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 오현근 기획자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엔트리브에서 앨리샤 기획, 네오액트에서 카오스를 기획했으며 현재는 넥슨에서 신규 프로젝트 기획을 하고 있다.

평생 게임 개발하기. 아마 게임 개발자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목표일 겁니다. 그리고 이루기 힘든 목표이기도 하죠. 프로그래머라면 프로그래밍 실력을 익힘으로써 평생 게임 개발자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라면 다른 아티스트들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줘야겠죠.

그럼 기획자라면 어떻게 할까요? 기획자라면 자신이 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할 리는 없죠. 개중에는 실패한 프로젝트도 있을 테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프로젝트도 있을 겁니다.

이런 기획자들을 위해 넥슨 오현근 기획자는 자신의 노하우를 소개했습니다. 고민의 질을 키움으로써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하는 능력을 키우라는 오현근 기획자의 강연, 함께 들어보시죠.

※본 강연 기사는 주제 특성 상 강연자의 시점에서 서술했습니다.



■ 강연주제: 평생 게임 기획자 하기


오늘의 강연은 평생 게임 기획자를 하고 싶은 제가 어떻게 하면 평생 게임 기획자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우선 본격적인 강연 시작에 앞서 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겠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넥슨에서 게임 기획자를 하는 오현근이라고 합니다.

2007년 '앨리샤'의 기획자로 처음 게임 업계에 입문했고 이후 '카오스 온라인', '카오스 마스터즈'의 기획을 맡다가 지금은 다시 넥슨으로 돌아와 지금은 신규 프로젝트를 맡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는 3년 정도 인디 게임 개발에 도전했는데 3번이나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있어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많은 공부를 하는 기회가 돼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기획자분들도 이런 인디 게임 개발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평생 게임 기획자 하기?


자, 저에 대한 설명은 이쯤하고 제가 왜 이번 강연을 준비했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자 합니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자 주위에서 그런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게임 개발을 할 수 있을까?'

저 역시도 든 의문이었죠. 사실 프로그래머랑 아티스트의 경우 지금 하는 일의 능력이나 노하우가 쌓여간다면 평생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기획자는 어땠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땅한 답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평생 게임 기획자로 일을 하려면 어떤 것들을 고민해 보고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게임 기획자가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인가 질문한 거였죠.


더군다나 지금 현재 상황에서 평생 게임 기획자를 목표로 한다는 것도 아니었어요.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가 다른 직군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어도 기획자를 택하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은 거였습니다. 제 대답은 YES였습니다. 과거 보드 게임을 제작하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다음으로 기획자로서 제가 얻고 싶은 게 뭔지 묻는 거였습니다. 목표가 없다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드니까요. 다행히 저에겐 목표가 있었습니다. 바로 여러 사람과 같이 만든 게임이 게임 잡지 표지에 등장하는 거였습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건 어떤 직군도 그렇지만 게임 기획자라는 건 항상 즐거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 힘든 일도 있을 테고 그렇기에 명확한 질문과 답을 정해야 했습니다.

자, 그럼 기획자라는 직업을 평생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대로 쭉 지금 하는 일을 하면 평생 게임 기획자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기획자인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기획자가 하는 일들에 대해 막 나열하니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VBA 공부, 프로그래밍 언어 공부, 드로잉 연습, 문서 처리 등을 집중적으로 했었습니다. 어라? 이상하죠. 기획자의 일도 일이지만 다른 직군의 일도 더러 있었습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어느 정도 익혔던 건데 기획자가 해야 할 일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게 안 좋다는 건 아닙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이 일들을 더 한다고 해서 평생 기획자로 일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았습니다. 결국,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능력 있는 기획자란 뭘까 하고요.

프로그래머랑 아티스트는 뛰어난지 아닌지 판별하기 명확한 편입니다. 하지만 기획자는 명확하게 어떤 능력이 있으면 뛰어난지 재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입문 문턱이 다른 직군보다 낮은 편입니다.

