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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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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페이커' 이상혁은 아직 더 원한다

심영보,유희은 기자 (desk@inven.co.kr)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中

자신을 다 태워버릴 정도로 무언가에 뜨거운 사람이었나.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이가 꼭 뜨겁게 살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뜨거운 사람은 우리들의 메마른 가슴 한쪽을 움직이게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본능일지도.

"최대한 오랫동안 좋은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더 게임을 잘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요"

'페이커' 이상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끝날 줄 모르는 뜨거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우리를 웃고 울리는 건 아닐까.

96년생으로 아직은 앳된 청년이지만, 그는 2019년에 어느덧 7년 차 프로 선수가 됐다. 이제는 LCK에 '페이커'보다 더 나이 많은 미드 라이너도 없다. 밤낮 게임만 쥐고 사는 프로게이머들의 입에선 3년, 4년만 지나도 이제 게임이 지겹다는 소리가 나오곤 한다. 하지만 최고령 미드 라이너는 아직 어떻게 하면 게임을 더 잘할 수 있을지가 최대의 고민이다.


"그렇죠. 저에게는 가장 궁극적인 고민이고요.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그 밑에 잔가지 같은 고민들이 있는 거죠. 다른 욕구들은 자제하는 편이에요. 원래부터 게임을 좋아해서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큰 편이 아니기도 하고요. 가끔 연애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지만 우선순위가 높지 않아요"

'페이커'의 인생에서 두 번째 우선순위는 단순했다.

"건강이요"

결국, 게임만이 관심사라는 뜻일까. 이렇게 게임만 생각하는 '페이커'도 실패를 한다. 2018년은 최악의 해였다. 하나의 타이틀도 차지 못했고, 결승 문턱조차 한 번도 닿지 못했다. 그가 2018 시즌에 미지근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노력했다. 여전히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았다. 그러나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다. '페이커'의 몸과 마음은 새하얗게 타버릴 수밖에 없었다.

"시즌 시작하기 전에 연습하면서 다음 시즌이 예상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1년이 워낙 길기 때문에 시즌 초반에 좋다고 1년 내내 좋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2018년이 그랬어요. 스프링 시작 전에 스크림 성적이 되게 좋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갈수록 경기력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섬머 스플릿, 롤드컵 선발전이 끝나고 완전히 휴식기를 가졌어요. 2014년 롤드컵에 가지 못했을 때는 쉬지 않고 연습을 했었거든요. 이번에는 롤드컵을 챙겨보지도 않고 쉬었어요"

"마음이 편해졌어요. 쉬는 기간에 무언가 특별한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어요"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2018년이었다. "저는 4위 정도의 미드 라이너에요",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요"... 언제나 자신이 넘쳤던 '페이커'이기에 다소 충격적이었던 지난날의 대답들.

'노력하면 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수도 없이 들어봤을 말이다. 그러나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 있다. 사람에겐 그런 벽과 마주했을 때가 가장 불행한 순간이지 않을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말이다. 2018년 '페이커'는 가장 불행한 상황에 맞닥뜨렸을지도 모른다. 그의 찬란한 프로 생활이 이제 꺾이나 싶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그저 연패를 많이 해서 심적으로 안 좋았던 시기였어요. 지금은 노력하는 만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안이라는 감정도 있었던 것 같고, 그 외에도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쉬면서도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휴식을 통해 2018년에 느꼈던 그런 감정들이 자극제로 변화된 것 같아요"

"다른 누군가가 현재 최고라는 이야기들이 조금 기분 나쁘기는 해요.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라서요. 더 잘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요. LCK에서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있기는 해요. 하지만 절대로 밀리지 않을 거예요. 밀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절 넘겠다는 이야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가. 조금 무덤덤한 성격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아직 '페이커'는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과 몇 개월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가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페이커'라는 이름의 무게. '페이커'는 SKT T1 오경식 단장이 밝힌 대로 국내 스포츠 선수 중 최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됐다.

"제가 e스포츠 선수 중에는 세계적으로 이름값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사실 그래서 높은 금액을 받는 게 아닌가 해요. 조금 부담되는 면이 있어요. 하지만, 분명히 동기 부여가 되긴 하더라고요. 그만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장을 맡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길 것 같아요.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솔직하게 리더십이 있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방향을 정해서 어떤 리더가 돼야겠다기 보다는 제가 스스로 할 일을 잘하면 저절로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까 싶어요"


또한, '페이커'는 이번 장기 계약을 통해 사실상 영원한 SKT 맨이 됐다. 차가운 열정을 가진 96년생 선수는 계약을 할 때도 누구보다 냉정했다고.


"말씀하셨듯이 SKT와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도장을 찍은 건 아니었어요. 쉬는 기간에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고민했어요. 고민 끝에 SKT를 선택했어요"

"조건이 가장 잘 맞는 팀이었어요. 여러 가지 통합적으로요. SKT의 조건이 제일 좋다고 느꼈어요. 진심이 와닿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냥 조건만 보고 선택을 했어요.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는 점도 고려했지만요. 저는 계약을 할 때는 감정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아요"


오랜 시간 함께한 김정균 감독도 계약 시 큰 고려 사항은 아니었다.

