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X가 2020 우리은행 LCK 스프링 스플릿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T1에게 패배했다. '쵸비' 정지훈과 '데프트' 김혁규를 제외하면 신인급 선수들로 구성된 엔트리로 거둔 성적이다. 스플릿 3위라는 성적이 돋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드래곤X를 확대해서 보면 이번 T1전 패배는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팀의 감독인 '씨맥' 김대호는 또 T1을 넘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했기 때문. 포스트 시즌에서 T1에게 세 번째로 패배했다. 이쯤 되면 그가 원치 않는 꼬리표가 어쩔 수 없이 붙게 마련이다. 2019년부터 1년 반째 비슷한 곳에서 넘어졌다.


2019년
결과적으로 아쉬웠던 밴픽

김대호 감독의 LoL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대단하다. 허를 찌르는 밴픽 전략은 물론, 경기 내 플레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아우르는 능력이 탁월하다. '순간이동' 한 번이 경기 승리나 패배로 연결됐음을 알고 선수들에게 이를 강조하는 안목은 유명하다.

그의 입장에선 2019년이 특히 아쉬웠을 터. 그리핀에서 감독으로 활동했던 김대호는 챌린저스 코리아 하위권을 맴돌던 그리핀과 함께 LCK 결승 무대에 올랐다. 모두가 주목하는 신흥 강팀의 이미지는 이미 쌓인 상태였고 우승 트로피까지 거머쥐면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kt 롤스터와 접전 끝에 트로피를 내줬고 그는 다음을 기약했다.

다시 LCK 결승에 올랐던 그리핀과 김대호 감독은 T1을 만났다. 그리핀은 2019 스프링 스플릿 정규 시즌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꿨다. 선수들의 기량도 한층 만개했고 팬들은 그리핀의 2연속 결승 진출에 우승을 점쳤다.

하지만 그리핀은 T1에게 무릎 꿇었다. 가장 논란이 일었던 건 '탈리야-판테온' 바텀 조합 고집이었다. 그리핀은 당시 블루 진영에서 두 번 연속 위 조합을 꺼냈고 장점을 살리지 못한 채 패배했다.

▲ 실패했던 '탈리야-판테온' 조합(출처 : LCK 중계 화면)

이런 논란이 일었던 건 평소 김대호 감독의 밴픽 철학과도 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상황이 괜찮다고 판단되면 밴픽 전략을 수정하지 않은 채 다음 세트에 돌입했는데 이를 두고 '우틀않(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밴픽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큰 무대인 LCK 결승전에 또 나왔던 것.

물론, 당시 김대호 감독은 바텀 조합만 같게 했을 뿐 정글 챔피언을 올라프에서 엘리스로 바꿨다. 이는 바텀을 압도하고 발이 풀려야 강점이 살아나는 '탈리야-판테온' 조합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틀않'은 먹히지 않았고 그리핀은 비슷한 패턴으로 또 패배, T1에게 우승을 내줬다.

섬머 스플릿에도 그리핀은 결승에서 T1을 만났다. 김대호 감독과 그리핀은 절치부심해 결승전에 임했지만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다. 스프링의 교훈이었는지 김대호 감독 특유의 '우틀않' 밴픽은 나오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플레이가 이전과 크게 달랐다. 선수들은 돌아가면서 큰 실수를 반복했고 단단함을 최고 강점으로 둔 T1은 한 세트만 내준 채 또 그리핀을 제압했다.


2020년
새로운 도전, 비슷한 결과

김대호 감독은 2019년을 끝으로 새로운 팀에 자리잡았다. 그리핀과의 불화로 팀을 떠났고 드래곤X행을 택했다. 그의 수제자와 같은 '쵸비' 정지훈, '도란' 최현준도 그를 따랐다. '데프트' 김혁규라는 뛰어난 바텀 라이너까지 보유한 상황에서 드래곤X와 김대호 감독은 '표식' 홍창현과 '케리아' 류민석 등 신인을 조합해 로스터를 꾸렸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2020년 드래곤X도 그리핀이 처음 LCK에 합류했을 때처럼 놀라운 행보를 보였다. 걸출한 미드 라이너와 바텀 라이너에 대한 기대보단 신인급 3명이 우려를 자아냈다. 드래곤X를 처음부터 상위권 팀으로 점쳤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힘을 보여줬고 정규 시즌을 3위로 마무리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이었고 김대호 감독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입증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비슷했다. kt 롤스터를 제압하고 올라온 담원게이밍을 꺾으며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오른 김대호 감독은 또 T1을 만났다. 김대호 감독에겐 위기이자 기회였다. 두 번이나 자신을 좌절시켰던 T1에게 복수할 기회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번에도 T1에게 무너졌다.

과정도 어찌 보면 비슷했다. 처음 T1을 큰 무대에서 만났을 때와 비슷한 밴픽 전략을 구사했다. 정석과 거리가 먼 바텀 조합을 계속 꺼냈다. 비원딜 메타가 사장된 지금, 김대호 감독은 이번 T1전에서 '데프트'에게 직스와 빅토르를 선택하게 했다. 괜찮은 선택으로 보였다. '데프트'는 정통 원거리 딜러 챔피언만큼 비원딜 챔피언에도 능통했다.

김대호 감독의 필살기와 같았던 밴픽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상체 쪽에서 힘을 쓰지 못하자 드래곤X의 변수 가득한 바텀 조합의 힘도 크게 퇴색됐다. 경기 내에서 김대호 감독이 노렸던 조합의 힘이 몇 번 나오긴 했지만 3세트를 제외하면 돋보이지 않았다. 큰 무대에서 꺼내든 그의 색다른 무기는 T1에게 또 통하지 않았다.


남은 과제
김대호 감독은 T1전을 극복할 수 있을까

김대호 감독은 선수 육성에 뛰어난 감독이다. 챌린저스 코리아 하위권 팀을 LCK 우승권 전력으로 끌어올렸고 신입들이 다수 있는 드래곤X로도 비슷한 성적을 거뒀다. 그는 팀 게임을 할 줄 모르는 선수들을 1류로 키우는 능력을 꾸준히 보였고 그저 그런 팀으로 남을 수도 있던 팀을 LCK 최상위권 전력으로 키웠다.


하지만 아직 제자들을 왕으로 만들진 못했다. 김대호 감독이 LCK 포스트 시즌에서 지금까지 거둔 성적은 7승 14패. 정규 시즌만큼의 포스를 아직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포스트 시즌에서 김대호 감독이 거둔 성적은 LCK 중하위권 팀들과 비슷하다. 이번 스플릿 6위인 아프리카 프릭스가 7승 11패, 7위 APK 프린스가 6승 12패다. 큰 무대에서의 존재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김대호 감독은 그리핀 시절부터 유독 T1에게 약했다. 통산 전적은 15승 18패로 크게 밀리지 않지만, 포스트 시즌만 따지면 격차가 무려 2승 9패로 벌어진다. 더욱이 T1과 큰 무대에서 만나면 항상 색다른 밴픽을 시도하다가 결과적으로 패배하는 그림을 자주 보였다. 큰 무대에서 연이어 보여줬던 아쉬운 성적표와 T1이라는 천적 극복 실패로 김대호 감독은 스스로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김대호 감독에 기대를 거는 건 그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수많은 능력들 때문 아닐까. 다가올 섬머 스플릿에도 김대호 감독과 드래곤X는 힘찬 도전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