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8-07-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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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법칙] '로브레이커즈' - 왜 재미가 없었을까요?

정재훈 기자 (Laffa@inven.co.kr)

어느새 그에게 '하루'란 그저 또 한 번의 순환에 불과하다. 매일 아침이면 그가 일하는 병원에 들러 진료를 하고, 주에 한 번은 응급실에서 간혹 오곤 하는 긴급한 환자들을 본다. 하수상한 시절이다 보니 응급 환자들은 꽤 되는 편이었다. 매 번 오는 이유는 서버 문제나 자잘한 버그였지만.

금요일은 조금 다르다. 금요일은 제 4병동의 회진이 있는 날이다.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이들. 다가올 서비스 종료의 순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가쁜 숨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 죽음의 책임은 그들에게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그는 또 한 명의 환자를 만났다.


"선생님. 오늘 보실 환자분 차트 준비됐습니다."

"이 동네는 왜이리 죽어나는 게임들이 많은지... 오늘은 병명이 뭔가"

"음... 솔직히 제가 봐도 이건 고칠 수가 없네요. 재미입니다."

"재미? 재미가 없어?"

"네... 가장 큰 문제는 시대를 잘못 탔어요."

"차트 보니까 부모가 꽤 괜찮은 사람들인데 왜 그랬대?"

"그거야 저도 모르죠. 직접 가서 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는게 좋겠군. 이름이 뭔데?"

"여섯 글자입니다. 로브레이커즈요"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대충 그려지는걸 보니 그럴만 하군. 가지."


조금 남은 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미처 타지 않은 담뱃잎들이 부산히 날렸다. 마치 앞으로 보게 될 환자의 재미처럼. 그러다 결국은 빗물에 젖은 바닥에 닿아 똑같이 젖어들었다. 그리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로브레이커즈`는 제가 굉장히 기대했던 게임 중 하나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게임만 제대로 나온다면 제 통장이 텅장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실망스러웠죠. 제가 이렇게나 기대한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바로 개발을 맡은 `보스키 프로덕션`의 `클리프 블레진스키` 덕분이었죠.

▲ 바로 이 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세계 게임 개발자 100인 중 2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이름있는 개발자입니다. 대표작은 `재즈 잭 래빗`과 `기어즈오브워` 시리즈가 있지요. 제 경우는 `기어즈오브워`를 진짜 미친 사람처럼 즐겼던 게이머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넥슨이 메인 퍼블리셔가 되었다는 말에 살짝 걱정하긴 했지만 뭐 어때요. 포르쉐에 용달블루를 칠한다고 그게 포르쉐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작년 초, `로브레이커즈`의 기자간담회가 서울에서 열렸을 땐 솔직히 이게 외근이라는 생각도 안들었어요. 외근은 일이잖아요. 일이 어떻게 이렇게 즐거울 수 있죠? 클리프를 만나잖아요. 그 클리프를. 저희 팀 팀장님도 클리프 블레진스키의 광팬인데, 그날 둘이서 손이 흥건해진 채 간담회에 갈 정도였습니다. 이 팀장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기어즈오브워` 주인공인 `마커스`에 본인 얼굴을 합성해서 프로필 사진으로 쓰다가 이날 이후로 클리프와 찍은 투샷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신 분입니다.

▲ 이러고 다니던 분이었습니다. 흑흑

그리고 그게 저희 즐거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CBT, E3 2017을 겪으면서 여러 번 로브레이커즈를 시연해 보았으나, 제가 생각했던 클리프 블레진스키의 그 감성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냥 재미가 없었습니다. 포르쉐에 용달블루를 발라도 포르쉐일줄 알았는데, 그때 그 포르쉐가 아니었어요. 근데 그냥 `재미없다`라고 쓰면 여러분이 이해하기가 힘드시겠죠. 그러니 하나하나 짚어 봅시다.