"계약할 때는 모든 걸 다 고려해서 선택해요. 언제나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어서, 순간순간 마음이 바뀌기는 하죠. 확실한 건 정이라거나 감정적인 부분들이 우선순위가 높지는 않아요"

'페이커'는 고민도 혼자 안고 가는 편이라고.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에요. 내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해요. 안 좋은 감정이 생기더라도 밖으로 표출하는 성격도 아니거든요. 그냥 스스로 없애려고 해요"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수 많은 불안감과 고독, 그는 어떻게 해결할까. 많이 알려진 독서 말고도 몇 가지 대답을 더 들을 수 있었다.


"명상이랑 스트레칭이요"

"읽을 책도 없고, 할 게 딱히 없을 때 눈을 감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단전 호흡이나 소리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하는 특별한 명상은 아니에요(웃음)"


2018 시즌을 끝으로 SKT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페이커'처럼 남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뱅-울프'처럼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셋은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원래 '페이커'는 이별에 감흥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울컥했다는 그의 대답이 생소하게 와닿았다.

늘 그렇게 이성적일 줄만 알았던 '페이커'도 변한다. 크게 아프면 변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8년 '페이커'는 아팠다. 그래서 감수성이 예전보다 예민하고 풍부해진 걸까.

"저는 일찍부터 알고 있어서 덤덤한 편이었어요. 프로 생활을 많이 하다 보니 팀원들이 떠나가는 것도 익숙한 편이고요. 사실 막상 마지막 인사를 하니까... 좀 울컥하기는 했어요"

"이번이 특별한 경우라기보다는 제가 2018년 들어서 조금 감정적인 부분에서 조금... 예민해진 것 같아요"



떠난 자리는 새로운 이들로 채워졌다. 아직은 서먹하고, 삐걱대기도 한다. SKT T1은 담원과의 케스파컵 8강 경기에서 좀처럼 합이 맞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페이커'는 2019 SKT T1를 향해 조심스럽지만 확실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2018 시즌이 끝나고 변화가 굉장히 크게 일어났잖아요. 처음에 소식을 접했을 때 2019년에 많은 일이 있겠구나 싶었어요. 새로운 멤버들이 이름값도 있고, 잘하는 선수들이라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네, 성적에서 변화가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성적도 성적이고, 멤버가 워낙 많이 바뀌어서 여러 가지로 팀에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맞춰가는 중이라서 팀원들끼리 의견이 안 맞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도 금방 맞춰질 거로 생각해요. 2019년에 잘 될 거라고 보고 있어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기량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페이커'가 생각하는 가장 특이한 신입생은 '테디' 박진성이었다.

"'테디' 성격을 원래 잘 몰랐어요... 많이 시끄럽더라고요. 의외였어요(웃음). 다른 선수들은 생각했던 대로여서 특별한 건 없었어요"


'페이커'에게 2019년은 어떤 해보다도 중요하다. 2018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2014년도 성적이 딱히 좋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페이커'를 향한 의구심이 적었다. 그때는 고작 2년 차에 불과한 20세도 되지 않은 어린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군 문제를 생각하면 프로게이머 인생 후반에 접어들고 있다. 기량에 대해 점차 의문이 생겨나는 시점이 됐다.

'미래를 결정짓고 싶다면 과거를 공부하라' 공자의 말이다. 트로피를 들어 올리던 순간의 '페이커', 메모장이 켜져 있는 모니터 앞에 울고 있던 '페이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2018년의 '페이커', 모든 '페이커'가 그에게 해답이 되지 않을지.

"2019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18년 성적이 안 좋았던 것도 이유이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받았어요.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말고 내년에 조금 더 변화해서 잘 해보라'라고요. 그래서 2019년이 중요할 것 같아요.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지만, 잘한 걸 떠올리고 잘못한 걸 수정해서 더 열심히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2019년에 중국이 가져간 타이틀을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중국을 잡는 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에요. 우리 팀이 뛰어난 경기를 하는 게 진짜 목표죠. 이렇게만 되면 중국을 잡는 건 부수적인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절로 따라올 거예요. 중국이 달라진 건 딱히 없다고 생각해요. 옛날 중국이라 비슷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재능있는 자, 노력하는 자, 즐기는 자 중에 최고는 즐기는 자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능있고, 노력하며, 즐기는 사람이 최고가 되는 것 같더라. '페이커'는 세 가지를 모두 가졌던 선수다. 당장 은퇴해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오랜 시간 역사에 남을 것이다.

"스스로 경쟁심이 강한 편이고, 다른 사람한테 지기 싫어해요. 이게 제가 계속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가 아닐까 싶어요. 성적이 안 좋을 때는 외부 비난이나 비판을 신경쓰기도 해요. 하지만 웬만해선 그렇지 않아요"

"LoL을 남들보다 재밌어하는 것도 이유일 수 있겠네요.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이외에 다른 특별한 이유는 잘 떠오르지 않네요"

"아직은 미래를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미래는 미래에 생각하려고요.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있어요. 지금은 그래야만 해요"


최고에서 내려오는 제일 큰 이유는 더이상 즐기지 못해서일 거다. 지금의 '페이커' 또한 18세에 데뷔한 '고전파' 그대로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즐기고 있고, 현실만을 마주하고 있다. 누구보다 뜨겁다. 아직 다 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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