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핀의 전승 행진이 끊겼다. 젠지 e스포츠와 아프리카 프릭스 등 하위권으로 처진 두 팀과의 대결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젠지전에는 0:2 완패, 아프리카전에는 1:2 패배를 당했다. 패배를 모를 것 같았던 그리핀이 2연패라는 어색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를 두고 많은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자신들을 괴롭혔던 리산드라-브라움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리핀의 전반적인 경기력이 하락했다는 내용의 분석도 나왔다. 오히려 전승을 달리던 그리핀이 패배할 정도로 LCK의 수준이 상승했다는 색다른 의견도 있었다.

LoL은 팀 게임인 만큼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승패가 결정되곤 한다. 패배는 선수 개인의 부진이나 팀적인 호흡에서의 아쉬움도 원인이 될 수 있고, 빠르게 변하는 메타의 흐름을 타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언급할 건 그리핀의 최근 경기 중에 뼈아픈 장면을 많이 연출했던 탑 라이너 '소드' 최성원이다.


연거푸 당한 솔로킬
라인 주도권 잃고 흔들리는 '소드'

'소드'는 언제나 그리핀에서 방패 역할을 도맡아했다. 사이온이나 우르곳 등 탱커 챔피언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고 상대의 화력을 몸으로 모조리 흡수했다. '쵸비' 정지훈과 '바이퍼' 박도현 등 그리핀의 딜러진이 활개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드'라는 든든한 탱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하지도 않았다. '소드'는 위에서 언급했던 사이온이나 우르곳을 주로 선택했는데 이들은 모두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어느 정도 살상력을 보유한 챔피언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드'는 탑 라이너 중 평균 킬 포인트 4위(2.87)를 기록 중이다. 그만큼 팀의 방패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결정력도 갖췄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메타는 탑 라이너에게 더욱 공격적인 플레이를 강요하고 있다. 사이온과 우르곳 등 소위 '무난한 탱커'들은 설 자리를 잃었고 브루저 혹은 좀 더 극단적인 딜러 챔피언들이 1티어인 세상이 도래했다. 이전보다 탑 라이너의 공격성과 그에 따른 라인 주도권이 중요해졌고 탑 라인에서의 격차가 팀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하는 추세다.


이런 메타 속에서 그리핀의 방패였던 '소드'가 고전 중이다. 최근 경기에서 '소드'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다섯 경기에서 그가 꺼냈던 챔피언은 라이즈와 리븐, 우르곳이었는데 팀의 패배를 제외하고 생각해봐도 경기력이 썩 좋지 않았다. 상대 탑 라이너에게 연달아 솔로킬을 허용하는 등 크게 흔들리고 있다.

'큐베' 이성진의 니코를 상대했던 젠지전 1세트에 '소드'의 라이즈는 17분경 상대 탑 2차 포탑을 압박하다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큐베'의 니코는 상대 미니언이 모조리 포탑 근처에서 사라지자마자 라이즈의 발을 묶고 대미지를 퍼부어 솔로킬을 기록했다. 젠지를 상대로 강한 압박을 가하던 그리핀은 이 시점부터 조금씩 흔들렸고 끝내 패배했다.

▲ 솔로킬을 허용하는 '소드' (출처 : LCK 공식 중계 화면)

아프리카 프릭스전에서는 '소드'가 더 흔들렸다. '기인' 김기인에게 또 한 번의 솔로킬을 허용했다. '기인'의 아트록스는 '소드'의 리븐을 상대로 수풀 속 매복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 깔끔한 솔로킬을 기록했다.

팀이 2연패를 기록하기 전부터 '소드'는 유독 상대 탑 라이너에게 솔로킬을 자주 허용했다. 샌드박스 게이밍전에 '서밋' 박우태의 제이스에게 당한 솔로킬도 있었고 SKT T1과의 대결에서는 자신의 주력 카드인 우르곳으로도 '칸' 김동하의 리븐에게 무너졌다.

