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LCK에 '뉴메타 폭풍'이 휘몰아쳤다. 지난 13일 종각 LoL 파크에서 열렸던 2019 스무살우리 LCK 스프링 스플릿 16일 차 일정 내내 처음 보는 광경이 팬들을 사로잡았다. 젠지 e스포츠와 킹존 드래곤X가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두 팀 모두 얼마 전까지 랭크 게임을 뒤흔들었던 '단식' 메타로 경기에 임했다. 탑 라인에서는 카르마가 자주 등장했고 단식 메타의 필수 아이템인 '주문도둑의 검'이 라이너들의 아이템 창에 당당히 자리잡았다. 특히, 킹존 드래곤X가 SKT T1과의 1세트에서 보여줬던 단식 메타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에 가까웠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회 경기에서 단식 메타는 과거 LoL 월드 챔피언십을 강타했던 '향로' 메타와 그 성격이 매우 흡사하다. 한층 발전한 형태의 향로 메타, 즉 향로 메타 시즌2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랭크 게임과는 별개로 말이다.


단식 메타란 무엇인가
한동안 CS를 수급하지 않아도 부자가 된다?


일단 단식 메타가 무엇인지 파악해보자. 단식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 먹지 않는 것을 말한다. LoL에서는 CS를 수급하지 않는 걸 의미한다. 챔피언에게 골드를 부여하는 CS를 수급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는 골드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지만 단식 메타를 활용하면 CS를 건드리지 않고도 골드를 많이 벌 수 있다.

그 이유는 '도벽' 룬과 '주문도둑의 검'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도벽은 '영감' 룬 파트에 있는 핵심 룬 중 하나로 스킬을 활용한 뒤에 일반 공격으로 상대 챔피언을 가격하면 일정량의 골드나 소모형 아이템을 획득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CS를 수급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골드를 획득할 수 있다.


▲ 단식 메타의 핵심인 도벽 룬과 주문도둑의 검

하지만 핵심은 주문도둑의 검이라는 아이템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아이템은 '헌납'이라는 고유 지속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챔피언과 구조물에게 피해를 입히는 스킬을 사용하거나 기본 공격 시 10 골드를 획득하게 해준다. 이 역시 CS를 건드리지 않고도 골드를 벌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효과는 에픽 몬스터를 제외한 몬스터 및 미니언을 처치할 경우 '헌납' 발동 및 골드 획득 효과에 패널티가 생긴다. 그래서 CS를 수급하지 않아야 주문도둑의 검에 붙은 헌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도벽 룬과 주문도둑의 검 아이템을 활용하면 CS 수급 없이도 상대 챔피언만 타격하면서 골드를 쉽게 벌 수 있다. CS 수급은 오히려 패널티 때문에 골드 수급에 방해가 되므로 CS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상대와 골드 수급량에서 밀리지 않게 된다. 오히려 상대 챔피언을 계속 스킬이나 일반 공격으로 견제하기 때문에 압박감을 주면서 골드 수급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단식 메타는 유저들이 즐기는 라이브 서버에서는 추가 패치로 인해 활용하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아직 대회 경기에는 추가 패치 노트가 적용되지 않았고, 젠지 e스포츠와 킹존 드래곤X가 단식 메타를 선보였다.


굶은 탑이 캐리하지 않는다
아군을 돕고 시야 장악에 힘쓴다


이러한 단식 메타를 활용하기 좋은 챔피언은 스킬 위주의 원거리 챔피언들이다. 카르마가 대표적이고 질리언이나 룰루, 이즈리얼도 잘 어울린다. 단식 메타가 처음 유행했던 건 탑 라인이었다. 카르마나 질리언이 도벽 룬과 주문도둑의 검과 함께 탑 라인으로 향해 상대 탑 챔피언을 괴롭혔다. 이들은 주로 탱커형 아이템을 장착해 잘 죽지도 않고 상대를 꾸준히 괴롭히는 능력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대회 경기에서는 이런 부분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젠지 e스포츠의 패배가 이를 증명했다. 젠지 e스포츠는 한화생명e스포츠의 1세트와 2세트에 모두 탑 카르마를 활용한 단식 메타를 꺼냈는데 두 번 모두 실패했다. '로치' 김강희도, '큐베' 이성진도 탑 카르마로 패배를 맛봤다.

이들은 랭크게임에서와 유사한 형태로 아이템을 구성했다. 먼저 1세트에 출전했던 '로치'는 AP 대미지 아이템 트리를 선택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아이템 구성이 아니었다. 돌진 조합 형태였던 젠지 e스포츠의 조합에서 스킬 대미지를 높힌 탑 카르마는 좋은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큐베'는 조금 더 랭크게임과 흡사한 아이템을 갖췄다. '얼어붙은 건틀릿'과 '아테나의 부정한 성배'였다. 하지만 이 선택도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았다. '큐베'의 카르마는 탱킹과 딜링 모든 측면에서 애매했다.


