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잠잠한 비시즌 기간. 해외에서 활동 중인 몇몇이 국내 복귀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플라이' 송용준입니다. '플라이'는 분명 대형 영입이라 하기에 부족하지만, 무언가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선수입니다.

사실 팬들의 첫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하지만 '플라이'는 독특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팩트 말고, 환상을 가져달라"고 말이죠. 그리고 사뭇 달라진 태도도 눈에 띄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헛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조금 더 밝고 성숙해진 모습에 더욱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어쩌면 이번 서머 스플릿은 심심함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독특한 발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 그야말로 4차원인 이 선수가 노력, 열정, 정석으로 표현되는 젠지 e스포츠에 합류했습니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이 조합에 많은 팬 역시 기대를 하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앞으로 '플라이'의 4차원 세계가 젠지 e스포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Q.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복귀했습니다. 잘 마무리하고 온 것 같나요?

솔직한 답을 원하신다면 '아니오'죠. 누구든 만족할만한 결과를 못 얻었잖아요.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커요. 서머 스플릿 때 더 잘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뭔가 다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온 기분이에요. 제가 솔로 랭크도 진짜 열심히 해서 1등도 찍었거든요.


Q. 워낙 독특한 성격 탓에 미국에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을 듯싶은데요.

에피소드는 아니고, 안 좋은 기억은 있어요.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그런지 팀원들이 저를 어려워하더라고요. 오죽했으면 혼자 있는 시간도 많고, 말수도 적다 보니 앞에서 이런 이야기조차 하질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젠지 e스포츠에 와서는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Q. 혼자 있을 때 주로 뭐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짱구나 마인크래프트를 봤어요. 지금은 연습만 하죠. 그리고 밥을 어떻게 먹어야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요. 원하는 음식을 차려놓고, 짱구 같은 걸 보면 그게 그렇게 행복해요. 그래서 이렇게 살 쪘나 봐요.


Q. 원래 미국행을 원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런 영향도 있었을까요?

그런 건 아니에요. 팀원들은 참 좋았어요. 그중 한 명이 생각나네요. '안다'라고, 그 친구가 신인 중에서 꽤 유망주였어요. 그런데 함께 좋은 결과를 못 만들어서 미안한 마음이에요.


Q.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옛날 팀원들이 생각나지 않던가요?

'스코어' (고)동빈이 형이 조금 생각나요. 그런데 그 형도 늙어서(웃음). 농담이고요. 그냥 현재 팀원들만 생각하는 게 예의 같아요. 괜히 전에 있던 팀원들에 대해 마구잡이로 언급하면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고, 이상한 소문을 만들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럽네요.



Q. 반대로 한국에 있는 프로게이머들은 본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요. 정말 잘하는 선수라는 평가도 많고요.

도대체 제가 왜 그런 평가를 받는 거죠? 저도 의문이네요(웃음). 그래도 고맙네요.


Q. 안타깝게도 팬들은 아직 못 미더워하는 눈치지만요. 한정적인 스타일에 대한 지적이 꽤 보여요.

그 부분은 살짝 오해 같아요. 하지만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하니까 제가 할 말은 없어요. 팬분들이 너무 팩트로 때리시네요(웃음). 그래도 이왕 한국에 왔으니 패지만 말고, 저에 대한 환상도 좀 가져주세요. 제가 못하고 싶어서 성적을 못 낸 게 아니잖아요. 요새 새벽 4시까지 진짜 열심히 한단 말이에요.


Q. 두 미드 라이너에 대한 시너지가 어떨지 궁금해하더라고요.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도 있고요.

이것도 팩트라 또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안 좋은 반응들을 보면 그러려니 하면서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도 너무 맞는 말들이라 제가 반박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혹시 몰라요. 민호가 엄청 좋은 모습 보여드릴 거예요. 저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Q. 이왕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파'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석 챔피언도 자신 있다고 했잖아요.

모든 챔피언을 다 하죠. 못하는 챔피언은 없는데, 제 판단하에 좋다고 생각하는 챔피언을 주로 하죠. 가끔 꽂히는 챔피언을 고르지만요. 예를 들면 카서스나 신지드(웃음). 솔로 랭크에서 그런 챔피언들을 고르면 다들 질색해요.