환자 차트


사진(규격 사이즈에 맞춰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름: 로브레이커즈(LawBreakers)

출생: 2017년 8월 8일(만 1세)

가족관계: 부(넥슨), 모(보스키프로덕션), 잘나가는 외삼촌(클리프 블레진스키)

확진 시기: 2017년 5월

병명: 노잼병

원인: 구식 게임 디자인, 불편한 조작성, 지나치게 하드펑키한 캐릭터 디자인

완치 가능성: 0%(개발사가 사라짐)

예상 사망일: 2018년 9월 14일


환자 차트부터 보겠습니다. 9월은 무슨 죽음의 달인가요? 제가 9월생이라 나름 좋아하는 달이었는데, 이볼브고 로브레이커즈고 9월만 되면 서비스가 종료되네요. 보시다시피 작년 8월 8일에 나왔습니다. 현재 시점으로 아직 1년도 안 지났어요. 이 정도 시간이면 콘솔 게임도 가격방어가 이뤄지고 있을 시간입니다. 솔직히 아직 `신작`이라 해도 되는 시간이에요. 지난 시간에 이볼브가 3년 반 살고 가버려서 요절했다고 썼는데 1년 만에 문을 닫을 정도면 요절이라는 표현도 아깝습니다. 솔직히 드립 치고 싶은데 이건 도덕적으로 칠 드립도 없습니다.

▲ 사망 선고가 나와버렸습니다

물론 1년 안에 문을 닫는 게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 게임`도 2달 만에 사라졌잖아요. 2주년을 맞았으니 잠시 묵념하고 가겠습니다. 아. 제게 개인 쪽지로 그 게임은 언제 쓰냐고 물으시는 분 계시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맛있는 건 가장 나중에 먹는 스타일입니다.

본론으로 들어와서 1년 안에 접는 게임들의 문제는 하나입니다. 재미가 없는 거예요. 게임이 문을 닫는 이유는 참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나열하기도 귀찮을 정도이지만, 1년 안에 서비스가 종료되는 건 게임이 게임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겁니다. 밸런스가 개판이든, 버그가 많든, 혹은 개발자가 건방지든 상관없이 게임이 재미있다면 누구라도 게임을 합니다. 근데 아무도 안 하는 게임은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왜 재미가 없는데요?
도대체 언제적 감성이야 이게...


그럼 구체적으로 왜 재미가 없는지 살펴봅시다. 일단 로브레이커즈는 캐릭터 베이스의 FPS 게임입니다. 기본적인 룰은 양 팀이 치고받고 싸우는 거지만 그 양 팀의 캐릭터가 다 달라요. 그리고 캐릭터마다 특화된 능력과 기술들, 역할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게임을 캐릭터 베이스의 게임이라고 해요. LoL이 그렇고, 오버워치가 그렇죠.

먼저 보이는 로브레이커즈의 문제는 이 캐릭터 구성이 심각하게 구식이라는 겁니다. 솔직히 현시점에 캐릭터 베이스 게임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만큼 많은 캐릭터가 존재하고,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웬만한 상상은 이미 다 클리셰가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근데 그 클리셰를 깰 생각조차 안 한 것 같아요. 적당한 쌍칼, 적당한 로켓 달린 여자, 적당한 선글라스, 프레데터인지 뭔지 모를 뚝배기. 다 어디서 본 겁니다.

▲ 마치 널 어디선가 본 것 같아...

이렇게 캐릭터부터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오버워치` 영상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제가 가장 감탄한 것이 블리자드의 캐릭터 메이킹 능력이었어요. 뭐 부정적인 의견도 많고, 솔직히 저도 오버워치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만 블리자드의 캐릭터 메이킹 능력은 인정해줘야 해요. 모든 캐릭터가 개성이 뚜렷하고, 겉모습만 보아도 어떤 캐릭터겠구나 하고 딱 개념이 잡힙니다. 캐릭터 베이스 게임에서 캐릭터가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부터 일단 적신호가 들어온 거죠.

그렇다고 게임 플레이가 참신한가요? 그것도 아니에요. 로브레이커즈가 내세운 특장점은 `무중력`입니다. 말 그대로 중력 없는 공간에서 서로 날아다니면서 싸울 수 있다는 거에요. 근데 솔직히 `무중력` 딱 듣는 순간 매력적입니까? 아니에요. 이미 FPS 게임에서 무중력은 나올 만큼 나왔습니다. 1999년에 개발된 `언리얼 토너먼트`만 해도 로우 그래비티 뮤테이션을 적용하면 중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의 환경에서 서로를 쏴댈 수 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언리얼 토너먼트도 클리프 블레진스키가 만든 게임 중 하나네요.

