펍지주식회사가 PKL(PUBG Korea League) 출범을 발표한 지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아프리카 PUBG 리그(이하 APL) 시즌1은 대장정의 막을 내렸고, PUBG 서바이벌 시리즈(이하 PSS)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향상된 관전 인터페이스와 1인칭 모드 도입, 한층 빨라진 진행, 펍지주식회사 공인 인증 프로팀들의 출중한 기량 등은 지난 파일럿, 베타 시즌 대회보다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의 보는 맛을 한층 살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는 아직 초기 단계다. 발전된 모습과 함께 아쉬운 점이나 의문도 많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비공식 티밍 문제다. 비록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비공식 티밍은 언제든 큰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다.

캠브릿지 사전에 따른 티밍의 정의는 '팀을 이뤄 업무 따위를 함께 수행하는 것'이다. 배틀그라운드 역시 듀오, 스쿼드라는 공식 티밍 모드가 있다. 어디까지나 문제가 되는 것은 비공식 티밍이다. 배틀그라운드에서 비공식 티밍은 게임 내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같은 팀이 아닌 불특정 유저와 임의의 팀을 이루는 것이다. 배틀그라운드를 어느 정도 플레이한 유저라면, '빨간 티셔츠'로 대표되는 티밍을 한 번쯤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 PKL e스포츠 제재 규정 4페이지 중 일부

나 또는 우리 외에 모든 플레이어가 적이 되어야 하는 생존 게임에서 비공식 티밍은 배틀그라운드의 본질을 깨고 공정성을 해쳐 게임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물론 펍지주식회사도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며, 배틀그라운드 운영정책의 제재 종류 및 제재 기준에는 비공식 티밍의 의미와 처벌에 대해 상세히 나와 있다. 당연히 e스포츠 규정에도 비공식 티밍을 포함한 부정행위에 대해 명시가 되어 있는데, 이 규정만으로는 앞으로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 대회에서 불거질 비공식 티밍 논란에는 대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한 개의 스폰서, 두 개의 팀... 의심은 반드시 생긴다

펍지주식회사는 PKL 출범과 함께 공인 프로팀 모집을 시작했다. 기준은 한 스폰서 당 최대 두 팀까지였다. 이에 공인 프로팀 시스템이 없던 파일럿, 베타 시즌부터 두 팀씩 운영해오던 젠지나 OGN 엔투스, 콩두, 아프리카, 맥스틸 등의 팀들은 당연히 두 팀 운영을 이어갔고, PKL에 새롭게 참여한 액토즈 스타즈나 미디어 브릿지, 오피지지, ROG 등도 형제팀을 구성했다.

▲ 펍지주식회사가 최초 발표한 36개 PKL 공인 프로팀

이후 본격적인 PKL 투어가 시작되며 형제팀은 조별 예선에서 각각 다른 조에 배치되며 아무 탈 없이 경기가 진행됐다. 그러나 36강 및 승자조-패자조 경기, 최종진출전 등이 진행되며 형제팀이 같은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에 중후반 난전 중 형제팀의 애매한 교전이 연출되며 비공식 티밍 논란이 일어났다. e스포츠 팬들의 의견은 양쪽으로 나뉘었다. 교전 중 형제팀인 걸 확인하고 비공식 티밍을 시도했다는 입장과 비공식 티밍이 아닌 충분히 납득한만한 움직임이라는 입장이었다.

머지않아 이러한 논란들은 '비공식 티밍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이루며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과연 이걸로 잘 마무리된 걸까? 결코 아니다. 형제팀이 같은 경기에 참여하는 이상 앞으로도 비슷한 논란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모든 프로팀이 비공식 티밍을 지양하고 선수들 역시 가담하지 않는다 해도 배틀그라운드의 수많은 변수는 언젠가 비공식 티밍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연출할 것이다.

