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롤드컵에서 가장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는 팀이라면, 단연 쑤닝이라고 할 수 있다. LPL 3번 시드로 출전해 그룹 스테이지에서 LEC 1번 시드 G2를 넘고 시작해 8강-4강에서 LPL 2번-1번 시드를 차례로 꺾고 롤드컵 결승이라는 무대까지 올라왔다. G2를 이겼을 때만 하더라도 G2가 그룹 스테이지에서 안일하게 임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느껴졌다면, 전력을 다하는 8강-4강에서 거둔 쑤닝의 승리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쑤닝의 행보가 더 무서운 건 롤드컵 메타라고 불리는 것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쑤닝의 밴픽이 이전에 안 쓰였던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도 아니었다. '상체' 탑-정글-미드 라이너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충분히 예측할 만한 선택들이다.

그러면서도 쑤닝은 오랫동안 기존 스타일을 고수한 이유를 확실히 보여줬다. 분명, 롤드컵에서 많은 팀들이 아지르를 비롯해 자신들이 선호하는 픽을 꺼내고도 탈락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쑤닝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들의 저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알고도 못 막는 변수형 정글러? '소프엠'


▲ 확고한 ALL AD 길 걸어온 섬머 정규 스플릿 '소프엠'

이번 롤드컵에서 미드 트위스티드 페이트(트페)-사일러스, AP 성장형 정글러와 그레이브즈가 픽 1-2 순위에 선택되는 장면은 정말 자주 봤다. 8강을 이어 담원-G2의 4강 1경기까지 이런 흐름이 계속됐기에 이 구도가 대세로 굳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LPL 팀 간 4강 2경기에서 색다른 양상이 나왔다. 최근 대세인 성장형 정글러 대신 리 신이 우선순위에 있던 것. 두 선수가 모두 리 신을 잘 다룬다지만, 빼앗아와야 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마지막 4세트에선 자르반 4세까지 나오며 갱킹형 정글러 간 대결 구도가 나오고 말았다. 해당 4강 승부는 확실히 리 신의 발끝과 자르반 4세의 대격변이 만들어내는 변수의 영향이 컸다.


승자는 마지막 4세트에 자르반 4세를 꺼낸 '소프엠'과 쑤닝이었다. 2레벨 갱킹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자르반 4세가 애쉬의 매를 피해 3레벨 갱킹에 성공하면서 스노우볼을 굴렸다. 갱킹에 실패할 시, 상대 그레이브즈에게 정글 지역을 장악당하며 힘든 경기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갱킹마저 깔끔하게 성공하면서 '카사' 그레이브즈를 한동안 커버형 정글러로 만들었다. 한타에서는 피해를 입지 않으면 체력 회복 능력이 높아지는 아이템 '워모그의 갑옷'을 최대로 활용한다. 치고 빠지는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타의 호흡을 길게 끌고 가며, 어그로 핑퐁과 상대의 발을 묶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며 여유있게 승리를 만들어갔다.

해당 경기만 본 이들이라면 생소할 수 있겠지만, '소프엠'의 리 신과 자르반 4세 픽은 예전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돋보였던 경기는 LPL PO의 LGD와 3/4위전이었다. 아래 영상 TOP3와 TOP1은 '소프엠' 리 신의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난다. 1세트 당시 '소프엠'은 킬 스코어가 6:20으로 밀리고, 글로벌 골드 1만 가까이 벌어진 양상을 뒤집는 경기의 주인공이었다. 상대인 '시예' 에코가 생존기조차 활용할 수 없게 확실하게 잘라낸 뒤, 끊임 없이 치고 빠지는 플레이로 기나긴 한타의 승자가 된다. '소프엠'이 현 메타에서도 자르반 4세를 꺼내 대격변으로 변수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TOP2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밀리는 듯한 상황에서 감각적으로 승리할 격전지를 만들어낼 줄 알았다.

'소프엠'의 정규 스플릿 픽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뚜렷한 AD 정글러의 길을 걸어왔다. 롤드컵에서 니달리를 몇 번 선보이긴 했지만, 중요 순간 선택한 건 결국 자신에게 익숙한 리 신과 자르반 4세였다. 어찌보면 뻔한 픽이지만, 플레이는 매번 뻔하지 않은 '소프엠'. 이를 쑤닝과 가장 익숙했던 LPL 팀들도 막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같은 챔피언을 활용하더라도 그 깊이가 남다르기에 그렇다. 점화 그레이브즈를 가장 먼저 프로씬에서 활용하고, 기사의 맹세 템트리-워모그의 갑옷을 선택하는 등 자신만의 남다른 챔피언 해석이 있었다. 이런 다양한 연구가 바탕이 돼 진가를 발휘하는 중이다.

▲ '빈-엔젤' 잭스-갈리오(4), '소프엠'(3-1) LPL PO 활약상


롤드컵 기간, 빈 틈 줄인 '빈'?