Q. 아픈 손가락들이 있지 않나요. 에코나 아리같은 챔피언들에 대한 언급이 빠졌네요.

에코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웃음). 아리는 잊을 수가 없고요. 그런데 여전히 아리는 안 좋잖아요. 손이 안 가요. 그때 제가 안 좋다고 하고, 다음 경기에 썼을 때 진 것도 기억나요. 변명을 생각해봤는데, 떠오르지가 않아요. 그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Q. 그래서 라인전이 약한 선수라는 평가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요.

그런 평가들은 생각하는 분들 자유죠. 제 기준에서 중간은 하는 것 같아요. 진짜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자신감으로는 다 이길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또 욕하실 거죠(웃음)?


Q. '로밍형 미드라이너'라는 좋은 별명도 있잖아요. '도망형 미드라이너'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에이. 도망은 아니죠. 무슨 소리들 하시는 거예요. 로밍은 타이밍과 시야가 매우 중요한데, 제가 유독 그런 부분에서 강점이 있어요. 로밍에 대해서는 말을 아낄게요. 제 무기니까요.



Q. 젠지 e스포츠에 입단했어요. 팀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요?

그동안 팀을 진짜 많이 옮겼잖아요. 그 팀들에서 배운 노하우들이 많아요. 이제는 활용할 시기죠. 미국에서는 게임 내적이 아니라 외적으로 많이 배웠어요. 사교성을 기르는 계기가 됐거든요.


Q. 이지훈 단장님이랑 만나서 반갑지 않았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단장님은 왜 왔냐고 하시던데요(웃음). 저희만의 인사법이에요. 저도 왜 여기 계시냐고 여쭤봤어요. 워낙 잘해주시고, 좋아하는 분이에요.


Q. 어떻게 젠지 e스포츠에 왔는지도 듣고 싶어요.

올해 초에 팀을 찾고 있었는데, 국내팀 중 몇몇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원래는 마음 편하게 주전을 하고 싶었어요. 젠지 e스포츠가 가장 적극적으로 저를 원해서 결정하게 됐죠. 제가 가성비가 좋거든요.


Q. 지금 팀의 장점은 뭔가요? 좋은 점이나.

이미 완성돼 있는 팀에 제가 들어왔잖아요. 기존 분위기에 제가 녹아들기만 하면 돼서 편해요. 롱주 게이밍이나 플라이퀘스트 때는 리빌딩 하는 과정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kt 롤스터 때처럼 젠지 e스포츠도 이미 선수단이 갖춰져 있으니 마음이 편하죠.


Q. 지금은 누구랑 가장 친한가요?

현재 '앰비션' (강)찬용이 형 빼고는 다 친해졌어요. 특히, '큐베' (이)성진이랑 '룰러' (박)재혁이가 저를 유독 좋아해요. 제가 이제 밝아지는 단계인데, 찬용이 형은 큰 도전이죠(웃음). 뿜어내는 아우라가 있어서 제가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도전할게요.


Q. 워낙 4차원으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젠지 e스포츠는 조용하면서도 본인과 전혀 다른 성향처럼 보여요.

'크라운' (이)민호도 정신적으로 특이해요. 저는 아이돌이나 밝은 노래들을 선호하는데, 걔는 심할 정도로 어두운 음악을 듣더라고요. 술을 좋아하길래 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 같이 마셨는데, 아직 판단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워크숍에서 한 번 보내버릴라고요. 그럼 뭐가 됐든 나오지 않겠어요? 재혁이는 '프레이' (김)종인이 형의 하위호환이에요. 말투가 좀 비슷해요.


Q. 보통의 경우에는 경쟁 선수와 어색한 분위기가 있는데, 신경 쓰이지 않아요?

생각하기 나름이죠. 속된 말로 '빨린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크게 신경 쓰질 않아요. 저랑 민호는 그런 부분은 쿨해요.


Q. 코칭스태프들과는 어때요?

원래 제가 나이 많은 분들을 어려워하거든요. '트레이스' 여창동 코치님은 원래 알고 지낸 사이여서 편해요. 주영달 코치님과는 아직 엄청 친해지지 않았지만, 저를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감독님은 이래저래 바쁘셔서 아직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는 않았어요.



