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프로게이머와 다른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직업을 가진 분이 있습니다. 2017년 세계 철권 무대를 제패하며 '쿠단스'라는 이름을 다시금 세계에 알린 손병문 선수. 평상시에는 아동 사회복지사, 선생님으로 불린답니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 바라봤을 때, 손병문 선수는 한 길을 걷고 있었죠. 아이들에게 도전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최선을 다하는 프로게이머로 팬들의 기억에 남고 싶었다고 합니다. 승리만 갈구했던 어린 게이머 시절을 지나 이제는 승패를 떠나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어른이 되려고 한답니다.

2007년 돌연 은퇴하고 다시 정상에 오르기까지. 과거 우승을 경험해본 '쿠단스' 역시 긴 공백과 부상, 부족한 연습 시간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한걸음씩 나아가는 데 집중했고, 자신이 선택한 '풍신류' 캐릭터로 정점에 설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보다 겸손함과 최선을 중시하는 도전자로 남고 싶은 '쿠단스' 손병문. 그가 사회복지시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Q. 부산-일본 대회를 오고가며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분을 모셨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아동 사회복지사이자 이번에 락스 게이밍에 입단하게 된 철권 게이머 '쿠단스' 손병문이라고 합니다.


Q. 2017년 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어요. '쿠단스'에게 2017년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2017 철권 월드 투어 그랜드 파이널'이라는 한 해를 결산하는 가장 큰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출전하게 되면서 10년 전 느낌이 다시 한번 들었어요. 2007년에도 미국에 갔는데, 해외 분들이 정말 저를 많이 응원해줬던 기억이 있었죠. 이번에도 그런 기운을 갖고 잘한다면 우승까지 노려볼 만 하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다시 한번 실현하니 정말 뜻깊었어요.

제가 철권을 그만뒀던 해 역시 2007년이에요. 저에게 굉장히 특별한 해죠. '7'이라는 숫자는 저에게 끝만 의미하는 줄 알았거든요. 10년 동안 '과연 내가 다시 예전과 같은 기량을 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왔는데, 이렇게 2017년에 우승을 하게 돼서 더욱 기뻤죠.

올해 성적이 잘 나오게 된 이유는 돌이켜보니까 가정용 철권이 나와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그전에는 퇴근하고 오락실을 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밖에 못했다면, 이제는 꾸준히 제 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 구단복을 입고 경기 중인 '쿠단스'(출처 : 락스 게이밍 공식 페이스북)



Q. 락스 타이거즈 입단하게 됐어요. 어떻게 입단을 결정하게 된 건가요.

이번 철권 월드 투어 그랜드 파이널에서 '무릎' 배재민 선수와 숙소를 같이 쓰게 됐어요. 숙소에서 '무릎' 선수와 새벽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입단할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도 제의는 왔었는데, 그 날 '무릎' 선수와 대화했던 내용이 참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만약, '무릎' 선수 팀에서 제의가 온다면, 그곳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죠.

월드 투어 그랜드 파이널 때 대표님을 처음 뵙고 간단한 인사만 드렸거든요. 그리고 WEGL 철권 대회에서 대표님과 '무릎' 선수와 함께 미팅할 자리가 마련됐죠. 제의를 해주셔서 정말 기뻤고 그렇게 락스 게이밍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Q. '무릎' 배재민 선수와 대화 후 마음을 굳혔다고 했는데, 둘은 어떤 사이였나요?

20대 초반에 둘 다 철권을 열심히 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여서 함께 하지 못했죠. 항상 대회에 나가면 만나서 꼭 꺾어야 하는 상대로만 느껴졌으니까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최고의 철권 친구이자 형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철권 실력도 뛰어나서 지금은 제가 의지할 수 있는 형이에요.


Q. 이제 같은 팀 동료지만, 최근 WEGL 4강에서 명승부를 펼치기도 했어요. 당시 불리한 상황에서 어떻게 역전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기억에 남는 한순간이 있어요. 4선승제 경기에서 제가 2:3으로 세트 스코어에서 밀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라운드 스코어도 1:2로 밀리면서 체력마저 얼마 없었던 거로 기억해요. 그런데, 이 힘든 고비 한번만 넘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한 라운드 승리하고 나서 근접 전이 이어졌는데, 제가 '무릎' 형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이 판만 이기면 흐름을 타서 승리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 전략이 운과 게임 흐름에 맞게 잘 맞아 떨어진 거 같아요.

