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서렌더' 김정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음을 졸이며 그의 경기를 지켜봤다. 누가 봐도 패색이 짙은 상황, 김정수는 포기하지 않고 대담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어린 나이지만, 평범한 선수에게서 느낄 수 없는 완숙한 관록이 느껴졌다. 그에게 이런 고난은 너무나도 익숙한 듯, 중압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정수는 침착하게 역전승을 만들어내며 4강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아름다운 경기력과 프로게이머가 가져야 할 자세를 보여준 김정수에게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은 듯 김정수를 향한 환호와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HCT 월드 챔피언십을 앞두고 '서렌더' 김정수가 화상 인터뷰에서 직접 했던 말이다. 김정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고, 보는 이들에게 진한 여운과 감동을 선사했다. 간발의 차로 정점에 오르지 못했지만, 4강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고 돌아온 '서렌더' 김정수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Q. HCT 월드챔피언십 이후 어떻게 지냈나요?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 첫날은 하루종일 잤어요. 이후 이틀 연속으로 개인 방송을 하면서 팬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오랜만에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 너무 좋더라고요. 방송하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0시간씩 했습니다.


Q. HCT 월드챔피언십 4강 진출이라는 값진 성과를 기록하고 왔는데, 소감이 궁금하네요.

월드챔피언십에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숙소와 경기장만 왕복하며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처음 목표로 잡았던 4강에 들어서 기쁘지만, 4강 진출보다 더 잘했을 수도 있었는데 결승까지 가지 못해 아쉽습니다. 처음에는 벽으로 보였던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Q. 말씀대로 4강에서 아쉽게 떨어졌는데, 어떤 점이 특히 아쉽나요?

제가 제출한 덱의 이해도 만큼은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덱 제출 전에 더 연습을 많이 해서 보다 좋은 라인업을 준비했다면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도 제가 제출한 라인업에 한해서 최선을 다했고 좋은 성적을 낸 것 같습니다.


Q. 지지해준 팬들에게 4팩을 선물하게 됐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저의 개인 방송에 찾아온 팬들이 팩값이라며 도네이션을 해주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어요.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카드 팩을 선물할 수 있게 돼서 뿌듯합니다.



Q. 월드챔피언십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선수들이 입장할 때, 현장에서 관객들이 환호를 해줬어요. 제가 직접 느끼기에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이 말해준 것도 그렇고 저를 향한 함성 소리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를 했는데, 많은 관객들이 제 말에 귀 기울이고 있더라고요. 정말 인상적이었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Q. 말씀대로 경기가 끝나고 화면에 잡힌 모습에서 벅찬 표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tom60229' 선수의 시상식에서는 다른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시상식 때, 'tom60229' 선수 뒤에 서 있었는데, 저는 'tom60229' 선수를 보고 있지 않았어요. 'tom60229' 선수가 들고 있는 트로피를 보고 있었어요. 내년에는 저 트로피가 나의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준비한 덱이 템포 도적, 어그로 드루이드, 하이랜더 사제, 큐브 흑마법사였습니다. 이렇게 덱을 구성한 이유가 있다면?

지금 메타에서 하이랜더 사제와 큐브 흑마법사는 정복전 라인업에 넣지 않을 이유가 없는 직업이에요. 도적은 상성을 크게 타지 않고 제가 자신 있어 하는 직업이라 넣었어요. 마지막으로 선택한 어그로 드루이드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직업이에요. 선수들이 성기사, 비취 드루이드, 도적을 많이 가져올 거라고 예상해서 어그로 드루이드를 준비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성기사가 없었고, 비취 드루이드가 많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와 마찬가지로 어그로 드루이드를 준비한 선수가 많았죠. 조금 힘들 수도 있었는데, 잘 이기고 올라간 것 같아요.



Q. 16강 프로즌 선수와의 대결에서 태양의 후예 라이라로 명장면을 만들며 승리했는데, 처음부터 설계한 게임인가요?

그 경기는 많이 힘들었어요. 방어도가 초반부터 엄청나게 올라갔죠. 벨렌 콤보로는 방어도를 모두 깎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플랜B로 갔어요. 하수인을 최대한 남기면서 하수인 누적딜로 이기는 플랜으로요. 호박석 속의 괴수에서 알렉스트라자가 나왔는데, 그것만으로는 힘들 것 같았어요. 금단의 창조술로 10마나의 좋은 하수인을 뽑아야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데스윙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데스윙만 살리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데스윙을 지키는 방향으로 운영했습니다.


