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나진 e엠파이어 소속의 한 어린 선수가 등장했다. 약 8개월간의 연습생 기간, 솔로 랭크 1위와 함께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하지만 팀의 사정상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 당시의 공식전적은 7승 10패. 신예의 성적치고는 고무적인 성과였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락스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됐다. 처음 자신을 나진 e엠파이어로 이끌었던 '쏭' 김상수 감독과 재회하게 된 것이다. 그 해 LCK와 KeSPA컵 우승 그리고 롤드컵 4강 진출을 달성하며, 전세계 LoL 팬들에게 '피넛' 한왕호라는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2016년 역시 락스 타이거즈와의 여정은 1년 만에 끝이 났고, 세계 최고의 팀 SKT T1으로 적을 옮겼다.

LoL 팬들의 시선은 모두 그에게 집중됐다. 꿈에 그리던 롤드컵 우승만 손에 거머쥐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정글러가 되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아쉽게도 현실은 가혹했다. 상반기에 LCK 스프링-MSI 모두 석권했으나, LCK 서머 시즌과 롤드컵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세계 2등이라는 타이틀이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SKT T1을 향한 기대감은 그 이상이었다. 이제 갓 20세가 된 그가 감당하기 어려웠고, 이전 소속팀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결국,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세 번째 팀인 SKT T1과의 결별 수순을 밟았다. 한왕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적 배경과 자신의 선수 생활을 되돌아봤다.

"롤드컵에 다녀와서 잠시 휴식을 취했고, SKT T1과 계약이 종료된 이후 강동훈 감독님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해외팀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한국팀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조건을 듣기 전부터 거절했어요. 아마 롤드컵 준우승을 한 탓에 그런 욕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처음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활발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강)범현이 형이나 (김)종인이 형은 원래 알고 있었던 사이고, 다른 팀원들은 지나칠 정도로 사교성이 좋아 빨리 친해질 수 있었어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함께 할 팀원들이 인상 깊었어요. 스크림을 해보면 (김)동하 형, (곽)보성이, (김)광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 팀원들이 어느 부분에서는 모르는 게 있어요. 그런데 아직 다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의 성적과 실력을 보여준 거잖아요. 참 신기했죠.

물론, 처음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다 보니 혹시 피드백하는 도중에 다른 팀원들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을까 걱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들 발전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다 보니까 서로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바꾸려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당연히 피드백을 받으면서 발전하려 했고요."




한왕호의 말대로 가장 먼저 손을 내민 팀은 롱주 게이밍이었다. 올해 롤드컵에서 경험 부족을 느껴야 했던 롱주 게이밍은 경험 많은 선수가 필요했고, 평소 팀의 분위기를 중요시한 강동훈 감독은 발 빠르게 움직여 그를 품에 안았다.

대형 선수의 이적 소식에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과거 락스 타이거즈의 향수를 아직 잊지 못했던 팬들은 '프릴라' 듀오와 한왕호의 만남에 열띤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억측들이 쏟아졌다. 방출, 불행, 불화 등의 단어들이 한왕호를 따라다녔다.

"일단 서로 좋게 이야기를 나눠서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어요. 팀을 구하는 5일 동안, 커뮤니티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이러다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엄청나게 욕을 먹겠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SKT T1은 제 선수 생활 중 가장 많은 커리어를 쌓은 팀이고,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게 정말 많은 곳이에요.

성적 같은 경우는 제가 못했던 게 맞아요. 스프링 시즌과 MSI는 잘했으니 우승을 한 거고, 그 이후는 부진했기 때문에 성적을 못 냈죠. 제 부족함 컸어요. 특히 올해 LCK 서머 시즌 2라운드는 가장 실패한 시기라 생각해요."


SKT T1 정글러라는 자리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유독 한왕호에 대한 비판은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커리어를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었고, 우승하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한왕호는 "2등은 곧 1등 할 가능성"이라며, 여전히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번 KeSPA컵을 기준으로 하면 제 실수는 두 개였어요. 5경기에서 리 신으로 진입하다 죽은 건데, 사실 대세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어요. 그런데 2경기는 제가 흥분한 바람에 실수를 저질러서 끝났죠. 그렇게 지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요(웃음). 4연속 준우승...... 그런데 저는 올해 모든 대회 결승에 올랐고, 2등을 했다는 것은 1등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안 좋은 말들에 크게 개의치 않아요.