'무릎' 선수와 대결전에 락스 게이밍 입단을 결정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4강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서 "형, 우리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하고 멋진 경기 펼치자"고 말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명승부가 나온 거 같아서 만족했어요. 이제 단순히 경쟁을 넘어서 같이 가는 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제가 패배했더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거예요.



Q. 프로게이머이면서 동시에 사회복지사로 일한다고 들었어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직업을 어떻게 하게 됐죠?

일단, 둘 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지요. 사회복지과를 나왔고 그쪽 분야에 대한 갈망이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특히, 아동 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 웃을 일이 더 많더라고요. 가끔 짜증낼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계속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게임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죠.

구체적으로 이렇게 두 직업을 동시에 할 거라고 계획을 세운 적은 없어요. 그런데, 가정용 콘솔 철권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분들의 방송을 보면서 해볼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이에 주변 분이 "지금 나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고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제가 물론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서 하면 체력적으로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하게 된 거예요.

솔직히, 쉽진 않아요.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서 힘들기도 해요.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1시간 30분 정도 운동하고 돌아와서 1시간 30분 방송을 합니다. 그리고 일하고 돌아와서 2시간 정도 방송하는 저만의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그 이상하면 다음 날 회사 일을 하는데 무리가 되더라고요.


Q. 아무래도 두 직업을 모두 해야 하니 연습할 시간이 다른 프로게이머들보다 부족합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연습 시간이 부족한 편이죠. 그래도 짧은 시간이더라도 방송할 때만큼은 생각을 많이 하고 최선을 다해서 연습에 임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주말을 잘 활용한 것 같아요. 약속이 없으면 방송 시간을 늘려서라도 더 연습했죠.


▲ "잠시, 문자 하나만요" 인터뷰 중 직장 동료와 연락해야 하는 직장인 '쿠단스'


Q. 일하면서 대회마다 나오기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어떻게 시간을 냈나요.

기본적으로 연차를 쓰고, 근무 시간 외에 일해서 대체 휴가를 받기도 합니다. 다른 곳은 제가 잘 몰라요. 그런데, 우리 복지시설 분들이 서로 응원해주고 휴가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올해는 업무 일정상 Evolution Championship Series(EVO) 같은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봐야죠.


Q. 프로게이머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해야 할 역할들이 있을 텐데, 독자 여러분께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예전에는 아이들과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사회복지사로서 5년 정도 일해보니 제가 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많은 걸 경험해보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이들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자.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게 전부입니다.

프로게이머로서는 항상 겸손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패배하더라도 열심히 하는 선수로 남고 싶죠. 제 경기를 보는 분들에게 '아, '쿠단스'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게이머가 됐으면 합니다.



Q. 이제 '쿠단스' 선수의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게요. 데빌진을 비롯한 풍신류 캐릭터를 오랫동안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다수의 캐릭터를 활용할 줄 아는 게이머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이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일관된 사람이에요. 어릴 때 어떤 아저씨가 오락실에서 철권 태그1을 하는 모습을 봤어요. 진으로 절대 지지 않는 거예요. 게임도 전혀 치졸하지 않고 멋지게 승리하더라고요. 저도 '아, 이 캐릭터를 해야겠다!'는 느낌을 제대로 받았죠. 그때부터 진-데빌진을 해왔어요.

물론, 지금의 데빌진이 태그1 시절처럼 강하진 않아요. 다른 캐릭터들도 좋은 기술들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태그1 시절만큼 강력함을 자랑하는 캐릭터는 아닌데, 제가 열심히 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제가 하는 말이 모두에게 정답은 아니에요. 요즘 메타로는 다양한 캐릭터의 좋은 기술을 활용하는 게 더 좋을 수 있어요. 요즘에는 약한 캐릭터-강한 캐릭터의 구분이 없는 거 같아요. 캐릭터마다 장단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상성이란 것도 존재하니까요.


Q. 풍신류의 공격은 오랫동안 철권을 해온 게이머라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겁니다. '무릎' 선수가 '풍신류는 절대 실수해서 안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쿠단스'만의 풍신류는 어떤 점이 다를까요?

