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5연패를 끊고 반등을 시작하던 SKT T1이 다시 3연패에 빠지며 자력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킹존과 KT를 상대로 한 패배는 상위 팀과의 대결이라고 나름 변명을 할 수 있지만, bbq와의 경기는 “졸전”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수준이었다.

작년 하반기 지독한 부진을 겪었던 뱅은 예전의 폼을 복구했지만, 운타라-블랭크의 탑, 정글 조합은 슬럼프에서 벗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서포터인 울프도 알리스타 이외의 픽을 했을 때는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팀의 척추 노릇을 해줘야 할 페이커마저 무모한 플레이와 안 좋은 플레이 습관을 보이며 패배의 주범이 되고 있다.

올해 SKT는 최병훈 감독이 물러나고, 김정균 코치가 감독으로 승급된 상태인데, 이와 함께 이정현 코치 복귀와 배성웅의 코치 합류가 함께 진행되었다. 언뜻 보면 예전 SKT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너지를 낼 법 하지만, 계속된 패배와 고질적인 경기력 문제가 반복되자 팬들 사이에서는 그들의 지도력에 의문부호를 띄우고 있다.

과연 올해 첫 발을 떼는 김정균 감독 체제의 SKT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 코치에서 감독이 되어 SKT를 이끌고 있는 “꼬마” 김정균


■ 구관이 명관이라지만... 2015년에 머물러 있는 SKT의 승리 공식

2015년 월드 챔피언십 우승 후 탑에서 주도적인 플레이를 하던 “마린” 장경환이 팀을 떠나며 SKT의 무게 중심은 미드와 봇듀오 쪽으로 옮겨간다. 어떤 챔피언을 들더라도 암살자처럼 사용할 수 있던 페이커의 개인기, 그리고 불가사의한 성장력으로 후반 캐리를 담당하는 뱅-울프의 조합은 강력하고 무시무시했다.

2016년 초반에는 다소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스프링과 MSI를 우승하면서 건재함을 입증한 SKT. 서머에는 플레이오프 단계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미리 쌓아둔 포인트로 월드 챔피언십에 직행해 다시 우승하면서 월드 챔피언십 3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달성한 그들이었다. 2017년에는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스프링과 MSI 우승, 서머 준우승 등 평균적인 성적 자체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이 과정에서 SKT의 승리 공식은 어느 정도 일관적이었다. 탑은 수비적으로 버티면서 미드와 봇이 성장할 시간을 벌고, 중반 이후 운영과 한타로 뒤집는 것이다. 이러한 경기 양상은 필연적으로 슈퍼 플레이를 만들어냈고, SKT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 아름다운 한타는 SKT의 상징


SKT가 승리하기 위한 최저 요건은 “자신들이 실수하지 않고 계획한 대로 플레이하기”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는 밴픽 패턴에서도 드러나는데, SKT는 상대의 밴과 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플레이에 맞춘 밴픽을 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비록 메타에 맞지 않지만 상대의 시그니처 픽이라고 할 수 있는 챔피언을 열어두는 경우가 많고, 그 챔피언 때문에 고전하거나 패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른바 “근본없는 밴픽”이라고 불리는 경기들이다.

그래도 2016년, 아니 2017년 중반까진 이런 밴픽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픽을 가져오면 라인전 단계에서 선수의 기량으로 극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페이커나 뱅은 상성상 밀리는 챔피언으로도 초반 5~10분 타이밍에 상대보다 적게는 10개, 많으면 30개의 CS 차이를 벌리는 괴력을 보여줬고, 이는 킬이나 타워를 먼저 내주더라도 글로벌 골드 격차가 벌어지지 않아 후반 한타에서 승리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7.9 패치에서 협곡의 전령이 공성 병기로 바뀌면서 이러한 승리 공식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기존에 탑 라인을 방치하는 식의 운영은 필연적으로 바론 지역에 대한 장악력 부족으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SKT가 협곡의 전령을 획득하는 비율은 다른 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다른 팀들은 전령을 이용해 미드를 빠르게 뚫어내고 맵을 넓게 썼지만, SKT는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며 후반으로 가기 전에 주저앉는 경기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 지난 서머와 올해 스프링의 오브젝트 점유 지표


