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 e스포츠가 '2018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에서 1승 5패라는 초라한 성적과 함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디펜딩 챔피언의 그룹 스테이지 탈락이라는 결과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젠지 e스포츠의 경기 내용이었다.

젠지 e스포츠는 소위 말하는 드러눕기식 플레이를 선호하는 팀이다. 시간이 흐르면 더 좋을 수밖에 없는 조합을 택해 변수를 최소화하고, 어떻게든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대로 경기를 끌고가 승리하곤 했다. 유리하면 유리한대로, 불리하더라도 후반 싸움에서 이기는 젠지 e스포츠의 스타일을 마치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운영에 매우 약한 해외팀을 상대로 말이다.

하지만, 메타와 개인 기량이 복병이었다. 이번 롤드컵에서는 운영보다 끊임없는 난전과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플레이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참는데 익숙한 젠지 e스포츠는 거듭된 전투에서 손해보는 쪽이 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선수들의 개인 기량도 이전만 못했다. 특히, '크라운' 이민호는 이번 롤드컵에서 역대 최악의 폼을 보여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 '크라운'의 부진 - vs C9

5대 5 팀 게임인 LoL에서 어느 한 라인이 무너지면 경기를 풀어나가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허리 라인인 미드는 양 사이드의 시야와 직결돼 정글 동선, 오브젝트 싸움 등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더욱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크라운' 이민호의 컨디션 난조는 젠지 e스포츠의 가장 큰 패인이었다.

우선, 메타부터 '크라운'에 웃어주지 않았다. '크라운'은 개인이 빛나기 보다는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선호하고, 잘한다. 챔피언 풀도 말자하, 리산드라, 아지르 등 팀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쪽으로 발달해있다. 하지만, 이번 롤드컵에서는 초반 단계에서부터 강력하고,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한 챔피언이 필요했다.

즐겨쓰던 조이는 잦은 너프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젠지 e스포츠와 '크라운'은 차선책으로 신드라를 꺼내들었지만, '지즈케'의 에코와 '옌슨'의 르블랑에 무너졌다. 특히, '옌슨'의 르블랑을 상대로는 솔로킬을 당한 이후 상대의 공격적인 플레이에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내리 5데스를 기록했다.

당시 경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C9은 깜짝 카드로 탑 헤카림을 꺼내들었다. 헤카림-녹턴-르블랑이라는 강력한 상체와 더불어 기동성을 살려주는 시비르, 궁극기 지원이 가능한 쉔까지 주도권을 살리기 아주 좋은 조합이었다. '크라운'이 당한 솔로킬은 이런 C9의 조합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 출처 : LoL Esports 유튜브 채널

솔로킬보다 더 아쉬운 플레이는 이후에 나왔다. 헤카림이 미드를 기습한 상황에서 보여준 대처가 '크라운'의 현 상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초시계로 상대의 스킬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고, 이후 무조건 죽는 상황에서 점멸까지 낭비했다. 바로 옆 부쉬에서 '하루' 강민승의 스카너가 역갱을 대기하고 있던 상황이라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 유종의 미도 거두지 못했다 - vs RNG

바이탈리티전 패배로 그룹 스테이지 탈락이 확정되고, 마지막 경기는 RNG와의 대결이었다. 우승 후보이자 조 1위 후보로 평가받던 RNG이지만, 앞선 경기에서 C9과 바이탈리티에게 2연패를 당했기에 젠지 e스포츠에게도 기회가 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밴픽 구도부터 젠지 e스포츠가 한 방 먹었다. RNG는 '코어장전' 조용인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첫 페이즈에서 '코어장전'이 할 수 있는 챔피언이 탐 켄치, 라칸, 브라움을 금지했다. 그리고, 첫번째 픽으로 쓰레쉬를 가져갔다. 마치 '너 이제 뭐할래?' 라고 묻는 듯 했다. 차선책인 쉔, 노틸러스, 레오나 모두 쓰레쉬를 상대로 밀리는 상성이었다.

젠지 e스포츠는 라인전에 비중을 두겠다는 듯 비주류 픽인 나미를 루시안과 조합했다. 그리고, 1레벨 단계에서 강수를 뒀다. 쉔이 봇 듀오와 함께 라인 부쉬에 매복한 것. 하지만, RNG는 이를 정확히 간파하고 올라프를 투입해 역으로 쉔을 잡아냈다. 여기서부터 젠지 e스포츠가 그린 그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출처 : 네이버 스포츠

점멸이 없는 쉔은 아트록스를 상대로 버틸 수 없었고, 탑 타워의 체력이 야금야금 깎였다. 미드 구도도 상성대로 리산드라가 우위를 점했고, 킬을 먹고 성장한 올라프가 젠지 e스포츠의 정글을 헤집었다. 상체 주도권은 봇 합류전 승리로 이어졌고, 젠지 e스포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 경기 역시 패배로 끝이 났다.

그간 젠지 e스포츠가 추구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변수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완벽함은 말그대로 완벽할 때 빛나는 법이다. 메타나 선수의 기량 변화가 젠지 e스포츠의 완벽함에 균열을 만들었고, 한 길밖에 몰랐던 젠지 e스포츠는 완전히 무너졌다. 기존의 것을 버리지 못한 밴픽과 플레이 스타일의 한계가 만들어낸 디펜딩 챔피언의 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