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개최되는 지스타 행사가 끝나면 어김 없이 나오는 말이 있다. 집안 잔치걸스타. 말로는 세계적인 행사라고 해 놓고 실제 외국 제작사는 별로 참가하지 않는다던가, 게임 소개나 홍보는 뒷전이고 늘씬한 부스걸들로 시선을 끄는 것만 생각한다고 해서 적지 않은 비난을 받는 일이 많다.



그런 폐단 아닌 폐단이 이번 차이나조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자칭 세계적인 3대 게임쇼라고 부르면서 해외 게임은 하나도 없고 중국산 게임만 있지 않나, 부스당 기본이 10여명인 부스걸들의 행진 등 한국의 지스타에서 지적받았던 문제점이 대륙적으로 스케일만 커져서 반복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속은 없고 눈요기 거리만 푸짐했다는 차이나조이 2009. 기자의 눈에 비친 이번 차이나조이의 문제점을 큰 항목별로 짚어 보도록 한다.



소문난 잔치 먹을것 없다 - 부실한 출품작

미국의 E3, 일본의 동경 게임쇼와 함께 3대 세계 게임 전시회라고 불리는 차이나조이는 사실상 세계 게임 전시회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수준의 출품작들로만 편성되었다. 또한 블리자드의 구색맞추기 스타크래프트2 동영상을 제외하고는 해외 유명 제작사들의 신작 게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워해머라던가 여러 해외 신작들이 하나둘 출품돼서 어느정도 '세계적'이라고 말을 붙일 수 있었지만, 올해 차이나조이는 거의 90%가 '어디선가 많이 본' 중국산 게임들로만 편성되어 있었다.



그나마 중국 자체 제작 게임이라고 해도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형태라던가 독특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작된 게임이라면 재미라도 있겠는데, 대부분의 게임들이 완미세계/던전앤파이터/오디션을 벤치마킹한 게임들이다. 앞의 3개 게임이 중국에서 서비스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 게임이기 때문에 벤치마킹한 게임들이 나온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90%가 그놈이 그놈이니 새로운 게임을 찾는 기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루할 수 밖에.




[ 어디선가 한 번은 본, 눈에 친숙한 게임들이 다수 ]



자체 제작 게임 외에도 중국 입장에서 해외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부스도 적지 않았다. 아이온이나 마비노기 등 한국의 게임들이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점은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세계 게임 전시회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서 왜 동아시아 3국(한/중/일)의 게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세계 게임 행사답게 게임 전시장이 아닌 개발자 컨퍼런스 행사장에서는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의 연설을 시작으로, 많은 개발자의 연설이나 강연이 개최되었으나 입장료가 매우 비싸서 일반인은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세계적인 게임 행사라고 한다면 해외 제작 게임들도 발표가 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개발자들만이 찾아와서 강연만 하는 것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시장성이 없거나 각종 규제 등으로 해외 제작사들의 신작 게임을 선보이지 못하고, 그 빈 자리를 미완성된 자국 게임들로 채우고 부스걸을 이용하여 눈요기거리만 제공하는 과거 지스타와 영락없는 판박이다.



정말 세계적인 행사 맞나 - 불편한 외국인 대응 시설

차이나조이가 개최되는 중국 상해에서 기자는 외국인이다. 기자가 중국어를 잘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어 회화는 전혀 안되고 그나마 한자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간판이나 간단한 문장 정도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사실상 중국어는 못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와중에 차이나조이를 방문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말이 통할 리가 없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물론이요, 행사장 부스의 도우미의 말이나 팜플렛이 모조리 중국어이니 중국어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영어와 일본어는 그럭저럭 할 수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라도 통한다면야 어딜 가더라도 어찌어찌 살아남을 수 있긴 하겠는데, 문제는 행사장에서 영어와 일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이나조이 행사장에서 배포하는 팜플렛은 전부 중국어로 씌어 있고, 옆에서 알려 주는 도우미 역시 중국어만 할 줄 알고 영어나 일본어는 완전히 할 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곳곳에 서 있는 표지판도 전부 중국어다. 심지어 행사장 공식 안내원이나 도우미들도 중국어만 말하는 사람이 다수이다.




[ 출입구 외에 외국어로 된 표지판은 거의 없다 ]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행사장 내의 곳곳에 있는 음료수나 음식을 파는 매장의 직원들이 영어나 일어를 더 잘한다는 것이다. 물건 사고팔기 자체가 가격만 알면 되는 것이니 대충 손짓발짓을 섞으면 의사소통이 해결되는 법인데, 외국어에 약하리라고 생각한 매장 직원들이 오히려 정식 안내원이나 부스 도우미보다 외국어를 잘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아무리 중국에서 개최되는 행사이고 방문객의 대다수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세계적인 행사인만큼 외국인 방문자를 위한 최소한의 다국어 가이드는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영어와 중국어로 표시된 간판은 화장실과 출입구 달랑 2가지뿐이고 그 외의 언어는 아예 답이 없었다.



게임대회인가 미인대회인가 - 과도하게 많은 부스걸

세계적인 게임 박람회인 차이나조이, 기자는 차이나조이를 차이나(걸)조이라고 부르고 싶다. 해매다 차이나조이는 많은 부스걸이 등장하기로 명성이 높다. 부스걸은 행사장에서 게임을 소개하거나 방문객들을 자사 부스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번 차이나조이에서는 부스걸과 게임 부스가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졌다.



