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랭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수의 LoL 유저들은 대회를 챙겨본다.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기 위해, 우리네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프로 수준의 경기력에 감명을 받기 위해, 혹은 그냥 재미있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 덕분에 대회에서의 메타는 우리의 솔로 랭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대회에 등장하는 챔피언, 아이템 트리, 룬 등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다. 당연히 현 패치 버전에서 가장 좋은 효율을 보여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깜짝 픽이나 조커 카드는 현재의 메타를 카운터 치는 역할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한 번 등장하고 나면 솔로 랭크에도 유행처럼 번지곤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솔로 랭크 양상은 대회와 많이 다르다. 프로게이머는 5명이서 하나의 게임을 하지만, 우리는 '솔로'다. 때문에 대회에서는 정말 좋은 카드로 쓰였던 챔피언이 솔로 랭크에서는 생각보다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안타깝게도 얼마 안 가 '충(蟲)' 챔피언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프로게이머의 손끝에서 탄생한 비운의 충 챔피언 몇 가지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려 한다. 전혀 다른 의미로 대회와 솔로 랭크를 동시에 강타한 그들을 만나보자.


■ 돌리고, 돌리고 - '콘샐러드' 이상정과 '페이커' 이상혁의 미드 마스터 이

초창기 시절부터 LCK를 꾸준히 시청해온 유저라면 이날의 충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12년 11월, LCK 윈터 리그에서 나진 실드와 만난 팀 오피의 '콘샐러드' 이상정이 미드 AP 마스터 이를 꺼내 들었다. 마스터 이가 선택되자마자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이상정은 그 환호에 보답이라도 하듯 폭발적인 경기력과 함께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 출처 : SillverBellIron 유튜브 채널

당시 마스터 이는 리메이크를 거치기 전으로, Q 스킬 '일격 필살'이 AP 계수가 붙은 마법 피해였고, 역시 AP 계수가 붙는 W '명상'의 체력 회복량도 어마어마했다. 궁극기를 활용한 상태에서 킬을 획득하면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이 초기화된다는 점을 이용해 한타 때 홀로 킬을 쓸어담는 것이 미드 AP 마스터 이가 바라는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다만, Q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꽤 긴 편이라 초기화시키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치명적 단점이었다. CC기가 최고의 카운터였던 셈이다. 그날 경기에서 이상정은 피지컬을 통해 상대 CC기를 흡수하고, 적절한 치고 빠지기로 '일격 필살'을 계속 초기화시키는 현란한 모습을 보여주며 마스터 이 유저들의 심금을 울리는 동시에 수많은 '미드 마이충'을 양산했다.

이후 리메이크를 거치면서 이제 미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마스터 이였지만, 이번에는 '페이커' 이상혁의 손에서 재탄생했다. 약 3년 후인 '2015 LCK 섬머', CJ 엔투스와의 경기에서 이상혁이 미드 마스터 이를 꺼내 든 것이다. 당시 OGN이 공개한 '오프 더 레코드'를 들어보면, 이상혁은 밴픽 단계에서 "마스터 이가 저 조합 썰기 좋다"면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고, 플레이로 이를 증명했다. 덕분에 마스터 이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 출처 : OGN 유튜브 채널


■ 피지컬만 받쳐준다면 - '페이커' 이상혁의 미드 브루저

이상혁은 누구나 인정하는, 챔피언 풀이 굉장히 넓은 선수다. 덕분에 어떤 메타가 와도 늘 강력한 모습을 뽐냈고,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조커 카드로 내세웠던 챔피언은 마스터 이 뿐만이 아니었다. 대회에서 이상혁의 부름을 받은 또다른 챔피언은 바로 브루저류 챔피언인 리븐과 이렐리아였다. 브루저는 탑 챔피언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은 선택이었다.


미드 리븐의 데뷔전은 '2013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조별 예선이었다. 당시 대세 챔피언이었던 제드를 내어주고 리븐으로 카운터치겠다는 전략이었다. 두 번의 카운터 전략이 잘 통하면서 이상혁은 기분 좋은 2승과 함께 실시간 검색어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후로도 이상혁은 중요한 무대에서 리븐을 조커 카드로 선택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줬다. 특히, 2015 롤챔스 섬머 결승전에서는 마지막 3세트에 리븐을 꺼내며 승부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그의 리븐은 공식전 기준 무려 6전 전승이다.

