는 별명이 붇는데, 만화에서도 그렇고 어카게는 6대가 끝이다. 난 징크스를 믿는 편이다. 7대는 내가 우승해서 직접 차지하도록 하겠다. 끝으로 판다TV에서 개인 방송을 하고 있는데 많이 시청해 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