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의 격투 게임 대회 Evolution Championship Series 2018(이하 EVO)이 개막했습니다. 다양한 종목으로 진행되는 EVO에서, 한국 선수들이 유독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 있죠. 바로 철권입니다. 재작년엔 '세인트' 최진우가, 작년엔 'JDCR' 김현진이 EVO 철권 종목의 우승컵을 들어 올린 가운데, 한국의 3연패 달성 여부에 전 세계 격투 게임 팬들의 관심이 모였습니다.

3일간의 치열한 승부 끝에 철권 종목의 우승컵은 역시나 한국 선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이번 우승의 주인공은 '로하이' 윤선웅이었습니다. 샤힌의 아이콘인 '로하이'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지만, 메이저 개인 대회에서 우승과는 묘하게 거리가 멀었는데요. 그렇기에 이번 EVO 우승은 '로하이'에게 더없이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아직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날, 한 카페에서 만난 '로하이'는 우승의 짜릿함을 금세 떨쳐낸 듯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그의 이야기 속에선 철권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애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는데요. 특유의 쾌활한 성격에 빨려들어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절로 '로하이'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EVO 우승을 넘어 전 세계 철권 유저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로하이'의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Q. 반갑습니다. 독자분들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펄산 e스포츠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 '로하이' 윤선웅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기분 좋게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Q. 가장 먼저 EVO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네요. 우승 축하드리고,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죠. 사실 우승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최근에 게임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서 굉장히 예민한 상태였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서 정말 기뻤어요.


Q. TWT 비스트 아레나 우승 기록이 있긴 하지만, 1,500명이 넘게 출전한 대규모 국제 대회 우승은 처음이에요. 지금까지의 대회와는 무엇이 가장 달랐나요?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는 성격이 좀 무른 편이라, 대회 중에도 벽이 보이던 항상 무너졌어요. 그런데 한 달 전쯤에 어머니께서 "너는 독하지 않아서 정상에 오르기 힘들다. 엄청나게 독해져야 한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가짐을 바꾼 게 지금까지와는 가장 달랐던 점이에요. 또 7월 말에 일본 대회에 초청받아 출전했었는데, 그때 '무릎' 선수가 해준 조언들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Q. '쿠단스' 손병문 선수를 포함해 '빈창' 문창빈, '세인트', '릴마진' 등 굵직한 선수들을 꺾고 결승에 올라왔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어느 때인가요?

'세인트' 선수, '쿠단스' 선수와 붙었을 때죠. 두 경기 모두 풀세트에 라운드스코어 1:1 상황까지 갔는데, 거기서 가장 흔들렸어요. 특히 '세인트' 선수와의 경기가 기억에 남아요. 워낙 잘하기도 하고 자주 만났던 선수라 걱정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경기 중에 '샤넬' 강성호 선수에게 "넌 공격이 무서우니 더 과감하게 플레이해라"는 메세지를 받았죠.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는데, 그 메세지를 보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해서 결국 이길 수 있었습니다(웃음).


Q. '쿠단스' 선수와 결승에서 다시 만났는데, 생각보다 브라켓 리셋을 빠르게 당했어요. 당시 심경이 궁금해요.

결승에서 '쿠단스' 선수를 다시 만나니 작년 아프리카 철권 리그(ATL) 시즌1 결승에서의 패배가 생각났어요. 거기에 브라켓 리셋까지 당하니 중압감이 엄청나게 커지더라구요. 그래도 작년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브라켓 리셋 전 한 세트를 이겼었는데, 그 플레이를 떠올리면서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간 게 잘 통한 것 같아요.


Q. 우승도 우승이지만, 'DOUNE2' 선수와의 대결이 화제가 됐어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그 선수는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아요(웃음). 경기 전에 무대 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자기가 일본에 있었을 때 '소담' 오세훈 선수에게 샤오유 패턴을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소담' 선수의 플레이는 따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대회에서 한 번 해보려 했던 카즈야를 꺼냈죠. 그런데 정말 상상도 못 한 패턴들이 나와서 1세트를 허무하게 져버린 거죠.


Q. 1세트 후 두 선수의 상반된 리액션이 상당히 재밌었어요.

'DOUNE2' 선수는 경기 진행도 잊을 정도로 신나했죠. 현장 반응도 뜨거웠고, 정말 아이처럼 즐거워하더라구요. 그리고 옆에는 제 진지한 표정이 함께 나왔는데(웃음)... 일부 팬분들이 그 장면을 보고 화난 게 아니었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절대 아니었어요. 샤힌으로 진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거에요. 정말입니다(웃음).