역시 승률 100%를 기록하고 있는 이렐리아는 2015 롤챔스 섬머 때 두 번 사용됐다. 첫 등장은 쿠 타이거즈와의 대결이었다. 당시 상대 미드라이너였던 '쿠로' 이서행이 밴픽 과정에서 이상혁의 이렐리아를 보고 '우와, 미친X인데?' 라고 놀라움을 표하는 장면은 한동안 밈(meme)이 될 정도로 유행을 타기도 했다. 아마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팬들 역시 이서행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출처 : OGN 유튜브 채널


대회에서는 전승을 기록한 미드 브루저도 솔로 랭크에서만큼은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미드에 브루저가 등장하게 되며 AP와 AD의 대미지 밸런스가 무너지는 데다가 근접 챔피언이 원거리 챔피언을 상대로 CS를 수급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못 큰 브루저는 딜도 탱도 안되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군의 원성을 사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캐리 혹은 트롤이라는 극단적인 챔피언을 두 팔 벌려 환영할 플레이어는 없지 않은가.

다만, 최근 리메이크를 거친 이렐리아는 다시 한 번 미드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배경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스킬 구성의 변화로 한타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생존력과 라인 클리어 능력도 향상됐기 때문이다. 솔로 랭크 챌린저 구간의 밴율은 무려 70%에 육박하며 승률 또한 약 53%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전적 검색 사이트 fow.kr 기준). 가장 최근 열린 국제 대회인 '2018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에서 RNG의 '샤오후'와 킹존 드래곤X의 '비디디' 곽보성이 미드에서 활용한 바 있다.


■ '미포터'만 빼면 정말 완벽한 선수인데... - '고릴라' 강범현의 서폿 미스 포츈

이상혁의 미드 리븐처럼 조커 카드는 중요한 무대에서 등장할 때 그 임팩트가 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했던 챔피언 중 하나는 바로 '고릴라' 강범현의 서폿 미스 포츈이다. 2016 롤드컵 4강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두 팀이 만났다. 바로 디펜딩 챔피언 SKT T1과 그에 도전하는 락스 타이거즈. 첫 세트를 내주고 수세에 몰린 락스 타이거즈는 2세트에서 주류 서폿으로 꼽히던 자이라에 대한 카운터 픽으로 애쉬-미스 포츈이라는 다소 기괴한 조합을 꺼내 들었다.

▲ 출처 : 붐바야 유튜브 채널

당시 경기의 팀 보이스를 들어보면 SKT T1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꼬마' 김정균 코치(현 감독) 또한 미스 포츈 선택이 당연히 실수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상대가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밀리에 준비해온 이 카운터 전략은 완벽하게 통했다. 애쉬의 궁극기에 이은 미스 포츈의 폭딜에 체력이 낮은 자이라는 계속해 아무것도 못하고 잡힐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스노우볼을 굴린 락스 타이거즈는 2, 3세트를 승리로 가져올 수 있었다.

다만, 이후 솔로 랭크에서 유행처럼 번진 미포터는 '럭포터(럭스 서폿)'에 이어 원거리 딜러가 가장 싫어하는 서폿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보호받고 싶은 원거리 딜러와 대미지 딜링에 치중하는 서폿 간의 마찰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속박이나 스턴 스킬이 없어 갱킹에 취약하다보니 상대 정글러의 집중 공략에 맥없이 무너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때문에 '미포터'에 시달린 많은 유저들은 강범현을 가리켜 '미포터'만 빼면 완벽한 선수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 원딜님, 회복 좀 들어주시면 안될까요? - '프레이' 김종인의 순간이동 이즈리얼

2018 MSI 그룹 스테이지, 킹존 드래곤X의 첫 경기에서 '프레이' 김종인이 예사롭지 않은 소환사 주문을 선택했다. 바로 순간이동이었다. 소환사 주문은 메타에 따라 바뀌곤 했지만, 원거리 딜러들은 생존에 도움을 주는 회복과 방어막이라는 두 선택지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김종인의 순간이동 선택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해설진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였다.

사실 이즈리얼의 순간이동은 MSI가 시작되기 직전부터 천상계 솔로 랭크에서 조금씩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김종인은 개인 방송에서 순간이동 이즈리얼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회에서까지 활용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출처 : 프레이TV 유튜브 채널

이즈리얼이 순간이동을 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코어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여신의 눈물'을 빠른 타이밍에 사서 스택을 빨리 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소위 말하는 '쌍여눈' 아이템 트리가 있었다. '여신의 눈물' 상위 아이템인 '마나무네(무라마나)'와 '대천사의 지팡이(대천사의 포옹)'을 모두 올리는 아이템 트리가 강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원거리 딜러의 순간이동은 유행처럼 번져 굳이 이즈리얼이 아니더라도 순간이동을 선택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프로 수준의 경기에서는 순수 2대 2 싸움이 잘 나오지 않으니 수비적인 소환사 주문을 선택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순간이동을 활용해 라인에 빠르게 복귀하며 CS 수급량을 늘리고, 성장에 집중하는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유저들의 솔로 랭크에서는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탓에 회복 스펠의 차이가 그 결과를 가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회복이 없는 아쉬움에 눈물짓는 서폿들이 늘어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