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패치라고 일컬어지는 8.4 패치가 롤챔스 무대에도 적용됐다. 바론-장로 드래곤 버프와 공성 미니언과 관련된 사항들이 강화되면서 큰 변화를 예고했던 패치였다. 주문력과 관련된 아이템이 대격변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밴픽 구도가 나올법했고, 롤챔스보다 앞서서 8.4 버전으로 진행한 LCS 무대에서 그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롤챔스 팀들의 새 메타에 대한 해석은 역시 달랐다. 메타에 대한 이해와 그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또 다른 양상이 나온 것이다. '이것이 8.4 메타다'라고 생각하는 플레이의 대처법이 등장하면서 색다른 양상의 경기가 나오기도 했다. OP 챔피언일 것 같았던 라이즈, 남작의 도움과 지휘관의 깃발 효과를 두른 공성 미니언도 롤챔스 팀들의 플레이를 획일화하진 못했다.

평균 경기 시간은 36분으로 확실히 40분대에 가까웠던 이전 버전들보다 확실히 짧아졌다. 빠르게 승부가 결정되는 만큼 팀들의 확실한 판단과 대처가 더욱 빛났던 경기들이 많았다.


바론을 차지한 자 반드시 이기란 법은 없다?
엇갈린 바론 사냥꾼들의 운명


▲ 8.4 패치 변화가 두렵지 않은 '쿠로'와 '비욘드'

남작의 도움 효과와 지휘관의 깃발을 두른 공성 미니언의 화력은 정말 막강했다. 대치만 하고 있어도 알아서 포탑을 밀어내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LCS 리그에서 그 위력이 이미 검증된 상황에서 패치의 초점은 당연히 빠른 바론 버프 획득에 맞춰질 수 밖에 없었다.

많은 팀들이 이번 메타에 맞게 확실한 카드를 준비했다. 가장 확실한 색채를 보여준 팀은 락스 타이거즈였다. 초반부터 빠르게 스노우볼을 굴려 바론을 사냥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밴픽에서부터 드러낸 것이다. 너프로 안 쓰일 것 같았던 칼리스타에 초반 사냥과 교전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올라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합류전 구도에 좋은 갈리오-탈리야 등을 더해 공격적인 플레이로 주도하면서 칼리스타로 바론을 챙기는 그림을 그려온 것이다.


하지만 바론을 가져갔을지언정 경기는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MVP를 상대로 바론 버프를 가져가면서 공성 미니언으로 억제기 앞 포탑까지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공성 미니언과 함께 대치하는데 집착한 나머지 상대의 공격에 분위기를 한 방에 내주고 만 것이다. MVP '비욘드' 김규석의 세주아니가 공성 미니언을 순식간에 강타로 지우고 과감하게 이니시에이팅을 열었다. 봇과 미드에서 두 번이나 비슷한 장면이 겹치면서 바론을 가져가고도 무너지는 장면이 나왔다.

초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락스의 맹공 역시 상대 팀들에게 쉽게 통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프릭스를 상대로 과감한 선공을 펼치기도 했지만, 깔끔한 대처에 오히려 휘둘리고 만 것이다. 8일 경기에서 두 세트 연속으로 MVP를 수상한 '쿠로' 이서행의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들어가 딜을 해야하는 카사딘과 르블랑으로 깔끔한 플레이를 완성했다.

들어가야 할 때와 빠져나와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상대하는 락스의 플레이는 흔들리고 말았다. 먼저 공격하면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갑작스럽게 들어와 킬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특유의 어그로 핑퐁으로 락스의 화끈한 공격성을 애매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렇듯 단순히 공격 중심, 바론 사냥에만 집중하는 조합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무대가 롤챔스였다.




반대로, 바론을 두고 철저한 설계로 확실히 경기를 끝내는 팀도 있었다. 새 패치로 정글러의 추적자의 나이프가 사라지면서 시야 장악 단계에 어려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제어와드를 설치한 곳에 제한적인 와드를 버려가면서 시야를 확인할 수 없는 장면이 나왔다. 라이즈와 이즈리얼의 궁극기까지 활용해 상대 바론 사냥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강팀들은 이런 상황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상대 역시 바론 버프의 위력을 알기에 시야가 없음에도 바론 둥지로 전진할 수 밖에 없었다. 서포터인 KT '마타' 조세형의 알리스타와 킹존 드래곤X '고릴라' 강범현 쓰레쉬가 시야의 우위를 활용해 먼저 다가오는 상대에게 CC를 적중하면서 교전을 주도했다. 한 번 열린 교전은 화끈하게 진행됐다. 바론 버프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예전처럼 한 명이 잘리더라도 버티면서 후반을 도모하기 힘들어졌다. 바론 지역 전투가 두 팀의 확실한 승부처가 된 것이다.

승부를 앞둔 두 팀은 심리 싸움에서 더욱 침착했다. 자신들의 생각하는 근거 아래 위험할 수 있는 설계를 모두 완성한 것. 킹존은 상대를 끊기 위해 모든 팀원이 바론 둥지로 숨어 들어가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위치가 확인된다면 몰살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깔끔하게 상대를 각개격파하면서 바론까지 챙겼다.