게다가 믿었던 봇듀오의 폼 하락이 2017년 중반부터 드러나면서 문제는 가속한다. 상대를 압도하던 뱅-울프 듀오는 어지간한 중상위 팀 봇 듀오와 만나면 주도권에서 밀렸고, 방치된 탑과 봇 라인 타워가 밀리면 자연스럽게 드래곤이나 바론 같은 오브젝트 점유도 불가능해졌다. 꺾인 양 날개를 지원하기 위해 페이커가 움직이면 미드 타워가 밀리면서 상대에게 멱살을 잡힌 느낌으로 운영에서 끌려가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이런 모습은 지난 서머에서 월드 챔피언십까지의 SKT였다. 이들의 경기는 수비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다 맞아 주다가 부지런히 사이드라인에서 CS파밍을 한 페이커가 후반 싸움에서 슈퍼 플레이를 하면 승리하고, 못하면 패배하는 식이었다. 그래도 그런 플레이가 제법 먹혔기 때문에 SKT는 월드 챔피언십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그런 패턴을 충분히 숙지한 삼성 갤럭시였고, 3:0으로 왕좌를 빼앗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문제는 이 이후이다. 케스파컵과 스프링 스플릿에서도 SKT의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다른 팀들은 SKT의 이런 패턴을 2년 넘게 겪으며 적응한 상태였고, 플레이의 중심이던 페이커의 기량 하락까지 겹치면서 패배가 이어졌다. 비록 뱅이 예전의 폼을 되찾으며 2018 스프링에는 상위권 원딜의 지표를 보여주고 있으나 탑과 정글이 여전히 무너져 있는 상황에서 원딜러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라이너의 기량이 떨어졌음에도 초반에 스노우볼을 굴리지 못하면 미래가 없는 픽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패배하거나, CC로 중무장한 상대의 연계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경기가 계속되자 팬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약체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밴픽을 한다”라는 지적을 받기 시작한다.


▲ 지난 월드 챔피언십에서 크라운의 말자하를 계속 열어주고 호되게 당했다.


과거에도 이런 지적은 많았다. 하지만 항상 “밴픽은 코치진 뿐만 아니라 선수의 의견도 많이 반영된다”, “밴픽은 결과론일 뿐, 오만한 시도를 한 게 아니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SKT였다. 그러나 선수가 소화할 수 없는 밴픽을 고집하는 것을 더 나은 밴픽으로 유도하거나, 상대의 조합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코치진의 가장 큰 역할이란 걸 생각하면 지금의 코치진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이다. 해외 메타를 보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현재의 킹존, 아프리카 등에 비해 SKT의 밴픽은 다소 뻔하고, 독특한 픽을 들고 왔을 때도 선수의 역량이 안되는 모습이다.

이런 점이 가장 크게 드러난 것이 3월 14일 진행된 bbq와의 3경기다. 탑과 정글, 미드는 초반부터 우세를 점해 스노우볼을 굴리는 픽을, 봇 듀오는 후반에 힘을 발휘하는 픽을 하며 전략의 일관성이 떨어진 데다가 변변한 CC도 갖추지 못해 상대를 확실하게 잘라내는 플레이가 어려웠다. 반면 bbq는 다수의 CC와 넉백 연계라는 확실한 테마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초반부터 이득을 봐야 하는 SKT의 이 조합은 현재 탑과 정글의 경기력으론 효과를 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의 CC 연계로 초반부터 킬을 당하면서 “그 페이커”가 서포터보다 낮은 피해량을 내는 끔찍한 결과가 펼쳐졌다. 오히려 정글 세주아니, 미드 카르마 등으로 뱅의 경기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조합을 했다면 오히려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 무모한 플레이로 자신의 위험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단 평을 받고 있는 최근의 페이커


■ SKT의 탑과 정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묶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SKT는 안정적인 초반 이후 중후반의 한타를 통해 주도권을 갖는 플레이를 선호한다. 그리고 미드와 봇에 무게를 두는 만큼 상대적으로 탑이 고통받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17년까지는 마오카이, 트런들처럼 잘 버틸 수 있는 탱커나 럼블처럼 망하더라도 1~2코어 정도면 궁극기만으로 한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챔피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듀크가 있던 2016년까지는 이런 스타일도 나쁘지 않았다. 우직하게 듀크가 버티고 미드와 봇이 활약해 그 해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도 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2017년도였다. 듀크가 나가고 탑을 맡은 것은 후니와 운타라. 그중에서도 후니는 루시안으로 대표되는 호전적인 탑 라이너였다. 후니가 SKT에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게 “과연 후니가 원래 선호하던 픽과 다른 SKT 스타일의 탑 챔피언을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말이다.


▲ 우려와 달리 스프링과 MSI에서 럼블, 마오카이 등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후니


정글도 마찬가지다. 지능적인 플레이와 전투 상황에서의 피지컬을 보였던 벵기의 자리를 블랭크와 피넛이 이어받았다. 두 선수 모두 솔로 랭크나 기존 팀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운영보다는 교전을 통한 이득을 취하고, 스노우볼을 키워나가는 데 장점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SKT에서는 미드를 중심으로 시야 장악과 커버 플레이로 플레이 패턴이 고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피넛은 서머에 들어서 기량 하락까지 보이며 팬들의 집중적인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후니와 피넛은 새로 들어간 팀에서 자신만의 색을 되찾았고, 폼 역시 살아났다. 에코폭스와 킹존이 각각의 리그에서 선두를 달리는 데엔 그들의 활약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할 정도다. 그러다보니 “SKT의 기존 패턴이 선수들의 장점을 억누르고 획일화 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런 억제기의 역할을 하는 게 김정균 감독이다”라는 의견이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3월 18일 LCK 스프링 스플릿의 bbq 올리버스와 경기에서 피넛은 시야 밖에서 날아오는 상대 애쉬의 궁극기를 감각적인 점멸로 피하며 바론 스틸을 성공했다. 패배할 수도 있었던 경기를 세이브한 명장면이었지만, 경기 후 부스 안으로 들어온 꼬마 코치의 피드백은 매서웠다. “바론 스틸을 시도한 것은 사이코 같았다. 상대에게 내주고 버틸 생각을 하는 것이 맞았다”라며 질책을 당했던 것이다.