▲ '로치'와 '큐베'의 아이템 선택

두 선수의 아이템 트리 선택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AP 카르마와 '얼건' 카르마 모두 상대와의 라인전 구도에서 압박감을 주기 쉽다. 하지만 대회 경기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보이는 모습이 필요했다. 단식 카르마는 아군 원거리 딜러 챔피언을 보좌하는 역할에 치중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탑 라인에서 단식 메타를 즐겨 사용하는 카르마나 질리언, 룰루 모두 태생적으로 서포팅형 챔피언이다. 단식 메타를 통해 골드를 많이 벌어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고 해도 대회 경기에서는 혼자 활약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킹존 드래곤X가 탑 카르마로 단식 메타를 선보였던 SKT T1전 1세트에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났다. '라스칼' 김광희는 주문도둑의 검의 상위 아이템인 얼음 송곳니를 시간차로 한 번에 구매, 폭발적인 골드 수급량을 보였다. 그럼에도 '라스칼'의 아이템은 '불타는 향로'와 '아테나의 부정한 성배' 등 철저히 아군 원거리 딜러 챔피언의 캐리력과 안정성을 올려주는 것들이었다.

▲ '라스칼'의 아이템 선택

킹존 드래곤X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주문도둑의 검과 그 상위 아이템인 얼음 송곳니를 모든 라이너가 번갈아 가며 구매했던 것. 이를 통해 단식 메타의 단점인 '많은 양의 골드 수급 전까지 약하다'는 점을 완벽하게 상쇄했다. '폰' 허원석의 아지르 다음에는 '라스칼'의 카르마가, 그 다음에는 '데프트' 김혁규의 이즈리얼이 단식 메타를 순차적으로 활용했다.

강제 이니시에이팅 수단이 없었던 SKT T1은 상대의 단식 메타를 통한 폭발적인 골드 수급을 방해할 수 없었다. 이 점 역시 킹존 드래곤X가 노렸던 바였다. 아지르와 이즈리얼은 아무런 방해 없이 부자가 되어 후반 캐리력을 끌어 올렸고 카르마도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아이템을 조기에 완성했다.

▲ 돌아가며 단식했던 킹존 드래곤X

킹존 드래곤X가 보여줬던 일명 '순차적 단식'은 또 하나의 강점을 보여줬다. 바로 엄청난 수준의 시야 장악 능력이었다. 주문도둑의 검의 상위 아이템인 얼음 송곳니는 특이한 퀘스트를 가지고 있다. 해당 아이템을 통해 500골드를 수급하면 시야 와드를 설치할 수 있게 된다.

▲ 시야 과다 현상이 일어날 만큼 압도적인 와드 개수

원래는 서포터 포지션의 선수들만 구매하는 아이템이었는데 단식 메타, 특히 킹존 드래곤X가 보여줬던 색다른 단식 메타에서는 이 시야 관련 아이템이 총 4개로 불어난다. 카르마와 아지르, 이즈리얼에 원래 서포터 챔피언인 탐 켄치까지. 실제로 킹존 드래곤X는 이 4개의 시야 관련 아이템으로 빡빡하게 시야를 장악, SKT T1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선사했다.


단식 메타 = 향로 메타 시즌2
캐리력을 올린다 + 시야 장악으로 변수를 없앤다

이러한 강점을 종합해보면, 대회 경기에서의 단식 메타는 불타는 향로 아이템을 필두로 이어졌던 '향로' 메타의 재림이라고 볼 수 있다. 탑 라인에서 단식하는 챔피언은 원거리 딜러 챔피언 보좌를 위한 아이템만 구매해 캐리력을 높여주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과거 향로 메타에서 '시야석' 구매 타이밍까지 늦춘 채 불타는 향로를 빠르게 구매했을 정도로 원거리 딜러 캐리력 향상에 힘썼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캐리력을 드러내기 좋은 이즈리얼과 아지르 역시 단식 메타를 통해 폭발적으로 골드를 수급, 스스로의 캐리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스스로'와 '아군에 의해'라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순차적 단식은 결국 후반 캐리력이 높은 챔피언의 캐리력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향로 메타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킹존 드래곤X는 후반의 강점이 잘 드러나는 후반까지 가는 안전 장치로 '빡빡한 시야 장악'까지 활용했다. 그러면 그전에 유리했건 불리했건 게임이 상대 쪽으로 기울어버리는 실수나 안 좋은 플레이가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이것 역시 넓은 의미로는 후반 캐리력이 드러나는 시점까지 최대한 버티려고 했던 향로 메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단식 메타는 라이브 서버에서 이미 추가 패치로 인해 설 자리를 많이 잃었다. 대회 경기에서도 다음 주 부터는 추가 패치 적용으로 보기 힘든 메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음주가 되기 전까지는 많은 LCK 팀에서 단식 메타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텀 라이너의 캐리력이 높고 그쪽에 많이 의존하는 팀들일 수록 더 그렇다. 이번 한 주 동안 LCK에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향로 메타가 단식 메타라는 시즌2의 모습으로 다시 주를 이룰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