그럼 기획자의 능력은 어떻게 판별할까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게임 개발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능력입니다. 문서도 잘 쓰고, 어느 정도 다른 파트에 이해도도 있고, 말도 잘하는 그야말로 기획자에게 있어서 필요한 능력을 다 가진 기획자죠. 다른 하나는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하는 능력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기획자의 길은 첫 번째 기획자의 길이었습니다. 다양한 기술을 통해 게임 개발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기획자였죠. 기획자로서 프로그래밍을 익히고 아트를 익히면 뭔가 가시적으로 능력이 오른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하는 기획자가 정말 뛰어난 기획자였습니다. 물론 게임 개발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능력은 기획자에게 없어선 안 될 일이었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란 거죠.


그렇게 생각하자 벽이 다가왔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하는 능력은 도대체 어떻게 기를 수 있는 건지 답이 없었거든요. 마치 창의력을 기르라는 말처럼 정답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다 주변 선배 기획자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해외 기획자들의 강연을 보자 한 가지 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질 높은 고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하는 능력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전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의 질을 높이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 고민을 잘 하는 능력


전 우선 고민의 질을 깊이와 넓이로 각각 구분했습니다. 고민의 넓이란 다방면으로 지식을 쌓아서 고민을 늘리는 방법입니다. 보통 기획자들에게 처음 요구되는 능력에 해당하죠. 근데 쉽지 않습니다. 게임 기획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엄청 다양하거든요. 애니메이션, 인류학, 건축학, 역사, 경영, 수학 등등 전부 게임에 응용할 수 있으니 필요한 지식이었습니다. 근데 이런 걸 익히는 게 쉽지는 않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주변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민의 넓이를 넓히길 추천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나 만화책 본다고 하더라도 남들처럼 그냥 보고 끝내는 게 아닌 좀 더 파고드는 겁니다. 잘 와닿지 않을 텐데 이걸 제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는 방법을 통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기획자가 만화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최소 30분 동안 읽기 입니다. 너무 짧막하게 읽으면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 30분 동안 여유를 갖고 정독하면서 인스턴트하게 소비하지 않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웹툰의 경우는 연속해서 보는 식으로 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이어보기입니다. 신간을 읽을 때 읽었던 이전 권을 가볍게 읽고 신간을 읽으면 스토리가 이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완결이 났다면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처음부터 한 번에 읽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다음으론 만화책의 파워 밸런스를 보는 겁니다. 제가 가장 추천하는 방법인데 처음에 강했던 적이 어느샌가 주인공보다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기획자라면 여기서 누가 더 강했고 어떤 이유로 더 강했는지, 그리고 그 차이는 얼마였는지, 주인공은 어떻게 더 강해졌는지 생각하는 버릇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고민의 넓이를 늘렸다면 이제 고민의 깊이를 늘릴 때가 됐습니다. 고민의 깊이는 경험이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그 깊이를 늘리는 거죠. 그런데 과거의 경험을 여러분은 전부 기억하나요?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10년 경력을 갖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 모든 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이런 과거의 경험을 유의미한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선 기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경우를 살펴보죠. 사실 처음에는 업무의 연장에 가까웠습니다. 그저 작업 일지였죠. 오늘 어떤 일을 했고 내일은 어떤 일을 할 건지 적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오프라인 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디서나 쓸 수 있고 휴대도 편했으며, 간혹 집중도도 올라갔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었죠. 공유가 힘들고 내용을 지울 수 없었으며 스프링 노트로는 규칙적인 정리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노트를 적으면서 하나의 규칙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규칙을 세우니 일의 의도와 목적에 대해 좀 더 분명히 쓸 수 있게 됐고 이렇게 하나씩 노트를 채워나가자 어느덧 몇 권이나 쌓이게 됐습니다. 이런 노트들은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며 그때의 기억과 경험을 되새김할 수 있단 장점이 있는데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등의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트들을, 경험을 구글 문서 등을 통해 문서화하면 그게 바로 기획자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겁니다. 고민하고 노력했던 게 기획자의 능력으로 바뀐 거죠.



⊙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하는 능력


기획자는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 그 결과물로 능력을 평가받는 게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런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로 쌓아 간다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까지의 동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의 강연은 이상입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게임 기획을 하기 위해, 경험이 낭비되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하여 좋은 고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