▲ 자막에선 생략된 김정균 감독(당시 코치)의 사이코 발언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았단 이유로 선수에 대해 혹독한 피드백을 한 것은 지난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있었다. RNG와의 준결승전에서 후니가 다소 무모한 플레이를 반복하면서 위험한 상황을 자주 만들었는데, 경기 중간 회의 시간에 “뭐 하려고 하지마, 보여줄 거 없어”라며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기분이 나쁠 수 있는 피드백을 받았다.

물론 선수의 잘못된 플레이를 지적하고, 개선해나가는 것은 코치로서 해야 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해당 영상이 공개되었을 당시에는 경기에 승리하더라도 저렇게 혹독한 피드백을 하는 것이 프로로서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SKT가 성공할 수 이유라고 꼽히기도 할 정도였다. 게다가 선수들을 다독이고 포용하는 모습이 없이 억압과 질타만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다면 아무리 좋은 선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월드 챔피언십 3회 우승이라는 결과를 낳을 순 없었을 것이다.



▲ RNG와의 4강전 중 앞경기에서의 실수로 혹독한 피드백을 받았던 후니


실제로 최근 NA LCS에서의 인터뷰에서 후니는 “김정균 감독이 내 역할을 한정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며 그를 다시 만날 수 없는 최고의 감독이라고 꼽기도 했다. 물론 인터뷰 말미에 “내가 김정균 감독에게 혼날 때의 느낌을 지금 SKT에 있는 선수들에게 느끼게 만들고 싶으니 국제 대회에서 만나서 꺾고 싶다”라고 언급하는 것을 보면, SKT 시절 받았던 피드백이 어느 정도로 혹독했을 것인가는 어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관련기사 : [인터뷰] '후니' 허승훈, "김정균 감독은 다시 만나지 못할 최고의 감독"

게다가 이렇게 임기응변이나 개인기를 살리는 플레이를 억제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선수 입장에선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기 어려워진다. 탑 라이너 입장에선 적극적인 스플릿을 하지 않게 되고, 정글러는 대형 오브젝트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거나 타워 다이브 같은 과감한 플레이를 하지 않으려 들게 되는 것이다. 탑과 미드, 그리고 정글이 활약해줘야 하는 2018년의 메타를 생각하면 이런 플레이는 분명 단점이 된다.



▲ 대치 상황에서 먼저 달려들어야 할 탱커들이 방관하는 경기가 흔하게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즌 중반에 투입된 신인 정글러 블라썸이 SKT의 이런 분위기를 바꿔놨다는 것이다. 블라썸은 그 과감성이 지나쳐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지만, 수동적인 모습으로 일관되던 SKT의 스타일에 변화를 만들어냈다. 상대적으로 덜 강한 팀을 상대로 출전해 승리를 따낸 것이라고 저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9위까지 떨어진 팀이 플레이오프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되살아난 것은 그의 활약이 크다.

그러나 킹존을 상대로 패배한 후 다시 블랭크가 출전하면서 SKT는 5연패 시절의 수동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아니, 1라운드 이상으로 페이커의 기량이 떨어지면서 플레이오프가 아니라 승강전을 다시 고민해야 할 상황까지 와버렸다.


▲ 기대의 신인 블라썸. 그가 출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다양한 억측도 퍼지고 있다.


■ 옛 영광을 버리고 언더독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처럼 SKT는 게임에 대한 큰 판도를 짜거나 선수의 장점을 살리는 부분, 그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부분 모두 코치진의 역량이 완전히 발휘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푸만두, 벵기라는 코치가 추가되었지만 적어도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은 최병훈 전 감독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밴픽 단계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김정균 감독이고, 나머지 코치들의 존재는 비중있게 비치지 않는다.


▲ 여전히 SKT의 부스를 보면 코치 시절처럼 김정균 감독이 가장 분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쨌거나 지금 SKT에겐 LCK, 월드 챔피언십 최다 우승이라는 영광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마치 LCK 초반에 우승을 휩쓸며 영광의 시기를 보냈던 CJ Entus(구 MIG)가 어느 순간부터 몰락의 길을 걷다가 해체된 역사가 그들의 이야기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1라운드에 그들을 5연패로 빠트린 아프리카의 “iloveoov” 최연성 감독은 SKT 스타크래프트 팀을 맡고 있던 시절 “옛 영광에 취한 자는 죽은 자다”라는 말을 남겼던 적이 있다. 이대로 옛 영광에 파묻혀 매몰될 것인지, 언더독의 자세로 다시 시작을 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선 지금, 선수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코치진의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