당장 옆 동네에서는 사이보그 닌자가 이단 점프를 하면서 날아다니고 고릴라가 로켓 점프를 하는데 이 동네는 그냥 `무중력`이라는 단어 하나로 땡 쳐버렸네요. 심지어 그 무중력 공간에서 싸우는 게 딱히 재밌지도 않습니다. 로켓 부스터 달고 날아다니는 여캐는 그 로켓이 아이덴티티인데 무중력 공간에선 개나소나 다 날아다녀서 로켓 달고 날아다니는 여캐에서 그냥 여캐가 됩니다. 이럴 거면 로켓은 왜 줍니까. 핸드백이라도 하나 더 맞춰주시지.

▲ 무중력이 무슨 대수입니까. 고수들은 애초에 무중력인데

게임 모드가 재미있는 것도 아니에요. 각 진영이 세 곳으로 나누어진 거점을 점령하는 모드의 경우 그냥 거점 점령 모드입니다. 거점 점령은 이런 FPS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 거의 모든 FPS에서 이미 쓰일 만큼 쓰인 모드에요. 심지어 완전히 다른 컨셉의 `배틀필드`에서는 메인 콘텐츠입니다.

다른 모드는 무슨 금속 공 같은 걸 확보하는 건데, 이거도 딱히 재미있진 않습니다. 두 팀이 특정 오브젝트를 차지하는 모드는 이미 숱하게 나왔잖아요. 물론 FPS에서 게임 모드야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여기서 크게 뭐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부분에서 재미가 없는데 게임 모드마저 땅따먹기랑 퀴디치다 보니 더 안 좋게 보이더군요.

▲ 오히려 출시 전엔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게 다 구식입니다. 심각하게 구식이에요. 그리고 이 구식 요소들이 캡틴 플래닛처럼 하나로 모여 거대한 노잼을 만들어냅니다. 제 생각엔 개발진이 타겟 유저층을 잘못 설정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퀘이크3와 언리얼 토너먼트에서 상대를 작살내고 다니던 올드 코어 게이머들은 로브레이커즈가 그냥 심심한 게임이에요. 무중력? 그 사람들은 본인 손가락으로 무중력을 만들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캐주얼 게이머가 진입하기엔 진입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일단 게임의 색감부터가 어둡다 보니 눈이 잘 안 가요. 락발라드 콘서트라고 해서 갔는데 스텝이 데스메탈 화장을 하고 있는 격입니다. 들어가기 무섭잖아요. 그런 판국에 어떻게 게임을 시작한다 해도 이미 빠른 템포의 FPS를 물리도록 겪은 올드 코어 게이머들. 뭐 그 사람들도 로브레이커즈는 처음일 테니 경력 있는 신입 정도 되겠네요. 하여튼 그 사람들에게 썰려나가기 딱 좋습니다. 그럼 누가 이 게임을 플레이할까요?

▲ 나름 줄 서는 사람들도 많았고...

아마 이 게임이 20년쯤 전에 나왔다면, 지금쯤 게임 백과에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연 FPS 게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언리얼 토너먼트나 퀘이크3를 조금은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엄청난 차이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조금은 인기가 더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 당시 출시되었다면 혁신적인 게임이 되었겠죠. 그러면 뭐합니까. 지금 나와서 온통 뒷북만 치는 게임이 되어버렸는데.

E3 2017 당시 클리프 블레진스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곧 서울 남산을 배경으로 하는 맵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맵은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스팅레이가 주인공을 왜 마음에 들어했는지 모르듯이 말이죠.

▲ 왜 마음에 들었는지 말해주고 가야 할 것 아냐ㅠㅠ


재미만 없는 거에요?
아뇨... 그것만 없는게 아니에요...


그럼 잠깐 쉬면서 생각해봅시다. 성공한 게임들을 잘 살펴보면, 두 가지 면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재미있는 게임플레이가 하나고, 그 게임을 받쳐주는 설정, 시나리오, 조작감, 그래픽, 사운드 등 게임플레이 외적 요소가 다른 하나죠. 솔직히 이 두 가지가 모두 만족하면 실패할 일이 없습니다. 퍼블리셔를 너무 잘못 만나거나 마케팅이 완벽하게 엉망인 경우가 아니면요.

일단 로브레이커즈는 게임 플레이 면에서 너무 구식이라 재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요소를 살펴봅시다. 일단 가장 중요한 `조작감`입니다. FPS 게임만큼 조작감이 중요한 게임이 없습니다. 조작감이라는 개념이 헷갈리시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내가 생각한 대로 캐릭터가 움직이는가?` 이게 잘 될수록 조작감이 좋은 겁니다.