Q. 한국에 와서 킹존 드래곤X 선수들과는 자주 연락하고 지내나요?

'고릴라' (강)범현이 형이나 '쏭' 김상수 감독님이랑 종종 연락도 하고, 제가 먼저 만나자고 해요. 하지만 나가기 워낙 귀찮아서 진짜 만나서 밥 먹은 적은 없어요. 동빈이 형한테도 연락은 자주 했는데, 생각해보니 본인들은 저한테 연락을 잘 안 하네요. '크래쉬' (이)동우는....... 웃음이 나오네요. 전에 모르는 소환사명으로 친구 추가가 왔길래 받아서 인사는 나눴어요.


Q. LoL의 로망 중 하나는 미드 라이너들의 자존심 싸움이에요.

제가 지금 기세가 무척 좋아요. '비디디' (곽)보성이가 요새 그렇게 잘한다던데, 제가 이길 수 있어요. 아직 저는 안 맞아봤으니까 자신감 좀 가질게요(웃음). 그런데 보성이는 왜 이렇게 연락이 없을까요. 잘 나가서 그런가. 제가 진짜 아꼈었는데 말이죠.


Q. 좋은 모습을 보여준 신인 미드 라이너들 많아요. 그들과의 경쟁은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신인 선수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해도 저는 신인 선수들보다 더 잃을 게 없어요. 그 친구들은 주목도 받고, 신인인데 잘한다는 평가도 받잖아요. 반대로 저는 이미 밑바닥이고, 올라갈 일만 남아서 자신 있어요.


Q. 그러고보니 지금 메타에 무척 잘 맞을 것 같기도 하네요.

자세하게 말하기는 어려운데, 딱 저한테 맞는 메타에요. 원거리 딜러 메타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원거리 딜러는 그냥 키워준 값을 하는 포지션이고, 늘 정글-미드 주도권이 중요하죠. 그런데 왜 제가 가는 팀마다 늘 꼬일까요. 그래서 조금 불안하긴 해요. kt 롤스터에서도 정말 중요한 시기에 아우렐리온 솔이 글로벌 밴을 당해버리는 바람에 아쉬웠거든요. 플라이퀘스트에 있을 때도 비자 문제가 생겨서 한 달 정도 한국에서 지내다 합류했어요. 그래도 뭐 그럴 수 있죠. 지나간 일인 걸 어떡하겠어요.



Q. 최근 중국팀의 기세가 좋아요. 아직 국제 대회 경험이 없는데, 붙고 싶지않아요?

제가 해외팀을 평가해도 될까요? 우선은 여기서 성적을 거둬야 붙을 기회도 생기잖아요. 지금처럼만 하면 충분히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국제 대회보다는 국내에서 정말 우승컵을 들어보고 싶어요. 저만 잘하면 충분히 가능해 보여요.


Q. 그렇다면 꼭 꺾어보고 싶은 팀이나 라이벌은 있나요?

미드 라이너 중에서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선수는 없어요. 제가 다 이길 거예요. 이러면 아리 시즌2가 되려나요(웃음). 꺾어보고 싶은 팀도 없는데, 어떤 팀을 만나도 중요한 순간에 이기고 싶어요. 그러면 기분이 더 좋잖아요.


Q. 앞으로 '플라이'가 이끄는 젠지 e스포츠는 어떨까요?

지금 당장의 폼으로는 1등이에요. (봇 듀오가 그렇게 잘한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저희 봇 듀오는 뒤가 없어요. 그저 상대를 패는 데만 집중해요. 그래서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Q. 본인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성적이 중요한 시기에요.

일단 팀에서 저를 강하게 잡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자연스럽게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게임에 재능이 있는 편이에요. 재능러에 가까워요. 지금까지는 어떤 코칭스태프도 저를 많이 터치하지 않았어요. 특별히 제가 혼날만한 행동을 안 하기도 했지만요. 그런데 제 성격상 정말 강하게 다뤄주셔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인터뷰에서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앞에서 이미 각오는 말씀드린 것 같고, 팬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문득 동빈이 형이 생각나요.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던데, 이번 스플릿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