▲ 굳은 표정의 '로하이'와 아이처럼 신난 'DOUNE2' (출처 : 'STK' 유튜브 채널)


Q. 우승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아쉬움도 있을 것 같아요. 레이 우롱 공개나 '무릎' 선수의 미출전 같은 거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진 않아요. 다만 이번 우승은 '무릎' 선수를 이기기 위한 발판이 됐다고 생각해요. 자격이 주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처럼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갑자기 '무릎' 선수를 꺾었다면 상대적으로 의미가 덜했을 거예요. 기복이 크다, 요행으로 이겼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구요. 이번 EVO 우승을 통해 인제야 '무릎' 선수에게 도전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쉬운 건 'JDCR' 선수를 만나지 못한 거예요. 정말 오랫동안 봐오기도 했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니까, 아무래도 대회에서 한 번 붙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레이 우롱 공개에 대해선 별생각이 없어요(웃음). 다만 레이 우롱 같은 경우엔 초보자분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울 텐데,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춘 철권7에 등장하는 게 좀 의외라고 생각해요.


Q. EVO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로하이'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먼저 철권 입문 계기를 알려주세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랑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오락실에 들어가서 철권을 하더라구요. 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붙어봤는데, 10판을 해서 한 판도 못 이겼어요. 그때가 시작이었죠. 저는 뭘 하든 얕게 하는 걸 싫어해서, 입문하자마자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매일같이 철권을 하다 보니 실력이 금방 붙었고, 실력이 붙으니 더 몰두하게 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실력을 키웠어요.


Q. 그래도 당시엔 프로게이머까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그렇게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단 걸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철권7이 출시되면서 국제 대회도 더 활발하게 열리고, 몇몇 대회에서 입상하니 가능성이 보이더라구요. 그렇게 계속 열심히 하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Q. 소속 팀인 펄산 e스포츠 소개를 부탁드려요.

펄산 e스포츠는 아랍 에미리트의 프로게임단이에요. 소속 선수로는 철권에 저와 '랑추' 정현호 선수, '체리베리망고(이하 CBM)' 김재현 선수가 있구요. 스트리트 파이터에선 '벨로렌' 공형석 선수가 활동하고 있어요.


Q. 입단 과정이 평범하진 않은 거로 알고 있어요.

작년 12월이었을 거에요. 개인 방송 중에 영어 닉네임의 어떤 분이 스폰서가 필요하냐고 채팅을 올리더라구요. 아무래도 다른 시청자분들도 있다 보니, 모든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죠. 저도 바로 방송을 끄고 개인 메시지로 얘기를 해서 입단하게 됐어요(웃음).


Q. '로하이' 선수가 펄산 e스포츠의 1호 프로게이머였는데, '랑추'와 'CBM' 선수의 입단 과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무조건이죠(웃음). '랑추' 선수의 경우엔 항상 대회를 같이 다녔어요. '무릎' 선수와 '샤넬' 선수처럼요. 와중에 5월에 호주에서 TWT 배틀 아레나가 열렸는데, 그때 제가 '랑추' 선수의 항공비 절반을 내줬어요. 그걸 본 대표님이 '랑추' 선수도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하시더라구요(웃음). 'CBM' 선수는 아무래도 영어를 잘하다 보니까, 팀과 연락할 때마다 도움을 받았어요. 저와 팀 사이에 'CBM' 선수가 항상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습니다.


Q. 프로팀 입단 후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책임감이 다르죠. 대회 경기를 치를 때나, 팬분들을 대할 때 '내가 팀의 얼굴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팀을 대표해서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본인의 철권 플레이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음... 사과? 사과는 사관데, 독사과인지 꿀사과인지는 몰라요(웃음). 그 속에는 '뻘 레이지 아츠' 같은 독이 있을 수지만, 이번 EVO 우승처럼 달콤한 꿀맛이 나는 사과일 수도 있죠.


Q. 대회에서 '무릎'이나 '전띵' 등 특정 선수를 만나면 패배하는 징크스가 있어요. 이런 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가요?

원래는 캐릭터를 바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계속 대회에 참가하면서 바꿔야 하는 건 캐릭터가 아니라 제 마인드라는 걸 알게 됐어요. 좀 더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독하게 이겨야겠다는 마인드를 가지면 앞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이제 몇 가지 가벼운 질문을 드릴게요. 먼저 '로하이' 선수의 상징인 레이지 아츠를 잘 쓰는 법을 알려주세요.