제가 처음 플레이한 캐릭터는 어쌔신 포지션의 `키츠네`라는 캐릭터입니다. 캐릭터가 워낙 다 비슷비슷하다 보니 이름 생각해내려고 인터넷을 검색했어요. 하여튼 주 무기로 쌍 단검을 쓰고, 이동 능력으로 로프 런처를 갖고 있습니다. 탕하고 쏘면 벽에 딱 박혀서 이동할 수 있는 그것 맞습니다. 이미 다른 게임에서 많이 나왔죠. 그리고 게임 중에 상대에게 맞아서 공중에 떴습니다. 이대로라면 맵 밖으로 추락사할 위기였어요. 그래서 전 앞에 보이는 건물 벽에 로프 런처를 쏴서 맞췄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 일단 내 마음대로 잘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죠.

제가 생각한 건 그림처럼 로프 이동으로 다시 살아나서 복수하는 거였지만 그냥 떨어져 죽었습니다. 로프가 감기는 속도보다 내 캐릭터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어요. 그 청소기 돌리고 나면 코드 뽑고 청소기 본체 어딘가를 발로 꽉 밟으면 후둘둘둘둘 하면서 선 감기잖아요? 그거보다 느린 것 같았어요. 왜죠? 캐릭터가 생각보다 살이 많이 찐 걸까요?

솔직히 FPS로서의 조작감은 나쁘지 않았어요. 아마 이 게임이 서든어택처럼 그냥 뛰어다니고 총 쏘는 게임이었다면 만족할만한 조작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다양한 능력을 활용해야 하는 게임이고, 게임 중 이 능력이 제때 제대로 발휘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판도가 갈립니다. 근데 능력이 컨셉처럼 작동을 못 해요. 이건 문제가 있는 겁니다.

▲ 일단 이런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답니다.

그럼 조작감을 떠나 `설정`으로 가 봅시다. 기본적으로 로브레이커즈는 `로`와 `브레이커즈`의 대결을 그립니다. 수백 년간 보아온 선악의 대결구도에요. 근데 겉모습만 보면 솔직히 누가 악당이고 누가 선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티스트들이 그 펑키한 세계관에 과몰입해버렸는지 선이고 악이고 죄다 약을 한 움큼씩 빤 것 같은 모습으로 나옵니다. 캐릭터와 설정이 매칭되질 않으니 당연히 게이머들도 선이고 악이고 별로 구분을 안합니다.

`로`니 `브레이커즈`니 하는건 그냥 팀 이름이에요. 이렇게 로브레이커즈는 본인들 손으로 설정을 내다 버렸습니다. 게이머들도 별로 신경 안 쓸 거예요. 이쯤 되면 게임 이름을 로브레이커즈 말고 그냥 청백으로 해도 됩니다. 어차피 청팀 백팀 나와서 싸우니까요.

▲ 선으로서의 나인가. 악으로서의 나인가.


왜 이런 게임이 만들어진거지?
말해봐요 클리프형. 왜 그랬어요?


자 그럼 지금까지 나온 말들을 종합해봅시다. `로브레이커즈`라는 게임은 딱히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이 나오고 그냥저냥 할만한 게임모드를 플레이하는 FPS 게임입니다. 배경 스토리는 있지만 개발사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고, FPS로서의 조작감은 합격점이지만 그 이상은 못됩니다. 첫인상은 좀 진입장벽이 있어 보이나 하드 게이머들에게는 너무 쉽고 캐주얼 게이머들에게는 꽤 어렵게 다가오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투자, 배급하는건 한국 최대의 게임사 중 하나인 `넥슨`이며 개발사는 세계적 개발자인 `클리프 블레진스키`의 스튜디오입니다.

딱히 첫인상이 매력적이지 않으니 시작도 처참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차 CBT만 진행한 상태로 더는 테스트를 하지 않았고, `스팀`에서도 첫 시작을 3000명 조금 넘는 동접자 수로 시작했어요. 이정도면 스팀 동접 100위권도 힘듭니다. 보통 크게 기대 안 받는 게임도 인디 게임이 아니면 서비스 첫날엔 100위권엔 들어가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는 200명 수준으로 떨어졌고, 조금 더 지나서는 동접이 10명도 안 나오는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 저 베르단디가 썰고 있는건 적이 아닙니다. 동접자 수지요.