KT 역시 마찬가지였다. SKT가 미드 포탑을 압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마자 '데프트-스코어'는 바론을 치기 시작하고 나머지 팀원들이 상대 진입 경로를 철저히 차단했다. 외곽 와드 시야에 '유칼-마타'이 보이는 SKT는 과감하게 전진하지 못했다. KT 팀원들의 적절한 역할을 나누는 플레이가 확실히 돋보였다.

▲ KT의 바론 사냥을 막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능력치가 전부가 아닌 프로 무대
'OP'를 넘어선 실력



8.4 패치가 적용되면서 대천사의 지팡이를 가는 AP 챔피언이 강력하다는 말들이 많았다. 실제로 지난주 8.4 버전으로 진행된 LCS 20경기에서 19경기나 라이즈가 밴 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롤챔스는 개막전부터 양상이 달랐다. OP 챔피언으로 불리던 라이즈의 첫 경기에서 무너지더니 이어진 세트에서 밴픽 창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우승 스킨을 보유한, 라이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페이커' 이상혁이 라이즈로 패배한 것이다. 이후, 라이즈를 꺼낸 경기 역시 패배하면서 위력을 제대로 발휘조차 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라이즈 카운터를 가장 먼저 들고 온 팀은 킹존 드래곤X다. 미드 사이온이라는 픽을 과감하게 꺼내면서 준비된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 초반에는 사이온 카드의 노림수가 통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페이커'의 라이즈가 깔끔한 움직임으로 사이온-세주아니의 궁극기를 모두 흘려버리는 장면이 나오면서 성장할 시간을 번 듯했다.


킹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이온이 파고들어 공간을 좁히면 쓰레쉬-세주아니가 합류해 확실하게 제압했다. 아무리 움직임이 좋은 라이즈라 하더라도 공간을 좁히고 들어오는 상대의 CC기 폭격에 당해낼 수 없었다. 사이온 픽은 쓰레쉬-세주아니와 같은 챔피언과 함께 할 때 확실하게 공격에 성공했다. 다른 팀들이 미드 사이온을 기용했지만, 킹존이 보여줬던 만큼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픽과 함께 전투에 특화된 플레이를 완성했기에 킹존의 미드 사이온이 확실히 빛났다.

사이온이 미드로 기용돼서일까. 탑 라인에는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탱커 형 아이템인 지휘관의 깃발이 많으면 그 위력을 발휘하기 쉽기에 탱커 메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롤챔스 무대에 적중하지 않았던 것. 오른-사이온-트런들의 대결이 이전 버전까지 나온 반면, 이번 메타에서는 팀 스타일에 맞춰 탑에서 다시 딜러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정글에 올라프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탑에 카밀이 올라오고, 이에 맞춰 잭스-나르-제이스-피오라까지 모두 등장해버린 것이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롤챔스의 탑 라이너들은 단순히 버티고 지휘관의 깃발을 꽂는 수동적인 선택을 선호하지 않았다. 물론, 사이온은 여전히 탑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나머지 딜러 픽들 역시 선호받았다. 사이드 라인에서 확실히 주도권을 잡고 바론 싸움 이전에 상대를 흔드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장로 드래곤을 스틸해 극적인 역전승을 만든 KSV '큐베' 이성진의 카밀이 돋보였다. KT 역시 이전까지 '아픈 손가락'이라고 평가받던 '스멥' 송경호의 카밀이 등장해 초반부터 솔로킬을 내면서 경기를 주도한 바 있다. 그 밖에도 탱커 아이템을 두르고 한타에 힘을 주는 변화를 노린 '스멥'의 나르, 여전한 킹존 '칸' 김동하의 제이스가 승리로 경기를 장식하면서 롤챔스 상위권 팀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예측불가 포스트 시즌 막차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킹존-KT-아프리카 프릭스는 이번 8.4 패치로 접어들면서 기분 좋게 출발했다.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상위권팀과 중위권 팀 간의 격차를 벌리는 중이다. 반대로, 중위권에서 이번 패치 후 혼전 양상이 나왔다. 8.3 패치 후반부까지 연승행진으로 기세를 타고 있던 락스 타이거즈와 SKT T1이 급격히 2패를 기록하는 사이에 하위권인 MVP와 진에어 그린윙스가 승수를 쌓았다. 포스트 시즌으로 향하기 위해 막판 스퍼트를 하는 상황이다.

반대로, 중위권에 있던 SKT-락스는 아직 변화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 수 앞을 내다보고 경기를 준비하는 팀을 상대로 속절없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왔다. 8.3 패치에서 연승하던 팀의 경기력인지 의아하기도 할 정도로. 하지만 이제 연승하던 시절을 떠올릴 틈도 없다. 하위권 팀들이 맹추격하고 중위권 팀이 부진한 혼전의 롤챔스 스프링. 포스트 시즌에는 대격변 패치에 발 빠르게 자신들만의 대처법을 확립한 팀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