요즘은 레이지 아츠를 뻔하게 쓰면 절대 안 맞아요. 게임이 나온 지 3년이 넘어가니, 모든 유저들이 레이지 아츠가 나오는 타이밍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그래서 이젠 본인만의 변칙적인 타이밍을 만들어야 해요. 예를 들어 저는 제 체력이 상대방 체력보다 많을 때도 레이지 아츠를 써요(웃음). 다들 미쳤다고 해도, 그렇게 쓰는 레이지 아츠가 적중률이 더 높아요. 임팩트도 훨씬 크구요.


Q. 유난히 여성 캐릭터를 선호하지 않는 거로 유명한데, 이유가 궁금해요.

정말 단순한 이유에요. 대부분 남성분들이 그렇듯, 저 역시 멋있는 남성 캐릭터를 선호해요. 그래서 샤힌이나 라스, 로우 같은 캐릭터를 주로 플레이하게 됐어요. 그런데 최근엔 개인 방송을 많이 하다 보니, 팬분들 요청에 따라 여성 캐릭터도 많이 하게 됐어요.


Q. 개인 방송이나 대회에서 보여주는 외향적인 모습을 보면 흔히 말하는 '인싸' 성격을 가진 거로 보여요. 실제로도 그런가요?

네! 방송에서 보여드리는 모습이 제 실제 성격과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원래 말도 많고, 장난도 많고, 헛소리도 많이 합니다(웃음).


Q. 철권 말고 즐겨하는 다른 게임이 있나요?

전혀 없어요. 다른 게임들을 아예 안 해본 건 아닌데, 아무래도 손에 안 맞아서 몇 분 만에 그만두게 되더라구요. 제 스팀 계정에 있는 다른 게임들의 플레이 시간을 보면 3분, 5분 이런 것들도 있어요.


Q. 라스, 좋나요?

개인적으로 정말 안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팬분들이 구체적으로 뭐가 안 좋냐고 물어보면 거기엔 또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라스는 그냥 안 무서워요(웃음). 실제로 만나도 잘 이기구요. 하지만 많은 철권 유저분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라스는 괜찮은 캐릭터인 걸로 하겠습니다(웃음).


Q. 그럼 카즈야는 어떤가요?

원래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DOUNE2' 선수에게 지고 나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혹시 플레이어의 문제는 아니었을까요?) 그럴 일은 없죠. 저는 우승자잖아요. 제겐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웃음).


Q. 이제 조금은 진지해져볼까요. '로하이' 선수에게 있어 철권이란 무엇인가요?

처음엔 그저 재밌고 좋아서 시작한 게임인데, 이제는 철권이 없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삶의 일부가 됐어요. 물론 계속 지기만 할 때는 힘들기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입상을 하면 또다시 불이 붙죠. 아무래도 성과가 눈에 바로 보이는 게임이고 그걸 직업으로 하다 보니, 결과를 계기로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Q. 본인이 생각하는 철권의 매력은?

철권 유저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지면 굉장히 화가 납니다(웃음). 철권을 하면 본인의 승부욕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게 돼요. 승부욕이 생기는 만큼, 승리했을 때 돌아오는 것도 크죠. 또 철권을 e스포츠로 보는 입장에서는 직관성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경기를 처음 보더라도 누가 이기고 있고 누가 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요.


Q. 국내 철권 유저들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주변에 다양한 계급의 철권 유저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초보자들을 악의적으로 대하는 유저들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낮은 계급일수록 더요. 그런 게임이 반복되다 보니 철권이 싫어져서 그만두게 되는 분들도 생기구요. 모든 철권 유저분들이 그런 플레이만큼은 자제해주셨으면 해요.


Q. 단기적인 목표와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해요.

단기적인 목표는 곧 열리는 TWT 도쿄 마스터즈를 포함해 올해 남은 TWT 일정을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하는 거예요. 앞으로의 포부라면... 저는 전 세계의 모든 철권 유저분들이 기억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 언제라도 철권계에 '로하이'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게요. 최근 1년 사이에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부쩍 늘긴 했지만, 갈 길이 아직 멀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Q. 인터뷰를 마칠 시간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먼저 EVO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응원해준 팀원들, '랑추', 'CBM', '벨로렌' 선수에게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또 항상 의지하는 '무릎' 선수와 '샤넬' 선수에게도요. 궁금한 게 있거나 안 풀리는 게 있을 때마다 연락하면 항상 친절하게 답해주시거든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

또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주시는 펄산 e스포츠 대표님과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경기도 봐주시고 방송도 찾아와주시는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한결같은 모습,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