이외에도 형제팀이 사전 전략 공유를 통해 랜드마크를 서로 정반대 지역으로 가져간거나, 중후반 안전 구역 진입 과정에서 동선을 위아래로 나눠 진입한다는 전략 역시 넓은 의미의 비공식 티밍으로 간주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플레이들이 눈에 띌 만한 유의미한 변수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형제팀이 서로의 순위 상승에 미약하게나마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녹음된 개인 중계 화면 등 그 어떠한 증거를 갖다 대더라도 비공식 티밍이 아님을 100% 증명하는 방법은 없다. 똑같이 비공식 티밍임을 100% 증명할 수도 없다. 만약 중요한 경기, 중요한 순간에 비공식 티밍이 의심되는 플레이가 나오고 그로 인해 순위가 갈린다면? 이는 틀림없이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에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나올 확률은 극단적으로 낮지만, 확률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로 다가온다.

1931년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이론이 세상에 등장했다. 한 번의 대형 사고에는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징후가 선행한다는 것이다. 벌써 티밍 논란과 관련한 징후는 몇 번, 경미한 사고도 몇 번 발생한 것 같다. 과연 펍지주식회사는 이 불씨가 대형 사고로 번지기 전에 예방할 수 있을까.


■ 페이스 메이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마라톤이나 매스스타트 등의 장거리 레이스 종목에는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 그들의 역할은 본인의 순위를 포기하면서 동료의 우승을 위해 선두를 이끌며 바람막이를 하거나 경쟁자들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페이스 메이커 전략은 팀전은 물론 개인전 종목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규정에 위반되지 않는 부분이기에 그 누구도 이를 비판하지 않는다.


배틀그라운드 대회 경기에서도 페이스 메이커 전략은 충분히 유효하다. 이미 오스카 드래곤즈가 한 차례 보여줬다. 2월 4일 열린 PSS 베타 시즌 본선 4일 차, 3라운드 종료 후 종합 19위를 기록한 오스카 드래곤즈는 기존 랜드마크였던 로족을 버리고 남해안으로 이동했다. 파밍을 마친 오스카 드래곤즈는 인원을 나눠 양 다리에 배치해 밀리터리 베이스를 랜드마크로 하는 콩두 레드도트를 잘라냈다. 당시 콩두 레드도트의 데이 순위는 2위였고, 3위를 기록 중이던 형제팀 4:33은 결국 데이 우승과 함께 본선 최종 우승을 챙겼다.

이렇듯 랜드마크 전략이 보편화된 최근 배틀그라운드 대회에서 특정 팀을 저격하는 행위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배틀그라운드 대회에서 페이스 메이커 전략은 비공식 티밍인가? 아니면 단순한 변수 플레이 중 하나로 보아야 하는가? 만약 결승전에서 페이스 메이커 플레이가 등장해 형제팀의 우승에 큰 기여를 한다면, 과연 이를 처벌할 수 있는가?

페이스 메이커는 관점에 따라 비공식 티밍이 될 수도, 정상 플레이가 될 수도 있다. 랜드마크는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모든 팀이 공유하는 시작 파밍 장소다. 또 모든 팀은 당연히 라운드마다 내리고 싶은 곳에 내릴 자유가 있다. 이에 페이스 메이커는 형제팀의 순위 상승을 위한 특정 팀 저격 플레이(비공식 티밍)임과 동시에 단순히 랜드마크가 아닌 곳에 낙하했을 뿐인 정상적인 플레이다.

PKL에 참가 중인 한 프로팀의 관계자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같은 경기에 형제팀이 참가한다면 페이스 메이커 전략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며 "만약 어느 팀이 페이스 메이커를 사용한다면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겠지만, 규정 위반으로 처벌은 받지 않을 것이다. 아직 페이스 메이커가 비공식 티밍임을 명시한 규정이 없을뿐더러, 그 행위가 페이스 메이커 전략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며 향후 경기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정답이 없는 문제, 논란의 싹을 자를 수 있을까

당연히 PKL의 모든 프로팀은 비공식 티밍을 지양할 것이다. 비공식 티밍은 규정 위반 행위이자 e스포츠 선수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관계자는 "우리 형제팀은 이름만 같을 뿐 서로 경쟁 상대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형제팀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공식 티밍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논란의 가능성 때문이다. 크든 작든 상관없이 공식 대회의 진행 방식과 규정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만에 하나 비공식 티밍으로 인한 논란에 불이 붙는다면 진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유저들이 특정 행위에 대해 비공식 티밍이 맞다 또는 아니다로 대립한다면, 그에 대한 펍지주식회사의 판결은 한쪽의 더 큰 논란을 가져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