저는 앞으로 분명히 더 잘할 거고, 롱주 게이밍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KeSPA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지만, 배운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만족해요."




말을 마친 한왕호는 잠시 회상에 빠졌다. 1년을 되짚어 보니 SKT T1뿐만 아니라 나진 e엠파이어, 락스 타이거즈 모두 생각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배움'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놨다. 프로게이머 그리고 한왕호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나진 e엠파이어 시절에는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까 그저 배우기 바쁜 시기였어요. 그러다 락스 타이거즈에 입단하면서 득도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소위 말하는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나 봐요. 그리고 형들이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제가 더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그때는 1년 내내 잘했기 때문에 '항상 이렇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어른들 말이 맞더라고요. 박정석 감독님이 늘 사람 일은 모른다고 말씀하셨는데, 올해 많이 와닿았어요.

벌써 내년이 되면 4년 차인데, 다들 놀라요. 그리고 이제 서서히 동생들이 생기다 보니까 보성이한테 '내가 너 나이 때는~' 하면서 놀려요(웃음). 물론 저도 아직 어리긴 한데, 잠깐 사이에 팀을 새로 구해 바로 경기를 뛰면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프로 생활을 좀 했구나 싶어요.

음......그리고 또 하고 싶은 말이 뭐가 있을까. 선수 생활을 돌이켜 보면 전 참 인복이 많았어요. 박정석 감독님, 정노철 감독님, 김상수 코치님, 최병훈 감독님, 김정균 코치님까지 코칭스태프분들이 경기 외적인 부분까지 정말 많이 신경 써주셨어요. 또 지금 함께 있는 강동훈 감독님이나 코치님들도 베테랑이라 그런지 제가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생각나는 선수라 하면, (이)상혁이 형이 가장 신기했어요. SKT T1에서 직접 경험해 보니 배울 점도 많고, 뭔가 일반적인 분위기와 다르다고 느꼈어요. 어떤 선수가 와도 독보적이라는 느낌이 컸어요."




짧게 요약했지만, 한왕호는 자신이 경험한 과거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그리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제 이러한 경험을 밑거름 삼아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는 일만 남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최종 목표이기도 한 롤드컵 우승이 남았고, 롱주 게이밍은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가장 안정적인 팀이다.

"처음 숙소에 갔을 때, 동하 형이 저한테 주인님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정글 몬스터한테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주인님 소리를 들으려면 다음부터는 그런 일 없도록 해달라고 주의를 주더라고요. 본인은
탑 라이너가 못하면 정글러 탓이라 하잖아요. 그런데 정글러는 잘 못 할 이유가 없어서요(웃음).

사실 동하 형은 성격이 셀 줄 알았는데, 연습해 보면 팀원들 말을 정말 잘 받아들이고 단점을 보완하려 노력해요. 그리고 광희 같은 경우는 동하 형이랑 정말 친하다 보니까 탑 상성이나 운영 등 여러 면에서 엄청 큰 시너지를 발휘해요. 선수 생활 중 이런 경쟁 관계는 처음 봐요.

또 보성이는 진짜 잘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운데, 왜 잘하냐고 물으면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도 잘해요. 진짜 뭐라고 해야 하지? 저는 단점을 고치고 잘해지기까지 꽤 오래 걸렸는데, 보성이는 잠깐 같이 연습하고 피드백을 해봐도 발전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예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보통 고맙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잖아요. 자꾸 같은 말을 해서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정말 진심이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힘든 시기를 겪다 보니까 팬들의 응원이 더 고마웠고, 응원해주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요. 저에 대해 부정적인 분들도 제 팬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저는 앞으로 그만큼 열심히 잘할 거예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옛날이 많이 떠올랐어요. 한왕호라는 사람에게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해준 많은 분께 감사드려요. 아마 그렇게 지나쳐 온 인연이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 같고, 이렇게 말할 기회조차 없었을 거예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