왜 이런 게임이 나온 걸까요? 어디서 문제일까요? 사실 많은 분이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넥슨을 의심할지도 모릅니다만, 솔직히 팩트만 놓고 보면 넥슨의 문제는 아닙니다. 적어도 이 사례만 보면 넥슨은 피해자입니다. 개발비 투자도 했고, 지스타에서도 밀어주고 기자간담회도 잡아줘서 클리프 형하고 악수도 했어요. E3에서 체험 기회도 주고 인터뷰 통역도 해줬습니다. 그때 체험에서 1등해서 받은 로브레이커즈 부조는 미국에 두고 온 것 같지만 어쨌든 많이 고마웠어요.

아무리 봐도 개발사의 자만과 노하우 부족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먼저, 게임 시장 진단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캐릭터 베이스 FPS 게임은 경쟁이 엄청나게 거센 데다 유저들의 쏠림이 심한 장르입니다. 오버워치 하는 게이머가 있고 로브레이커즈 하는 게이머도 있겠지만 둘 다 하는 게이머는 찾기 힘들 겁니다. 이 상황에서 게이머 수를 끌어오려면 오버워치와 맞먹는 완성도를 보였어야 합니다.

차라리 다른 장르를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발사에도 숨겨진 속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투자 조건이 캐릭터 기반의 FPS를 만드는 것이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근데 그것만 문제가 아니라 자만하기까지 합니다. 누가 봐도 캐릭터 생김새에서 `얘들아 이 정도 만들었으면 잘 만든 거 아니냐? 어서 사렴`이라고 말하는 게 보입니다. 정작 게이머들의 테이스트는 못 맞췄으면서 본인들끼리 만들어놓고 만족하고 내놓은 게 너무 뻔히 보여요. 비판적인 시각을 소거한 상태로 보게 되면 `좀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블레진스키인데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예요.

▲ 레게 펌이랑 이상한 화장이랑 정신나간 포즈가 매력일 수는 없잖아요.

개발사인 보스키 프로덕션은 이후 동시 접속자가 10명 밑으로 떨어지자 차기작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댔는데 이 손가락은 그냥 잘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에요? 게임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1년도 안 돼서 차기작에 집중하겠다고 말하는 건 그냥 개발비 먹고 튀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차기작인 `래디컬 하이스트`도 대차게 망하고 스튜디오가 사라졌습니다.

넥슨은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배틀그라운드`가 동시기에 출시되는 바람에 실적이 안 나왔다고 변명했습니다. 아니. 그건 아닙니다. 배틀그라운드는 게임을 안 하는 사람들도 알지만, 로브레이커즈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조차 몰라요. 게임이 유명하지 못하다는 건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고, 입소문이 나지 않은 건 게임이 더럽게 재미없다는 뜻입니다. 그냥 인정할 건 해야 합니다. 로브레이커즈는 출시 시기가 겹친 게 아니라 그냥 게임을 못 만들어서 망한 거에요.

어쨌든 `로브레이커즈`의 몰락 이후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또 다시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그냥 에픽에 남아서 기어즈오브워 차기작이나 더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4편이 나왔는데 옛날 그 맛이 잘 안 나는 걸 보니 블레진스키의 특별 소스 비법이 더 필요할 것 같거든요. 무슨 거대 로봇이 나오고. 퍼시픽림2 인줄 알았네요.

▲ 우리 다시 볼 수 있나요...

넥슨은 이제 국내 시장에 빠른 템포의 FPS를 서비스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넥슨의 행보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국내에서 `안 먹힌다`라고 여겨지던 장르들을 하나씩 들여오는 게 좋았거든요. 모바일 게임만 수두룩하게 쏟아지는 마당에 넥슨의 시도는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로브레이커즈도 망하고 타이탄폴 온라인도 접히고 그 게임은…. 그 게임이고, 이제 남은 FPS 프로젝트가 없네요.

이미 죽음이 확정된 게임에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솔직히 다른 게임은 `이렇게 하면 망한다`하는 교훈이라도 주고 가니 아름답게 끝을 낼 수 있겠지만 로브레이커즈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망겜의 전철을 밟은 끝에 망한지라 어떻게 기사를 아름답게 마무리해주기도 힘드네요.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또 다른 망겜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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