탑 라이너의 솔로킬은 곧 라인 주도권 상실을 의미한다. 라인전 단계에서의 솔로킬은 물론, 스플릿 운영 도중 발생하는 솔로킬 역시 운영 주도권 상실과 일맥상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드'가 상대에게 연거푸 허용했던 솔로킬은 선수 개인에게는 물론 그리핀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솔로킬이 아니더라도 '소드'는 최근 탑 라인 메타 속에서 라인 주도권을 잡지 못한 적이 잦았다. 라인 주도권의 대표적인 지표인 CS 수급에서 밀리는 구도가 자주 발생했다. 라이너의 주도권 상실이 비단 그 라이너 만의 부진을 의미하진 않지만, 연거푸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면 평가는 조금 달라진다.


삐걱대는 어그로 핑퐁
'잘 맞았던' 그리핀, 마땅한 탱커가 필요하다?

'소드'가 최근 탑 라인 메타에 적응하지 못한 채 허덕이자 그리핀의 힘도 크게 줄어든 느낌이다. 현재 그리핀을 괴롭히고 있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어그로 핑퐁이다.

그리핀은 한타로 대표되는 팀이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는 정교함과 극한에 다다른 듯한 어그로 핑퐁 능력이 그리핀을 한타 최강으로 불리게 했다. 이를 토대로 그리핀은 역전을 거의 허용하지 않았던 걸로 유명했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한타 집중력으로 역전승을 거둔 적이 많았다.

▲ 탱커 챔피언들은 대회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현재 그리핀이 예전만큼의 한타를 선보이지 못하는 것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팀에 확실한 탱커가 없다는 점도 크게 한몫하는 걸로 보인다. 이 역시 '소드'가 자리잡고 있는 탑 라인의 최근 메타에 변화가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그로 핑퐁이 원활하게 되려면 먼저 상대의 대미지를 최대한 받아내고 살아나가는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보통 그런 역할은 탱커 챔피언을 뽑은 라이너가 도맡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핀에서는 당연히 '소드'가 그랬다. '맷집'을 불리기 용이한 챔피언을 뽑았을 때 '소드'를 비롯한 그리핀 전원은 한타에서 지지 않을 것 같은 포스를 내뿜었다.

▲ 상대의 돌격을 막아줄 '방패'가 없었다 (출처 : LCK 공식 중계 화면)

하지만 현재 탑 라인에서는 탱커 챔피언을 뽑기 힘들다. 그랬다간 라인 주도권을 일찌감치 상실한 채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해서 '소드' 역시 현 메타에 어울리는 챔피언을 여러 차례 꺼냈던 것이다. 하지만 탱커 챔피언을 잡지 못한 '소드'는 한타 상황에서 어그로 핑퐁의 선봉장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쵸비'가 리산드라 등으로 그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하곤 있지만 익숙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색깔 고집? 변화 시도?
'소드'의 성장통, 그 종착지는 어디?

'소드'는 그리핀이 정점으로 평가받던 시기에도 '타잔' 이승용이나 '쵸비', '바이퍼' 등에 밀려 빛을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소드'는 팀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수행했다. '소드'가 탱커 챔피언을 잡았을 때 느낄 수 있었던 안정감은 잊기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핀의 2연패가 모조리 '소드'의 탓이라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소드'는 현재 이전만큼의 경기력을 못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소드'가 어려움을 겪자 그리핀의 강점 중 하나가 그 힘을 서서히 잃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한동안 탑 라인에서 탱커 챔피언은 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소드'와 그리핀은 선택해야 한다. '소드'가 보여줬던 기존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점을 보완해 안정감에 무게를 실을 것인지, 아니면 변화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최신 유행하는 옷으로 갈아입을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핀 입장서는 '소드'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소드'의 성장통은 그 종착지가 어느 쪽이건 일찍 끝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