가장 대규모의 회사들이 모여 있다고 알려진 1관의 대형 8개회사는 너도나도 게임보다는 부스걸을 앞세운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 줬다. 출품작 게임은 몇 개 되지 않는데 부스걸 숫자만 하나의 부스당 수십 명에 달하고, 실제 부스걸이 하는 일은 홍보자료 배포와 무대 패션쇼 외에는 없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완미시공사의 부스걸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1개 소대급의 부스걸을 동원하여 상당한 노출도와 무대행사를 개최하여 행사장을 방문한 관람객의 시선을 휘어잡는데는 성공했으나, 실제 게임에 대한 관심도는 그다지 신통찮았다. 순전히 완미시공사 부스걸을 보러 게임 부스를 방문하고, 시연대에서 게임을 보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완미시공사의 게임 자체가 대박을 낸 완미세계의 게임 엔진을 그대로 이용하여 등장인물과 몬스터만 바꾼 사골곰탕이고, 대부분 현재 상용화가 진행중인 게임들이라서 신작이 나와도 완미시공 게임은 다 똑같다는 인상만 받았다. 그렇게 게임이 부실한 점을 부스걸로 커버해 버린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완미시공사 게임 부스이다.




[ 완미시공이 부스걸 이벤트를 시작하면 다른 게임 부스는 GG다 ]



그렇지만 완미시공사 부스가 전부가 아니다. 대부분의 게임 부스가 게임 출품보다는 부스걸 출품에 열을 올렸고, 관람객들 역시 부스걸과 기념품 많은 부스 아니면 방문하는 빈도도 낮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홍보=부스걸&기념품이라는 공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차이나조이였다.



어디서 글을 쓰고 취재를 할 것인가 - 취재용 시설 미비

십 수만명이 방문하는 차이나조이는 행사의 규모나 방문객 숫자면에서 세계적인 행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매 행사때마다 적지 않은 외국인 관람객과 취재 기자단이 방문하게 된다. 기자 역시 외국인 취재 기자의 자격으로 차이나조이에 참가하였고, 행사 기간 내내 많은 게임을 취재하였다.



보통 게임 관련 행사장에서 취재를 한다면 노트북이나 수첩과 같이 기록용 도구를 지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대형 행사장에서는 프레스 룸과 같이 기사 작성을 위한 컴퓨터&인터넷 시설을 제공하는 곳이 많다. 또한 각종 게임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코너와 같이 자국&외국의 보도 매체를 위한 시설을 배치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차이나조이에서는 위와 같은 보도 매체를 위한 시설이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일반 행사장에서는 프레스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기사의 작성과 송고는 기자가 묵었던 숙소의 느린 인터넷을 이용해야 했고, 행사장의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은 후 노트북을 꺼내서 원고를 작성했다.




[ 프레스룸이 없어서 나무 아래에 종이를 깔고 앉은 인벤팀 2인조 ]



또한 프레스 룸을 찾을 수 없는 관계로 노트북이나 카메라 등의 기록용 도구의 전원 공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행사장에서 전원이 끊기면 속수무책이 되어버린다. 전원이 필요해서 각 게임 부스의 전원을 임시로 끌어다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전원 및 취재용 시설의 부족으로 행사기간 내내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세계적인 행사다운 준비를 원한다

위에 정리한 4가지의 불편점은 차이나조이의 수 많은 문제점 중에서 몇몇 굵직한 큰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것 외에도 다양한 문제점과 불편함이 행사 기간 내내 기자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중국인만을 위한 행사 준비와 볼거리로 자국 내 집안잔치라는 비난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차이나조이.



올해로 7년째를 맞이하는 차이나조이가 매년 꾸준히 같은 문제로 지적을 받아왔고, 결국 올해는 해외 게임사가 하나도 참가하지 않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해외 게임사가 참가하지 않는 것은 중국의 자국 게임산업 보호를 위한 법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이 외국인 방문객이 불편을 겪는 행사 시설 자체에도 원인이 있다.



세계적인 게임 행사로 알려진 일본의 동경 게임쇼 역시 불과 몇 년 전에는 해외 게임사의 불참과 자국 국민들만의 방문으로 집안잔치라는 오명과 함께 폐지 또는 다른 행사와의 통합의 위기를 맞았고, 올해 화려하게 부활한 E3 역시 작년까지만해도 올해 행사로 끝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았다.




[ 날씨도 흐리고 미래도 흐릿한 차이나조이 2009 ]



그렇지만 동경 게임쇼와 E3은 적극적인 해외 게임사 참가의 유도와 자체적인 행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의 개선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세계 게임쇼의 위치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급격한 시장의 확대와 동시에 떠오른 차이나조이 역시 한국의 지스타와 마찬가지로 같은 지적을 몇 년째 받고 있지만 개선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머지 않아 세계 3대 게임쇼의 지위를 다른 게임쇼로 넘겨 주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차이나조이가 올해와 같이 완벽한 자국만의 집안잔치에서 벗어나,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게임쇼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행사답게 전세계 누구라도 방문하여 충분히 보고 즐길 것을 제공하고, 행사장 내에서 불편함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