풍신류는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어요. 득점이 필요한 순간에 칼같이 공격을 성공해야 하죠. 평소에 무시할 수 있는 작은 잽 하나라도 적중해야 합니다. 태그1 시절에는 상대가 하단 기술을 쓰면 풍신권을 적중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하단 주먹 공격을 하는 상대를 때릴 수 없게 됐죠. 신중하게 기술을 맞춰야 해요. 아마 '무릎' 선수가 말한 것도 그런 부분에서 실수하면 안된다는 의미였던 거 같아요.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고요.

초풍신권을 순간적으로 맞추기 위해서 저 자신을 예민한 상태로 만들어요. 굉장히 빠르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대회를 앞두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평소 게임할 때는 그렇게 잘 안 하려고 해요. 정말 힘들거든요.


Q. '쿠단스' 선수는 상대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하는 모습을 자주 봤던 거 같아요. 본인 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받아내고 이기는 스타일이 '고전'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철권 5 시절부터 했던 사람들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무릎' 선수도 마찬가지죠. 먼저 내 패를 보여주지 않고, 상대 선수의 수를 받아내면서 중요할 때 제 패 끼워 넣는 거죠. 최근 철권을 시작하는 선수들은 거의 이런 스타일이 없더라고요. 좋은 기술들이 많기 때문에 공격 위주의 선택을 하죠.

아마 제 경기를 보시면 처음에는 수비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실 거예요. 이런 플레이를 하려면 상대 캐릭터와 플레이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합니다. 거기에 따라오는 기술 타이밍 같은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데빌진이라는 캐릭터가 많은 프로들한테 익숙해서 이기적으로 공격만 해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미리 상대해보면서 상대가 어떻게 들어올지 아는 거죠. 최근에는 저도 방송하면서 다른 캐릭터도 많이 해요. 좋다는 기술들을 미리 파악해보려고요.



Q. 우승 경력을 보면 참 신기해요. 2007년까지 활동하다가 2012년, 2016년에 팀 배틀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4-5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2007년부터 5년 정도 철권을 안 했어요. 2012년부터 다시 하게 됐는데, 그 때는 부담감이 굉장히 심했어요. '사람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면 어쩌지, 예전만큼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 고민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저의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지금 나의 위치는 여기고, 내가 노력해서 조금씩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천천히 게임을 하다가 2016년부터 팀 배틀에서 우승을 했어요. 그 당시 개인 대회에도 나갔지만, 성적은 안 좋았거든요. 긴 공백 기간에 등장한 새로운 캐릭터와 메타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고요. 그런 지식을 점점 쌓아갔고, 2017년부터 1~2시간씩 꾸준히 할 수 있게 되면서 예전 기량이 돌아와 개인전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2006년 중반부터 손목이 버텨주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철권 게이머라면 손목이 생명일 텐데, 어떻게 다시 활동할 수 있었나요?

예전에 제 몸무게가 85kg까지 나갔어요. 그때는 손목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결심해서 한 달에 24kg을 뺀 적이 있어요. 그리고 한 달 뒤쯤에 게임을 할 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나중에는 손목이 꺾이는 현상까지 나타났고요. 그래서 2007년 미국 대회에 패드로 나가기도 했을 정도였죠.

그러다가 태그2에 맞춰서 복귀하기 전에 조금씩 훈련했어요. 집에서 스틱을 잡는 자세를 바꿔가면서 조금씩 연습량을 늘렸죠. 그렇게 하다가 인제야 손 모양이 안정적으로 된 거 같아요. 예전에는 탄력을 이용했다면, 이제는 안정적으로 하려고 해요.


Q. WEGL 결승전 때 사회복지 시설의 아이들을 경기장에 불렀다고 들었어요. 그들에게 어떤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단순히 경기에서 이기는 모습보다는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이 이런 도전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도전하는 모습을 봤을 때, 느끼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때 아이덴티디 측에서 선생님들과 아이들 초대권을 흔쾌히 주셔서 부산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어요.


Q.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철권을 봐주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철권이 아는 사람만 아는 마이너 게임이었잖아요. 제가 철권을 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구경하는 재미와 하는 재미도 있는 게임인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철권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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