Q. 8강도 쉽지 않았습니다. 불리한 상황에서 100딜을 넣으며 짜릿한 승리를 거뒀는데, 언제 승리를 확신했나요?

초반에는 제가 이겼다고 생각했어요. 손패에 카자쿠스, 속박된 라자, 암흑 사신 안두인이 모두 있었거든요. 그런데 상대가 마나 펌핑을 하더니 궁극의 역병을 빠르게 쓰더라고요. 무난하게 가면 어려울 것 같아서 16강과 마찬가지로 플랜B로 갔죠. 벨렌을 던져서 제압기를 빼고 라이라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라이라까지 제압되면서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기 싫어서 계속 딜을 넣었어요. 오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5장 정도 카드가 남았을 때, 암흑의 환영으로 정신 분열을 가져오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어요. 계획대로 정신 분열을 가져와서 딜을 넣었더니 딱 맞아 떨어지더라고요.


Q. 4강 'tom60229' 선수와 대결에서 아쉽게 패했는데, 운에 의해 승패가 갈렸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운을 탓하고 싶지 않아요. 저도 지금까지 운 덕분에 이긴 경우도 많거든요. 그렇지만, 4강전에서 제 실력이 부족해서 진 것은 아닌 것 같아요. 4강 경기는 저의 플레이에 대해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어요. 굳이 탓한다면 조금 더 좋은 라인업을 가져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Q. '서렌더' 선수의 경기를 지켜본 많은 팬들이 "'서렌더'가 하스스톤에 프로게이머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프로게이머로 활동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는데, 눈에 띄는 성적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입단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예전처럼 성적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스프링 시즌 때 'Hoej'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워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열심히 하니까 되더라고요. 이번 월드 챔피언십에서 프로게이머에 걸맞은 성적을 낸 것 같아서 기뻐요.



Q. 지금 메타에서 주술사, 전사, 사냥꾼이 사실상 사장되었습니다. 메타가 아쉽다는 반응도 많은데?

이번 월드 챔피언십에서 사냥꾼을 한 명만 가져왔는데 바로 떨어졌고, 전사와 주술사는 아무도 가져오지 않았어요. 대회 기준으로 밸런스가 심각하게 무너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곧 패치가 계획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빨리 밸런스 패치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Q. 다음 시즌의 목표는 어떻게 잡았나요?

개인 방송에 집중하면서 챔피언십 기간에 열심히 할지 아니면 라스트 콜을 노려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제가 다른 선수보다 10점 앞서 있기 때문에 라스트 콜을 노린다면 노력 여부에 따라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긴 해요. 하지만, 라스트 콜은 1년 동안 포인트를 가장 많이 모은 한 명의 선수에게만 시드를 주는 제도라서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Q, 국내 팀 리그 출전 계획은 없나요?

팀 리그에 대한 로망이 있긴 해요. 제가 좋아하는 팀원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팀 리그에 참여하고 싶은데, 저만큼 다른 팀원들이 의욕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팀원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만약 의견이 맞는다면 다음 시즌에 HTC에서 찾아뵐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월드 챔피언십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이 다음 시즌에 부진 하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는데, '서렌더' 선수가 깰 수 있을까요?

그 징크스를 예로 들면서 하스스톤은 실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하스스톤은 냉정한 실력 게임이기 때문에 월드 챔피언십의 단맛을 보고 나태해져 연습을 게을리 한 선수들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2년 연속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과거 하스스톤은 실력 게임이 아니라고 커뮤니티에 썼던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자세한 배경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그 당시 제가 말하고자 했던 의도는 "100% 실력 게임은 아니다"였어요. 하스스톤은 실력 게임 맞습니다(웃음). 당시 컵 대회 중이었는데, 저는 최선을 다해 게임을 했는데 하스스톤을 많이 하지 않은 티가 나는 상대에게 우연이 겹쳐서 졌던 적이 있어요. 당시 메타가 '자군야포' 메타였는데, 지고 많이 억울해서 그런 글을 썼던 것 같아요.


Q. '서렌더' 선수는 하스스톤에서 운과 실력의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메타에 따라 다르긴 해요. 월드 챔피언십 예선이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오프 대회가 보통 확장팩 출시 직후 열리는데, 그 상황에서 획기적인 덱을 발견해서 메타를 창출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렇게 좋은 덱을 만드는 능력까지 실력으로 본다면, 실력이 60% 이상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Q. 끝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한국 채널에서만 3만 명 이상이 월드 챔피언십 경기를 시청해주셨다고 들었어요. 늦은 시간까지 제 경기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