▲ JDG '줌' 넘어서면서 어느새 안정감까지 갖춘 '빈'


'소프엠'과 마찬가지로 탑 라이너 '빈' 역시 챔피언 폭에 큰 변화가 없다. 섬머 정규 스플릿부터 롤드컵 8강과 4강 승리의 주요 픽이었던 갱플랭크와 잭스, 오공은 꾸준히 활용해왔다. 나아진 점은 안정감. 확실히 공격형 '칼챔'을 주로 다뤘던 '빈' 역시 홀로 무리한 플레이를 하거나 상대의 노림수에 허무하게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TES와 이전 대결에서 '빈'의 KDA를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불안한 양날의 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반대로, TES 역시 '빈'을 쑤닝의 약점으로 노릴 법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롤드컵에서 상위 라운드로 올라가면 갈수록, '빈'이 안정감을 갖춰가고 있다. 그룹 스테이지만 하더라도 '왜 저러지.' 싶었던 무리한 플레이를 빼고, 담백한 플레이로 채워나가고 있다. 기존에 보여줬던 사이드 스플릿 구도에서 폭발력은 줄어든 듯하지만, 결국 승리로 향할 줄아는 방향을 따르고 있다. 이전이라면, 분명 유리한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갔을 '빈'이 상위 라운드에서 확실히 자제력을 갖춘 듯했다. 담원의 '너구리' 장하권이 다양한 무기를 쓸 수 있게 됐다면, '빈'은 기존 자신의 무기를 침착하게 쓰는 법을 익힌 것이다.

해당 능력을 갖추면서 '빈'은 한타에서 이전보다 돋보이는 경기를 펼치고 있다. TES와 4강 1세트에서 드래곤 3스택을 내주고 영혼을 두고 벌이는 전투에서 오공으로 휩쓸었다. '빈'이 꾸준히 해온 잭스 역시 누군가를 1:1 구도에서 솔로 킬을 내기보단, 영리하게 아군을 불러 한타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하지만 '빈' 역시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 분명, '빈'이 사이드 주도권을 확실히 잡았음에도 스노우볼을 확실히 굴리지 못하는 것. 공성과 운영 중심의 경기 양상이 나왔을 때, 어느 라인을 밀어 최대로 이득을 챙길지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경기 결과는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쑤닝의 사이드 운영상 약점이 드러난 경기가 보이기도 했다.

쑤닝 '빈' (vs TES), 챔피언 선택 및 KDA

섬머 정규 스플릿 vs TES(0:2) - 게임 평균 KDA 1.1
1세트 레넥톤 KDA 1/2/5
2세트 오공 5/9/1

섬머 PO vs TES(0:3) - 게임 평균 KDA 1
1세트 모데카이저 1/8/0
2세트 제이스 5/6/5
3세트 레넥톤 5/6/4

롤드컵 4강 vs TES(3:1) - 게임 평균 KDA 8.25
1세트 오공 5/1/5
2세트 오른 2/1/2
3세트 잭스 3/0/7
4세트 잭스 5/2/4


너희 하고 싶은 AD해... 팀 AP 채워주는 '엔젤'



앞서 언급한 두 선수 '소프엠-빈'이 확고하게 AD 챔피언을 선호한다면, 미드 라이너 '엔젤'은 AP 챔피언 풀로 정체성이 드러나는 선수다. '나이트'와 마찬가지로 신드라를 선호하는 선수다. 이번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에서도 신드라가 풀리면 첫 번째로 가져오는 밴픽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롤드컵에서 신드라가 밴되면서 갈리오, 그리고 오리아나와 같은 AP 정통 메이지 중심의 선택을 꾸준히 해온 선수가 '엔젤'이다.

'엔젤' 역시 롤드컵에서 보여준 능력치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갈리오로 합류전을 펼치다가 가끔 아칼리를 꺼내 예상 밖의 플레이로 상대를 위협한다. 4강 마지막에 등장한 아칼리 플레이는 날카로우면서 동시에 중요한 순간에는 선을 지키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면서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했다.


그런 '엔젤'에게도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 있다. 다른 팀과 달리 '엔젤'은 이번 롤드컵까지 중심에 서 있는 픽인 트위스티드 페이트(1전 1패 KDA 1.5)를 제대로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사일러스는 섬머부터 최근까지 쓴 기록조차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길을 걷고 있다. 대신 트위스티드 페이트-사일러스보다 티어가 떨어진다는 갈리오를 이번 롤드컵에서 가장 많이 해왔다. 롤드컵에 진출한 팀 중에 이런 통계를 보여준 미드 라이너는 정말 흔하치 않다.

쑤닝은 AP와 AD 딜의 밸런스를 맞추듯, '엔젤'이 탑-정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있다. '소프엠-빈'은 교전이 일어날 때, 들어가는 역할을 자처한다. 앞서 올린 LGD와 3/4위전 유튜브 영상 TOP4에서도 '빈'의 잭스와 '엔젤'의 갈리오 연계가 등장한다. 이처럼 '엔젤'의 갈리오가 두 선수를 보좌해주는 역할을 주로 해주면서 팀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갈 수 있었다. 무리한 듯한 플레이에 완성도를 높여주는 게 '엔젤'의 갈리오다. 쑤닝은 그렇게 의외의 지점에서 균형을 맞춰가며 서로의 아쉬운 점을 보완한 팀이 됐다.

쑤닝의 '상체'는 개개인만 보면 확고한 자신들만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개개인이 슈퍼플레이로 변수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팀적으로 어떻게 서로를 보완할지 연구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롤드컵 결승전 결과에 관해 담원 게이밍의 우승을 점치는 예상이 참 많다. 그렇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에 방심은 금물이다. 특히나 변수를 만들어낼 줄 아는 쑤닝을 상대로 말이다. 반대로, 리 신-자르반 4세, 잭스-갱플랭크, 아칼리-갈리오로 만들어내는 변수를 줄이면, 담원에게 쑤닝의 좁은 챔피언 폭과 운영 능력의 약점을 이용할 만한 기회는 충분히 올 듯하다.

LPL 섬머 정규 스플릿 챔피언 통계 출처 : gol.gg
영상 출처 : LPL ENG 유튜브, 네이버